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과 강정
관광객들이 몰리는 제주공항을 벗어나서 큰길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다보니 여느 도시와
같은 한산한 풍경이 눈에 띄던 중 갑자기 고풍스런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사의 아픈
기억이 담겨 있는 ‘관덕정’이다.
관덕정은 조선 세종 때(1448) 병사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운 시설로서 제주 4.3
사태가 촉발된 직접적 원인이 되었던 곳이다.
해방 후 1945년부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까지 나라는 미군에 의해서 통치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군정은 친일반민족세력의 처단은 고사하고 오히려 일제의 관료와 경찰들
을 그대로 행정조직에 이식시키기에 이른다. 여기에 6만 명이 되는 실직 귀향민들과 미군정
의 대일무역을 통한 생필품 품귀현상, 콜레라의 창궐로 인해 민심은 흉흉해 졌다고 한다.
더군다나 흉작으로 먹을 것이 바닥난 마당에 일제강점기 때에도 하지 않았던 보리의 강제공
출은 미군정에 대한 반감으로 증폭되었고, 1947년 3월 1일절 행사는 그 성토의 장이 되었다.
그런데 집회 현장에서 불만을 성토하던 시위대를 향해 경찰들이 발포를 해 6명이 사망하고,
8명 중상을 입었다. 이것은 제주 4.3사건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조성봉감독 - 레드헌트 캡쳐]
분노한 제주도민들은 3.10 민관합동 총파업을 단행했는데,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이상인
166개 기관단체에서 4만 명 이상이 참여한 한국에서는 유례가 없었던 대규모의 파업이었다.
심지어 경찰은물론 군인 40명도 탈영을 해서 시민들 편에 섰을 정도이다.
이러한 민중의 분노에 대해 미군정은 이해와 달램으로 대하지 않았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3
월 14일 응원경찰과 극우반공청년단체(서북청년단 등)를 파견하여 파업을 주도했던 세력 등
약 2,500명을 무더기로 검거하고 고문을 하기에 이른다.
이렇자, 제주도민들의 분노는 더더욱 극에 달하여 경찰서 습격 등으로 저항의 정도를 높이
게 되었는데, 미군정은 이러한 일련의 민중 저항을 마치 북한 공비에 의해서 빚어진 것처럼
각종 언론왜곡과 조작을 통해서 대대적인 토벌의 기틀을 마련한다.
미군정은 결국 육지경찰까지 파견 ‘군경토벌대’를 편성해 47년 11월 조천면 교래리 주민
30여명의 총살을 시작으로 중 산간 마을의 초토화 작전을 전개했다. 3개월간 진행된 이 토
벌작전으로 제주 인구 3만 여명이 희생되었는데, 반세기가 훨씬 넘은 지금까지 그 희생된
이들의 수를 제대로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고, 그 당시의 충격은 지금까지도 악몽이 되어
남아있다.
[조성봉감독 - 레드헌트 캡쳐 / 4.3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제주도민들은 아직까지도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기를 두려워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제주도민에 대해 이뤄진 국가의 살육이 50여년이 지난 김
대중 정부에 와서야 진상규명의 기틀이 마련되었고, 2003년이 되어서야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차원의 사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억울하게 죽어간 제주도민은 물론, 가족들의 살육
에 그 하소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던 이들의 한은 어찌 풀 수 있겠는가.
일견 제주 4.3은 봉합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누군가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는가? 똑같은
일이 제주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음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제주 4.3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의 오용된 폭력’이 그 잘 못을 숨기기 위해서 더 큰 폭
력을 이용했고, 이에 ‘민중의 저항’을 만나자 ‘적’(빨갱이)로 규정하고 섬멸전을 벌인 것인데,
지금 이 순간 강정마을에 아주 똑같은 일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추진 결정이 된 제주 해군기지사업은 불법, 탈법, 편법사업의
온상이다. 해군 중령이 찬성 측 주민들에게 돈 2천만 원 쥐어주면서 지역 분열을 조장하고
해군 소령(정용성 소령)이 마을 주민을 향해서 ‘종북좌파척결’ 현수막까지 내 걸었다.(사진)
경찰은 주민들이 ‘오탁방지막이 훼손된 체 불법사업을 하고 있다’며 증거를 들이대며 불법
사업에 항의해도 체포하고, 잘못 체포되었더라도 조서를 거짓으로 조작한다. 검찰 역시 있
지도 않은 허위사실을 증거로 내세워 걸핏하면 징역형 구형하고, 법원은 그 모든 국가 폭력
에 대한 책임을 시민에게 전가한다. 판박이 된 제 2의 4.3이다.]
제 2의 4.3 강정사태가 65년 전 빚어진 4.3과 다른 점은 그때는 국가의 폭력에 대해서 민
관이 똘똘 뭉쳐서 저항했지만, 지금은 정부의 교묘한 언론작업과 함께, 돈벌이에만 정신 팔
린 대다수 민중들이 강정사태를 ‘나의 일이 아닌 것’으로 외면하여 강정주민들만의 외로운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 제주 4.3에 관해서는 조성봉감독의 [레드헌트]를 추천
▶(다큐보기) => http://youtu.be/PSynIfc_L9Q
* 발췌자료 [제주 4.3연구소][네이버 시사상식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