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섬 완도로 갑니다. 또다시 기름 냄새 짙게 밴 철부선을 타고 또 다른 섬 하나를 만나러 갑니다. 하늘과 바다, 산 ….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푸르러 청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섬 청산도지요. 그리고 그 곳에서 아장아장 아기가 조심스레 첫발을 내딛 듯 살며시 다가온 봄을 만납니다. 꽃피는 봄이 오면 유채꽃과 푸른 마늘밭이 바다와 맞닿아있어 눈이 아프도록 푸르고 아름다운 섬 청산도. 그 중에서도 당리마을은 돌담길과 다랑이논의 선으로 청산도의 풍경이 가장 빛나는 곳입니다
선창에서 10분 쯤 자동차를 타고 언덕길을 오르면 야트막한 야산이 나오는데, 낯익은 돌담길과 밭이랑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영화 ‘서편제’ 와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이지요. 그 길에 서면 조급증에 시달리던 현대인들도 도시에의 길처럼 바삐 걸을 수 없답니다. 영화 서편제에서 보았듯 고작해야 한 명이 걸어갈 정도로 좁은 길이 굽이굽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길 위를 걷고 있노라면 마치 한 척의 작은 돛배가 된냥 푸른 바닷가를 유유히 떠다니는 듯 합니다. 소리꾼 부녀와 의붓남매의 기막힌 삶을 애절하게 담은 서편제는 작품성에서도 뛰어난 영화였지만 우리 고유의 가락과 아름다운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져 더 큰 극찬을 받았지요. 그 많은 촬영지 중에서 당리 마을이 유독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유는 바로 5분 30초에 걸쳐 롱테이크로 찍은 아름다운 화면 때문입니다. 유봉이 송화와 봉호와 함께 진도아리랑을 뽑아올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내려오는 바로 그 장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낫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밭이랑 새순의 떨림,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봄 햇살, 보리밭 언덕에서 만나는 봄 빛깔은 어찌 보면 화려한 꽃밭보다도 더 향기롭고 곱습니다. 향에 색에 취하다보니 ‘진도아리랑’ 이 자연스레 흥얼거려지고 덩실덩실 어깨춤도 절로 추어집니다. 구슬픈 인생의 한을 판소리로 노래했던 그 시절, 그들의 깊은 여운마저도 밭이랑 갈 듯 되새김질 되는 듯 하지요.
새로이 열어젖힌 봄, 가르마 타듯 갈래갈래 타놓은 붉은 황톳길을 걷고 또 걸어봅니다. 당리마을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인 ‘왈츠하우스’ 입니다. 구불구불 휘돌아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하얀색의 예쁜 펜션이 바로 그것입니다. 입구에는 누군가의 소식을 간절히 기다리는 듯 빨간 우체통이 바다를 향해 서 있지요. 내부는 드라마에서 보던 아름다운 가구와 소품들이 그대로 남아 마치 동화나라에 온 듯 합니다. 평상시에는 문이 닫혀 내부를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예약을 하면 숙박도 가능하다고 하니 이용해 보아도 좋겠지요. 왈츠하우스에서 위로 더 걸어가면 화랑포로 가는 산책로가, 아래에는 서편제 세트장이 있습니다. 가까이 바닷가 절벽 옆으로 우뚝 솟은 범바위에 오르면 에메랄드빛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아리랑 흐르는 돌담길 사이, 황소가 금빛 게으른 울음 울어 예다
01 당리마을 전경
02 양지마을 구들장논
둥글게 휘어져 있는 청산도는 해안도로를 타고 달리면 섬 전체를 돌아 볼 수 있습니다. 양지마을에서는 흙을 파낸 후 돌을 쌓고 그 위에 다시 흙을 부어 논을 만든 구들논을 만납니다. 구들논은 척박한 땅을 개척하여 삶 의 터전으로 가꾼 조상들의 지혜와 투지가 배어있지요. 워낙 경사가 심 하기 때문에 경운기나 그 밖의 농기구가 들어갈 수 없어 청산도는 아직 도 누렁 소를 앞세워 밭을 갑니다. 촌스러운 색깔로 얹혀진 슬레이트 지 붕이 옹기종이 모여 있는 집들 아래 한가로이 풀을 뜯는 황소의 느린 걸 음 따라 속도를 맞춰 걸어봅니다. 덕수궁에서나 볼 수 있는 돌담길은 청 산도 어디를 가도 끝없이 이어집니다. 특히나 담쟁이덩굴이 뒤덮인 상서 마을의 돌담길은 문화재로 등록되기도 했답니다. 아기자기한 돌담길 사 이로 느릿느릿 걷는 촌로의 모습에서 고향의 정치가 물씬 풍겨 나오지요.
섬 북동쪽 끄트머리 진산마을에 있는 아름드리 솔숲과 둥글둥글한 갯돌로 이루어진 해변도 가 봅니다. 청산도의 여러 갯돌 해변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운치 있는 해변으로 유명한 진산몽돌갯돌밭입니다. 굵직굵직한 갯돌이 깔린 풍광이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차르르~차르르“ 서로 맞닿으면서 내는 몽돌소리가 예쁘기만 합니다. 은빛 해면과 감청색 바다 빛에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오는 지리해변도 걸어봅니다. 200년 넘은 해송이 병풍처럼 휘감고 있어 여름철 책 한권 손에 쥐고 찾아가 한 장 한 장 넘기며 느림의 미학을 느끼기에 좋은 곳입니다. 뱃일을 나가거나 외지에 나가있는 자식이 장례시기에 맞춰올 수 없어 죽은 사람을 바로 묻지 않고 이엉으로 덮어두었다가 3년이 지나면 좋은 날을 골라서 남은 뼈를 추려 땅에 묻는 풍습이 전해지는 초분도 둘러봅니다. 바닷가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장례풍습이지요.
구불구불 뻗어 내려온 세월만큼, 구석 깊이 새기고 있을 ‘고향마을의 추억’ 이 가득한 청산도. 시간이 더디게 가기게 마음껏 게으름을 피워도 누구도 탓하지 않는 섬, 느리게 사는 것이 배부른 자들의 사치쯤으로 치부되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그 섬이 바로 청산도입니다. 오늘도 청산도는 천천히 음미하듯 마시는 와인 한잔이 ‘기다림과 느림의 미학’ 을 가르쳐주듯,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들의 바쁜 삶을 어루만져주는 소중한 쉼표가 되어주겠지요.
여기서 잠깐! 슬로우시티란?
슬로시티란 느리게 살기를 추구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급하게 사는 것보다 천천히 살며 이웃과 더불어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도시를 말합니다. 세계슬로우시티연맹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전남 완도 청산도와 장흥의 반월마을, 담양의 삼지천마을과 신안 증도마을을 슬로우시티로 지정했습니다.
<여행 즐기기>
◎ 청산도 가는 방법
호남고속도로 광산IC (13번 국도) - 나주 - 해남 - 완도대교 - 완도항 - 청산도로 가는 페리호(완도에서 청산도로 들어가는 첫배가 8시고, 청산도에서 완도로 나오는 마지막 배가 4시 40분이다. 시간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므로 사전에 확인요망) * 청산농협 061-552-9388/완도 항만터미널 061-552-0116
◎ 청산도 숙박 및 먹을거리
왈츠하우스(예약 : 02-2279-5959), 맴피스 모텔(061-555-0660,0770), 청운장 모텔 (061-552-8575), 등대 모텔 (061-552-8558)등이 있고 민박으로는 청산민박 (061-552-8800), 앞개민박 (061-552-8703) 등대민박 (061-552-8521), 광주민박 (061-552-8500) 등을 이용해도 좋다. 완도는 전복으로 유명하다. 특히나 완도읍 군내리에 있는 미원횟집(061-554-2506)의 전복은 싱싱하기로 소문났다. 특히 전복버터구이는 그 맛이 별미다. 가격은 1kg 기준 10만원. 수협 활선어공판장으로 가면 더 싼 가격으로 살 수 있다. 1kg 에 35,000원 ~ 60,000원까지 있다. 포장은 물론 택배도 가능.
◎ 클릭! 청산도 관광명소
지리해수욕장, 신흥해수욕장 , 선사유적 고인돌, 매봉산
◎ 문의
전남 완도군청 문화관광과 061-550-5227
전남 완도군 청산면사무소 061-550-5608 / www.wando.go.kr/vil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