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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 주차장에서 낙화암 백화정까지는 빠른 거름으로 왕복 2시간길 .. 우리는 올때는 백마강 선착장에서 에서 3500원에 배를 타고 구드래에서 내려 부소산성 주차장까지 도보로 약 20분을 걸어 일행과 합류했다.
부소산성(扶蘇山城): 백제의 마지막 왕성으로 백제 시대에는 사비성(泗沘城)으로 불렸다. 부여군 부여읍의 서쪽에 금강을 낀 부소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둘레는 대략 2.2km, 면적은 약 74만㎡에 달한다. 부소산성은 부소산 정상에 테뫼식 산성을 쌓은 후, 주변을 포곡식으로 쌓은 복합 산성이다. 군수품 창고 터 등이 남아 있으며, 그 외에도 낙화암과 고란사 등이 있다.
의자왕(641 ~ 660년) : 백제 31대 왕으로 무왕의 맏아들이다. 용감하고 대담하며 결단력이 있었다. 632년(무왕 33)에 태자가 되었으며, 부모를 효성으로 섬기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서 '해동증자'(海東曾子)라고 불렸다.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집권 후 고구려가 당에 강경노선을 취하고, 신라와 당의 관계가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었던 상황에서 여러 번 군사를 내어 신라를 공격했고, 변경의 많은 성을 빼앗았다. 특히 642년 7월에는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신라를 공격하여 40여 성을 항복시켰고, 같은 해 8월에는 장군 윤충(允忠)을 시켜 대야성(大耶城:지금의 합천)을 공격하여 김춘추(金春秋)의 사위인 김품석(金品釋)의 가족을 몰살시켰다. 또 고구려와 함께 신라의 당항성(黨項城)을 공격하여 신라와 당의 교통로를 끊으려 했고, 645년에는 당 태종이 고구려를 공격하는 틈을 타서 신라의 7성을 빼앗았다. 655년에는 고구려·말갈과 함께 신라의 30여 성을 공격하는 등 신라에 대해 시종 공세를 취했다. 그러나 말년에 들어 강화된 왕권을 배경으로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이 이어지면서 또한 향락을 만류하던 좌평(佐平) 성충(成忠)을 옥사시키는 등 신하들의 언로(言路)도 봉쇄했다. 고구려 침략에 여러 번 실패한 당은 백제를 먼저 공격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660년에 나당연합군의 소정방(蘇定方)이 바다를 건너 백강(白江:지금의 금강) 입구로 거슬러오고, 김유신(金庾信)이 이끄는 신라군은 육로로 탄현(炭峴:지금의 대전 대덕구 동면)을 넘어 진격해왔다. 백강에서 당군을 막던 백제군은 크게 패했고, 황산(黃山) :지금의 충남 연산에서 신라군을 막던 계백(階伯)의 5,000명의 결사대도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말았다. 수도인 사비성(부여)이 포위되자 태자 효(孝)와 함께 웅진성(공주)으로 피난했다가 항복했다. 백제가 멸망한 후 왕자들과 대신(大臣)·장사(將士) 88명을 포함하여 백성 1만 2,000명과 함께 당으로 압송된 후 얼마 되지 않아 병으로 죽었다.
백마강에서 배를타고 바라다본 풍경
부소산성 오르는 길에 ..
아름다운 색갈의 버섯도 보이고 ..
부여시가지의 모습
백제 최후의 날을 맞아 3000궁녀가 백마강에 몸을 던진 낙화암에 세워진 백화정
백화정옆 오른쪽에 수령 천년의 소나무
고란사
배에서 바라본 고란사
배에서 내려 언덕에서 바라본 백마강
주차장 가는길에 ..
구드래 쌈밥집의 재미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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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했습니다,,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