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하나님의 비밀
고린도전서 2:1~5,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찬송가 96장(예수님은 누구신가)
사도 바울은 고린도 시에 도착하여 복음을 전하였을 때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만을 중점적으로 전하였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전할 때에 인간의 웅변술과 화려한 변론으로 전하지 않고 오직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받아서 성령께서 듣는 자들의 마음의 눈과 귀를 열어 그들이 그가 전하는 복음 말씀을 잘 받아들이도록 했노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고린도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 전한 메시지를 두고서 1절에서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을 ‘하나님의 증거’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난하주에 보면, “어떤 사본에 ‘비밀을’이라고 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문을 확인해보면, 적지 않은 사본이 ‘비밀’이라는 ‘뮤스테리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지는 고린도전서 4장 1절에서도 동일하게 자기가 전한 복음을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다시 표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읽어드리면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왜 그가 전한 복음을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표현하고 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심중에 감추었던 바 택한 자들의 구원을 위한 진리를 때가 차매 세상에 드러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핵심 내용은 물론 우리가 아까 읽었던 본문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는 대속의 사건과 그 사건이 의미하는 바 영적 진리의 해석들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실이 가져오는 구원의 놀라운 역사들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것이 곧 복음인데,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깊이 감추었던 바 구원의 진리를 계시해주신 것이기에, 이것을 하나님의 비밀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비밀로서의 계시된 복음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 여러 곳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로마서 16:25 이하에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능히 너희를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에베소서 3:8 이하에서도 사도 바울은 자기가 증거한 복음이 하나님께서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의 계시라고 말합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에베소서 3:8~11)
골로새서 1:25 이하에서도 사도 바울은 자기의 소명이 하나님의 감추었던 비밀을 드러내고자 하심이라고 밝힙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로새서 1:25~27)
이처럼 사도 바울이 부활의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후에 아라비아 사막에 가서 기도하면서 직접 주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통하여 깨닫게 된 복음 진리는 구약 성경에 어렴풋이 드러나 있던 그리스도 메시야의 도래와 그의 죽음과 부활의 예언 말씀이 성취된 것과 그 일이 구원받는 자들에게 가져오는 구원의 영광의 풍성함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흉중에 감추어져 있었던 구원의 비밀인데 이것을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밝히 드러내 보여주셨기에 사도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도 바울의 편지들을 통하여 그가 받았던 복음의 핵심과 그 의미들을 상당 부분을 읽고 이해하고 믿고 있지만, 그 당시 사도 바울이 주님 앞에서 성령의 깨닫게 해주심을 따라 구약의 성경 말씀을 이해하고 메시야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이 갖는 그 풍부하고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하나씩 깨달아갔을 때 얼마나 그의 심령이 설레고 기쁘고 환희가 넘쳤을까 짐작이 갑니다. 복음 안에 담긴 구원의 풍부함, 곧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이 함께 누리는 축복의 영광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아 알아가면서 사도는 황홀하여 기뻐 뛸 듯이 행복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듯 복음의 영광을 알아가는 감격이 늘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당시 사람들이 그를 그저 과거 이스라엘의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여기고 그의 가르침과 행하심에 대하여 깨달음이 둔하였었는데, 그들을 향하여 이렇게 경각심을 주신 바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마태복음 13:16,17)
제자들에게도 조용히 이르시기를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누가복음 10:23,24)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받은 복음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과 그의 부활과 그가 승천 후에 받은 영광과 장차 그가 온 세상에 가져오실 지극히 복스러운 나라의 영광과 그를 믿는 성도들이 그와 더불어 받게 될 상과 영원한 영광과 행복은 예수님의 계시와 그 후 사도들에게 드러내주신 성령의 계시를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되는 크고 비밀한 영적 계시입니다. 이러한 복음 안에 있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천사들까지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비밀을 받은 자로서 깊은 설레임과 감격함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이르시기를
“너희는 어떻게 듣는가를 삼가 조심하라”
고 하셨으며, 또 이르시기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누가복음 8:18)
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중한 것은 소중한 것으로 알고 귀하게 여기고 다른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다고 여기고 소중히 지키고 가꿔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살리는 구원의 비밀을 친히 성령으로 드러내 주셨는데도, 썩어질 것,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 거짓과 술수가 섞여 있는 것들만을 알고자 온통 마음을 쓰고 있다면 그 소중한 영적 비밀의 설레임은 어느틈엔가 식어버리고 그냥 종교적 지식으로 변질되고 그러다가 감동과 감사함 없이 우리 마음 한쪽 켠으로 떠밀려 가서 아무런 생명력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한평생 사도가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가는 자로서 누렸던 놀라운 기쁨과 영광스러운 소망을 더 깊이 알고 더 풍성히 알아가고자 열렬한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경을 날마다 상고하고 연구하고 깊이 묵상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을 더 깊이 풍성하게 깨닫고자 날마다 성령을 의지합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의 구원의 풍부함과 그의 영광을 알아가며 이 은혜를 다른 이들에게 증거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