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명의 시인 작품을 올립니다
여기서 한 두 사람을 교체할 수도 있습니다.
더 추천하실 분 추천 부탁드립니다.
마철저의 바늘
김복근
쇠공이를 갈고 닦아 날렵해진 몸매다
땀땀이 가는 걸음 씨날줄 올이 되어
허기진 바람구멍을 조찰하게 막아내고
사랑과 그리움은
젊은 날의 달빛마냥
밝은 눈 맑은 소리 젖은 창 불을밝혀
우려서 깊어지는 밤 시린 맘 다독인다
바늘에 꿰인 실은 풀잎의 혀끝 같이
속 깊은 정이 되어 내 몸을 에워싼 채
굴레에 재갈을 물려 묵은 인연 기워낸다
角北
-무엇이 내게 더 남아
박기섭
남향 툇마루 끝 하늘소금 단지 말고
풀억새 흐느끼는 가을 나주볕 말고
무엇이 내게 더 남아 사무치게 할 것인가
석유 등잔불 밑 금 간 놋요강 말고
자주댕기 풀어놓던 한로 상강 말고
또 무슨 기막힌 상사가 눈 귀 멀게 할 것인가
<다층> 2013, 여름호
배추밭
박권숙
앞강물이 뒷강물의 푸른 이마를 쓸어주고
앞산맥이 뒷산맥에 푸른 등을 내어 주는
속 꽉 찬
바람 법문에
귀가 밝아지는 법당
*월간문학 2013, 3월호*
적려유허비謫廬遺墟碑*
-정암 생각
김동인
이념도 오래두면 칼집에 갇히는지
부서진 문틀사이 창호지도 찢어졌다
열려라 눈 밝은 세상 비문을 읽어다오
주춤대던 겨울이 지리산을 내려와
봉쇄된 산그늘을 훌훌 걷어내고
해와 달, 백마흔아홉 해 산천계곡 수놓다
*사후 149년이 지나서야 능주목사 민여로가 우암 송시열의 글을 받아 이 비를 세웠다
< 오늘의 문학 > 2013 여름호
고인돌을 지나며
김동인
마침내 곡기 끊은
윤이월 아침나절
빈 그릇 함께 씻어
가지런히 넣어놓고
저승도 잘 보이라고
돌 지붕만 세웠구나
바람은 알종아리로
불려 간지 오래고
덮개돌 하늘가엔
새들만 자유로워
하얀 똥 묻은 자리가
구름 꽃을 닮아있다
< 시조세계 >2012 겨울호
어머니와 어머니가
박명숙
도랑치마 걷어 올리고
도랑물 건너가네
마른 땅 끌던 꿈
허리에다 동여매고
물살에 정강이 찧으며
고픈 봄날 건너가네
어머니와 어머니가
나를 끌고 건너가네
뻐꾸기도 울지 않는
징검돌 없는 봄날
도랑물 밀어 올리며
도랑치마로 건너가네
<시조세계> 2012년, 겨울호
아까운 걸작
변현상
치매로 길을 잃은 백내장의 눈동자로
흙먼지 뒤덮어 쓴 백악기의 봄이 왔다
방사선 섞여 있다는 비 소식도 들리는데
“자기야 목련 핀 것이 젊은 날 나 같으네”
창밖 아파트 화단 누런 그늘 그 곁으로
한 번도 어기지 않고 벙그는 동백을 보며
빌려 쓰는 이 걸작품 아까운 초록별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벌레 이빨 포클레인
보아라 꼭 껴안아도 얼음장의 시린 봄
종말을 달려갔던 공룡의 콧김같이
고장 난 핵발전소 내뿜는 수증기에서
멸종의 냄새를 맡는다 황사 내려 아득한
《시조21》2013 봄
화사한 어둠
배우식
발밑에서 한 어둠이 펄펄 끓기 시작한다.
한순간 가슴까지
차오르는 캄캄함이
마침내 눈에서 만개한다, 화사한 실명이다.
불에 탄 비닐 옷처럼 눌어붙은 눈 속 암흑.
더듬, 더듬, 더듬대는
손발 고통 뼈 깎는다.
그런 밤 상상의 문턱에 배 한척 밀려온다.
밤하늘 짙게 서린 어둠 속 돌아가는
스크루는 시조 꽃잎,
날개깃을 달고 간다.
잠함 속 흘러온 별빛 소리 눈의 어둠 부서진다.
밤하늘 떠가는 눈은 잠망경을 내다본다.
홀연, 상상 밖에
얼굴 내민 내 눈 속에
별의 손 제 눈을 꺼내어 넣는 것이 보인다.
<정형시학>, 2013년 상반기호.
합죽선에 실린 매화
백이운
봄날 보았던 매화
여름날 부채로 왔네
쓰고 그린 나무가
본디와 같으랴만
형상에 얽매이지 않은
한 뿌리라 소통하네
<유심>2013, 9월호
응시(凝視)
선안영
현기증 난 봄날 오후 가파른 산 능선에는
가난한 집 끼니마다 수저들이 부딪히듯
깡마른 빈 가지 마다 다투어 움이 트고
목숨마다 고리지어 사슬 끌듯 아픈 시간
왼쪽 날개 부러져 검불 속에 숨어든 새
울음이 봄 숲에, 마음에 칼금을 긋는다
거울이 거울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명약이라는 시간은 점점 어두워져
저 울음 그치기 전에 나는 가지 못한다
<유심>2013년 5월호
독서
-갠지즈강
이교상
내 여행의 시작은 오래된 한 권의 책, 두꺼운 책갈피를 한 장씩 펼쳐본다 라탄*이 싣고 온 허기 침 발라서 넘긴다
화장터 에도는 강 고딕체로 눈을 뜨고 밑줄 친 문장들은 새가 되어 날아간다
시바는 물결 위에 앉아 비문非文을 해석한다
그림자 나울대는 탄티바 느낌표로 맨발의 아이들이 책 속에서 달려 나온다 순례자
몸에 새겨진 반짝이는 만 편 시詩여
바라나시 아닌 곳 하나도 없다는 듯 소소한 풍경들도 장엄한 역사란 듯
라탄을 생각하는 저녁 뭉클하다, 노을
*락샤(인력거)꾼의 이름
2013 만해축전 <평화시낭송집>
풍경 2013
이승은
1. 그 여자
망원시장 좌판에서 노가리를 구워파는,
갓 마흔쯤 되었을까 팥죽빛 볼그늘에
어리는 작은 숟갈들 그림자가 넷이라고
정작 있어야 할 큰 숟갈이 없고 보니
덜어낼 부끄럼이 어디 따로 있겠냐고
객꾼들 객소리 들으며 잔술까지 팔고 있는.
2. 금화아파트
북아현동 언덕배기
반세기 전 시범아파트
한사코 시내쪽을
기웃대는 내리막길
빳빳이 마른 빨래가
빨래집게를 물고 있다
3. 점집
두 켤레 하이힐에 단화가 서너 켤레
굽이 낡은 채로 가지런한 아래족에
다급히 벗어던진 듯 슬리퍼가 한 켤레
4. 숙제
빠끔히 문을 열고
이쪽을 보는 아이
아성다방 미스 홍이
홀로 낳아 기른 아이
여닫이 유리 문짝을
여닫으며 크는 아이
<다층> 2013, 가을호
포도를 못 먹겠다
이종문
시인 장옥관은... 문득 느꼈다고 한다
포도를 껍질째로 우걱우걱 씹어 먹다
순하디 순한 짐승의 눈망울을 씹는 느낌!
그의 시* 읽고 나선 포도를 못 먹겠다
순하디 순한 짐승의 눈망울을 씹으면서
혀로다 눈동자를 골라 내뱉는 것 같아서.
모, 모, 못 먹겠다, 도저히 모, 못 먹겠다
순하디 순한 짐승의 눈망울을 씹으면서
더러는 그 눈동자마저 깨무는 것 같아서
*시「순하디 순한 짐승의 눈망울을」
<정형시학> 2013, 상반기호
새별오름의 봄
장영춘
가맣게 사리로 남은
그 겨울의 흔적 같은
새별오름 불꽃 축전 검불 다 태운 자리
양지쪽 손을 내미는 아기 손의 고사리
뿌리로 힘을 모아
이 들녘을 지켰구나
뜨겁던 이마 위에 물수건을 얹히던
황사 낀 계절의 경계 새순 돋듯 아문다
<시조미학> 2013, 상반기호
첫댓글 정드리 5집에 꼭 싣고 싶은 작품(시인)이 있으면 추천바랍니다. 기한이 10월 31일까지라 서둘러 주세요.
모두 내 일이다 생각하구요. 기일이 촉박해서 일단 10편 올렸습니다. 참고로 박명숙시인(2집)과 이종문시인(1집) 작품이 실렸었고 나머지는 모두 첫 추천입니다.
기한이 얼마 안 남은 관계로 공지사항란과 좋은 시, 시조란 두 군데 다 올렸습니다.
회원 여러분도 참고하시고 댓글 참여 부탁드립니다. 글구 1집 2집에 참여했던 두분 시인은 빼고 다른 작품 찾아보겠습니다.저도 찾아볼테니 여러분도 추천바랍니다.
행감이 끝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좋은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김동인(적려유허비) 이교상( 독서) 이승은 (풍경 2013) 이종문(포도를 못 먹겠다) 선안영(응시) 백이운(합죽선에 실린 매화) 배우식(화사한 어둠) 변현상(아까운 걸작)장영춘 (새별오름의 봄) 그리고 한편은 혹 김복근 시인의 작품은 어땠을래나.
예 김복근 박권숙 박기섭선생님 작품도 올렸습니다.
김동인 이교상 박기섭 박권숙 김복근 선안영 배우식 변현상 장영춘 이승은
예 그렇게 확정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