푸른 수염의 8번째 부인
원제 : Bluebeard's Eighth Wife
다른 제목 : 청염 제 8처
DVD 출시제 : 블루비어드의 여덟번째 아내
1938년 미국영화
감독 ; 에른스트 루비치
원작 : 알프레드 사부아르
각본 : 빌리 와일더, 찰스 브라켓
출연 : 게리 쿠퍼, 클로데트 콜베르, 에드워드 에버렛 호튼
데이비드 니븐, 엘리자베스 패터슨, 허먼 빙
에른스트 루비치는 할리우드 클래식 시절의 코미디 영화 황제라고 할만큼 초창기 할리우드 코믹영화를 많이 만든 인물입니다. 1920년대~30년대에 그가 만든 흑백 할리우드 코믹영화는 기발한 재치와 가벼운 웃음을 주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독일 출신입니다. 연출은 독일에서 시작했지만 31세인 1923년부터 할리우드에서 연출활동을 했고 이후 계속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40년대 중반까지 여러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1938년 에른스트 루비치가 연출한 '푸른 수염의 8번째 부인'은 할리우드 유성영화 1세대의 명배우 게리 쿠퍼가 주연한 코믹 로맨스 입니다. 원래 게리 쿠퍼는 진지하고 정의로운 역할이 훨씬 어울리는 배우지만 의외로 코미디 연기도 종종 했습니다. 정통 코미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카데미상을 받은 '요크상사'나 '양키스의 자부심' '군중(존 도우를 찾아서)' 같은 영화에서 순진한 듯한 코믹연기를 했고, '오페라 핫드(디드씨 도시에 가다)'나 '미녀와 교수' '하오의 연정' 같은 전형적인 코믹영화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푸른 수염의 8번째 아내' 역시 게리 쿠퍼의 진지한 듯한 외모에서 풍기는 능청스러움을 통해서 그의 코믹재능이 은근 발휘된 영화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잠잘때 잠못 하의를 안 입고
'하의실종'으로 잔다?
파자마 상의만 필요한 남자
파자마 하의만 필요한 여자
'푸른 수염' 하면 원래 프랑스의 샤롤 페로가 지은 '잔혹동화' 입니다. 주인공 남자가 여러번 결혼하면서 아내를 매번 살해해서 성 안에 감추는 이야기인데, 몇 차례 영화화 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이 원작 각색물이 아니고 프랑스의 알프레드 사부아르 라는 극작가가 쓴 코믹 희곡이 원작입니다. 알프레드 사부아르는 1921년에 '푸른 수염의 8번째 부인'을 발표했고, 그 코믹 희곡은 1923년 글로리아 스완슨 주연의 무성영화로 만들어졌고, 1938년 작품은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이 유성영화로 다시 만든 것입니다. 샤롤 페로 원작동화에 나오는 '푸른 수염'이라는 제목을 쓴 것은 여러번 결혼한 남자를 지칭하는 것이지요.
큰 점포에서 영화가 시작됩니다. 프랑스 리비에라 지역의 한 패션점포, 파자마를 사러 온 키큰 신사(게리 쿠퍼)가 점원과 실랑이를 벌입니다. 그는 잠옷의 상의만 사겠다고 하는데 점포에서는 상의와 바지를 세트로만 판다는 주장입니다. 신사는 대부분의 남자는 잘때 파자마 바지를 안 입기 때문에 상의만 팔아야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때 점포에 들어온 젊은 여성(클로데트 콜베르)이 자신은 바지만 사면 된다고 하면서 두 사람이 같이 한벌을 사게 되어 해결됩니다.
게리 쿠퍼의 코믹연기
프랑스 출신이지만 할리우드에서 코믹영화로
흥행배우가 된 클로데트 콜베르
왼쪽은 '노안작렬'의 데이비드 니븐
물위를 가는 자전거
루이 14세가 쓰던 욕조랍시고 배달된
너무 작은 욕조(사실은 세면대)
이 오프닝 장면에서 그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는 걸 척 알 수 있습니다. 매장에서 한 번 마주친 두 남녀가 과연 나중에 어떻게 다시 재회할까요? 영화속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우연(혹은 인연)이 여기서도 벌어지지요. 그 신사는 미국의 억만장자 재벌 브랜든 이었는데 잠시 프랑스에 들른 것입니다. 사업만 하면 말아먹는 빈털터리 남자 한명이 브랜든에게 사업제안을 했지만 브랜든은 그의 뒷조사를 하여 그가 형편없는 사업수완과 재정궁핍 상태라는 걸 알고 거절합니다. 그런데 그는 알고보니 그 매장에서 마추친 젊은 여성의 아버지였고, 딸인 니콜이 돈을 아끼기 위해서 아버지 파자마를 바지만 샀던 것입니다. 니콜에게 반했던 브랜든은 그녀의 아버지에게 호의적으로 돌변하고 니콜에게 청혼하여 결혼날짜를 잡습니다. 하지만 니콜은 브랜든이 이미 7번이나 결혼했다 이혼한 사실을 알고 망설이는데 돈이 궁한 아버지는 둘의 결혼을 강력히 원합니다. 브래든은 맘에 드는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싫증나면 거액의 위자료를 주고 이혼하기를 반복한 상태, 니콜은 똑같은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서 일단 결혼은 했지만 냉랭한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스토리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재치있는 재미난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니콜이 해변가에서 은행원인 알베르(데이비드 니븐)와 즐기고 있다가 브랜든이 등장하자 알베르에게 '잘 모르는 남자인데 그가 잘때 잠옷바지를 안 입고 잔다는 것만 알아요' 라고 말하자 알베르가 놀란눈으로 오해하는 장면, 브랜든이 파자마 상의만 사겠다고 실랑이를 벌일때 점원이 상부에 보고하고 결국 사장이 불허하는 결정을 내리는데 정작 그 사장은 파자마 바지를 안 입고 상의만 입고 있는 장면 등등 이런 식의 재치있는 장면들이 수시로 등장합니다.
결혼할 남자가 이미 7번이나 결혼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경악하는데....
결혼 초기부터 기싸움으로 냉랭한 두 사람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읽고
아내를 휘어잡아 보려고 하지만....
보기 드물게 피아노 치며 노래하는
장면을 연기한 게리 쿠퍼
아쉬운 점은 이 영화 역시 비 라이센스 DVD로 출시되어 볼 수 있는 영화인데 다른 비 라이센스 영화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좀 나은 자막이긴 하지만 여전히 안 맞는 싱크와 부족한 번역 내용 때문에 온전히 영화의 재미를 다 만끽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속사포처러 빠르고 많은 대사라서 번역이 어려운 영화이긴 하지만 대사 외에 중요한 문구(신문제목, 책 제목, 편지내용, 안내자막 등)가 전혀 번역이 안되어 있는 것은 문제입니다. 특히 결혼한 브랜든이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책을 보고 아내를 길들여 보려고 책에 있는 내용 그대로 따라하는 점이 재미난데 최소한 책을 펼칠때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는 자막이 나와주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20% 부족한 번역입니다. 늘 고가의 비 라이센스 고전 DVD를 살때마나 느끼는 것이 '아마츄어 수준의 무성의한 번역' 입니다.
'어느날 밤에 생긴 일'로 일약 스타가 된 프랑스 출신 여배우 클로데트 콜베르가 여주인공인데 이 배우는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고 30-40년대 흥행배우로 활동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프랑스 여성으로 등장하여 자연스러웠습니다. 억만장자 미남 바람둥이가 척 반할만한 미모가 아니라서 좀 아쉽지만. 데이비드 니븐은 영국인인데 프랑스 남자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영어권 영화다 보니 영어권 배우를 쓴 것 같은데 모리스 슈발리에가 맡아도 어울리는 역할이긴 했지만 모리스 슈발리에는 이미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영화에 게리 쿠퍼보다 훨씬 먼저 주인공역으로 다수 출연한 경험이 있어서 들러리 조연을 맡기에는 좀 거물이었습니다. 데이비드 니븐은 당시 28세였는데 10살은 더 들어보이는 노안인증을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국내에 1939년에 처음 '푸른 수염의 8번째 부인' 으로 개봉했는데 1948년 재개봉때 '청염 제 8처'라는 한자식 제목으로 바뀌어 개봉했습니다. 한문을 많이 쓰던 시절 제목 답습니다.
부부간의 팽팽한 기싸움
비현실적으로 돈이 많은 부자와 결혼하는, 가난한 아버지를 둔 딸의 이야기라서 일종의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속에서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슬쩍 인용되고 있지만 엄밀히 보면 니콜이 기존 아내들과는 다르게 남편을 길들이는 영화입니다. 신데렐라 스토리형의 영화와 차별점은 천신만고 끝에 결혼하는 내용이 아니라 결혼은 영화 초반에 하게 되고, 이후 여주인공이 다른 이혼당한 여러 전 아내들과는 달리, 어떻게 억만장자 바람둥이 남편의 마음을 진정으로 얻게 되는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쁜 아내보다 '어진 아내'가 결국 통제하기 어려운 남자를 휘어잡는다는 내용이랄 수 있습니다. 물론 영화속에서 클로데트 콜베르는 미인 여성처럼 다루어지긴 합니다.
에른스트 루비치의 약간 후기작인데 대표작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게리 쿠퍼나 클로데트 콜베르에게도 마찬가지이고. 다만 이름있는 감독, 배우 들이 합작한 영화인 만큼 기본적인 재미와 완성도는 있는 영화입니다. 그 시대 이런 장르 영화에서 가장 좋은 콤비를 이룬 캐리 그랜트 + 캐서린 헵번 표 영화보다는 약간 밑도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볼만한 영화입니다.
ps1 : 잠이 안 올때는 '체코슬로바키아' 라는 단어를 끝에서부터 차례로 이어 보면 잠이 들거다 라는 다소 황당한 불면증 해소법이 제시됩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상당히 긴 글자의 국가명이지요.
ps2 : 클로데트 콜베르는 동시대 최고 스타였던 클라크 게이블과 게리 쿠퍼 모두와 공연한 '능력녀' 입니다. 프랑스계 배우로서는 엄청난 성공이지요.
ps3 : 게리 쿠퍼가 중간에 타고 등장한 '수상자전거' 실제로 그런 기구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네요.
ps4 : 푸른 수염이 여러번 결혼하고 아내를 살해한 잔혹동화속 주인공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헨리8세를 슬쩍 언급합니다. 헨리 8세는 참으로 여러번 결혼한 남자의 대표적 인물이지요.
[출처] 푸른 수염의 8번째 부인(Bluebeard's Eighth Wife, 1938년)|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