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아들을 화구로 들여보내고 그는 폭우처럼 흘러내렸다. 고작 여섯 해를 일생으로 기억하며 불현듯 이승을 뒤돌아선 아들과 내내 녀석이 선사하던 알토란같은 행복을 회억하며 통곡의 강은 점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제 막 맺기 시작하는 가냘픈 몽우리의 안타까운 낙화이며 그것이 다름 아닌 피붙이인 바에야 체모도 그 무엇도 잊은 아비의 짐승 같은 절규를 누군들 과하다 하랴.
새삼, 가고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절망인지를 생각한다. 먼저 간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 했으니 그가 피와 살을 나누어 세상에 내놓은 이름 석 자는 살아 결코 멎지 않을 물꼬가 되어 무시로 그를 범람할 것이다. 마른 땅만 골라 밟아도 남몰래 축축할 일상의 페이지들 속에서 더러는 눈물 그 자체로, 더러는 웃음 뒤에서 장강처럼 깊숙이 흐를 물길. 슬픔도 바이러스처럼 전염되는지 TV 앞을 망연히 지키고 앉은 내 앞섶도 어느새 따라 젖는다.
사는 동안 가슴 아픈 이별이란 영영 만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크고 작은 인연의 종착지마다 통과의례처럼 거쳐 가야 하는 것이 두 글자, 이별이 아니던가. 이별을 하기 위해 만나고, 이별을 하기 위해 사랑하고 미워하는 우리네 거룩한 역설. 끝내 멀기만 할 것 같던 이별을 눈앞에서 맞닥뜨리는 순간 한바탕 눈물로 부르는 지순한 송사를 반복하면서 세월의 더께를 앉혀 가는 것, 그것이 오늘을 전부이듯 살아가는 우리의 실상일 게다.
어제저녁, 급작스러운 부고를 받았다. 벨 소리로 지정해 놓았던 그룹 캔 사스의 ‘Dust In The Wind'가 유난스레 경망스럽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덜컥 비보를 내려놓은 것이다. 일순, 깨진 거울처럼 전신으로 실금을 긋고 가는 싸한 한기에 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결국 손수 삶을 거둘 운명이었던가 보다. 운명이니 팔자니 하는 불가항력의 꼬리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내내 건방을 떨어 왔지만 본능처럼 퍼뜩 운명이라는 낱말이 뇌리를 스쳤다. 때문일까. 깊디깊은 슬픔만을 유품처럼 남겨 두고 떠난 매정함을 탓하기보다 그저 가시라는 허허로운 말만 목구멍으로 눌러 삼켰다.
오래간만에 만난 지인과 왁자한 주점에서 이마를 맞대고 있던 참이었다. 더러 마음 같지 않은 이를 안주 삼거나. 도원결의라도 하는 양 술잔을 맞부딪치며 격조했던 시간을 시끌벅적하게 갈무리하고 있었다. 굳이 명분을 붙인다면 낮으로 방전돼 내 안의 배터리를 충전시킨다 할까. 간간 불콰해진 표정 속으로 실의를 긋고 있는 이들도 보였지만 어쨌든 그 순간, 그 작은 공간에 머무는 이들은 하나같이 내일이라는 또 하나의 멍석 위에서 스스로를 아낌없이 방사하기 위해 제각각 내부 수리 중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렇게 요소요소에서, 어쩌면 낙망이 더 많은 세상의 한 자락을 들치고 삶이라는 지상 최대의 명제로 의기투합하는 사이 그녀는 더 이상 삶, 또는 죽음으로 왈가왈부하지 않아도 좋을 곳으로 총총히 멀어져 간 것이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그녀를 기웃거린 것이 우울증이었다. 무심한 해안선처럼 저만치 물러나 있다가도 한순간 비호처럼 달려들어 멱살을 낚아채던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이라니. 결국, 망망대해를 떠도는 쪽배처럼 의지를 겉도는 물살에 이끌려 여기까지 흘러온 셈이다.
가장 아닌 가장으로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시절, 정신은 다만 사치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믿을 것이라곤 몸뚱이 하나뿐인 암담한 현실 속에서 작지만 단단한 그녀의 육신은 구원의 약속과도 같았다. 그런 육신을 경배하듯 건설 현장을 떠돌며 쉼 없이 벽돌과 모래를 날랐다. 흙손을 들고 미장일을 했다. 오늘이 고스란히 내일이 되던 그때는 병도 아닌 병에 멱살을 잡힐 만큼 호사스러운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간의 홀대에 대한 응징이었을까. 성장한 세 아들을 믿고 일을 접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복병처럼 앞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 마음으로 오는 병이었다. 당차게 세파에 맞서던 이력과는 달리 그녀 안의 또 다른 그녀에게는 이렇다 할 저항도 못해보고 덜컥 백기를 들고 말았다. 유일한 삶의 출구가 죽음이라는 듯 생과 사의 엄혹한 경계를 안방처럼 넘나들며 한 주먹 알약으로 연명하던 몇 해, 반복되는 입원과 퇴원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그녀는 한동안 숨소리조차 죽이고 사는 듯했다.
몇 달 전 의탁한 요양원의 4층 방에서 몸을 던졌단다. 이미 몇 번인가 자신을 그었던 흔적이 섬뜩하게 남아 있던 그녀의 손목이 오버랩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내달렸던 것이 종내는 스스로를 제물로 바쳐야 용서되는 엄청난 죄명이었을까. 정신이 비껴간 육신이란 내일을 장담하지 못하는 것이라서 정신이 차마 어쩌지 못한 삶을 육신은 너무나 간단하게 버리고 말았던가 보다. 3층, 2층, 1층, 삶으로 굳건히 지키고 있는 층층을 징검돌처럼 훌쩍 건너는 찰나 죽음으로 눈멀게 한 세상의 모든 괴로움이 그녀에게서 영원히 떨어져 나갔지만 빌고 또 빌 뿐, 감히 허망하다는 수식어는 붙이지 않기로 했다.
쟁, 쟁, 쟁, 물수제비를 뜨며 허공을 건너가는 징소리처럼 그녀의 부재는 연방 내 안을 아릿하게 울렸다. 그녀가 나에게, 그리고 세상에 통고한 단절의 의를 더듬느라 눈물 같은 소주만 연거푸 들이켰다. 형제와 자식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의 자식을 깡그리 돌아서서 죽음이라는 깔딱 고개를 터벅터벅 홀로 넘었을 그녀. 도수 높은 알코올의 위력 앞에서 머릿속은 얄궂게도 점점 더 말갛게 개 왔다.
생전에 이미 사후의 갈 길마저 당부를 해둔 모양이었다. 머나먼 어디에 거한 약속이라도 있었던지 떠나기 위해 그토록 조바심을 치던 그녀는 분골을 하여 뿌려질 거라 했다.
"거기는 안 갈란다." 부부의 정은 이승에서도 족했는지 평생 비빌 언덕은커녕 거두어야 할 식솔 노릇만 하다가 가버린 남편 곁에 묻히기를 끝내 거부했다는 그녀가 남은 이들의 하염없는 눈물 같을 저으며 바삐 가야 할 곳은 어디였을까.
어떤 이에게는 억장이 무너지는 영원한 종말이요, 마지막 선언이 되어 버렸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오직 하나뿐인 삶의 보루였던 이율배반의 그 무엇. 같으면서도 다른, 다르면서도 같은 두 죽음을 읽으며 우리가 삶으로 걷는 이 길의 실체를 생각해 본다.
마침내 한 줌, 아들의 유해를 끌어안은 젊은 아비의 얼굴로 다시 뜨거운 홍수가 진다. 이 순간, 무엇인들 그에게 위로가 될까. 슬픔이 수초처럼 무성할 긴 우기를 견디고. 세렝게티 초원처럼 삶의 야성으로 충만해진 그를 만날 수 있기를 말 없는 말로 응원할 뿐이다. 산 자는 살아야 한다는 다소 냉정한 진리를 성호처럼 그으며.
(문경희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