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가 만난 사람들(철학과 은사님)
내가 고대를 선택한 것은 순전히 조지훈 선생님 만나고 싶어서다. 그래 가서 수강신청 해보니, 국어 교수님 명단에 아무리 찾아도 조지훈 이름이 없었다. 교무과 찾아가 문의하니, 본명이 조동탁이다. 동탁이라니 삼국지의 여포와 동탁, 그 동탁인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얇은 사(紗) 하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고깔에 감추우고, 두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아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 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그 지적이면서 아름다운 이미지가 이름 하곤 너무 달랐다.
그러나 강의실에 나타난 그분은 후리후리한 키에 시인다운 하얀 얼굴의 초노의 신사였다, 그분은 어디가 불편한지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고, 강의 전에 한 잔 하셨는지 얼굴이 불콰하셨다. '진정한 시인이란 저런 것이다' 하고 나는 믿었다. 지훈 선생님은 책을 덮어놓고 칠판에 한자 하나 적어놓고 1시간 강의를 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너무 해박하게 깊게 아시는 바람에 학생들이 입을 못 다물게 했다. 이후 나는 그분 영향으로 막걸리를 배웠다.
매스컴에 철학 교수로 이름났던 신일철 교수님은 실망이었다. 고대 졸업생 중 최고 학점으로 졸업했다는 소문이 있고 그만큼 존경할만한 분이지만 사무적이고 냉랭했다. 그래서 염세 자살한 친한 친구가 있었지만, 나는 인생문제 가지고 그 분 연구실을 노크해 본 적 없다.
철학과 과목은 동양, 서양철학으로 나눠지고, 論理學, 倫理學, 美學이 있었다. 서양철학은 신일철, 최동희 교수님이 강의하고, 동양철학은 이상은, 김경탁 교수님이, 김영철 교수님은 미학과 윤리학을, 여훈근 교수님은 논리학을 강의했다. 철학개론부터 시작하자 처음엔 다들 관심이 많았다.
초자연적인 데서 神을 구한 탈레스와 메논 등 고대 그리스 철학, 소크라테스, 프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唯心論적인 인식 체계, '참다운 행복은 모든 욕망을 끊어버리고 어떤 사물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아파테이아(APATHEIA) 상태를 추구하는 스토아학파, '행복이 인생의 목적'이라는 에피크루스 학파를 배웠다. '神은 존재하느냐, 아니면 존재하지 않느냐' 하는 신의 존재증명에 대한 쿼론의 說도 배웠다. 그는 판단 중지를 통해서 '賢人'이 될 수 있다는 아리송한 결론을 내렸는데, 동기 중에 나중에 성공회 신부가 된 친구가 있다. 그와 나는 이 주제를 자주 토론했는데, 신부 서품 받기 전에 '神은 존재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 律法을 중시한 유대교와 유대교를 모체로 생긴 그리스도敎도 배웠다. 예수는 전도한 지 2년 만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제자들은 '主'가 부활하다는 신앙을 섬긴다. 그리스도 교인들은 '帝王의 것은 帝王에게, 神의 것은 神에게'라고 외치다가 로마 제국에게 박해받은 사실도 있다. 중세 敎父 哲學(patristic philosophy)과 중세기 교회와 학교에서 가르친 스콜라 철학도 배웠다. 인간의 시조 아담의 '原罪說'과 그래서 인간은 자유를 완전히 잃었고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구원은 오로지 神에 의해서 미리 정해져 있단 '豫定說'도 배웠다.
안셀무스는 '우리는 神을 가장 완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곧 神이 실제로 있다는 걸 말해준다. 왜냐하면 실제로 없는 것은 가장 완전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까닭이다'라고 했다. 이걸 神의 존재에 대한 본체론적 증명(ontologischer Beweis)이라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연계를 質料가 形相을 목적으로 운동하는 과정으로 보았으며, 高次의 形相은 質料와 結合됨이 없이 아주 순수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중에서 아주 순수한 것이 神이며, 천사나 영혼 같은 것은 非質料적인 순수한 形相이다. 따라서 神은 모든 사물의 第一原因이며, 최종 목적이다. 이런 神은 質料를 포함한 일체의 사물을 창조하였다' 하였다.
마지막으로 스콜라 철학의 종지부를 찍은 분은 월리엄 오컴 이다. 그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개개의 사물이고, 보편적인 것 즉 普遍者는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보편자가 實在한다고 하면 많은 사물 속에 똑같은 보편자가 있게 되므로 唯一한 것이 동시에 많은 사물 속에 있다는 결과가 된다. 이것은 矛盾이므로 보편자는 실재할 수 없다. 그것은 다만 사람이 만들어낸 抽象的인 것, 즉 이름(Nomina)에 불과하다'라고 하였다. 철학계에선 이 판단을 <오캄의 면도날>이라 부른다. 면도칼처럼 너무나 예리하기 때문이다. 이게 중세 신학에 대한 철학계의 결론이고, 그 이후 근세철학이 시작된다.
그 후 르네상스, 종교개혁, 절대주의를 타파하자는 계몽주의 운동이 시작되고, '종교도 天上으로부터 地上으로 내려왔다'. 神에 대한 새로운 反省을 외치는 루우텔의 종교개혁(Reformation) 운동이 일어나고, 코페르니쿠스의 地動說은 神 중심사상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갈릴레이는 자연 현상의 원인을 탐구하며 스콜라 철학의 자연관을 넘어가버렸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중세적인 학문은 무의미하다며 '아는 것이 힘'이라며 경험을 중시하고 歸納法(Induction)을 주장했다.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외친 데칼트는 이 명제가 아무런 증명이 필요 없이 확실한 인식이 가능하므로 眞理라고 주장하고, 思惟와 神 두 개의 二原論的 實體(substantia)를 주장했다. 스피노자는 '實體는 他에 의존하지 않으며(自己原因), 他에 제한되지 않으며(無限), 他와 竝存하지 않는(唯一) 것, 즉 神이다. 神 이외에는 어떠한 실체도 있을 수 없으며, 따라서 神은 일체의 事物에 內在한다. 즉 神은 곧 세계다. 일체의 사물을 생성케 하는 第一 원인이 곧 神이다'라고 했다. 토마스 홉스는 '萬人의 萬人에 대한 투쟁'을 주장하며, 일체의 권력을 유일한 주권자에 위임하는 전제군주제를 가장 이상적이라 하였다.
칸트는 <純粹理性비판>에서 우리의 경험이 축적된 先驗的 인식도 物自體(Ding an sich)는 아니라고 하였다. 物自體(Ding an sich) 가 아니라면 우리의 인식 자체는 허구인가. 헤겔은 역사의 과정은 神의 섭리에 의해서 지배되며, 인간의 노력은 역사 속에서 이미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에 의해서 조정되고 있다. '현실적인 것은 곧 이성적인 것이요, 이성적인 것은 곧 현실적인 것이다'라 했다.
헤겔 이후는 대개 네 개 방향으로 흘러갔다. 1) 오직 경험적인 사실만을 중하게 생각하는 實證主義 방향. 2) 경험적 요인과 思考의 의의도 인정하는 批判主義 경향. 3) 세계가 理性에 의해서 지배된다는 合理主義를 반대하고, 非合理的인 걸 강조하는 生哲學과 實存主義的 방향. 4) 미국의 프래그머티즘과 뷔인 학파의 倫理實證主義와 分析哲學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