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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이 이리도 좋은 줄 몰랐어요!
서울의 장지동, 어둠이 걷히려면 한참 남은 시각의 아파트. 한 남자가 눈을 번쩍 뜨고서 시계를 본다. 새벽 3시30분. 출발지 양재동엔 6시 50분까지 가면 된다. 아직 세 시간이나 여유가 있는데 정신은 자꾸만 맑아 온다. 조용히 나와 거실의 불을 켠다. 장거리 여행이 오랜만이라 긴장감이 있었나 보다. 이왕 일어난 김에 이것 저것 챙겨 가방에 넣기 시작한다. 날씨가 쌀쌀하고 잠자리가 불편하다는데 짐이 많아지지는 않을까. 금새 가방이 불러 온다.
창원의 중동, 어젯 밤 파티는 무척 황홀했다. 마산 어시장 횟집에서의 소주 파티. 영국서 만나 지금껏 연을 이어오고 있는 30세 아가씨가 지인이다. 여행지의 만남은 나이를 불문한다. 지인의 부모님이랑 넷이서 주거니 받거니 했다. 지인 아버지는 한 살위다. 공대 교수인데 작년에 은퇴를 했다. 참으로 따뜻한 가족같아 몇 번 보아왔고 요즘은 한 가족이 된 듯 하다. 편안한 밤을 지내고 지인의 가이드로 아침 일찍 주남저수지로 향한다. 창원의 관광명소인 듯 했다. 고즈늑하고 무척 아름다웠다. 새가 되어 날고 싶었다.
창원의 반송동, 어젯 밤 남자 홀로 방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없었다. 쓸고 밀고 문지르고 때를 지워 내었다. 홀애비 가득한 냄새를 없애야 했다. 새벽1시까지 거실과 방 두 개와 화장실을 왔다 갔다 정신없이 돌아간다. 아침 8시에 벌떡 일어나 현장 검증에 나선다. 매트를 빌려 주기로 한 친구한테서 전화가 온다. 오전에 바쁘니 오후에 와서 가져 가라고 한다.
마산 어시장 다정생아구찜, 11시 조금 넘은 시각 스타렉스 한 대가 물끄러미 들어오고 등산복 차림의 남자 다섯이 차에서 내린다. 창원의 남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환, 현준, 병선, 만석, 종원이 호랭이를 만난다. 마산에서 음식깨나 한다는 이 곳에 자리하고서 아구찜과 아구찌개를 시키고 명태부침을 주문한다. 12시가 되니 지인과 같이 창원의 명소를 구경하던 남회장님이 합류한다. 다 함께 건배를 나누고 대학이후 처음 만났다는 전설속으로 빠져든다. 아구찜의 매콤한 맛에 땀샘이 폭발한다. 찌개도 다시 못볼 그윽한 맛이다. 콩나물 사각사각 소리는 서울까지 가져 가야 할 것
같다. 누구는 맥주로, 누구는 소주로만, 누구는 섞어서 약간은 알딸딸 분위기를 느끼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창원 팔룡산 돌탑공원, 일곱의 산객들이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도심의 가운데 위치하여 시민들이 즐겨찾는 공간답게 편안한 산책길이다. 마실길이다. 328미터의 마실길이 포근한 기온속에 봄길을 연출한다. 모두들 산악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인 만큼 걸음걸이가 다들 가볍다. 팔룡산 초입에 돌탑이 조성되어 있다. 30년전에 한 분의 지극정성으로 시작하였다는 돌탑쌓기는 이제 1,000기에 이를정도로 방대하다. 전라도 진안 마이산의 돌탑에 비해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세월이 천년쯤 흘러 어느 누가 이 길을 걷는다면 이 돌탑을 뭐라고 표현할까? 염원이나 기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산짐승들이 쌓았을거라고 할까, 원래 자연적으로 쌓여 있었다고 할까?
계곡을 중심으로 좌우로 빼곡히 들어차다 점점 산허리 위로 오르고 올라 거대한 산성같이 휘감고 있는 돌탑은 정말 말로도 표현 불가능한 극존이다. 개개인의 염원이 모이고 모인다면 팔룡산 전체에 돌탑이 들어서지 않을까. 그 일은 또 누가 할 것인가.
산행길 1.1키로는 만만치 않는 길이다. 그래도 우리는 마실길이라 부르면서 가고 있다. 땀이 삐죽삐죽 나기 시작한다. 산이 돌이다. 여기도 돌 저기도 돌이다. 돌많은 산은 악산이라 했는데 여기가 그와 같다. 그래도 전작의 흥분들이 아직은 남아 있어서인지 호흡은 가파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하늘을 나는 듯 하다. 드디어 1시간의 마실 끝에 정상에 이른다. 웬 무덤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산 정상에 무덤은 잘 볼 수 없는데 후손들의 정성이 정말 지극이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 일행 중 누구는 상여를 메고 왔다 하고, 누구는 그냥 관으로만 왔다고 한다. 뭐 그게 중요하랴 싶다. 만일 상여를 메고 왔다면 그 사람들은 아마 죽을똥 살똥 했을 거다. 마산의 3.15민주항쟁 묘지가 눈에 들어온다. 하이트 맥주공장이 잡힌다. 마산항의 검푸른 바다가 평온하다. 바지선 여럿이 눈길을 끈다. 무동력 바지선 말이다.
마산은 매립지 동네라고 들었는데 어디까지 매립된 곳인가요? 기자선생이 질문한다.
저기 보이는 바다쪽 아파트 그 뒤로 상가건물들, 그 뒤로 주택들 대부분이 매립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네, 마산은 매립의 도시다. 일제 강점기 건설된 바다 주변 도시들이 대부분 그렇다. 목포, 군산이 그렇다. 따뜻한 오후의 햇살을 한껏 받으면서 하산길에 접어든다. 쉬울 줄 알았던 내리막이 난코스다. 돌이다. 여기도 돌 저기도 돌이다. 경사가 급하다. 전문 산악인들에게느 아무렇지 않다. 몇몇을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저 멀리로 봉암 수원지가 에머랄드 빛깔을 뿜내면서 손짓하고 있다. 일행 중 누군가 녹조 아니냐고 한마디 한다. 팔룡산 허리춤 암벽 낭떠러지에서 수원지를 배경으로 한 컷 남겼다. 오후의 태양이 실루엣을 멥씨 좋게 그려 주었다. 인생컷이라 할 만 했다. 거친 하산길에 산악회 남회장님은 누군가의 부축을 가끔씩 받아야 했다. 그만큼 내려 가는 길이 험했다. 자칫 잘못하면 다리에 발목에 무리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여덟마리의 용이 내려 왔다는 팔룡산은 정말 멋있는 산이었다. 단지 돌산이라는 단점만 빼곤 말이다. 오후 1시에 산을 오르고 2시에 정상에 도착, 다시 50분 걸려서 그 어려운 하산길을 마무리 했다. 도심 중심부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감탄을 연발한다. 녹조가 있는지 없는지 당연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창원시 팔룡동 봉암동 양덕동에 걸쳐 있는 팔룡산 상류 계곡을 저수지(수원지)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물을 공급한게 1920년대이고, 1980년대에 인구증가로 수원지로서의 기능은 상실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일정도로 깨끗하게 물관리를 하고 있다. 한 바퀴 둘러 보는데 30분정도 소요되니 2키로 남짓 딱 좋다. 7명의 산악인들은 도심에, 깊은 산속에 이런 호수(저수지)가 있다는 것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둘레길에 접어들면서 느끼는 감정은? 사랑하는 사람과 깊은 사랑에 빠져드는 그런 기분 아니었을까. 중간에 엄청난 크기의 형형색색 물고기떼들을 만나는 행운도 누린다. 잉어일까, 인어일까,붕어일까.
수원지에서 유원지 입구로 내려오는 길도 예사롭지 않다. 일행 중 한 명의 요청으로 사진을 찍어 놓고 보니 수채화가 되었다. 배경이 좋다는 뜻일까? 사람이 다채롭다는 의미일까? 그만큼 봉암동 팔룡산 계곡 맵시가 좋다는 뜻일게다. 2시 50분에서 3시 20분까지 둘레길 돌고 3시 50분에 유원지 입구에 도착하여 택시타고 원래의 위치인 팔룡산 돌탑 주차장으로 이동하니 4시가 조금 넘는다.
창원의 가로수길, 드라이버 준은 운전 솜씨가 탁월하다. 오프로드, 온로드 가리지 않는다. 아직 그만큼의 운짱을 본 적이 없다. 여지없이 이번 일정의 드라이빙을 도맡고 있다. 창원 가로수길 커피마시러 가는 길이다. 도심을 통과하여 메타세콰이어 쭉쭉 늘어선 창원에 진입하면서 동네의 향기가 다르다. 초록이 이제 검붉은 잎새로 변하기 까지 무던히도 애를 썼을 것이다. 사람도 그와 다르지 않을 터. 가로수길 양쪽으로 주차된 차량이 가득하다. 이런 좋은 날씨에 집에 있기에는 다들 아까운지 겨우 빈틈을 발견해서 차를 세운다. 명품 커피솝 영국집을 선택한다. 커피를 주문한다. 라떼, 영국커피 아이스커피가 줄줄이 나온다. 힘든 산행 끝에 얻은 달콤한 여유. 커피가 목줄을 타고 넘어 가면서 서울의 가로수길보다 이곳 가로수길이 한층 아늑하고 여유있고 정갈하다고 누군가 얘기한다. 서울의 좁은 길에 비하면 맞는 말이다. 메타세콰이어 하늘을 찌르는 모습에 감동하지 않을 이 아무없을 터. 경남지사 관사가 건너편에 서 있다.
오늘의 숙소로 사용될 호랭이 굴에는 이불이 그다지 많지 않아 친구에게서 매트를 빌린다. 그래서 드라이버 준이랑 얼른 달려가서 매트를 서너개 안고서 돌아온다.
만찬장의 웃음소리, 커피솝에서 숙소로 돌아와 짐을 대충 챙겨 넣고서 도보로 만찬장소(횟집)에 들어선다. 방어를 비롯하여 대여섯 가지가 자연산 횟감이 빈틈없이 접시를 채우고 있다. 음식의 혁명가 알대장의 표정이 환하게 바뀐다. 맛있다. 모두의 젓가락이 춤을 춘다. 드라이버 준도 맛있다고 연발한다. 보통은 초장에 찍어 먹었으나 그 날 만큼은 고추냉이에 찍어 먹는다. 회맛을 진하게 느끼고 싶어서다.
일행 중 종원대원을 로버트 레드포드 닮았다고 얘기가 나온다.
누군가 물어본다.
뭐라카노?
누군가 대답한다.
“로보트”
물어본 사람은
“그래, 로보트”
일순간 찢어진다. 배꼽을 잡아 뺀다. 결론은 종원 대원이 잘 생겼다는 거다. 이 모임은 40년의 인연을 갖고 있다. 질긴 인연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산악회 인연도 벌써 15년이다. 참으로 질긴 인연들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인연들! 대단한 인연이다.
숙소에서 하룻밤, 숙소로 돌아온다. 9시다. 3시간을 만찬장에 머물렀다. 슈퍼에서 사 온 맥주로 2차를 달린다. 씻고 잠자리를 준비하는 대원도 있다. 맥주가 떨어지고 옻술로 허기를 달랜다. 종원 형과 환이 형의 얘기가 깊다. 환이대원의 현실 금융론에 대해 한참이나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가평땅 투자에 대해서도 전문가답게 열변을 토한다. 내일 새벽 5시 기침이니 11시쯤 다들 잠자리에 들었다. 호랭이는 정리를 조금 더 하고서 11시 30분 노곤한 허리를 뉘였다. 드라이버 준의 코고는 소리가 새벽까지 이어졌다. 아이구,
<다음 호에 계속>
첫댓글 하 하하! 역시! 재미진 산행기, 기철씨 글 솜씨가 좋네. 산행기 시작을 같은 시간 다른 공간으로 잡는 영화적 해석 굿!
쓰는 김에 내처 이틀치를 다 쓰지. 궁금하잖아. 재미나게 읽었다.
본인이 화자이면서, 제3자마저도 화자로 엮어 놓는 솜씨가 대단하구먼.
새벽 3시 30분 ~~ 설레었지요^^
재미있게 잘쓰네...재주를아끼지 말고 자주 활용하도록... 우리 간 뒤 뒤처리하느라 힘들었지? 수고했다!!!
ㅋㅋㅋ드라이버 준에서 빵터짐
열하일기 스타일에서 막바로 하이틴 로맨스로 가는 건 반칙 아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