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만 내다가 원금은 나중에 한꺼번에 갚고 싶은데 안 되나요?” “조회 결과, 고객님은 ‘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상’이에요. 원금과 이자를 매달 나눠 갚으셔야 해요.”
다음달 1일부터 시중은행 영업점의 대출상담 창구에선 고객와 은행 직원 간에 이런 실랑이가 종종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예고한 대로 2월부터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심사할 때 새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이다(비수도권은 5월). 처음부터 원금을 나눠 갚는 분할상환 방식으로 주택대출의 구조가 달라진다. 이자만 내다 원금은 몰아서 만기에 갚는 주택대출은 앞으론 예외적인 경우만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지금은 주택구입을 위해 1억원을 10년 만기로 빌리면 월 25만원의 이자만 내다가 만기 때 원금을 한꺼번에 갚으면 됐다(고정금리 3% 가정). 그런데 새 심사기준에 따르면 주택구입 자금인 경우 원금과 이자를 합쳐 매달 약 96만5000원씩 갚아나가는 게 원칙이다. 대신 처음부터 원금을 함께 갚아나가기 때문에 10년 간 총 이자비용은 절반 수준(3000만→1587만원)으로 줄어든다.
주택구입 목적이 아니더라도 ▶상환능력에 비해 대출액이 크거나 ▶같은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이 총 3건 이상인 경우 ▶소득 증빙서류(국민연금·건강보험료 납입내역 포함)가 없는 대출자는 모두 원금을 나눠 갚아야 한다. 다만 최대 1년까지는 거치기간을 둬서 이자만 갚을 수 있도록 완충장치를 뒀다.
새 심사기준 도입을 앞두고 각 은행은 전산 구축을 마치고 창구와 콜센터 직원을 교육 중이다. 지난해 말 주택담보대출 중 61%가 이자만 갚는 대출일 정도로 아직까진 거치식 대출이 일반적이다 보니 혼란이 있을 수 있어서다.
은행연합회와 각 은행은 고객이 일시상환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하는 ‘셀프상담코너’를 26일부터 홈페이지에 열었다. 대출 예정자들이 몇 가지 항목을 클릭하고 대출 예정 금액 등을 넣으면 몇 분 안에 자신이 새로운 기준의 적용 대상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은행연합회 유성은 여신제도부장은 “이자만 미리 낼 수 있게 허용해주는 다양한 예외 사례가 있기 때문에 고객들이 꼼꼼히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다음달부터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심사할 때 새 기준이 적용된다.
3000만원 이하 소액은 예외
대표적인 예외는 3000만원 이하 소액대출이다. 학자금이나 의료비 같은 긴급한 생활자금도 일시상환 방식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 집단대출도 지금처럼 이자만 먼저 갚는 방식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다만 국토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중도금 집단대출 보증 금액에 한도를 두는 방식으로 간접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어서 앞으로 대출 한도가 줄어들 가능성은 남아있다.
2월 1일 전에 이미 받아놓은 일시상환 대출은 새로운 기준을 적용 받지 않는다. 기존 대출의 만기가 돌아와서 다시 거치시간을 연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1회에 한해 3년까지는 계속 이자만 낼 수 있도록 기간을 연장해주기로 해서다. 다만 이런 규정은 2018년 말까지만 적용된다. 하나은행 조찬형 차장은 “기존 대출자의 상환 부담을 고려해 한 번은 연장의 기회를 준다는 뜻”이라며 “2019년 이후에 만기가 돌아오는 일시상환 대출이라면 더 이상 연장 없이 분할상환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택담보대출 받는 게 어려워지는 고객층도 일부 생길 수 있다. 퇴직자처럼 정기적인 소득이 없어서 매월 원금을 나눠서 갚기가 부담되는 경우다. 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은 “은퇴 즈음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학자금·자녀결혼자금 등 돈 쓸 곳이 많아서 원금을 갚아나갈 만한 여력이 크지 않다”며 “개인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심사기준을 적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 역시 “획일적으로 대출을 조이거나 자격 있는 실수요자의 대출이 어려워지는 부작용은 없어야 한다. 은행이 자율적으로 판단해 유연하게 심사토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상환방식을 적용 받느냐는 규정에 따라 결정되지만 변동금리냐, 고정금리냐는 고객이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변동금리 상품을 선택한다고 금리를 올리지도 않는다. 대신 변동금리인 경우엔 대출한도가 고정금리일 때보다 약간 줄어든다. 앞으로 오를 수 있는 금리 수준(현재는 2.7%)을 감안해서 그만큼 대출 한도를 깎게 된다.
자료원:중앙일보 2016.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