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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규가 바닷가 백사장에 맨발로 서 있었다. 발아래에는 바닷물이 파도를 일으키며 발을 적시었고 갈매기들이 계속 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먹이를 던져줄 것 같아 보였던 모양이다. 종규는 그렇게 물속에 발을 담그고 한동안 가만히 서있었다. 도무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종규의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 번호는 도찬호의 번호이었다.
“무슨 일이야?”
“워메! 나가 반갑지 않는 갑소? 나가 참말로 그쪽이 들으면 귀가 솔깃한 소식이 있는디!”
도찬호가 짐짓 거만하게 말을 꺼내고 있었다.
“뭔데 그래?”
“전화가 왔당께요! 삼합회 말이지라!”
“뭐! 전화가 왔단 말이야? 지금 뭐라고 그랬어? 삼합회라 그랬어? 어서! 어서 말해봐. 뭐라고 그랬어?”
“워따! 물이 넘치것소. 나가 참말로 뭔 영화를 보려고 이러는지 모르것소!”
그리고는 도찬호가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앞으로 정확허게 이틀 후에 흑산도 부근에서 여섯 명을 태우라고 했당께요! 한 명당 삼백씩 주것다며 말이여라!”
“여섯 명을 태우라고 했다고? 정말이야?”
“그렇당께요! 나가 한입 같고 두 말 허것소? 그런디 말이오. 삼백씩 여섯잉께 천 팔백이 아니것소? 나가 그런 호재를 마다혀야 허는디 참말로 눈물나요!”
도찬호가 은근히 돈타령을 했다. 그것은 천팔백만 원을 포기하는 대신 종규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자기를 과시 하고 있는 것이었다. 종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좋아! 이번에 이 사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잘 끝나게 되면 내가 너 소원 하나는 들어주지! 소원이 뭔데?”
“참말이지라? 참말로 들어주는 것이지라?”
“그렇다니까! 뭔데? 말해봐.”
“저기 그렁께 나가 이런말 허먼 부끄러운 일인디 사실은 내게는 철없는 동생이 한 명 있지라! 그란디 이 썩을 놈이 글씨 사고를 치서는 시방 감방에 들어가 있지 뭐여! 생각같아선 사람될 때까지 감방에서 푹 썩게 혀고 싶지만 그라도 워디 형제 정이란 것이 그런 것이다요? 그렁께 그쪽이 내 동생옴을 조께 풀어 줬으면 허는디……워때요? 들어 주것시오?”
도찬호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종규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 들어주지.”
“참말이지라? 참말로 풀어주는 것이지라?”
“그렇대도. 그런데 나도 조건이 있어. 거기 배에 우리 요원도 한명 태워야겠어. 괜찮지?”
“예? 우리 배에 그쪽 사람을 태운단 말이랑가? 수월찮게 힘들 탠디!”
도찬호가 어렵지 않게 수락을 했다.
“좋아! 그럼 배가 출항하기 전에 우리 요원을 태우는 것으로 할 태니까 선원들에게도 미리 알려나. 알겠지?”
“예! 걱정 말드랑께. 그쪽 약속이나 잘 지키쇼!”
도찬호가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종규는 도찬호의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삼합회가 드디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벌써 삼합회 조직원으로 의심이 되는 자들이 제주도에 이십 명 가깝게 모여 있었다. 정보에 의하면 그들의 모임 가운데에는 장연명이 있었고 모종의 일을 꾸미려는 것으로 보였다. 정확하게 어떤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에 고개를 돌려 본 종규는 그만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숙향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반갑게 웃으며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 이후 처음 보는 그녀였다. 물론 그녀의 일상을 계속 감청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감청 당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머! 반갑네요! 너무너무 반가워요!”
숙향이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러나 종규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숙향이 다가와 그의 팔을 껴안았다.
“왜 그동안 통 보이지 않았어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요?”
숙향은 콧소리를 내며 그의 팔에 힘을 주었다. 종규가 물었다.
“시간 있어요?”
“그럼요! 시간이야 얼마든지 있지요.”
“그럼 우리 좀 걸을까요? 저기 방파제까지 갑시다.”
종규가 그녀를 방파제로 이끌었다. 숙향이 그이 옆에 바싹 붙어 연신 종알거렸다.
“난 당신이 서울로 간 줄 알았어요. 통 보이지 않기에 연락도 없이 갔다며 서운해 했었는데!”
숙향이 끊임없이 참새모양 재잘거렸고 종규는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녀의 재잘거리는 모습과 어제 들은 장연명과 그녀의 정사장면이 겹쳐지며 얼굴을 찡그리게 했지만 그는 내색하진 않았다. 종규가 방파제에 털썩 주저앉아 담배를 빼물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숙향이 담배를 받아 입에 물었다. 요염한 입술에는 붉은 립스틱이 발라져 있었다.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종규가 입을 열었다.
“나 솔직히 고백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들어 주실래요?”
“네? 고백이오? 뭔데요?”
숙향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종규의 입에서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숙향 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사람입니다!”
“네? 의도적으로요? 그게 무슨…….”
“다시 말하면 난 작가가 아닙니다! 난 숙향 씨를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국정원 요원입니다! 그저 평범한 작가가 아니란 말입니다!”
“네? 구, 국정원 요원이라고요?”
숙향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변했다. 그녀의 눈이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그럼 의도적으로 내게 접근했다는 것……그, 그게 사실이에요?”
종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숙향의 입이 딱 벌어졌다. 그리고 이네 눈물이 글썽해졌다. 종규가 그녀를 쳐다보지 않으며 말했다.
“미안 합니다! 속여서. 하지만 처음부터 이러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계획에 없이 이렇게 된 겁니다!”
“어떻게 그런! 어, 어떻게 그런 무서운 거짓말을!”
“…….”
“그럼 내가 누구고 왜 지금 여기에 있는지도 알고 있겠네요? 그런가요?”
종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숙향이 놀란 얼굴로 종규를 쳐다봤다.
“나숙향씨! 당신 아버지는 나정찬 인도 대사이고 당신 어머니는 정선혜 서양화가! 그리고 당신은 장연면 삼합회 회장의 내연의 처!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당신의 전부입니다!”
“…….”
숙향은 다리가 풀려버렸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이 불리자 그녀는 전신에 힘이 빠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우린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 아버지 나정찬과 장연면과의 관계! 그리고 당신이 왜 장연명의 여자가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종규가 하기 힘든 말을 하고는 그만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숙향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돌아서 가려고 했다. 종규가 그녀를 붙잡았다. 붙잡힌 숙향이 그제야 울음을 터트렸다.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출 줄 몰랐다. 통곡에 가까운 울음이 계속됐다. 종규는 그대로 가만히 보며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한참을 울던 숙향이 겨우 울음을 멈췄다. 이미 그녀 눈은 울어서 퉁퉁 부어 있었다. 숙향이 흐느끼며 물었다.
“뭐에요? 내게 바라는 것이 뭐에요? 뭘 바라고 내게 접근한 거예요?”
“……”
“그렇군요! 뭔가를 바라고 내게 접근한 것이 맞네요. 그런데 어떡하죠? 난 지금 조금도 당신에게 협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데 어쩌지요?”
“…….”
숙향이 그리곤 돌아섰다.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의사표시였다. 종규가 그녀 뒤를 따라가며 입을 열었다.
“억지로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난 지금 여기에서 당신을 건저내고 싶습니다. 이 악순환을 고리를 끊고 싶단 말입니다!”
“…….”
“기회를 주십시오! 당신을 영원히 내 곁에 둘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숙향이 얼굴을 감싸 안고 주저앉았다. 그녀의 어깨가 심하게 흔들렸다. 통곡하고 있었다. 종규는 잠자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이미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서로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
인호를 태운 쌍끌이 어선 삼양1와 2호가 흑산도를 지나 중국과의 경계선을 향하고 있었다. 도찬호는 연신 시계를 보며 무전기에서 손을 때지 않고 있었다. 해는 이미 저물어 바다는 캄캄한 암흑이었다. 바다는 대륙과는 멀어져 거친 파도가 뱃전을 심하게 부딪쳤다. 그러나 배는 파도를 헤치며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 나갔다. 이윽고 접선 장소에 도착하자 삼양1호의 선장이 도찬호에게 물었다.
“아직 시간이 좀 있응께 노는 이 시방 그물을 한번 던지는 것이 어떠것소?”
도찬호가 선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선장이 마이크를 잡고 모든 선원에게 외쳤다.
“그물을 내릴 것이여! 시방 그물을 내릴 것잉께 싸게싸게 조업 준비를 하더라고!”
선장의 외침과 동시에 삼양1호와 2호가 가까이 달라붙었고 1호에서 던진 그물 끝과 연결된 밧줄을 2호가 받아서 배에 동여맸다. 그리고 신호에 따라 드디어 삼앵1호에 실려 있던 그물이 내려지기 시작했다. 커다란 플라스틱 욱기가 매달려 있는 둥근 원통에 감겨져 있던 그물이 선장의 신호에 따라 원통이 풀리며 미끄러져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그물이 내려가는 속도는 섬뜩할 정도로 빨랐다. 자칫 그물에 발이라도 걸렸다 치면 그대로 끌려서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며 들어갈 판이었다.
그러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그물이 물속에 내려졌다.1호와 2호가 양쪽에서 그물 끝을 잡고는 끌기 시작했다. 요란한 엔진 음과 함께 두 배의 기관실에서는 힘에 겨운 엔진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그물을 끌고 내달렸다. 그렇게 한 시간 가량 그물을 끌던 삼양호가 멈춰 섰다. 선정이 2호에게 무전을 날렸다.
“시방부터는 그물을 당길 것이여! 각자 위치에서 벗어나면 안 된당께! 속도를 맞춰서 일정하게 그물을 당겨야 한당께!”
선장의 지시에 따라 양쪽 배가 그물을 끌던 것을 멈추고 이젠 그물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물레모양의 거대한 둥근 원통이 돌면서 그물을 잡아끌어 당겨서 감았다. 그물이 힘겹게 감기면서 끌려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물의 마지막인 둥근 원형으로 주머니처럼 된 그물 속에 몰려있던 고기들이 한꺼번에 들어갔다. 둥근 주머니형의 그물 속에는 갖가지 고기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조기와 갈치, 그리고 삼치, 고등어 등 종별을 가리지 않고 고기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선원들이 선장의 지시에 따라 잡은 고기를 신나게 상자 속에 담았다. 그리고는 고기상자에 얼음을 채우고 배아래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았다. 대형 냉장고는 차가운 기온 때문에 서리가 잔뜩 끼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제법 많은 양의 상자가 쌓이고 어느 듯 주머니그물 속의 고기들이 모두 비워졌다. 선원들은 바닷물로 배창을 닦아내고 각기 만족한 흐뭇한 표정으로 담배 한 대씩을 꺼내 물었다. 조업을 끝내고 피우는 담배 맛은 일품인 것이다. 그때 도찬호가 들고 있던 무전기가 울어댔다.
“여긴 올빼미! 부엉이 현제 위치는? 현재 위치를 말하라!”
도찬호가 무전에 응답했다.
“여긴 부엉이! 현재 위치는 위도 34 경도 289! 이상!”
“알았다. 한 시간 후에 도착하겠다. 이상!”
무전기가 꺼졌다. 도찬호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인호에게 고개를 끄덕했다. 접선이 완료됐다는 신호였다. 인호는 뱃머리에 앉아 어두운 밤바다를 봤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었다. 그는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는 권총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입었던 비옷을 벗어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 가운데 불빛 하나가 삼양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어둠속에서도 용케 삼양호를 식별하고 불빛이 오차 없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가까이 다가온 배는 아주 낡은 중국의 어선이었다. 보기에는 곧 가라앉을 것처럼 낡은 배였다. 배와 배 사이에 나무 널판이 가운데 놓이고 곧 중국 어선에서 시커먼 그림자들이 널판을 통해 옮겨 타기 시작했다. 다행이 파도 너울이 심하지 않아 그들이 널판 위로 기어 넘어오는 대는 큰 지장이 없었다. 모두 어깨 위에 배낭을 메고 있는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들이었다. 특이한 점은 모두 하나같이 똑 같은 배낭을 메고 있다는 것이었다. 배를 건너 삼양호에 올라탄 검은 남자들이 일제히 배 밑창에 숨을 공간인 이중으로 되어 있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면 완벽한 숨을 공간이었다. 모두 여섯 명의 남자들이 모두 삼양호로 옮겨 타자 중국 배는 조금도 머물지 않고 그대로 뱃머리를 돌려 사라졌다. 삼양호 역시 남자들이 모두 옮겨 타자 기관실 엔진 소리를 높여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양호는 흑산도를 향했다. 인호는 여섯 명의 남자들이 배로 옮겨 타는 모습을 일일이 확인했다. 뱃머리에 설치해둔 CCTV에는 그들 모습을 고스란히 녹화하고 있었다.
배가 흑산도에[ 가까이 다가왔을 때 도찬호가 인호에게 물었다.
“이젠 어떨 것이여? 시방 여기서 저놈들을 그냥 놓아 줄 것이여?”
“아니오! 일단 흑산도에 도착해서 지켜봅시다. 저들이 총을 소지하고 있습니다!”
“뭣이여? 초, 총이라고라? 허면 시방 총격전이 벌어 질 것이란 말이여? 그런 것이여?”
“아니! 아직은 아닙니다! 그래서 흑산도에 도착해 지켜보자는 겁니다. 만약 저들과 한판 붙어야 한다면 배에는 피해는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렇지라! 시방 우릴 사이에 두고 총격전이 벌어진다면 나가 배를 확 물속에 처박아 버릴 것이여!”
도찬호가 불안한 눈으로 허둥댔다. 그러나 인호는 절대로 배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게 하진 않겠다는 약속을 할 수는 없었다. 놈들이 만약 총을 빼들고 덤벼든다면 방어 차원에서도 총격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배가 흑산도로 들어섰다. 어두운 흑산도 항구에는 수많던 배들이 조업을 나가고 몇 대의 배들만 항구에 남아 있었다. 삼양호가 항구에 정박을 하자 습관처럼 해양경찰이 다가왔다. 해양경찰이 선장에게 말을 걸었다.
“어째서 이리 빨리 들어왔당가? 조업 하지 않을 것이여?”
“뭔 소리다요? 괴기 잡는 놈이 이유없이 이렇게 빨리 들어 왔껬으라? 엔진이 고장이랑께! 손보러 왔당께!”
“그려? 어디가 고장인디?”
“나도 모르것소! 기관장 말로는 펌프가 나갓다 허는디 나가 펌프가 어디 붙었는지 어찌 알겠소?”
선장이 해양경찰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선장의 너스레에 해양경찰이 웃으며 입항서류에 사인을 해줬다. 원래는 선원들까지 일일이 체크 해봐야 하는데도 해양경찰이 그냥 사인을 하고 말은 것이다. 그리고는 배에서 내려버렸다. 배 밑창에 숨어들은 여섯 명은 들키지 않고 무사히 흑산도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도 한참 후 주변이 조용해지자 그림자들은 삼양호에서 내렸다. 어둠속에 여섯 명의 그림자들은 서로 짝을 이루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인호와 국정원 요원들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덮칠 수가 없었다. 그림자들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 여섯 그림자가 육지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리고 그들은 신속하게 세 팀으로 나눠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두 명은 바닷가로 향했고 두 명은 작은 언덕위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배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는 똑딱선으로 향했다. 똑딱선은 겨우 사람 대여섯 명이 타면 꽉 차는 작은 배였다. 똑딱선의 선장이 두 명의 그림자가 타자 서둘러 배를 항구에서 멀어지게 했다. 빠른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인호가 숨어 지켜보고 있다가 똑딱선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급히 본부로 전화를 걸어 지시를 받으려 했다. 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제 놈들의?”
“예! 놈들이 세조로 갈라졌는데 한조는 민간인 집으로 들어갔고 다른 한 조는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머지 한조는 지금 바다로 향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사를 내려 주십시오!”
“뭐야 세조로 나눠졌단 말이야? 혹시 작전이 들통 난 것 아니야?”
“글쎄요!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아니라면 지켜볼 것 없어! 우선 배에 탄 놈들부터 생포해! 그리고 나머지들 역시 체포 하도록 해! 작전은 신속하게 해야 하는 거야! 어서 서둘러!”
실장이 다그쳤다. 인호가 곧장 요원들에게 지시했다.
“생포해! 저항하면 쏴 버려!”
인호의 지시에 따라 요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세 개 조로 나뉘어 각각 흩어진 놈들을 추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바다로 나간 작은 똑딱선을 추격했다. 바다 한 가운데 달리고 있던 똑딱선이 무서운 속도로 경비선이 다가오자 갑자기 속도를 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경비선에 타고 있던 인호가 놀라 외쳤다.
“뭐야! 저 배 왜 저렇게 빠른 거야? 특수엔진을 부착한 쾌속선 아니야?”
맞았다. 똑딱선은 특수엔진을 부착한 쾌속선이었다. 쾌속선이 경비선을 따돌리고 곧장 앞으로 치고 나갔다. 경비선이 기를 쓰고 뒤를 쫒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조그만 한 것이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파도를 헤치고 나갔던 것이다. 인호가 하는 수 없이 똑딱선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모두들 인호를 따라 총을 쐈다. 달리던 똑딱선이 속도를 늦췄다. 검은 연기가 치솟는 것으로 봐서는 총알이 엔진부분에 맞은 것 같았다. 경비선이 다가가자 이번에는 똑딱선에서 경비선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미 총을 맞아 피범벅이 된 그림자 한명이 옆으로 꼬꾸라져 있고 그 옆에는 나머지 한명이 결사적으로 총을 쏘아댔다. 인호는 생포를 포기했다. 그가 쏜 총알이 인호의 귓전 옆으로 바람소리를 내며 날아갔던 것이다. 자칫 자신을 비롯한 요원들 목숨이 위태로웠던 것이다. 인호는 그림자를 정조준 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비명과 함께 그림자가 쓰러졌다. 그제야 똑딱선이 조용해졌다. 경비선이 천천히 똑딱선 가까이 다가갔다. 피에 젖은 두 명의 그림자와 배를 몰던 다른 한 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모두 사망했다. 인호는 급히 무전기를 들고 외쳤다.
“B조! 그곳은 어때? 생포 했나?”
“아닙니다! 놈들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아무래도 응수를 해야 되겠습니다!”
요원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인호가 주먹을 쥐고 배를 내리쳤다.
“에이 썅! 좋아! 당장 사격을 실시한다! 되도록이면 민간인들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이상!”
인호는 다른 한 팀도 무전을 넣었다.
“C조는 어떤가? 생포가 가능한가?”
잠시 후 요원이 무전기에 대고 다급하게 말했다.
“이, 이상합니다! 집이 텅 비어 있습니다!”
“뭐야! 그게 무슨 말이야? 집이 비어 있다니. 그럼 놓쳤단 말이야?”
“그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집 둘레를 빙 둘러 쌓고 개미 한 마리도 빠져 나가지 못하게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놈들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이게 무슨 지랄 같은 말이야! 에워 쌓는데 사라지다니. 그럼 놈들이 하늘로 날아갔단 말이야?”
인호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는 경비선을 몰고 있는 해경에게 소리쳤다.
“어서 돌아갑시다! 돌아갑시다!”
경비선이 부랴부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 무전기가 다시 들렸다. C조의 무전이었다.
“노, 놈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았습니다! 그런데 부엌 아궁이로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굴이 뚫려 있었습니다! 굴이 뚫려 있단 말입니다!”
“뭐라고? 굴이 뚫려 있다고? 그럼 굴이 어디로 연결돼 있어? 어서 들어가 봐!”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그, 그런데 굴 끝이 방파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이미 놈들이 방파제를 통해 외부로 빠져 나간 것 같습니다!”
인호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뭐야! 빠져 나갔다고? 여, 여긴 외딴 섬이야. 이곳에서 빠져 나간다면 배 이외는 빠져 나갈 수가 없단 말이야! 즉시 전 해양경찰에 비상을 걸어! 어서!”
인호가 소리소리 쳤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놈들을 놓친 것이라면 이건 정말 큰 실수를 한 것이었다. B조의 무전기가 계속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작전 끝! 두 놈을 사살했다! 작전 끝! 두 놈을 사살했다.”
그러나 C조의 무전기 채널에선 침묵했다. 놓쳐버린 두 놈을 추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호가 무전을 통해 모두에게 외쳤다.
“모두 C조를 지원해! 어서 빨리!”
인호의 외침이 무전기를 통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인호는 경비선에 놓여있는 죽어있는 그림자들이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이 눈에 들어왔다. 생명이 위태로웠던 위급한 순간에도 그들은 배낭을 버리지 않고 등에 메고 있는 것을 인호가 벗겨내었던 것이다. 인호는 그림자들이 메고 있던 배낭을 열어봤다. 한명의 배낭 속에는 지도와 함께 간단한 요기꺼리, 그리고 노트 한권이 들어 있었다. 다른 한명의 품에 꼭 끌어안고 있던 배낭을 열어본 인호는 의아해 했다. 두터운 책자 한권이 들어 있었다. 모두 영어로 쓰인 책자였는데 페이지마다 코팅이 되어 있어 물에 젖어도 찢어지지 않게 되어 있었다.
‘음! 뭐지? 이게 무슨 책인데 목숨처럼 보존 하려고 했을까? 뭐지?’
인호는 짧은 영어실력으로 책자를 잃어 내려갔다. 그러나 겨우 몇몇 단어들만 그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핵이란 단어와 분자라는 단어였다.
‘핵과 분자? 이게 뭐지? 핵과 분자라니? 그, 그럼 이것이 핵과 연관된 책이란 거야? 이, 이런!’
인호는 깜짝 놀랐다. 핵이라면 며칠 전 우라늄이 들어 있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는 상자가 휴전선에서 발견돼 발칵 뒤집혀 진적이 있었다. 그런데 또 핵에 관한 책자가 밀항자들 소지품속에서 나온 것이다. 인호는 서둘러 본부와 연락을 취했다. 그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본부! 본부! 헬기를 빨리!”
인호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그는 계속 목청을 높여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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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고무보트 한대가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내달리던 고무보트가 멀리 바다 한 가운데 서있는 커다란 상선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갔다. 상선에는 뚜렷하게 일본의 일장기가 걸려 있었고 배명에는 사사키호라고 적혀 있었다. 사사키호 상선은 바다 한 가운데에서 고무보트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무보트가 상선 가까이 다가가자 상선에서 줄사다리가 내려왔다. 동시에 고무보트에 타고 있던 두 명의 그림자들이 줄사다리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림자들은 줄사다리를 타고 완전히 넘어가 상선 속에 숨어들고는 보이지 않았다. 두 명의 그림자를 태운 사사키호는 아무렇지 않게 줄사다리를 걷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무보트는 그대로 돌아서 흑산도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사사키호는 누가 봐도 평범한 상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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