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시 여행] 백야도 등대 산책로..........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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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백야도 등대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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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년 12월 16일 새벽 충무공 이순신은 노량 앞바다에서 왜선 500여 척과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암
청색 여명이 걷히고 멀리 오동도가 핏빛으로 물들 즈음 이순신은 관음포로 패주하던 왜군을 추격하
다 흉탄에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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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세계사상 길이 빛나는 유언을 남기고
왜군을 노량앞바다에 완전 수장을 시키지 못한채 장군은 숨을 거두었다. 그날로부터 42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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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사당인 충민사가 위치한 마래산에서 맞는 여수 오동도의 일출은 그날 새벽만큼이나 장엄하다.
수평선에 드리운 짙은 구름 사이로 붉은 해가 솟아 오른다. 바로 이순신 장군이 꿈꾸던 해양대국의
아침이 밝아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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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옆 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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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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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사랑했고 지키려 했던 여수. “절상호남 국가지보장 약무호남 시무국가(竊想湖南國家之保障 若
無湖南是無國家)” 즉, 곰곰히 생각 하건데.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라 만일 호남이 없으면 그대로 나라
가 없어지는 것이다“.라는 구호아래 그렇게 장군이 호남을 지키고 나아가 조선을 지켜내키려 했던 호
국 정신(護國精神)은 400여년을 뛰어넘어 오늘날 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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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중심에 있었던 여수, 그 뼈아픈 역사가 숨어있는 곳, 오늘도 유랑자는 호국영령들의 한이 서려
있는 여수의 구석구석을 뒤돌아 본다. 알다시피 여수는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운다. 그만큼 낭만이있
고 구석구석 절경이 숨어있다는 뜻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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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닦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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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시내에서 가막만을 왼쪽에 두고 화양면을 지나 백야도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여수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비경이다. 여수시는 365개 섬을 거느리고 있다. 시는 행정구역이 1개 읍과 6개 면소재지로 구
성 됐는데 이 가운데 화정면, 삼산면, 남면은 섬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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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면 면적은 26.19㎢이고 71개의 섬을 거느린다. 유인도가 15개, 무인도가 56개이고 해안선은 156.
4km에 이른다. 오늘 유랑자는 화정면에 있는 이 백야등대를 찾아가는 길이다. 이 해안 도로는 해무
를 끼고 몽환적인 수채화를 그리기도 하지만 굽이굽이 이어지는 해안 일주 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색이 없는 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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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내음을 가르고 달리는 내내 언덕넘어 수풀사이로 언듯언 듯 에메랄드 빛 바다가 그림처럼 펼처진
다. 그렇게 변화무쌍(變化無雙)한 그림에 취해 가다보면 어느새 백야리, 여수반도의 남쪽 끝에서 백
야대교를 건너면 이순신이 난중일기에서 극찬한 백야도가 나온다. 백야대교는 백야도를 잇는 연륙
교로 2000년 6월 착공하여 2005년 4월 14일 준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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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탑 없이 다리의 상판을 케이블로 매달아 하중을 아치에 전달하는 형식인 닐센 아치교이며 경간 즉,
다리의 기둥과 기둥 사이의 최대 폭은 183m에 이른다. 왕복 2차선으로 국도 77호선이 지나간다. 바다
풍경을 조망하는 포인트이다. 여기에서 차로 느릿느릿 10여분이면 등대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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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이 감상에 젖었던 그곳에 가막만의 입구를 밝혀주는 백야등대가 홀로 서있다. 백야등대
에 서면 제도와 돌산도를 비롯해 크고 작은 한려수도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호수처럼 잔잔한 청
정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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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투명한 남해 바다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곳이니 만큼, 백야등대는 붐비는 관광지를 피해 편안
한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산책로로 말 그대로 해송이 우거진 지상낙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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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끝자락이라서 일까 넘 조용하다. 입구엔 펜션 하나가 한려수도를 바라보고 자릴 잡았다. 모르긴 해
도 발코니에서 남해 바다는 조망할수 있는 오션뷰가 있을것만 같은 느낌이다. 펜션을 뒤로하고 등
대
로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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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앞을 가로막는 것은 여수연안 해상교통 관제쎈터다. 등대는 이 건물 뒤로 남해바다를 바라보
고 서있다. 조용하기만 한 등대길로 유랑자는 접어들었다. 인적하나 없는 산책로 금방 맷돼지라도 달
려 나올것만 같은 으스스한 오솔길, 뭔가가 좀 찜찜함이 엄습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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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산책로는 어느 시골 오솔길을 걷는 것처럼 아늑하고 평화롭고 조용하다. 숲 사이로 어듯언듯
보이는 남해바다. 넘실대는 잔잔한 파도만이 유랑자를 반긴다. 남해도와 돌산 사이에서 솟은 해가 중
천에 걸리자 바다는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눈부시게도 반짝인다. 바다에 떠있는 거대한 외항선 과 무
인등대, 방파제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泡沫)들...,말 그대로 한폭의 수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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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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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사이로 내미는 햇빛에 검은 그림자로 변한 해송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또 다른 풍경화다. 이래
서 사람들은 조용한 힐링을 찾기위해 이곳을 찾는가 보다. 파도소리, 바람소리, 해송의 소곤소곤대는
추억담 마져도 조용한 오솔길에 동화같은 이야기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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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하는이 없는 등대길. 좌로는 돌산도가 또 그 앞으로는 제도와 개도가 섬의 품안으로 다리가 놓아
지기를 기대하며 유랑자의 눈길을 따라 함께 움직인다. 그렇다 여수시는 앞으로 백야도를 잇듯이 앞
으로 제도~개도~월호도~화태도까지 연육교를 놓을 계획이다. 그러면 돌산도로 바로 연결된다. 그
렇게 되면 배가아닌 승용차로 일대의 섬들을 아무 때나 마음껏 들나들수 있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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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청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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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접근성이 용이해지면 앞으로 더 많은 여행자들이 백야도 등대를 찾게 될 것이다. 백야도 일대
는 화양면 용주리 마거산 중턱에 용문사를 비롯 화정면 해안도로를 따라 섬과 바다를 조망하기에 아주
좋은 코스이자. 여수의 많은 관광지 중 숨겨진 비경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연인과 가족끼리 조용한 여
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인기 그만인 코스가 될것으로 유랑자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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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섬사람들의 팍팍했던 삶의 질도 덩달아 오를 것이다. 사촌이 논을사면 배가 아픈게 아니라 잘 산
다는 것은 모두가 좋은 일이다. 백야도 백야리는 임진왜란 당시 난을 피하기 위하여 창원황씨가 최초
로 섬에 들어왔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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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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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장흥고씨, 광산김씨, 경주김씨, 나주임씨, 경주최씨 순으로 섬에 들어와 지금의 섬마을이 형성되
고, 그 후 밀양박씨(密陽朴氏), 전주이씨(全州李氏) 등이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문화와 역사의 터전으
로 자리 잡는데 기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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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리의 지명은 마을 뒷산 산봉우리가 연꽃 봉우리처럼 보이고 돌들이 모두 하얀 색을 띠고 있어 일
명 ‘흰섬’으로 부른데서 유래했다. 멀리서 섬을 바라보면 범이 새끼를 품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백호
섬’으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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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정산은 일명 백화봉(白花峰)인데 백야봉(白也峰)으로 불린다. 이순신 난중일기에는 감목관(監牧官),
백야곶으로 기록돼 있다. 감목관이란, 백야도가 말을 길렀던 곳이고 이를 관리는 목관이 있었으며 조
정에서는 감목관을 파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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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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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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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전쟁을 지휘하는 전략적 요충지 에서는 늘 병영에 목장을 설치하곤 했었다. 부산 영도등대,
울산 울기등대도 그런 경우이다. 특히 난중일기 에서는 화양면 장수리 봉아산 과 화정면 백야산을 같
은 지역으로 바라봤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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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백호산 남동쪽 끄트머리에 백야도등대가 있다. 여수시내로부터 18km 지점이다. 백야도등대는 화
정면 백야도 인근 해상을 항해하는 선박의 위치와 항로, 암초 등 장애물에 대한 주의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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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수로와 항로 등을 알려주기 위해 등대는 밤낮으로 깜박이고 긴급 사이렌소리를 울렸다. 등대는
서 있는 그 자체로도 해도상에서 육지의 원근, 위험 장소와 입항하는 선박에게 항구 위치를 알려 주는
항로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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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도등대는 일직이 남해안을 오가는 많은 어선이 고기잡이를 위해 왕래하는데 날씨가 흐린 날이나
야간에 닥칠지 모르는 뱃길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설치됐다. ‘남해안항로지’는 “백야도와 고돌산
반도의 수도는 협소하고 서측으로 가면 수심이 3미터 이내로 얕아짐으로 소형 선박 이외에는 통행하
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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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수는 남해안에서 가장 복잡한 바다 중 하나다. 섬과 섬 사이로 뱃길이 얽혀 있어 간단한 실수
로도 사고가 날 수 있는 해역 이기도 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야도는 일교차가 심하고 안개가 잦은
해역이다. 그래서 등대원이 근무하던 시절에는 거대한 기계를 돌리며 사이렌 소리를 울려 어민들의 안
전항해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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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도등대는 1928년 무인등대로 처음 불을 밝혔다. 8.8m 높이의 백색 4각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설
치됐다. 1983년 유인등대로 전환되면서 등탑은 사라졌고 다시 등대원이 살기위해 관사가 지어졌고 2
006년 등대정비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렇게 현재의 원형콘크리트 등탑이 세워졌다. 이 등대는 백야도
일대 해상을 조망하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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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코스는 화정면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고 백야도등대에서 방점을 찍는 방식이거나, 등
대를 출발하여 화정면 동서로 돌아보는 방식이면 좋다. 이 구간은 여수 역사와 문화, 해안전경을 한 눈
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백야도등대와 연결된 백야대교는 이 지역 관광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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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꽃 향기 머금은 백야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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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을 바라보며 시원하게 뚫린 신월로를 달리다보면 남쪽바다 해안선을 따라 펼처지는 아련한 풍
광들은 여행의 묘미가 무엇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말 그대로 툭 트인 바다 풍경이 일품이다. 마지막
백야도 여행에서 꼭 가볼만한 곳은 몽돌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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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백야등대 쪽을 향해 가다보면 우측에 몽돌밭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지나 야생화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시골길이 펼쳐진다. 그 길을 가다보면 몽글몽글하게 파
도에 잘 닦여진 몽돌해안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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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등대 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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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도 몽돌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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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을 따라 펼쳐진 몽돌들은 파도가 부딪힐 때마다 하얀 해조음을 우려낸다. 몽돌은 수석에 가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문양들을 간직하고 있다. 백야도여행의 진면목을 그렇게 갈무리하는 해변이다.
암튼 백야도의 명물인 백야등대와, 산책로. 몽돌해변. 또한 한 눈에 다도해를 굽어보는 환상적인 전망
들을 만날 수 있을 뿐 이다.
마지막으로 백야리 항에 들러 싱싱한 회 한접시 해도 좋고. 맛있는 해물라면 한그릇 해도 좋다. 또는
취항에 맞는 남도의 해산물이나 건어물등을 좀 구매해서 돌아오면 백야도의 여행을 끝맺음 하게된다.
유랑자 백야항에 들러 김 몇 묶음과 반 건조된 생선 몇 마리 구매해서 차에 싣고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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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클릭
http://cafe.daum.net/b2345/9toB/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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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시 화정면 백야등대길 48
지번 : 화정면 백야리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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