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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미국 독립기념일에 한반도를 생각하다
권종상 추천 0 조회 22 09.07.05 16:30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지금 시간이 밤 열한시 반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사방에서 폭음이 펑펑 터지고 있습니다.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입니다. 매년 이 날이면 밤 새도록 폭죽 터뜨리는 소리 때문에 잠 이루기가 힘듭니다. 올해도 아이들의 성화로 원주민(인디언) 마을에 가서 불꽃놀이 장난감을 사다가 동네 사람들 다 모이는 공터에서 함께 터뜨리고 구경도 하다가 왔습니다. 솔직히, 저희같은 어른들에겐 별 감흥 없는 날이지만, 아이들에게 신나는 날입니다. 불꽃놀이 구경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공터에 길다란 가든체어 가져다 놓고 반쯤 누워서 하늘 쳐다보는 사람들도 여럿 됐습니다만, 그 공터에 유난히 모기가 많아서 저같은 사람에겐 서 있는 것 자체가 고문입니다.

 

비록 지금까지 시끄럽긴 해도, 이 숫자가 2년 전, 그리고 지난해와 비교해 봤을 때 크게 줄었다고 느껴집니다. 우리집도 올해 불꽃놀이 화약을 사는 데 50달러를 쓰긴 했지만, 이 '공중에서 폭음과 연기로 날아가는 돈'은 이곳 원주민들의 수입이 됩니다. 예전엔 이들이 직접 이걸 만들어 팔았다고 하는데, 이번에 자세히 보니 이 불꽃놀이 용품들이 모두 중국산입니다. 미국에선 이제 중국산 아닌 게 별로 없는 듯 하군요. 하긴, 원래 화약이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지만, 그래도 쓴웃음이 흘러나오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게다가, 아메리칸 인디언 쇠망의 직접적 원인이 된 미국의 개국을 축하하는 불꽃놀이 용품이 원주민들의 수입원이 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로까지도 느껴집니다.

 

최근, 우리가 세 내어준 가게를 운영하시는 주인께서 월세를 수표로 끊어 주시면서 장사가 안 되니 이 수표를 다음주에나 입금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원래 우리가 운영했던 가게이니, 요즘 장사가 어때야 하는지를 잘 압니다. 뜨거운 여름이고, 한참 술과 음료수가 잘 팔려서 일년 중 가장 바빠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도 장사가 어렵다고 말하는 걸 보면, 요즘 실질 경기 불황이라는 것이 어떤지를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 가게의 경우, 가장 씀씀이가 큰 손님들을 멕시칸 등 라티노(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중남미 국가 출신) 손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건축경기가 크게 위축되다 못해 거의 중단되는 상황에 이르고, 이 때문에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의 고용이 완전히 끊기다시피 하는 상황이 되니, 그 여파가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모든 직종으로 퍼져 버렸습니다. 고된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 고국의 가족들에게 송금하고, 몸의 피로를 잊기 위해 월급받으면 이를 아끼기 위해 식당에서 먹기보다는 저렴하게 동네 가게에서 맥주와 안주류를 사서 친구들끼리 모여 부어라 마셔라 하던 이들의 소비력이 사라지자, 일단 이들을 상대로 하는 식료품점, 송금 비즈니스, 그리고 이들이 임시로 숙소로 삼곤 했던 싸구려 모텔들까지도 경기가 죽어 버린 것입니다.

 

지금이 여름이어서 워싱턴 주 동부의 농장들은 적지 않은 일손을 필요로 할 때입니다. 그러나 미국발로 퍼져버린 세계적인 불황의 여파로 인해 미국산 과일의 수입이 크게 줄어들었고, 농장들도 손해를 보고 있는 형편이어서 이들을 고용할 수 있는 여력 자체가 크게 줄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내 비즈니스들은 아직도 바닥을 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경제 구조의 바닥에 있는 비즈니스들, 특히 한인들이 중점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그로서리(식료품점, 캘리포니아나 뉴욕의 경우엔 리커스토어), 세탁소, 테리야키와 같은 소형 식당들은 완전히 맥을 못 추게 됐습니다. 식당들은 전엔 밥을 사먹던 사람들이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거나, 혹은 아예 직장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비틀거릴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면서, 식당에 고용돼 일하고 있던 라티노들도 해고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됐습니다. 아무튼 저임금을 받으며 힘들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나, 조그만 영세 자영업을 하는 이들에게 지금은 엄혹하기 그지없는 시절입니다.

 

물론 대기업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워싱턴주의 경우 아직도 보잉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표적 기업들조차도 감원 한파를 피해갈 수 없었고, 심지어는 제가 일하는 우체국마저도 근무시간 감축, 오버타임 삭감, 대량 해고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누구도 이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제는 그동안 '소비'라는 단물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운영됐습니다. 문제는 그 소비라는 것이 중독성이 큰 것이어서, 자기 건강 까먹는 줄 모르고 단것 열심히 먹는 당뇨병 환자처럼 이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집까지 '홈 에쿼티 론'이라는 이름으로 저당잡아가며 소비 활동을 열심히 해 경제의 규모만을 키워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제 구조는 당연히 '성인병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운동 없이 입만 즐거우면 된다는 식의 경제 성장은 결국 경제 자체의 흐름을 왜곡시켰고, 누적된 사태가 한꺼번에 폭발했던 것이 지난번의 서브프라임 사태와 이로 인해 촉발된 세계 경제 공황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형이라는 데 그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일 큰 답답함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소비로 이뤘던 그 성장 신화를 그리워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런 성장은 없다고 봐야 합니다. 만일 이런 왜곡된 성장을 다시 이루려면, 또 다른 큰 전쟁 같은 극단적인 카드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다는 것이고.

 

그럼,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극단적 카드'가 뽑힐 곳이 어딘가 하는 것입니다.

 

요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계속 의심하며 심상치 않은 눈으로 보게 되는 것도, 결국은 이 경제 문제와 연관해서 세상을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를 견제하며 이 땅에서 전쟁이 나지 않도록 막아야 할 우리 나라부터 남북관계를 제대로 풀어가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남도, 북도, 공히 '극단적인 데로까지' 밀고 밀리고 있다는 사실이 영 마음에 걸립니다. 지금까지는 서로가 열심히 뻥카를 내밀어 왔지만, 한반도는 실상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화약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진짜 카드'를 내미는 일이 지금껏 한번도 '우리 손으로 결정된 적은 없다'는 사실은, 미국이란 나라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서 존재하는지, 오늘 미국의 독립기념일 밤에 다시한번 새삼 생각해보게 됩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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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7.05 23:46

    첫댓글 긴 글 감사드립니다. 소비란 실제 구매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거품이 끼었다가 꺼지는 것이 문제였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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