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사람에게 담배 부족은 매우 절망적이라 얇게 썬 감초 뿌리로 채운 담배가 거리에서 팔렸다. 나도 한 번 이런 종류의 담배에 도전했었다. (많은 사람이 한 번씩 시도해 본다.) 프랑코가 카나리 지방을 장악했는데, 이 지역이 스페인 담배 전체가 자라는 곳이다. 결과적으로 정부 측에 남아 있는 유일한 담배는 전쟁 발발 전의 재고품이었다. 이들의 유통은 너무나 느려 담배 가게는 일주일에 한 번만 열었다. 줄을 서서 두어 시간 기다린 후에야 재수가 좋다면 담배 3/4 온스 뭉치를 살 수 있다. 이론적으로 정부는 담배 수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무기와 필수품을 위해 갖고 있어야 할 금 비축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더 비씬 종류의 밀수입한 담배의 공급이 꾸준했다. 럭키 스트라이크와 기타 등등의 것으로 부당이득을 취할 대단한 기회를 준다. 깔끔한 호텔에서 공공연히 밀수입 담배를 살 수 있으며, 거리에서는 거의 공공연하게 살 수는 없다. 의용군의 일당인 10페니를 지급할 수 있으면 한 갑을 받을 수 있다. 밀수는 부자들에게 이익을 주기에, 공모를 한다. 돈을 많이 갖고 있다면 엄격하면서도 공정하게 배급되는 빵을 제외한다면 얻지 못한 상품은 없다. 부자와 빈자의 공공연한 이러한 대비는 노동계급이 여전히 존재하거나 통제하는 것처럼 보였던 몇 달 전에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정치권력의 이동에만 전적으로 탓을 돌리는 일은 공정하지 못하다. 부분적으로 바르셀로나에서의 생활이 안전하기에 생긴 결과이다. 바르셀로나는 가끔 있는 항공기 폭격를 제외하면 전쟁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마드리드에 사는 모든 이들은 그곳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한다. 마드리드에서는 일상적인 위험이 거의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특정한 동료의식을 갖게 한다. 아이들이 빵을 구걸하고 있을 때 메추라기를 먹는 뚱보는 구역질나는 광경이다. 하지만 당신이 총소리 나는 곳에 있다면 그런 장면을 볼 가능성이 적을 것이다.
시가전이 있은 후 하루 또는 이틀 뒨가 나는 유행을 선도하는 거리 중 한 곳을 지났는데, 과자점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과자점 유리창 너머로 가장 우아한 종류의 사탕과자와 페이스트리가 깜짝 놀랄만한 가격표를 붙인 채 가득 있었다. 본드가나 라 파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가게의 한 종류다. 모호한 공포를 느꼈던 일을 기억한다. 배고픈 전쟁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돈이 여전히 이러한 일에 낭비될 수 있다는 놀라움과 모호한 공포를 느꼈던 사실을 기억한다. 하지만 신은 내가 어떤 개인적으로 우월한 척 함을 금지한다. 불편하게 지낸 몇 달 후 나는 제대로 된 음식과 와인, 칵테일, 미국 담배, 기타 등등에 대해 게걸스러운 욕망을 가졌고, 살 수 있는 모든 사치품에 빠지는 것을 허용했다. 시가전이 시작되기 전, 그 첫 주 동안에 신기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관계되어 있는 몇 가지 선입견을 가졌다. 전에 말했듯 우선 할 수 있는 한 편안하게 나를 만들기 위해 바빴다. 둘째로 과음과 과식에 감사했다. 그 주 내내 조금 건강이 좋지 않았다. 조금 기분이 안 좋다고 느꼈고, 하루에 반을 잤고, 깨어나서는 과도하게 또 다른 음식을 먹었고, 그러고 나면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동시에 나는 권총을 사기 위해 비밀스럽게 협상을 했다. 몹시 권총을 원했는데 권총은 참호전투에서 소총보다 더 유용했지만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정부는 권총을 경찰과 인민군의 간부에게 보급했지만, 의용군에게는 발급을 거부했기에, 무정부주의자의 비밀 상점에서 불법적으로 구해야만 했다. 수많은 소란과 불법방해(nuisance 귀찮음) 후에 무정부주의자 친구가 가까스로 작은 26인치 자동 권총을 조달해주었다. 권총을 한심할 정도의 무기였고 5야드를 벗어나면 쓸모가 없었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이 모든 것 외에도 POUM 민병대를 떠나 나를 확실하게 마드리드 전선으로 보내줄 수 있는 다른 부대로 들어가기 위한 예비 계획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