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yal Mail Ship
RMS타이타닉의 무덤
아름다운 봄날
예견된 불행
천 개의 칼
마지막 연주
우연과 필연의 오묘함
스위스 치즈 효과
행복한 이들은 계속 행복하고 불운한 이들은 끝없이 불운하다. 불행한자의 주사위는 계속 4자 만을 반복해 나오고 연속적인 불운 다음엔 반드시 행운이 올 거라 착각한다. 불운은 계산을 하거나 형평성의 저울을 들고 있지 않다. 마법의 주문처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떠들지만 "저것 또한 오리라"는 사실은 잊고 있다. 기구한 인생은 한밤에 덫에 걸린 고라니의 비명 소리만큼 기괴함을 몰고 오지! 이승의 정답지는 다음생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답은 원래 없는 것이니까!
1912년 4월 10일 아름다운 봄날, 영국 사우샘프턴 44번 부두에서 미국을 향해 영국여객선 RMS 타이타닉호가 출항했다. RMS란 Royal Mail Ship민간 여객선을 의미한다. 왕실의 우편물을 날라도 될 만큼 신뢰를 가진 배를 가리킨다. 초호화 여객선답게 부자와 귀족들도 있었지만 신대륙을 향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가난한 이민자들도 많았다. 2,224명의 승객들이 탑승했다. 이제 막 출항하는 처녀배엔 마지막 은퇴식을 기념하기 위해 베테랑 선장인 에드워드 스미스가 있었다. 그는 얼마나 멋진 삶의 이야기를 남기고 갈 것인가?
순조로운 항해를 시작한 지 4일 후, 사건이 발생했다. 쌍안경 보관함의 열쇠가 사라졌다. 견시원들이 육안으로 빙산을 발견했을 땐 이미 늦어 버렸다. 1400년 만에 달과 지구가 가장 가까웠다. 중력의 힘이 강했다. 빙산이 다가오는 속도가 빨라졌다. 빙하와 충돌했다. 선체에 거대한 구멍이 났다. 긴급 구조신호를 보냈지만 너무 멀리 있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캘리포니언호의 무전수는 1명뿐이라 취침하는 시간이었다. 참사는 불운의 교집합들이었다. 에드워드 선장은 침몰을 예감하고 침착하게 사람들을 이끌었다. 마지막 구명보트가 내려간 후 배와 함께 순직했다. 오로라의 아름다운 빛을 바라보며 수 많은이들이 영하 2도의 얼음물에서 저체온증으로 죽어갔다.
달빛이 사라진 밤, 탐조등조차 없어서 빙산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어두운 북극해를 전속력으로 달렸다.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구명정을 부족하게 실었다. 절대로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인간의 오만함에서 생긴 일이다. 인근 선박 통신두절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신사답게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와인과 시가를 즐기며 죽음을 기다린 억만장자 구겐하임, 흡연실에서 구명조끼를 벗어버린 설계자 토마스 앤드류스가 본 마지막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고종의 헤이그 특사를 도와주었던 유일한 외국인이자 세계 언론계의 대부, 윌리엄 토마스 스티드는 다른 승객의 탈출을 도와주고 구명조끼마저 양보했다. 마지막을 배로 돌아가 책을 펼쳤다. 이제 곧 타이타닉호는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111년 동안 잠자던 거대한 배는 미세한 가루가 되어 해류와 함께 떠내려갈 것이다. 아름 다운 배는 거대고래처럼 해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무수한 이야기만 남기고 없어진다. 마지막으로 제빵사 찰스는 충돌소식을 듣고 빵을 구워 구명정에 실어주고 여자와 아이들을 구해주고 갑판의 의자를 생존자들을 위해 던졌다.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고도 구명조끼로 버티고도 살아남았다. 그의 생생한 증언은 73세에 그가 세상을 떠나고도 남아 있다.
수심 3821M에 잠들어 있는 타이타닉의 무덤을 찾아보았다. 유네스코 수중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상태이다. 조금씩 미세한 가루가 되어 사라져 가고 있다. 바닷물의 염분과 금속을 분해하는 박테리아로 사라지고 있다. 배는 고운 가루로 변해 분해되어 사라질 예정이다. 자연의 이치이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동화처럼 멈추어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끝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어제의 타이타닉은 오늘은 가고 없겠지! 곧 가루가 되어 사라지겠지! 수많은 이야기들은 마법의 가루처럼 돌고 돌 것이다.
열 장의 치즈를 겹쳐 놓은 경우 아주 드물지만 구멍들이 일치해 하나의 구멍이 관통하는 현상이 생기는 일이 있다. 스위스 치즈효과라고 한다. 작은 소소한 것들이 대형사고를 불러오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타이타닉을 만나러 가는 영상 속,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8개 높이를 지하로 파고들어 가는 내내 숨이 멎었다. 춥고 어둡고 무서운 해저 어딘가 잃어버린 대륙 아틀란티스가 있을 것 같다. 해저 2만 리가 상상이 되었다.
바다에 계단이 있다면 얼마나 내려가야 할까? 어두운 곳 작은 물고기만 스쳐가도 무서울 텐데.. 타이타닉의 무덤은 깊고도 깊다. 그날 반토박이 난 배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인간의 어설픈 오만함이 불러온 결과이다. 배의 전기가 다할 때까지 무선 모르스를 보낸 잭 필립스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저체온증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천 개의 칼을 맞은 느낌이라고 증언했다.
또다시 타이타닉호가 침몰한다면 우리는 저렇게 아름다운 죽음을 조우할 수 있을까? 삶의 끝을 받아들이고 내 구명보트 자리를 누군가에게 양보할 수 있을까? 악기를 연주하면서 평온하게 가라앉을 수 있을까? 바닥을 헤매면서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을까? 운명을 직감하는 그 순간, 정말 평온하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한 부호 슈트라우스부부처럼 벤치에 앉아 최후를 맞이할 수 있을까?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한 채 이제 타이타닉은 바스러질 것이다.
결론은 모두 다 죽었다. 살아 돌아온 자도 죽었으며 몰래 구명보트에 올라탄 자도 죄책감에 시달리다 죽었다. 다 죽고 사라졌다. 어두운 바다에 묻힌 배마저 사라질 것이다. 수백 명의 생존자들이 남긴 이야기와 유난히 아름다웠던 죽음만이 회자되고 있다. 타이타닉의 무덤에 묘비를 새운다면 어떤 글이 어울릴까? 만약이라는 가설은 통하지 않겠지만 만약에 내가 탔더라면 난 어찌했을까?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삶을 배우기 위해 공부하는 오늘, 내일은 달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