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권강화를 위한 대원군의 조치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조정에 처음 나온 날 그는 대신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태산을 깎아 평지로 만들고, 숭례문을 3층으로 높이겠다."'태산을 깎아 평지로 만들겠다'는 말은 지금까지 권력을 잡고 있었던 안동김씨를 몰아 내겠다는 뜻이고, '숭례문을 3층으로 높이겠다'는 말은 그 동안 벼슬에서 밀려났던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이겠다는 뜻이었다.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세도정치로 흐트러진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먼저 조정에서 김좌근, 김홍근 등을 몰아내고,그 밑에 빌붙어서 재물을 긁어 모으던 지방 수령들에게도 철퇴를 내렸다.여러 놈의 모가지가 떨어지고, 여러 놈이 재산을 빼앗긴 채 유배길에 올라야 했다.60년간의 부패한 안동 김씨(安東金氏)의 세도정치는 확실히 막을 내렸다.그러나 대원군(大院君)은 김씨 일족을 쫓아내거나 삭탈관직을 하였을 뿐 처형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전국에 뿌리내린 김씨 세력을 한꺼번에 제거할 수 없어서였을 것이다.🌹흥선대원군의 무신 우대 대원군(大院君)은 주둥이만 벌리면 쓸데없이 문자만 늘어놓고 유식한체 하는 문신을 좋아하지 않아 무신(武臣)을 정치 전면에 등장시켰다.원래 서양의 무기와 과학기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그간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던 무신(武臣) 들을 문신들과 똑같이 대우하고 군영의 대장을 무신이 맡게 하는 등 그들의 체신을 한껏 높여주었다.이러한 무신 우대 조치는 조선 초기와 중기에 북벌을 꿈꾸었던 효종, 그리고 정조 이후 처음이었다. 이로써 군권을 쥐게 된 대원군(大院君)은 왕권을 강화하여 강력한 통치권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대원군(大院君)은 이경하를 내세워 군권을 장악하고, 조영하를 발탁하여 요직을 맡겼으며, 파락호 시절에 손발로 부리던 수하인 천하장안(천희연, 하청일, 장순규, 안필주)을 시켜 벼슬아치들의 부정을 캐내도록 했으며 시중의 정보를 수집했다.이경하는 과감하고 결단성이 있어 대원군 대신에 군정을 잘 처리했으나 사람을 잘 죽였다. 오죽하면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이경하는 다른 장점은 없는데 오직 사람을 잘 죽이기 때문에 쓸만하다"라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이렇게 김씨 일문과 노론 찌꺼기 세력을 몽땅 제거한 대원군(大院君)은 전주 이씨 종친들과 인척들을 친위세력으로 발탁하면서 전면적인 인사개편을 단행하여 국정을 쇄신한 다음 총체적인 개혁에 나섰다.또한 대원군(大院君)은 서인들이 정권을 잡은 인조반정 이후 서인과 노론들에게서 처형을 당했거나 죄를 받은 400여 명을 복권시켰다.200여 년간이나 정권을 잡고 있으면서 더러운 권력 싸움 속에서 조선의 쇠퇴를 재촉하고 중병이 들게 한 서인 노론 세력의 그림자를 말끔히 걷어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모조리 신원시켰다.🌹지역차별 타파 1866년 대원군(大院君)은 평안도에서 정기 과거시험인 도과를 실시했고, 평양 사람 선우업을 발탁하여 동부승지로 임명했다.서북출신을 승지로 임명한 경우는 조선조 개국 이래 최초의 대사건이었다.그 다음 해에는 서북지방과 마찬가지로 내버렸던 땅인 개성에서 왕정양을 병조참의로 등용했는데, 고려 왕의 성씨인 왕씨(王氏)를 고위직에 등용한 것도 역시 개국 이래 처음이었다.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개성 사람들을 위한 과거를 실시하여 왕성협 등 5명을 문과에 합격시키면서 "나에게 지역차별이란 없다"는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켰다.이런 조치에 대한 서북사람들과 개성 사람들의 환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조선왕조 내내 지속되어 오던 지역차별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타파하여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게 만든 것이었다.
자료 더보기
출처: 한산이씨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들 원문보기 글쓴이: 길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