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나무를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천년의 늪 창녕 우포의 나무들을 만났습니다. 연휴였지만, 우포늪을 찾은 사람의 발길은 생각만큼 번잡하지 않았습니다. 한반도 생성 시기와 그 역사를 같이 한다는 우포 늪의 식생을 꼼꼼하게 관찰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 이틀로는 어림없는 일이지요. 물가에서 사는 포플러와 왕버들이 주로 눈에 띄긴 하지만, 오래도록 자연 상태에서 저절로 이루어진 숲이다보니,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들의 종류는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식물은 둘째 치고, 주변의 숲 풍경, 그 곁에 보금자리를 틀고 살아가는 마을 풍경을 눈에 담으려면 오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이틀의 일정만으로는 고작해야 눈에 들어오는 몇 종류의 나무만 만나고 되돌아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포늪에 들어서면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앞섭니다. 게다가 지난 주말에 내린 비로 물이 불어 사초군락지를 찾아보지 못해 더 아쉬웠습니다. 숲 길을 걸으며, 새로 돋아난 상수리나무 밤나무의 새 잎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햇살의 반짝임을 바라보며 즐거웠고, 온 숲을 알싸한 향기로 가득 채운 아까시나무 하얀 꽃에 취했습니다. 이제 막 열매를 맺기 시작한 뽕나무 가지 사이에 매달린 연초록 오디를 바라보며 한 달 쯤 지난 뒤에 드러날 늪의 풍요에 미소 지으며 걷고 걸었습니다. 창녕 우포늪은 언제라도 아름답고 풍요롭습니다.
다른 곳에서 그러는 것처럼 우포에서도 마을 어른들을 찾아뵙고, 나무와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의 살림살이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의 지나친 개입으로 일상의 삶이 고단하다는 마을 분들의 이야기를 여러 곳에서 들었던 까닭입니다. 때로는 걷다가 길에서 마주치는 마을 어른들께 인사 올리는 것도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풍경을 천천히 가슴 깊은 곳에 담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아무래도 경남 창녕 우포늪의 식물 이야기를 온전히 전해드리려면 오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듯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찾았습니다. 합천 야로면 야로고등학교 뒤편의 들녘 한가운데에 홀로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입니다. 나무 관찰자들에게보다는 사진가들 사이에서 더 많이 알려진 크고 멋진 느티나무입니다. 몇 해 전에 제가 KBS-TV에서 방영하는 '6시 내고향'의 '나무가 있는 풍경'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에 소개하려 했다가 마을 분들과의 일정이 맞지 않아 채 소개하지 못한 느티나무입니다. 그 뒤 다른 칼럼을 통해 나무를 소개하기는 했지만, 적잖이 아쉬운 마음을 남긴 나무입니다. 그런 느티나무가 이번 주에 드디어 방송을 통해 세상에 인사 드릴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EBS-TV 의 '다큐프라임'의 '한반도 대서사시, 나무'가 그 프로그램입니다.
모두 3부작으로 구성해 소개될 프로그램에서 이 느티나무는 2부인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에서 지리산 자락의 다른 큰 나무와 더불어 소개됩니다. 3부작의 1부는 ‘맹씨행단 은행나무의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아산 맹사성 고택의 은행나무가 주로 소개됩니다. 그리고 수요일 밤 9시 50분에 방영될 삼부작의 마무리 부분인 3부는 ‘슈베르트와 나무’라는 제목으로 제가 한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와 지난 한햇동안 나무를 관찰했던 기록을 보여줍니다. 그녀와의 긴 여정을 시각장애인의 시각으로 구성한 프로그램입니다. 오늘 월요일 밤부터 사흘 동안 연속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에 관심과 성원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래는 그 프로그램의 예고 방송 파일입니다. 브라우저에 따라 아래 예고 방송이 표시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방송을 보실 수 없으면 다음 링크를 클릭해서 보세요.
책 《슈베르트와 나무》는 인쇄 과정이 조금 늦어져 지난 주말에 꼴을 갖추고 나왔습니다. 이번 주부터는 서점에서 찾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주 EBS TV 에서 방영될 나무 다큐와 새로운 방식으로 나무를 찾아본 기록인 새 책 《슈베르트와 나무》에도 변함없는 애정과 관심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음 주 [나무편지]에서는 그 책에 대해 좀더 소개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