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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서해랑길 45코스(곰소항 회타운 – 모항 해수욕장)
여 행 일 : ‘24. 1. 27(토)
소 재 지 : 전북 부안군 진서면 및 변산면 일원
여행코스 : 곰소항 회타운→작도마을→관선마을→왕포마을→작당마을→변산자연휴양림→모항해수욕장(거리/시간 : 14.7km, 실제는 15.81km를 4시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45코스를 걷는다. 10개로 이루어진 고창·부안 구간의 다섯 번째 코스이기도 한데, 생태계의 보고인 곰소만의 갯벌을 옆구리에 끼고 서해바다로 나가는 여정이다. 주요 볼거리로는 곰소 나룻산공원 및 모항 광맥계를 꼽을 수 있다.
▼ 들머리는 곰소항 회타운(고창군 진서면 곰소리)
서해안고속도로 줄포 IC에서 내려와 710번 지방도를 타고 ‘줄포’로 온다. 줄포사거리에서 23번 국도를 타고 부안방면으로 2km, 영전사거리(부안군 보안면)에서 30번 국도로 옮겨 격포방면으로 7km쯤 달리면 격포항에 이르게 된다. 곰소복지회관 앞에서 왼쪽으로 들어오면 ‘수산물판매센터’가 나온다. 서해랑길(부안45코스) 안내도는 센터의 뒤 바닷가에 세워져 있다.
▼ 6개 코스로 이루어진 부안(44~50코스) 구간의 두 번째 여정. 내륙을 향해 움푹 파고들어온 ‘곰소만’의 해안선을 따라 서해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길이는 14.7km, 작은 오르내림이 있는 산자락을 헤집기도 하지만 거리가 짧은 탓에 난이도는 별이 2개(5개 중)로 분류된다.
▼ 10 : 35. ‘곰소항길’을 따라 서진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길 양옆으로 젓갈상점과 건어물상점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곰소항으로 들어오는 수산물이 그만큼 풍부하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맞다. 곰소항은 하루 130여척의 어선들이 드나들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다고 했다. 그로 인해 국내 최대의 젓갈시장을 비롯해 수산시장과 건어물시장 등이 조성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 ‘갈치’의 새끼인 ‘풀치’라고 했다. ‘갈치’의 원말은 ‘칼치’다. 칼 모양을 닮은 고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갈치의 새끼는 ‘풀치’가 되었단다. 작고 기다란 게 풀잎을 닮아서라나? 그러니 ‘풀’이 자라 ‘칼’이 되는 셈이다.
▼ 10 : 41. ‘곰소항’은 전북특별자치도에서 군산항 다음으로 큰 어항이다. 바다를 지키는 가장 오래된 수군의 중심 진영(검모포)이기도 했다. 일제 때는 인근에서 수탈한 각종 농산물과 군수물자가 이곳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었고, 해방 후에는 칠산어장의 조기잡이 배를 비롯한 주변의 고기잡이배들이 몰리던 수산물 집산지였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포구는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는 싯구를 떠올리게 만든다. 꼬맹이 어선 20여 척이 물이 차오르기만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다.
▼ 10 : 44 – 10. 49. 잠시 후 ‘나룻산 공원’에 이른다. 서해랑길은 공원을 우회해 간다. 하지만 일단은 ‘나룻산’으로 올라가 보자. 서해바다에 덧댄 ‘곰소만’에 대한 조망이 일품이라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 공원 앞 조형물은 ‘곰’을 형상화했다. ‘곰소’라는 지명을 모티브로 삼았을 것이다. 포구(옛날엔 섬이었다) 앞에 있었다는 깊은 소(沼)에서 ‘곰소’라는 지명이 생겨났다니 말이다. 이 소를 ‘여울개’라고도 하는데 칠산바다의 수호신인 개양할머니가 이곳을 건너 다 무릎까지 빠졌다는 전설도 있다.
▼ 정상에는 ‘워털루 평원’의 ‘사자의 언덕( Butte du Lion)’을 연상시키는 원뿔형의 봉우리를 쌓아놓았다. 규모야 엄청나게 차이가 있었지만... 아니 사자 대신 조명등을 꼭대기에 앉힌 것과 오름길을 계단 대신 무장애 길로 만든 것도 다른 점이었다.
▼ 바위절벽에는 ‘범선’을 걸쳐놓았다. 바다를 향하고 있는 게 저 넓은 바다를 향해 나아가려는 부안 군민들의 진취적인 기상을 담았을지도 모르겠다.
▼ 뱃머리에 서면 일망무제의 조망이 펼쳐진다. 곰소항의 전체적인 풍경은 물론이고, 저 멀리 곰소만의 터줏대감 ‘죽도’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거기다 작은 고깃배들이 하얀 물살을 가르면서 한 폭의 풍경화를 완성시킨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
▼ 10 : 53. 입구까지 되돌아 올 필요는 없다. 중간쯤에서 오른쪽으로 나있는 나무계단을 밟고 내려오면 ‘곰소항 젓갈단지’로 연결된다. 이쯤에서 팁 하나. 젓갈단지에 들르면 천일염으로 곰삭힌 맛깔스런 곰소젓갈을 맛볼 수 있다. 맛이 있으면 두어 통 사와도 될 일이고 말이다. 나야 지난번 44코스 때 한보따리 사갔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지만... 참고로 곰소는 강경, 광천, 소래포구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젓갈 생산지다.
▼ 젓갈단지를 지나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바닷가. 이번에는 벚꽃나무 가로수 길을 따른다. 나른한 봄날 마파람에 꽃비라도 날릴라치면 장관을 이루겠다.
▼ 10 : 58. 30번 국도(청자로)로 올라서 격포항 방면으로 간다. (진서리·유천리·용계리·반암리) 도요지 등 이곳 부안지역이 우리나라 청자(초기) 생산의 메카였던 사실이 도로 이름에까지 나타난다.
▼ 잠시 후 ‘청자로’는 길이가 300m쯤 되는 방조제를 건넌다. 이 방조제 덕분에 오른편에 커다란 인공호수가 만들어졌다. 주변에 대하양식장이 들어서있는 걸로 보아 바닷물을 가두어두고 있는 모양이다.
▼ 왼쪽으로는 ‘곰소만’이 드넓게 펼쳐진다. 영광굴비로 잘 알려진 ‘칠산바다’의 한 자락이 내륙 깊숙이 들어온 천혜의 입지조건으로 한때는 최대의 조기잡이 어장이기도 했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곰소나 줄포 외에도 사포, 후포 등 여러 포구가 발달했었다.
▼ 11 : 04. 방조제를 건너면 ‘작도마을’. 법정 동리인 진서리(鎭西里)를 구성하는 6개 행정부락(구진·연동·진동·진서·백포·작도) 중 하나로 진서리의 서쪽 끝에 위치한다. ‘작도(作陶)’, 즉 ‘그릇을 만드는 마을’이라는 이름대로 고려시대 때 이 마을에서 고려청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약 40개소의 가마가 있었다는 ‘진서리 요지(鎭西里窯址)’는 현재 사적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 11: 08. 곰소초등학교에 이어 나타나는 ‘작도마을 경로당’. 서해랑길은 경로당 건물을 왼쪽에 끼고 90도로 방향을 튼다. 초입에 이정표(종점 12.7km/ 시점 2km) 말고도 부안마실길의 이정표(모항 갯벌체험장 10.4km/ 곰소염전 2.3km)를 따로 세웠다. 두 길이 함께 쓰는 구간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우리는 지금 부안마실길의 7코스인 ‘곰소 소금밭길(왕포↔곰소염전, 12㎞)’을 걷는 중이기도 하다.
▼ 이후부터는 곰소만과 어깨를 맞대고 걷는다. 진행방향에 놓인 죽도를 바라보며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구간이다.
▼ 앗! 내가 잘못 보았나? 인삼을 산삼의 사촌쯤으로 여겨왔기에 산자락이나 구릉지에서 기르겠거니 했었다. 실제 인삼의 주산지도 진안이나 금산, 풍기 등 내륙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그런데 바다에서 10m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인삼을 기르고 있으니 어찌 생소하지 않겠는가.
▼ 일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다른 방조제들과는 달리 이곳(‘석포방조제’라고 했다)은 한없이 구불대는 감입곡류의 하천을 닮았다. 대자본에 의한 계획적인 간척사업이 아니라 주민들이 손수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싶다.
▼ 누군가 ‘똥섬’이라고 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 많은 이름들을 제쳐두고 하필이면 ‘똥섬’이 되었을까? 저렇게 예쁜 섬을 두고 말이다.
▼ 이번에는 바다를 향해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파고 들어갔다. 한 평이라도 더 넓히고 싶은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낸 풍경이지 싶다.
▼ 덕분에 시야가 툭 트이면서 ‘곰소만’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서해바다를 향해 뻗어나가는 바다에는 죽도가 두둥실 떠오른다. 곰소만 안쪽에 들어있다고 해서 ‘내죽도(고창 앞바다의 ‘외죽도’와 대비된다)’라고도 불리는데, 사리 때는 갯벌을 걸어서 들어갈 수도 있단다. 하지만 위험할 수도 있어 지금은 곰소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간다.
▼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트레킹을 시작했던 곰소항이 실루엣 처리되어 고개를 내민다.
▼ 물 빠진 바다에는 고깃배가 낮잠을 잔다. 물이 들면 부지런을 떨어야겠지만, 썰물 때면 하릴없어진 고깃배에 휴식의 여유가 주어진다. 그 한가로운 풍경에 반한 우리 같은 나그네들은 카메라의 앵글을 맞추기 바쁘고.
▼ 방조제가 만들어놓은 드넓은 들녘 너머에서는 내변산의 험상궂은 능선이 일렁인다. 가장 높은 봉우리는 관음봉(424m). 그 아래에 천년고찰 ‘래소사’가 고즈넉이 들어앉아 있을 것이다.
▼ 11 : 35. 방조제를 잘 따르던 탐방로가 느닷없이 내륙으로 방향을 튼다. ‘마실길’ 이정표(왕표→/ 곰소↓)도 오른편을 가리킨다. 방조제 끝에서 길이 끊긴 탓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썰물일 때는 바닷가를 따라 관선마을로 갈 수도 있다. 관선마을 위 국도에서 서해랑길과 다시 만나기 때문이다. 실제, 모험심이 강한 일행 몇 명은 길이 아닌 그 길로 가로질러 오기도 했다.
▼ 이즈음에서 코스를 단축한 집사람을 만났다. 석포마을에 있는 ‘무하리 카페’에서 기다리라고 했더니 가까운 서해랑길 접점까지 나와 있었다.
▼ 11 : 38. 석포마을 방향으로 300m쯤 걸었을까, 길가에 둘레길 나그네들을 위한 쉼터용 정자를 지어놓았다.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30번 국도로 올라간다.
▼ 오르막길. 뒤라도 돌아볼라치면 간척사업이 만들어 낸 ‘석포리 들녘’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인간이 지닌 무궁무진한 능력에 감탄하며 조금 전 걸어온 궤적을 눈으로 그려본다. 그러자 부지런히 걸어오고 있는 후미그룹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 11 : 42. 서해랑길은 도로로 올라서마자 다시 헤어지란다. 이정표(종점까지 9.7km)도 왼쪽을 가리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를 무시한 채로 계속해서 도로를 따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이정표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관선헌(觀仙軒)’이란 저 빗돌의 정체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 초입에는 관선마을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이런 안내판은 둘레길이 지나는 마을마다 설치되어 있었는데, 45코스의 특징 중 하나로 꼽을 수도 있겠다.
▼ 11 : 44. 모퉁이를 돌아서자 또 다시 국도. 곧은길을 놓아두고 굳이 에둘러 돌아오도록 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관선헌(觀仙軒)’의 정체를 알려준 것도 아니고.
▼ 왼쪽 발아래에는 ‘관선마을’이 있다. 법정 동리인 운호리(雲湖里)를 구성하는 7개 행정부락(마동·중마동·작당·왕포·소운호·운호·관선) 중 하나로 안내판은 풍수지리에서 지명의 유래를 찾고 있었다. 마을 뒷산에 장삼바위와 시루봉이 있는가 하면, 목탁바위·바리바위·북바위·목탁채바위 등 지형이 스님이 불공드리는 형상이라서 ‘관선’이라 불리었다는 것이다. 이해가 안가는 설명이겠지만, 옛 지명인 ‘관선불(觀仙佛)’로 대비해보면 고개가 끄덕거려 질 것이다.
▼ 이 뭣꼬? 산비탈에 대를 쌓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 그런데 이게 전철 역사를 연상시키는 기괴한 모양새이다. 이름은 아예 읽을 수도 없게 만들어버렸다. 공사가 한창이어서 정체를 알 수 없었지만 곰소만에 대한 뷰가 뛰어난 곳이니 카페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도로변의 명품 소나무에다 곰소만의 뷰까지 더해진다면 부안의 핫 플레이스로 등장할 게 틀림없다.
▼ 11 : 50. 탐방로는 또 다시 국도와의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는 운호방조제로 내려간다. 그 초입, ‘마실버스 운행시간표’까지 매단 이정표가 눈길을 끈다.
▼ 관선마을과 왕포마을을 이어주는 ‘운호방조제’. 길이가 600m나 되는 이 방조제가 운호마을의 드넓은 앞들을 만들어냈다.
▼ 물이 빠져나간 바다는 검은 갯벌을 드넓게 펼쳐낸다. 석포에서 관선을 거쳐 왕포에 이르는 저 갯벌은 ‘관선불갯벌’로도 불리는데, 예로부터 갯살림이 풍성하기로 유명했단다. 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도 관선불의 어전(漁箭,어살) 어업이 등장한다나? 지금 저 갯벌에는 굴이 잔뜩 널려있단다. 그런데 이게 바위에 붙지 않고 펄 속에 박혀 자라는 탓에, 바위에 붙어 자라는 굴보다 대여섯 배나 크고, 맛과 영양 면에서 월등하단다. 썰물 때 햇볕을 많이 쬐는 데다 주변 갯벌이 기름지기 때문이란다.
▼ 오른편은 운호방조제가 만들어놓은 드넓은 들녘이다. 그 뒤로는 내변산의 아름다운 능선이 기다랗게 펼쳐진다. 그 중심에 놓인 건 아마 신선봉(488m)일 것이다.
▼ 만조 때의 곰소만은 하얀 안개 가득하다고 했다. 이게 어선들을 안아주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낸단다. 하지만 물이 빠져나간 바다는 온통 시커먼 배를 드러내놓고 있다. 그런데도 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
▼ 12 : 00. 운호방조제의 끝. 이정표(종점까지 8.4km)가 언덕으로 올라가란다.
▼ 언덕으로 오르면 ‘바다전망대 펜션’. 탐방로는 펜션의 뒷마당을 지난다. 이어서 감나무 과수원의 사잇길을 지나 ‘왕포마을’로 간다.
▼ 12 : 08. 탐방로는 ‘왕포마을’을 횡단한다. 예쁜 벽화로 치장된 고샅을 빠져나오면 마을 어귀에 널따란 광장(이정표 : 7.8km)이 조성되어 있다. 깔끔한 화장실에다 정자가 두 개나 들어서있는 게 둘레길 나그네들의 쉼터로 안성맞춤이겠다.
▼ 마을 앞은 포구가 들어섰다. 접안되어 있는 배들의 숫자나 크기도 시골마을 치고는 제법 크다. 맞다. 1970년대만 해도 이곳 ‘왕포항’은 가장 잘나가는 어촌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는 수백 척의 어선들이 모여서 풍어성시를 이루었다. 그래서 포구 이름도 인근 바다에서 고기잡이로는 으뜸이라는 뜻에서 ‘왕포(王浦)’가 되었다고 했다. 용왕님도 (그 풍요로움에) 쉬어가는 마을이라나?
▼ ‘채널A’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 시즌 5’가 왕포항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값비싼 감성돔과 국민횟감인 대광어(넙치)가 깜짝 잡히기도 했지만 낚시의 대상 어종은 칠산바다의 특산물인 조기였다. 그런 조기 조형물이 포구로 나가는 초입에 설치되어 있었다.
▼ 작은 부두를 오른편에 끼고 트레킹을 이어나간다. 선착장 왼쪽의 조그마한 다리 아래를 통과해 들어온 배들이 정박해있다. 그러니 그 하나하나가 손바닥만 할 수밖에...
▼ 12 : 18. 다시 국도(청자로)로 올라왔다. 다음에 닿게 될 작당마을이 코앞이지만 바닷가에 길을 낼 수 없었음이리라.
▼ 12 : 22. 작당마을로 내려가는 길 초입에는 마을표지석과 함께 부안마실길 입간판을 세워놓았다. 마을까지는 400m쯤 더 걸어야 한단다. 하나 더. 조금 전 지나온 왕포마을에서 시작된 ‘마실길 6코스’ 이정표(왕포마을에서 0.75km)는 종점인 갯벌체험장까지 5.45km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 12 : 27. 작당마을에 이른다. 운호리에 속한 또 다른 자연부락으로 ’작당(鵲堂)‘이란 지명은 마을 지형이 까치집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곳은 한때 조기잡이 활황으로 북적거리는 선창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약 스무 가구 정도만 살아가고 있는 조촐한 마을이 되었다.
▼ 작당마을 포구는 수로와 연결된 갯길을 활용하고 있었다.
▼ 마을 앞 갯벌은 2018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극중 학수와 용대가 갯벌에서 싸우는 장면이 저곳에서 촬영됐다. 하지만 안내판 하나 없으니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을 극히 드물 것이다. 옛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갯벌에는 김 양식시설로 여겨지는 지주만 늘어서 있을 따름이었다.
▼ 12 : 32. 작당마을 고샅을 빠져나온 탐방로는 또 다시 국도로 올라선다. 이때 ‘600’이란 숫자로 디자인 된 (작당)버스정류장이 눈길을 끈다. 1416년 둘(부령현과 보안현)로 나뉘어있던 지역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부안현’으로 탄생되었음을 자축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주민들은 또 ‘부안에 오시면 오복이 가득하다’는 슬로건 ‘부래만복(扶來滿福)’을 외치고 있었다.
▼ ‘추억을 나누며’라는 카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만든다. ‘차도 마시Go, 그릇도 사GO, 추억도 나누GO’라는 홍보문구로 유혹하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카페이니 커피는 기본. 거기에 더해 정성들여 다린 28년 전통의 대추차를 팔고 있단다.
▼ 12 : 36. 잠시 후 도로에서 내려서서 짧은 방조제를 걷는다. 칠산바다 말고는 특별히 눈에 담을만한 볼거리는 없다.
▼ 방조제 끝에서 산으로 올라간다. 이어서 무장공비가 출현하던 시절 해안초소에서 사용하던 참호를 따라 진행한다.
▼ 당시 사용하던 벙커도 눈에 띈다. 사용을 안 한지 오래됐지만 개·보수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요즘처럼 남북이 으르렁대는 하 수상한 시기에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누가 알겠는가.
▼ ‘전북 천리길’ 스탬프함이 자신도 좀 봐달란다. 옆의 이정표는 ‘부안마실길’에서 세웠다. 서해랑길의 변산반도 구간은 이렇듯 여러 종류의 둘레길과 사이좋게 나눠쓴다.
▼ 12 : 43. 이번에는 ‘마동방조제’를 걷는다. 이처럼 곳곳에서 방조제를 걷는다는 것 또한 45코스의 특징 중 하나이다. 하나 더. 마실길 안내판은 ‘마동(馬洞)’ 마을의 유래를 옛날 선비가 이곳을 유람하던 중 유유동의 말재(말등모양)를 넘어 마동을 지나다 말이 쉬기에 알맞다고 했다는 데서 찾고 있었다.
▼ 이즈음 최근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노을경관쉼터’가 눈에 들어온다. 국도 30호선 쌍계재에 지어놓은 쉼터용의 3층짜리 전망대이다. 발아래에 있는 변산자연휴양림과 곰소만에 더해 서해바다까지 조망된다는 곳인데, 특히 해질 무렵이면 환상의 서해바다 일몰이 펼쳐진단다.
▼ 오른쪽. 방조제가 만들어 낸 간척지는 대하양식장으로 가득했다. 수량이 제법 풍부한 ‘마동천’이 흐르니 농경지로 손색이 없겠건만. 자본주의의 생리는 돈이 더 되는 대하양식장을 만들어냈나 보다.
▼ ‘앗! 게 닷!’ 집사람이 호들갑을 떤다. 그녀의 가리키는 손가락의 끝. 검은 점으로 나타나던 것들이 뭔가에 놀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맞다. 바닷물이 먼 바다로 빠져나간 곰소 갯벌은 지금 치열한 삶의 현장이 됐다. 진흙에서 고개를 내민 갯것과 그 갯것들을 잡으려는 또 다른 것들의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살아보려는 희발농게의 종종걸음과 먹잇감을 노리는 바닷새의 저공비행이 교차하는 삶의 현장.
▼ 방조제 끝에는 ‘쌍계재 아홉구비 길’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45코스의 또 다른 이름이고, 여기서 말하는 ‘쌍계재’는 전망대가 지어져 있는 저 위의 고갯마루를 이른다.
▼ 12 : 53. 방조제 끝에서 길이 나뉘고 있었다. 마실길은 왼쪽 해안(시멘트포장까지 되어 있다)을 따르라는데 서해랑길 표식(리본)은 산비탈에 매달려있는 것이다. 일단은 이정표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고나서야 두 길이 다시 만난다는 걸 알았다. 하나 더. 만조(滿潮) 때 바닷물에 길이 잠기기 때문에 길을 에둘러 내놓았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 또 다른 방조제(무척 짧다)를 지나자 안내판 하나가 길손을 맞는다. 부안 마실길 6코스(쌍계재아홉구비길)의 쌍계재 아래에 2.2km의 새로운 코스를 조성해놓았다는 것이다. 기존노선에 추가하면 순환코스가 된다고 한다.
▼ 하지만 순환이 필요가 없는 나는 기존 코스를 따르기로 했다. 그러자 신우대 숲이 길손을 맞는다. 눈에 들어오는 신우대는 우람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크고 굵었다. 그게 하도 울창하다보니 길은 터널처럼 나있다. 이런 길을 걷는다는 것은 행복 그 자체이다. 그러니 이 아니 행복할 손가.
▼ 신우대 숲길은 굽이굽이 휘돌아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때문에 조금만 떨어져도 앞사람을 놓치기 십상이다. 이쯤해서 팁 하나. 사람 키를 넘는 대나무는 신우대이고 키가 무릎 근처에 오는 대나무는 조릿대다. 신우대는 옛날에 화살을 만드는 데 썼다. 산죽(山竹)이라 부르는 조릿대로는 소쿠리를 만들었다. 지방에 따라서는 조릿대와 신우대를 병용하여 쓰기도 한단다.
▼ 이즈음에서 만난 ‘마동 해안경비초소’는 아예 눈요깃거리로 만들어놓았다. 6.25전쟁 이후 1970년대 해안선을 통해 무장공비가 침투함에 따라 이를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마동초소는 변산 내륙지역으로의 침투를 방호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고 한다. 내무반을 중심으로 상황실 등이 설치된 장병들의 휴식공간이기도 했다.
▼ 이후부터는 전형적인 산길이 이어진다. 바닥 곳곳에 바위가 돌출되어있어 걷는 게 썩 편하지 않은 구간이다. 하나 더. 진서면을 달려온 서해랑길이 이즈음에서 변산면에 바톤을 넘겨준다.
▼ 모퉁이를 돌아서자 ‘변산 자연휴양림’이 고개를 내민다. 지난 2016년 이틀 밤을 묵었던 곳이기도 하다. 숲과 바다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입소문을 믿고 찾아왔었고, ‘부안 마실길’ 4~6구간을 걸어보기도 했었다.
▼ 숙소인 산림문화휴양관과 수영장, 생태습지관찰원 등의 시설을 갖춘 변산 자연휴양림은 바다와 가장 가까운 휴양림이다. 덕분에 모든 객실에서 아름다운 서해를 바라볼 수 있다. 날이 어둑해지면 맞은편 고창 심원면의 불빛이 오징어 어선의 집어등처럼 황홀경을 연출해주기도 한다. 가벼운 산책도 가능하다. 휴양림 뒤편으로 솔향기와 피톤치드가 가득한 솔바람 숲길 3km가 조성돼 있다.
▼ 휴양림 앞을 지나서 또 다시 숲속으로 든다. 아까와는 달리 보드라운 흙길이 계속된다. 하나 더. 휴양림에 세워놓은 모실길 이정표는 시점인 갯벌체험장까지 1.8km가 남았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서해랑길 종점은 갯벌체험장에서도 2km가까이 더 가야 한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 곰소만은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이다. 굽이가 큰 만(灣)은 방조제를 쌓아 농경지를 조성했고, 경제적 가치가 적은 저런 꼬맹이 만들은 자연 그대로 놓아두었다. 덕분에 우린 경관 좋은 해변을 걸어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 방호용 철조망은 그대로 놓아두었다. 때문에 탐방로는 저런 개구멍을 통과할 수도 있다. 철조망 너머 군 초소가 눈에 띄기도 한다. 단장이 되어있지 않아 흉물스러운 몰골이다. 철조망에는 ‘군 작전지역이므로 승인되지 않은 접근을 금지한다.’는 경고푯말까지 붙어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겁준다.
▼ 해안초소의 안내판은 초소 주변을 정비한 후 보존해오고 있다 했다. 그렇다면 가리비 껍데기로 치장된 저 철도망도 그 일환일지 모르겠다. 아니면 마실길을 아끼는 어느 독자지가가 만들어놓은 예술성 깊은 작품일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 13 : 38. 규모가 제법 큰 해변도 만나게 된다. 양 옆이 해식애로 이루어져 경관까지 빼어나다. 탐방로가 아닌데도 해변으로 내려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 가장자리는 모래가 아닌 각양각색의 조개껍질 부스러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걸 본 집사람의 방심이 동했나보다. 영화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 제니라도 되는 양 하얀 조개껍질을 공중에 흩뿌린다. 맞다. 나에게 그녀는 영원한 ‘제니’다. ‘알리 맥그로우’보다도 더 예쁜...
▼ 13 : 48. 저 멀리 내변산의 울퉁불퉁한 암릉들이 눈에 들어오는가 싶으면 마실길은 ‘금강가족타운’이란 펜션에 이른다. 탐방로는 펜션의 앞마당을 가로지르며 이어진다.
▼ 객실이 많음은 물론이고, 널따란 야외수영장과 족구장, 씨름장까지 갖추고 있는 펜션이다.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으니 갯벌체험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일 것이다. 하지만 인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참! 그러고 보니 그 넓던 야외수영장도 사라져버렸다.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 계속해서 산길을 탄다. 하지만 큰 오르내림이 없어 힘들지는 않다. 길이 또렷한데다 곳곳에 마실길 표식이 설치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었다면 잃은 사람이 더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 ‘장락무극(長樂無極, 즐거움이 오래 계속해서 끝이 없다)’ 같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명심보감용 판자들을 읽어가며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2016년도 때보다 그 숫자가 확 줄어든 게 아쉽기는 했지만. 그게 아쉬워 당시 끄적거렸던 글을 소환해본다. ‘당신을 기다릴 것 같아요’, ‘결코 안 갈 것 같던 시간도 가고, 절대 안 올 것 같던 시간도 온다. 시간은 글쎄도 설마도 없다.’는 등 판자의 뒷면에 적혀있는 글들이 눈길을 끈다. 특히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먹지’라는 ‘술타령’은 실소까지 짓게 만들고 있다.
▼ 13 : 58. 산자락 오솔길을 지나면 작은 방조제가 나온다. 둑을 따라 걷다보면 왼편에는 모항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고 오른편에서는 갑남산의 산줄기가 나타난다. 암릉으로 이루어진 능선이 나름대로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고 있다. 참! 둑에는 데커레이션(decoration)용인지 폐 선박이 놓여있었다. 덕분에 난 철판이 아닌 플라스틱으로도 배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 14 : 02. 또 다시 국도(30호선)로 올라선다. 언제부턴가 도로 이름이 ‘청자로’에서 ‘변산로’로 바뀌어 있다. 변산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 길가 2개나 되는 ‘변산마실길’ 안내판은 하나같이 마실길이 부안의 지질명소들을 지나고 있음을 알려준다. ‘세계지질공원’이라는 부연설명까지 한다. 여기에 모항 광맥계가 포함되어 있음도 알려준다. 하지만 ‘모항’의 최고 볼거리인 ‘해골바위’에 대한 안내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 ‘갑남산’ 아래는 ‘김해 김씨’ 문중의 제각이 들어서 있었다. 그런데 지난 44코스 때 고창 땅에서 만났던 빗돌처럼 ‘세장산(世葬山)’ 대신 ‘세천(世阡)’을 새겨 넣었다. ‘뫼 산(山)’ 대신 ‘두렁 천(阡)’자를 썼으니 선산을 산이 아닌 밭의 가장자리에 썼다는 얘기일 것이다. 참고로 우리네 선조들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땅에 터를 잡고 세거(世居)하면서 앞들에서 농사짓고 뒷산에 장사(葬事)하며 살아왔다.
▼ 14 : 06. 잠시 후 국도와 헤어져 왼편 바닷가로 향한다. 서해랑길 이정표는 종점까지 1.4km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같은 장소인데도 모항해수욕장까지는 1km가 남았단다. 서해랑길이 해안을 따라 에둘러간다는 얘기일 것이다.
▼ 바닷가를 따라 몇 걸음 더 걸으면 3층으로 지어진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일정한 돈을 내고 갯벌을 체험할 수 있는 ‘모항갯벌체험장’이란다. 펜션과 식당에다 체력단련장과 야외공연장, 인공폭포 등의 부대시설까지 갖추고 있어 ‘갯벌체험’을 하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도 역시 텅 비어있기는 매한가지이다. 겨울철이라서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음이리라.
▼ 갯벌체험장 앞 갯벌. 영역을 표시라도 하는 것처럼 빙 둘러 돌담을 쌓아놓았다. 아니 독살 체험을 위한 시설일지도 모르겠다.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어망이다. 사람들은 퍼덕이는 물고기를 그저 주워들기만 하면 되고...
▼ 진행방향 저만큼에 모항이 보인다. 이름(실제는 ‘띠 茅’자를 쓴다)처럼 어머니의 품같이 아늑한 어촌마을이다. 1999년 12월 31일 ‘새천년을 잇는 영원의 불씨’를 채화했던 곳이라고 한다. 자 그럼 모항으로 들어가 보자. 시인 안도현은 말대로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 체험장에서 조금 더 걸으면 바다의 위에다 만들어 놓은 전망데크가 나온다. 모항 앞바다의 갯벌이 한눈에 잘 들어오는 곳이다. 하지만 시설노후로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며 입구를 막아버렸다. 예산 낭비의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이왕에 혈세를 들여 지어놓았으면 제대로 관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 탐방로는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을 제켜두고 해안을 따라간다. 이때 만나게 되는 ‘모항경로당’에는 ‘엄마품 건강센터’라는 부속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엄마 품처럼 따스하고 정겨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돌본다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 14 : 21. 모항(茅項) 포구는 그냥 지나친다. 크지도 그렇다고 빼어난 볼거리도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하나 더.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게 노을밖에 없네’. 한 무명 래퍼가 고향인 변산으로 내려가 겪는 우여곡절을 그린 영화 ‘변산’에 등장하는 대화다. 영화 속에서 모항은 두 주인공이 포장마차에 들러 소주 한잔을 기울이던 공간으로 나온다. 그게 저 어디쯤일지도 모르겠다.
▼ 포구를 스치듯 지나온 탐방로는 이제 ‘모항 해나루 가족호텔’의 뒤 해안선을 따라간다. 바닷가를 장식하고 있는 거대한 해식애를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 바닷가는 거대한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안이 자랑하는 지질명소로 ‘모항 광맥계’로 불리는 곳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생선뼈 화석과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진짜 생선뼈 화석은 아니다. 후기 백악기, 부안에서는 굉장히 큰 화산 폭발이 있었는데 당시 마그마와 함께 분출된 화산재들이 사면을 따라 흐르면서 빠르게 퇴적되고 굳었다. 화산재들이 다져지는 과정에서 심부에서는 균열을 따라 열수가 흐르고 광물을 성장시켜 지금과 같은 석영맥이 형성되었다.(전북서해안 국가지질공원 지질명소 홈피에서 발췌·정리)
▼ 누군가는 채석강에서 이어진 해안절벽을 모항 주변에서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생각하는 바위(또는 해골바위)’로 가족호텔 근처 바닷가로 내려가면 만난다. 하지만 난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를 범해버렸다. 그런 바위가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사전 준비 없이 방문한 내 잘못이니 어쩌겠는가.(사진은 둘레길 도반의 것을 빌렸다)
▼ 전망 좋은 곳에는 정자까지 지어놓았다. 서해에 대한 조망을 즐기라며 망원경까지 배치했다.
▼ 정자에 오르자 칠산바다가 성큼 다가온다. 저 바다는 한때 황금어장이었다. 황금갑옷 입은 장수처럼 산란기를 앞둔 노란 조기들이 모여들었다. 지금은 조기잡이 안강망 배들은 더 이상 칠산바다를 찾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 칠산바다가 텅 빈 것은 아니다. 많은 뱃사람들은 여전히 칠산바다에 의지해 살아간다.
▼ 14 : 31. ‘모항해수욕장’에 이른다. 방풍림으로 조성된 듯한 오래 묵은 해송들이 지금은 피서객들의 편안한 쉼터로 변해있는 해수욕장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안도현 시인의 ‘모항 가는 길’이 유명세를 타면서 변산반도의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안 시인은 ‘모항을 아는 것은 변산반도를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라고 표현했다. 아무튼 보드랍기 짝이 없는 모래사장과 멋진 노송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경관이 아름다운 해수욕장임에 틀림없다. 참고로 이 해수욕장은 국토해양부에서 ‘최우수 청정 해수욕장’으로 선정(2010년)한바 있다.
▼ 이 해송 숲은 모항해수욕장의 랜드마크(landmark)이기도 하지만 전국 사진작가들의 일몰 포인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 14 : 37. 해수욕장 입구의 ‘모항 갯벌체험장’ 조형물에 이별을 고하고 주차장으로 간다. 이어서 ‘모항갯벌해수욕장’ 관리사무소 앞에 세워놓은 서해랑길(부안 46코스) 안내판을 만나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4시간을 걸었다. 앱이 15.81km를 찍고 있으니 조금 더디게 걸은 셈이다. 산길 구간이 썩 편치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오늘도 사랑하는 집사람과 함께 걸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F. W. Nietzsche)는 ‘걷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은 믿지 말라’고 단언했고,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 또한 ‘약보보다 식보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가 낫다’고 주장했다. 이로보아 걷는 게 좋다는 것은 동서양을 불문한가 보다. 그러니 어찌 걷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거기다 사랑하는 사람까지 곁에 있으니 이 아니 행복할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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