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원제 : Scarecrow
1973년 미국영화
감독 : 제리 샤츠버그
출연 : 진 해크먼, 알 파치노, 도로시 트리스탄
앤 웨지워스, 리처드 린치
197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허수아비'의 용도는 참새를 쫒기 위한 것입니다. 농작물을 망치러 오는 귀찮은 손님 참새를 쫒기 위해서 사람 대신 사람의 형상을 하고 논두렁에 덩그러이 혼자 놓여있는 것이 허수아비죠. 그런데 혹시 무섭게 생긴 허수아비 본 사람? 뭔가를 쫓는 용도임에도 허수아비는 무섭게 생기긴 커녕 우습고 만만한 형상을 갖고 있습니다. 이래서 참새가 겁을 먹겠습니까? 그런데 그 허수아비가 우습게 웃고 있는 이유가 있답니다. 일종의 허허실실 작전이라고.
강하면 부러진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화 '허수아비'에 등장하는 맥스(진 해크먼)가 전형적인 그런 인물입니다. 그는 걸핏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강한 남자지만 그 덕분에 감옥살이도 합니다. 본성이 악한 사람은 아니죠. 다만 험하고 황량한 세상에 남을 믿지 못하고 자기 주먹을 믿는 인물이지요. 수틀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못 봐주고 주먹을 휘두르지요.
반면 프란시스(알 파치노)는 왜소한 체격에 늘 허허실실한 인물입니다. 그는 주먹대신 웃음으로 세상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평화주의자 이며 매우 낙천적으로 보입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독특한 우정을 다룬 버디무비가 바로 1973년 칸 영화제 대상을 받은 영화 '허수아비'입니다. 두 명의 남자가 주인공이지요. 늘 옷을 껴입고 다니며 화를 잘 내고 주먹을 휘두르고 남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자칭 냉혈한 맥스, 그는 잘 때 구두조차 벗지 않습니다. 반면 친근하게 말을 잘 붙이고 썰렁한 아재개그 같은 것을 즐기며 웃고 사는 상냥한 인물 프란시스, 맥스와 프란시스가 만난 곳은 바람이 불고 자동차도 거의 지나가지 않는 황량한 도로입니다. 이 도로의 황량함은 마치 맥스의 마음을 대변한 듯 합니다.
6년간 감옥에 있다가 출소한 맥스, 그놈의 성질머리 못 참아서 폭력을 휘둘러서 감옥에 가게 된 것입니다. 맥스는 프란시스와의 첫 만남에서도 역시나 쌀쌀맞게 대합니다. 그러다 라이터가 고장나서 시가에 불을 못 붙이는데 프란시스가 단 하나 남은 성냥을 빌려주는 바람에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지요. 이 작은 행동 하나로 맥스에게 프란시스는 마음을 여는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맥스는 감옥에서 열심히 모은 돗으로 피츠버그에 가서 세차사업을 같이 하자고 프란시스에게 권유합니다. 프란시스도 5년간 선원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이 조금 있지요. 세차사업을 하러 덴버에 가기 전에 두 사람에게는 각자 들러야 할 곳이 있습니다. 맥스는 덴버에 있는 여동생을 만나야 하고, 프란시스는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헤어졌던 여친인지 아내인지를 만나러 디트로이트에 가야야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배를 탔고 5년이나 지나도록 아이 얼굴도 못봤고,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르는, 심지어 그녀가 어떻게 사는지, 재혼했는지 조차도 모르는. 물론 5년간 꼬박꼬박 돈을 부쳐주었다고 합니다.
버디무비의 원조가 뭘까요. 오래전부터 있었겠지만 아메리칸 뉴시네마 이후로 활성화 되었습니다.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대표격인 '미드나잇 카우보이' '내일을 향해 쏴라' '이지 라이더' 같은 작품들이 그랬습니다. 그런 작품들처럼 '허수아비' 역시나 두 남자가 함께 여행하며 특별한 우정을 쌓는 내용입니다. '미드나잇 카우보이'와 좀 닮은 구석이 있지요. 한 남자는 작고, 한 남자는 크고, 둘은 현재 모두 별 볼일 없는 인생이고, 하지만 새로운 곳에 가서 성공하는 계획을 갖고 있고,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함께 여행하면서 우정을 쌓고.
제목 '허수아비'는 알 파치노가 연기한 프란시스가 하는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허수아비에 관한 썰렁한 이야기속에 나오지만 두 사람을 빗댄 제목이기도 합니다. 알 파치노는 스스로를 허수아비 라고 합니다. 참새가 무서워서 도망치는게 아니라 만만해서 그냥 가주는 것 처럼, 늘 우스꽝스런 행동도 하면서 긍정적으로 웃고 살고, 이건 남을 의심하고 괴팍한 맥스와는 정말 대조적긴 인간형이지요. 두 사람의 원대한 여정은 맥스의 괴팍함으로 인하여 예기치 않게 또 사고가 일어나고 지연됩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두 사람이 더욱 우정을 굳건히 할 상황이 생기고.... 둘이 거의 마지막 여정을 향해 가면서 관객은 해피엔딩을 염원하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맥스도 드디어 프란시스의 영향으로 변화한걸 느낍니다. 또 주먹질을 하려던 맥스는 프란시스처럼 참고, 오히려 웃음으로 상황을 넘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럼 이제 다 해결되고 해피엔딩만 남은 것일까요?
차가운 맥스의 내면에 생각지 않은 따뜻함과 의리가 있었고, 슬퍼도 행복한 듯한 프란시스의 마음속에는 의외의 슬프고 나약한 면모가 숨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행복한 척 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가장 슬픈 것이다.... 라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그리고 가장 차가운 척 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의외의 따뜻함이 있고. 영화의 엔딩 부분에 맥스와 프란시스의 드러나지 않은 이면이 보이게 되면서 관객을 뭉클하게 합니다. 그러면서 해피엔딩을 바라는 관객의 바램에 초를 치고 말죠. 끝 부분에 아주 어이없고 황당한 사건이 일어나니까요. 그럼 이 영화는 새드 엔딩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모든 영화가 언제 끝나느냐에 따라서 해피엔딩이 새드엔딩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모든 인간은 잘 나갈때도 있고 힘든 시기도 있습니다. 행복한 시기도 있지만 또 언젠가는 죽습니다. 이 영화가 해피엔딩처럼 마무리되지는 않고 안타까운 결말이랄 수 있지만 두 사람은 젊고 앞으로 어떻게 삶이 펼쳐질지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프란시스에 대한 맥스의 우정이 굉장히 깊어졌고, 그는 그토록 절대 벗지 않았던 '구두'의 비밀까지 드러내니까요.
인간은 허수아비 같은 삶을 많이 살게 됩니다. 슬프지만 내색을 안하고 힘들지만 꿋꿋이 이겨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지나치면 무너져내리지요. 강한척 하는 자가 의외로 쉽게 부러지고, 행복한 척 하는 사람이 어느날 무너져 내리기도 합니다. '허수아비'는 영화로서의 판타지가 지독스럽게도 없는 영화입니다. 힘든 현실과 황량한 마음을 담은 영화지만, 희망과 우정, 의리라는 부분도 챙겨 넣은 작품입니다. 전혀 상반된 두 배우의 조합으로 절묘하게 영화를 이끌어 갑니다. 187cm 의 장신 진 해크먼과 170cm 정도의 단신 알 파치노가 펼치는 색다른 우정을 다루고 있지요. 특히 알 파치노는 기존의 많은 영화에서 날카롭고 예민한 연기를 많이 보여주어, 다부진 카리스마의 배우로 인식이 되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온순한 스마일 보이입니다. 그럼에도 후반부에 보여준 넋나간 연기는 일품이었습니다.
알 파치노는 1972년 '대부'를 통해서 일약 주목을 받았고, 진 해크먼은 1971년 '프렌치 코넥션'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72년에는 재난영화 히트작 '포세이돈 어드벤처'로 명성을 높였습니다. 두 배우가 모두 굉장히 잘 나가기 시작하는 즈음에 출연한 영화입니다. 직전에 큰 흥행작을 남긴 배우였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은 오락적 영화가 아니라 저예산 사회물이었고, 흥행적 성과 대신 칸 영화제 대상이라는 또 다른 가치를 얻었습니다. 몸값이 높아지는 배우가 이렇게 오락적인 영화 대신 상업성이 낮고 깊이있는 사회물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 하고, 이후 두 배우는 꽤 장수하는 명배우로서 역할을 했습니다. 황량한 곳에서 만난 두 남자의 독특한 우정을 다룬 정말 '독특한 영화' 였던 '허수아비'입니다.
ps1 : 국내에는 개봉되지 않았습니다. 오락성도 낮았고, 동성애 묘사도 있고, 70년대 중반에는 그리 많은 영화가 개봉하지도 않았던 영향도 있었겠지요. 대신 83년 공중파 방영을 통해서 알려졌고, 이후 DVD 출시되기도 했습니다.
ps2 : 알 파치노 출연 영화중 가장 착하게 나온 작품 아닐까 싶네요. 더스틴 호프만이 했어도 정말 잘 어울렸을 듯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의 넋나간 연기는 알 파치노가 더 어울렸을 듯 싶네요.
[출처] 허수아비(Scarecrow, 73년) 상반된 두 남자의 우정을 다룬 버디무비|작성자 이규웅
첫댓글 '허수아비'를 방영한다는 기사를 읽곤 흥분, 흥분. 그날 청주 출장이라서 일 마치자마자 저녁을 먹고 오징어와 소주 한병을 사들고 여관으로 직행. 제리 셔츠버그를 만난다. 쓰리고 시리며 가슴 미어져오는 진 해크먼과 알 파치노의 우정에. 오징어 안주에 소주, 술이 달다. 셔츠버그 탓이리라. '뉴른베르크의 재판' 이후 티브가 이리 반가울 수가 없다.
진 해크먼과 알 파치노의 연기도 일품이지만 제리 셔츠버그 감독, 일류다. 감독생활 20년을 하면서 겨우 12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허투루 만든 영화는 거의 없다. 첫 영화 '타락한 아이에 관한 퍼즐'은 페이 더너웨이가 주연을 했고, 6번 째 영화 '덩굴장미'로 돈도 벌고 상업성에서도 탄탄한 감독이라 불리었다. 요새 TV로 영화를 보노라면 감독 앞에 천재라거나, 거장 혹은 최고라는 등 웃기는 수식어를 붙이는데, 죽을 때까지 영화를 만들어도 거장이네, 천재네 소릴 들을 수 없다. 한데 무조건 천재요, 거장이다. 천재 감독은 오손 웰스 한 명으로 족하다. 거장이라 칭할 수 있는 감독이 현재 있는가. 없다. 거장과 천재를 너무 남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