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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긴 등정을 하며 이제 산 꼭대기에 오른 50대..허겁지겁 땀 흘리며 오르기 만이 목적이었지 내려옴은 애초부터 생각치 못했다. 꼭대기에 오르니 올랐던 길이 보였고 앞으로 나 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음에 '어떻게 내려 가야 바른 것인지' 깨치게 되었다. 그 중에 첫번 째가 오르며 잃었던 가치들을 되찾는 일 이었다.
지난 토요일(7/23) 모교 은사이신 백대현 선생님의 곧 있을 정년퇴임을 앞두고 우리 친구들은 선생님을 모시고 조촐 하나마 의미 있는 자리를 마련키로 하였다. 장마가 지나 갔다고는 하지만 흔적까지는 못 떠난 듯 후덥지근한 끈적함을 곧 다가올 상쾌함으로 달래며 약속 시간보다 30분정도 이른 17시 30분경 모임 장소인 남산의 동보성에 도착했다..
동네 짱꽤집을 연상시키는 '동보성'이란 상호와 어울리지 않게 입구 부터 잘 빠진 검은 수트에 나비 넥타이가 잘 어울리는 세련된 지배인의 안내를 받으며 룸으로 들어섰을 때 미리 와 있던 석우, 상관, 종필, 희준과 정겨운 인사를 주고 받았고 졸업 후 오늘 처음 만남 이었지만 한태수, 서정국, 신길호와도 30여년전에 예약된 인연의 끈이 스스럼 없이 다가 갈 수 있도록 마음을 편케 해주었다.
짱꽤집의 고추가루 묻은 프라스틱 양념통과 나무젓갈 대신 잘 정돈된 하얀 식탁보 위에 자리 한 도자기 양념통, 가지런히 셋팅된 포크, 젓가락이 은은한 주황 조명의 호위를 받으며 수줍은 미소를 날리고 적당히 푹신한 카펫의 촉감이 기다림의 지루함을 길게 하지 않았다. 뒤이어 도착하는 친구들과 하나 하나 손을 잡으며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아쉬움을 서로 보상하였다.
- 종석, 석우, 찬설 -
- 명성, 태수 -
- 명성, 종필, 상관. 종석 -
- 규식이 -
- 찬설이, 그리고 나 -
- 명성, 두현, 종필 -
- 명화, 찬설 -
곧 이어 오늘의 주빈이신 백대현 선생님이 단아한 수선화를 연상 시키는 수줍은 미소의 사모님과 함께 도착하였다. 내 추억속의 백대현 선생님은 학교를 졸업 하시자 마자 바로 푸른구름의 꿈을 품으시고 우리와 처음 만났었던것 같다. 여학교로 부임 하셨다면 한 인기 하셨을 만한 팔팔한 패기와 훤칠한 키의 백선생님은 '죽은시인의 사회'의 키팅선생님처럼 그 시절 우리들의 메말랐던 가지에 젊음의 푸른수액과 애정을 무한정 주입하셨다.
그 시절 교련선생님이나 체육선생님, 하마선생님의 무지막지한 폭력(?)과 찌그러진 얼굴(지금 생각해 보면)을 백선생님에게서는 전혀 볼 수가 없었고 항상 웃음을 머금은 어눌한 말투의 부드러운 가르침이 지금 나의 뇌리 속에 자리한 백선생님의 모습이다. 선생님은 나이에 비해 흰머리가 많았던 탓에 주어진 별명이 '백xxx' 였던것으로 기억되고 우리들의 검었던 머리가 선생님의 흰머리와 자리를 바꾸어 앉아 이제는 내가 선생님보다 흰머리가 많아질 정도로 지나간 세월에 대한 무심함에 선생님께 미안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선생님부부를 헤드테이블로 안내를 하고, 마음은 가장 가까이에 머물고 싶지만 그럴수록 몸이 멀리 달아나 버리는 첫사랑 소녀의 내숭처럼 우리는 서로가 선생님 곁에 앉기를 양보하였다. 그런 우리들의 아름다운 양보를 읽으신 선생님의 흐믓한 표정이 분위기를 더욱 부드럽고 편케 하였다. 하여튼 누구의 제안 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연스럽게 동기회장인 희준,그 시절 반장을 하였던 기현, 또 선생님과의 인연이 남 다른 길호 등이 선생님의 곁에 자리하게 되었다.
- 기현이, 사모님, 백대현 선생님, 두현이 -
시간이 좀 지체 됐으나 아직도 빈 자리가 남아 있었기에 그 자리가 채워지길 기다리면서 흐르는 시간에 우리들의 웃음과 노가리로 한 점, 두 점..세겨 넣었다. 러시아 생활을 오래한 명성이의 '러시아 여인 감상포인트', '보드카 즐기는 법', '웃기는 러시아어 강좌' 태수의 '여성나이별로 특징 되어지는 산(山)의 고찰', '치매증세의 구별법' 등 제목으로 봐선 심오한 듯 하지만 웃지 않을 수 없는 주제의 조각들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강좌를 통해 나는 러시아어를 속성으로 라도 짧게 배워 언젠가 늘씬한 금발의 러시아 미녀의 허리를 감싸안는 꿈을 꾸었고, 비아그라를 먹고 아내에게 달려드는 치매를 절대로 범하지 않으리라 다짐 또 다짐했다. 라이타를 러시아어로 'jajiggala'로 발음 한다는 러시아어 강좌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뒤 집어졌고 담배 피우러 나가며 일부러 친구들에게 "jajiggala 좀 빌려줘"를 외치는 유치함에도 그렇게 즐거웠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중에 우리들 얇아졌던 기억들을 쉽게 다시 되찾을 수 있도록 따뜻한 기원을 담은 명찰, 카페명함을 들고 성인이가 허겁지겁 도착하였고, 오는 9월 사위를 보는 두현이, 적당한 반백이 잘 어울리는 윤구, 영원한 선비님 규식이, 삶에 힘겨워하는 이들에 더욱 애정을 쏟는 따뜻한 한의사 종원이 등등... 선한 얼굴들의 도착과 함께 희준이가 오늘 모임의 마이크를 잡았다.
제자들 사이에 한 인기 할 것 같은 교수님 특유의 느릿한 말투와 부드러운 유머, 반짝이는 재치로 펼치는 희준이의 매끄러운 진행에 모두들 따끈한 수조에 발을 담근 듯 하였고 초록색병이 유난히 돋보이는 하이네켄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시원스레 목줄을 타고 흘렀다.
- 희준이의 진행 -
- 감사패를 읽어 내려가는 명화 -
명화가 우리들의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의 뜻이 담긴 감사패를 읽어내려 갈 때 선생님의 눈자위 한 편에 투명한 작은 이슬이 맺힌것 같았다. 선생님께서 이룩한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40여년 가까운 교직생활을 돌이켜 보면 못난 제자들 때문에 못견디게 힘들고 괴로운 순간도 있었을 것이지만 교문을 떠난 후 30여년이 훨씬 지난 녀석들이 지금 당신 앞에 서 있음에 이 길을 걷기를 참 잘 했노라고 스스로에게 칭찬과 격려를 보낸 보람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내 친구 종필이도 나중에 머리 허연 제자들의 축복을 받으며 정년을 맞이 할 수 있기를 기원하였다.
이어서 하얀봉투에 우리들의 정성을 가득가득 눌러담은 '용돈봉투(?)'와 빨강장미, 아이보리글라디오러스, 분홍카네이션이 잘 어울어진 꽃다발을 건네 받으신 사모님의 수줍음 탄 미소에서 선생님 부부의 살아오신 단아함과 정결함이 보였고 '사람은 생긴데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데로 생겨진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실감케 되었다.
우리 앞에 서신 선생님께서는 순간적으로 파노라마처럼 스치는 지난 세월에 복 바치듯 잠시 말이 없으셨으나 이내 선생님 특유의 밝고 자상한 톤으로 지나온 교직생활에 회한도 많았지만 그래도 행복했었음을 담담히 표하셨다. 선생님의 옅은 회한을 감지한 명화가 선생님께 '형님'이란 푸근한 단어로 다가가자 선생님께서는 껄껄껄.."내가 동생같은데 뭐 !" 하시며 잠시 동안의 다운 됬던 분위기를 10분 전의 '하하' 분위기로 돌려주셨다.
- 흐믓해 하시는 사모님과 선생님 -
- 선생님의 회한과 희망 -
- 사모님도 만감이 교차 하시는 듯... -
- 선생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길호는 우리가 몰랐던 백선생님과의 애뜻한 사연을 들려주었다. 그 시절 백선생님께서는 길호의 힘든 형편을 고려 하시어 길호의 수학성적을 올려주어 장학금을 받게 해 주었다고 길호는 눈물을 머금으며 선생님을 고발하였다. 고발의 표현을 빌렸지만 듣는 입장 에서는 선생님에 대한 한 없는 감사와 존경의 표시였고,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그릇'에서 느꼈던 따뜻함 이상의 깊은 감동으로 다가와 나도 잠시 길호의 눈물에 전염돼 손수건을 만지작 거렸다.
제자의 고발을 당하신 선생님게서는 '그런 식의 고발 이라면 얼마라도 감내 하겠다.'는 듯한 잔잔한 미소와 흐믓한 눈길로 제자 사랑을 재확인 하는 듯 하였다. 선생님의 은혜에 '크게 미치지는 못하지만 조금 이라도 보답해야 겠다.'는 길호의 의지는 그 날 식대를 자신이 전부 계산 하는 선행으로 이어져 덕분에 오늘 모아진 참가회비는 모교에 장학금으로 기탁 하기로 했다. 친구들 모두 다름이 없겠지만 나는 이 자리를 빌어 길호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가장 인간적인 상황을 봤을 때 진한 마음 울림이 다가 온다고 한다. 살아 오면서 항상 마음의 빚으로 여겨졌을 옛 스승의 시은을 잊지 못해 그 스승의 아름다운 비행을 눈물로 고백하는 지천명을 넘긴 제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오히려 제자의 울먹거림을 잔잔한 미소로 다독이는 정년을 며 칠 앞 둔 노스승, 빡빡한 삶 속 에서도 스승의 오랜 자리맺음을 기억하려 모인 30여년 전의 제자들. KBS의 'TV동화'에서 수 없이 다루어 졌던 그림들을 그 때 우리가 거기서 리바이벌 하면서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불현듯 그 분위기를 수잔잭슨의 '에버그린'으로 깔고 싶어졌다.
- 길호의 아름다운 고백 -
- 숙연해 지는 분위기 -
- 이 쪽도 마찬가지 -
- 기현, 정균, 윤구도 감명 받은 듯.. -
가슴 속 깊은 저 편에서 솓구치는 감동에 feel 받은 소리꾼 성인의 '제비 몰러 나간다(?).' 소리울림은 모두의 마음 속에 다시 또 지워지지 않을 여울이 일게했고 멈춰지지 않을 탄성을 불러왔다. '소리라는 것이 이리도 사람의 심금을 울릴수 있다니...' 노래는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어도 소리는 흉내조차 낼 수 없음에 새삼스레 성인이에게 내가 아는 유일한 소리꾼 박동진옹의 이름을 딴 '오동진'이라 부르고 싶었다.
성인이의 소리마침에 임재범의 '여러분'이 끝난 것 처럼 앵콜을 무수히 외쳐 댔으나 프로는 자신의 '예(藝)'를 함부로 남발하지 않는 예인 기질을 존중하여 아쉬움에 머물러 주춤이고 있을 때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생각치도 않게 내가 마이크를 잡고 여러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 서있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난감 했지만 이 나이에 다시 만난 친구들에 대한 소회, 동기카페에 대한 진한 애정, 우리가 99살이 되서도 이렇게 함께 웃고 싶은 나의 작은 소망에 대해 담담히 밝혔던 거 같다.
삶에 고단한 아버지의 얼굴들 이었지만 경청하여 듣고 있는 친구들의 눈빛 만큼은 참 선하고 맑았으며 이런 그들과 앞으로 나에게 펼쳐질 길지 않은 나머지 인생을 함게 걸어갈 수 있음이 말할 수 없는 행복감으로 다가와 오랫동안 가슴켠 한 구석이 찡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 오동진(?) -
- 종석이, 석우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
- 얼떨결에 한 마디 하게 되다 -
- 친구들이 잘 들어주어 다행이다 -
- 태수와 함께 -
- 명화, 정균, 길호 -
시간은 이미 9시를 넘어섰다. 다시 선생님을 보내 드려야 함에 우리는 서둘러 선생님 부부를 가운데 모시고 그 시절 보다는 좀 자유스런 포즈로 순간의 기록을 찍었다. 뭔가 하나라도 더 이벤트를 드리기 위해 양 편으로 늘어서서 45도 정도로 손을 들어 올려 떠나시는 선생님 부부에 예를 다하였고 다시 뵐 날 까지의 공백을 채우려 흐믓해 하시는 선생님의 눈길과 사모님의 수줍은 듯한 밝은 미소를 먹다 남은 맥주병 뚜껑을 닫듯 머리 속에 꽁꽁 가둬 두었다.
선생님을 모셔 드리고 우리는 인근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각 자의 가슴 속 돌들을 밀어냈다. 옆에 앉은 종석이는 늘 그렇듯이 말 없이 조용히 잔을 기울이며 나의 노가리를 들어주었다. 모두에게 같은 무게로 짊어져 있을 '아버지'라는 커다란 바윗 덩아리가 나만 그렇게 지탱키 어려웠을 지는 아닌데 종석이는 소벅한 미소로 자신의 바윗덩이에 기꺼이 나의 엄살을 얹어 놓았다. 그에 답하려 나는 속으로 "내 친구 종석이, 내 친구 종석이..'를 몇 번이나 중얼댔다.
얼마 전에 통 연락이 없었던 친구에게서 연락을 받고 나간 적이 있었다. 거의 2년 만에 만난 녀석은 내 기억 속에 자리한 모습에 상당히 비켜나 있었다. 명문대를 나와 국내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던 녀석은 거칠 것이 없었고 그런 만큼 나는 녀석을 만나기가 꽤 힘 들었었다. 무슨 이유 인지는 몰라도 녀석은 회사를 나와 중소기업을 몇 군데 전전하다 지금은 실업자가 되어 상당히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 선생님과 사모님의 선물 -
- 캡틴, 오 나의 캡틴.. -
- 이런 걸 얼마나 그려 왔던가!! -
녀석의 불행은 매일 매일 외줄을 타며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 대는 나와 별 반 다름이 없기애 그 날 나는 검은 새벽이 올 때까지 녀석의 눈물을 배가 차 오르도록 마셨었다. 잔잔한 호수 위에서 고고히 자태를 뽐내기 위해 백조의 다리가 물 밑에서는 쉼 없이 좌우 상하로 발버둥을 쳐야 하는 삶의 고단함을 다른이 에게는 감출 수 있어도 내 친구 종석이 에게, 찬설이 에게는 엄살을 피며 주절 거렸다.
찬설이는 다음 달 미국연수를 떠나 당분간 보기 힘들 거 같다. 이 나이가 되니 '알고 있는 누군가 떠나 간다는 것'은 항상 가슴 시린 허전함이 앞서 다시 만날 기쁨을 짓누른다. 비록 자주 하지는 못했지만 찬설이의 빈 자리는 앞으로 자주 할 횟수 만큼의 넓은 자리로 친구들의 가슴으로 들어 앉을 것이다. 그 넓어진 자리를 찬설이의 건강과 건승을 기원하며 우리는 1000cc, 2000cc, 3000cc... 알싸한 거품의 날보리술로 채워 넣었다.
- 아쉬움은 길게 간다 -
- 종원, 희준, 정균, 명화, 찬설, 윤구 (시계방향) -
- 종석이가 더 없이 나를 품어 주었다 -
저 편 끝 쪽에 앉은 성인이가 열변을 토하고 심각한 표정의 규식이는 엄지와 집게로 담배를 잡은 채 쉴새 없이 연기를 뿜어댄다. 촌놈을 노래하며 서울 온 두현이가 연기뿜기 시합을 하듯 규식이 이상으로 진하게 뽐구선 우~~하하 거렸다. 명성이는 바삐 다니며 순간의 기록을 담고는 헤맑게 웄는다. 찬설이는 돌아가며 친구들의 손을 잡고 잠시 동안의 떠나 있음을 아쉬워 했고 윤구와 정균이 흐믓하게 웃고 있었다.
희준이가 이 자리를 위해 꼭꼭 짱 박아 두었던 빨강 미니치마를 걸친 러시아산 보드카의 머리를 올려 줬으며 스커트를 벗어 제낀 알몸의 보드카는 우리들의 혀를 황홀하리 만치 비틀었다. 발가락에 땀이 솓을 정도의 강렬한 비틀림에 나의 혀는 I자에서 슬슬 S자로 굴곡을 그렸으나 정신줄 만큼은 놓지 않으려 탁자 위의 마른 노가리에 0.05그램의 고추장을 입혀서 나의 혀를 쓰다듬었다.
- 무슨 말을 하는 걸까? -
- 언제나 이럴 수 있다면.. -
- 내일고 이래야 할 텐데.. -
시간이 지나면서 하이네겐, 연태고량주, 날보리술, 보드카를 통과 시킨 간의 운동속도가 빨라 질수록 뇌의 회전속도가 자꾸만 더디어 갔다. 그 더디어짐은 종필, 명성, 윤구, 규식, 종석, 희준, 명화, 성인, 두현, 종원, 석우 에게도 빠른 속도로 전염 되어 '아버지'의 소심함을 '오빠'의 대범함으로 간을 붓게 하더니 자연스레 한강 다리를 건너 무대를 남쪽으로 옮겼다.
3대의 택시에 나누어 탄 12명의 간뎅이가 부풀은 오빠들은 종원, 윤구의 지휘아래 야간 군사작전을 펼치듯 진지한 음성으로 핸드폰을 무전기 삼아 오늘의 작전지역(물 좋은곳)에 대한 정보를 서로 주고 받더니 최종적으로 R나이트(?)를 3차 공략지역으로 정하고 전선으로 향했다. 전선으로 향하는 장수의 비장함은 없었으나 '이 밤을 승리 하리라!!'는 열의 만큼은 하늘에 떠있는 별을 찌르고도 남음이 있었다.
촌에서 간만에 서울 구경 왔다고 설레발을 치는 두현이의 두 눈이 유난히 반짝였고 후덥하지만 싱그러운 밤공기는 그 반짝거림에 묻혀가고 있었다. 선발대로 먼져 도착한 명화, 성인, 두현 그리고 나는 윤구의 지시대로 Y이사를 찾았고, 윤구의 연락을 미리 받았는지 Y이사는 거침없는 친절함으로 우리 전부와 알파(?)를 받아들이고도 남을 널직한 룸으로 안내하였다.
- 규식이. 두현이, 종원이 -
- 명화, 종석이, 찬설이 -
- 정균이, 나, 종석이, 성인이 -
- 명성이의 마소는 언재 봐도 해 맑다 -
룸이 주는 널직한 안락감과 엉덩이룰 푹 잡아 당기는 큐션감은 마음을 들뜨게 하는 묘한 마력을 발휘해 저 앞의 무대에 올라 가무를 펼치도록 나를 떠밀었으나 기이하게 18번의 제목이 머리에서 맴돌기만 할 뿐 노래책에서는 찾을 수가 없기에 망설이던 중 이제 방금 도착한 규식이가 들어서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대에 올랐다.
허리를 완전히 숙이고 무표정한 슬픈 얼굴로 '새벽기차'를 부르는 그의 모습이 그가 지닌 삶의 무게를 노래하는듯 애처롭게 웃음지어 보였다. 서울구경에 마냥 들떠 있던 두현이도 여러차례 무대를 오르 내리며 그의 장악력을 과시 하였고, 손교수 희준이도 무대에 올라 흐믓한 '우정의 무대'를 연출 하였다. 오랜 외국생활로 다져진 명성이의 사교력은 짧은시간에 부킹녀를 움직일 정도의 위력을 발휘해 다시 한 번 웃음을 자아냈다.
- 빨강치마가 어룰리는 보드카 -
두현이가 오늘 밤 전의를 다졌다 -
- 명화, 명성이, 윤구, 성인이, 희준이 (시계방향) -
- 작전회의 -
그렇게 우리는 술 마시고 노래 하고 춤은 안추고 떠들고 웃어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아쉬움 뿐이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 보았지만 보이는 건 모두가 시간의 흐름 뿐 이었다. 시간의 흐름 앞에 한 없이 늘어지려 할 때, 선생님 특유의 자제력 발동 이있는지 , 마나님이 그리웠는지 알 수 없으나 "자~~ 떠나자!! "하는 교감 선생님 종필이의 외침으로 우리는 3라운드의 종말을 고하고 그래도 아쉬운 작별의 발길로 돌아섰을 때가 새벽 2:30분 이었다.
3라운드를 마친 후 상황 점검을 하니 MH, SI, MS, DH, IS 등 5명이 생존해 있었지만 여지껏의 치열한 전투로 간(肝)이 배 밖으로 나온 전상(戰傷)에 신음하고 있었다. MH, SI를 제외한 나머지 3인은 멀리 원주, 금촌, 일산에서 온 원정군 들이었다. 전상이 심한데다 본대까지는 너무 멀어 지금 이 시간의 부대복귀는 바람난 과부가 컴백홈 하기 보다 어려운 상황이었다.
5인의 배 밖으로 삐져나온 간은 머릿속의 퓨즈까지 나갔다 들어오는 것 같은 깜박거림 상태로 바꾸어 버렸다. 깜박거림의 주기가 점점 빨라지면서 발생된 퓨즈의 과부하는 집으로 세팅된 머리속 네비게이션을 서초등(?)의 단란하게 술먹는 집으로 오작동 시켰다. 케니지를 듣는듯한 주인장의 멋들어진 섹스폰 연주에 곧 이어 등장한 베리 베리 프리티 걸(?)은 원초적인 수컷의 본능을 하염없이 자극하여 갈 길잃은 오빠들을 한 방에 무너 뜨렸다.
꺼지기 직전의 장작불이 하늘을 집어 삼킬 듯 한 기세로 가장 맹렬히 타오르 듯 무대를 오르 내리며, 예쁜 걸들의 잘록한 허리에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보드카 보다 강한 투명한 액체에 가슴 속 얹힌 아주 작은 돌 들까지 털어 내면서 마지막 장작불 투혼을 발휘했던 길 잃은 독수리 5형제는 하나 둘..그렇게 서서히 산화 하였다. 희고 가녀린 걸의 부축에 의지해 들어 왔던 문을 나설 때, 머리속 네비는 완전 먹통이 되었고 기어이 내 안의 간(肝)은 이미 움직임을 멈춘 듯 하였다.
- 찬설이의 작별인사 -
- 명성, 종원, 윤구 -
- 찬설이의 아쉬움 -
- 두연이의 상황점검 -
- 한강 다리 건너기 전 -
- 3차전을 위한 전의를 다지다 -
- 두현이의 저 표정은? -
가물해 지는 기억들을 뒤로 한 채 두현이의 배려로 인근의 모텔에 쪼그라든 몸을 의지했다. 늘 그러듯 딱 2명만 허락한 공간에 아무런 흔적없이 정갈히 누워있던 하얀 침대카바가 차기운 냉기를 뿜어대며 홀로 들어선 나를 비웃었고 주인 잃은 나머지 배게는 본능에 충실치 못한 나를 더욱 더 놀려댔다. 그들과 한 편인 벽시계의 긴다리와 작은다리는 각각 5자와 12자에 멈춰서서 똑딱대며 역시 나를 조롱했다.
나는 그에 아랑곳 않고 본능을 잠재운 나의 눈물겨운 인내력에 한 없이 감사했고 담배연기로 그들에 복수하려 돗대 담배에 불을 붙였으나 거꾸로 담배를 물었기에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허무함이란 이런 것인가? ' 되뇌이며 오디오의 전원을 작동시켰다. 잔잔히 흘러나오는 임재범의 "~~네가 만약 괴로울때면 내가 위로해줄께 네가 만약 서러울때면 내가 눈물이되리~~허전하고 쓸쓸할때 내가 너의 벗되리라..."
참!!! 노래 나오는 타이밍도 절묘하다. 어쩜 이리도 지금의 내 심정을 구구 절절이 노래할 수 있을까? '요럴 때 꼭 피워 줘야 하는데' 하는 나의 흡연습성은 방금 전 거꾸로 타다 만 돗대담배에 자꾸만 눈길을 돌렸다. 이 순간 친구들에 대한 애정을 묻는다면 거두절미 하고 딱 지금 흘러나오는 임재범의 '여러분'으로 대신하고 싶어졌고 말똥 거리는 눈으로 메모수첩을 집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백대현 선생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셨었다. 삶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버거움이라는 섣부른 자기 합리화로 이별을 포장 했기에 그 토록 오랜시간 긴 고뇌 없이 선생님께 무관심 했고 애정에 소흘했던 것이다. 긴 시간 돌아왔지만 그래도 머리 더 허얘지기 전에 생각 짧은 나의 어리석음을 선생님께 참회 할수 있음을 축복이라 생각하였다.
찬설이, 그가 돌아 올 때 쯤이면 아마도 영선이나 두현이는 할배가 되어있을 것이고 우리들은 지금 보다 더 품위 있고 우아한 예비할배(?)로 함빡 웃으며 그에게 다가 갈 수 있을 것 이다. 2011년 지금, 또 앞으로 우리 에게 있어 이별은 없을 것 같다. 다만 항상 프르고 변치 않은 에버그린같은 관심과 애정만이 그 이별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울 수 있을 것이다. 말똥 거려져 있었던 두눈이 서서이 페이드 아웃 됨을 느껴오며 더 이상 필요치 않는 가슴 속 '이별'이란 단어에 안녕을 하고자 과감히 Delete키를 눌렀을 때 창 밖은 어제와 다름 없이 다시 밝아오고 있었다.
첫댓글 동기분들 멋 지내요,모든분들 건승 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