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과 공짜로 사는 삶
屹然 황인복
충북대학교 평생 교육원에 새 학기 수강 신청을 하러 갔다. 나이 들어가며 허망하다는 느낌의 주기가 빨라지는 것 같다. 이러한
자신의 한계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자기 개발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게 와 닿기 때문이다. 두 과목 이상을 신청 했더니 수강료 할인에 대해 설명 해 준다. 그
중에서 65세 이상인 경우 30%로 할인 폭이 가장 크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 얼굴을 살핀다. 신분증을 꺼내 드는 자신의
손이 생소 하다. 주름투성이에 푸르름을 띤 핏줄이 얼기 설기 엮여 있다. 그 모양이 영락없는 노인의 손이다. 할인과 공짜의 혜택을 위해서
신분증과 함께 내밀어야 하는 손으로는 충분한 자격을 갖춘 셈이다.
덤으로 살아가는 인생을 맞았다. 가는 곳 마다 노인임을
입증하고 구부정한 모습을 보이면 할인된 금액을 내던지 무료로 입장 할 수가 있다. 그 동안 산악회에서
단체 입장을 할 때, 무료는 이쪽 줄이라고 떠밀려 들어가며 편치 않았던 마음을 이제는 갖지 않아도 된다. 복지 국가가 주는 혜택으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아니 살수 있는 마지막 과정인
노인으로 입문 했다. 이 사회가 인정하고 정해진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한 것이다.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사변이 발발한 해에 피난지에서 태어난 세대로써. 아버지는 전사한 후 유복자로 태어난 친구들도 많았다. 재건 속에서
모든 것이 부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 나라의 경제개발을 위해 월남전에서, 아님 중동의 열사에서 피와 땀을 흘리며 열심으로 살아왔다. 그 덕인지
‘65세 이상!’ 할인과 공짜의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노인을 증명하는 자신의 신분증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 운전
면허증이다. 술로 인한 우여곡절을 여러 번 겪은 탓으로 자주 발급 밭았다. 그러나 사진은 지금의 거울에 비치는 탄력 잃은 노인의 모습이 아니다. 동안이면서
초롱 하게 눈을 빛내고 있다. 발급 받을 때 오래 전 사진을 제출한 까닭이다. 그러기에 제시할 때 마다 얼굴과 대조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오래 걸린다. 이제는
최근에 찍은 사진으로 재 발급 받아야 할까 보다. 오늘의 노인이 되기 전에는 교통법규 위반 때나 아님
서류 발급 시에 가끔 필요 했지만, 이제는 수시로 제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할인이나 공짜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니까.
출생신고를 일년 늦게 한 탓에 2016년 1월1일부터 명실공히 노인으로 대접받게 됐다. 엄밀이 따지자면 생일 이후에 혜택을 받아야 하겠지만 인정 많은 이 사회가 이 또한 덤으로 배려해 준다. 따라서 출생신고가 늦어져 손해 본 일년을 두고 억울해 했던 마음도 사라졌다.
허긴 아직 실제로 혜택을 본건 아무것도 없다. 수강료는 전액을 납부한 이후 정산해 준다
하니 아직 돌려 받지 못했고, 영화 관람이나 고궁, 또는
사찰을 입장하지 않았으니 할인이나 공짜의 실감을 맛보지 못한 것이다. 허나 왜이리 설렘 보다는 착잡한
마음이 드는 걸까?
예전에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모래알처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라는 개체는 너무도 미약하여 없어도 되는 허무한 존재가 아닌가! 생활에 대한 동기의 부재가 원인으로 자신을 젖은 낙엽처럼 여기던 때였다. 그런데
오늘 노인으로 입문하고 보니, 한편으로 잉여의 삶이라는 생각이 누에 머리처럼 곧추 세우며 올라 온다. 목청을 낭비하는 잉여 인간의 서글픈 외침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것도 같다. 덤으로
주어진 할인과 공짜로 살아가야 할 잉여 인간.
삶은 살아야 한다. 삶은 순간의 연속이다.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가 방법이다. “기억 하세요. 나이를 먹는 것은 무조건적이지만, 성숙한다는 것은 선택적입니다.”
87세에 대학을 졸업하며 로즈 할머니가 한 말이다. 희망과 낙망. 스스로 선택해야 할 일이다. 사회가 주는 할인과 공짜의 좋은 혜택과, 또한 잉여라는 데서 오는
자유로움도 갖추고 있다. 이렇게 오늘의 선택과 행동은 그것이 미래에 대해서는 결코 늦지 않다. 언제나 후회 만이 늦을 뿐이다.
오늘은 만나는 사람 중에 할아버지 대신 아저씨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사람들 때문에 공을 들여 치장을 하고 집을 나선다. 아! 그리고 오늘은 필히 복지국가가 주는 공짜의 혜택을 만끽하고 돌아 와야겠다. 서울로
상경해서 65세 이상 무임승차인 전철을 타고 제물포에 사는 친구를 만나고 올까 보다. 저번 설 때 고향을 찾아 내려온 친구가 한말 “야! 네가
썼다는 글, 읽어 봤는데 그것도 글이라고 쓰냐?” 정진 하라고 채찍을 들어준 친구에게 감사의 술 한잔 나누고
와야겠다.
첫댓글 "사진은 지금의 거울에 비치는 탄력 잃은 노인의 모습이 아니다.
동안이면서 초롱 하게 눈을 빛내고 있다. 발급 받을 때 오래 전 사진을 제출한 까닭이다.
그러기에 제시할 때 마다 얼굴과 대조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오래 걸린다..."
역시 또 웃게 하십니다.
그런데요...? 선생님을 노인이라 아무도 안 합니다. 정말입니다 선생님. 감상 잘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50대 후반이라고 보았는데.....
그냥 50대라고 하시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거쳐가야할 길에서 뒤돌아본 글이라 그런지 짠합니다.
65세 부터 75세까지가. "인생 황금기"라고 김형석 교수님은 말합니다. 맘껏 즐기고 향유하시며 가치창조에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청춘을 바친 보상이 지금부터 시작 입니다. 내가 나를 다독이는 헌신의 보상....
따듯한 삼월의 햇살 속에서 뵐 생각에 가슴이 설렘니다. 격려의 말씀에 언제나 정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올림니다.
'삶은 살아야 한다. 삶은 순간의 연속이다.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가 방법이다. “기억 하세요. 나이를 먹는 것은 무조건적이지만, 성숙한다는 것은 선택적입니다.” 87세에 대학을 졸업하며 로즈 할머니가 한 말이다. 희망과 낙망. 스스로 선택해야 할 일이다. 사회가 주는 할인과 공짜의 좋은 혜택과, 또한 잉여라는 데서 오는 자유로움도 갖추고 있다.' 등 멋지고 좋은 글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모든 순간이 다 소중한 것이니 남들이 지나간 길 그냥 자연스레 따라가는 것이 아름다운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언제나 마음은 청춘이니 숫자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멋지게 살고 계시니 걱정마십시요. 잘 읽고 갑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