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선교 열정
로마서 15:19,...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찬송가 507장(저 북방 얼음 산과)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얼굴도 보지 못한 기독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중에 자기의 앞으로의 선교 계획을 그들과 나누는 대목 중 일부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에 가서 그 성도들의 기도와 후원을 힘입어서 지중해 서쪽에 위치한 당시 세상의 서쪽 끝인 서바나 지금의 스페인에 가서 선교하려는 그의 선교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선교 계획에 대하여 단지 서바나로 가는 것이 끝이 아니고 그 다음에는 아프리카 북부 지역까지 갈 것으로 생각하는 학자들의 분석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서바나를 선교한 후에는 아프리카 북부의 옛 카르타고 지역을 선교하고 난 후에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시를 선교하고 나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원대한 선교의 포부를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포부를 실행하려 했을 것이라 추정하는 것입니다.
학자들의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단어가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15:19 말씀에 나오는 단어인 ‘두루’라는 단어입니다. 헬라어 원문 단어로는 ‘쿠클로’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의 뜻은 ‘원주’라는 뜻에서 나왔습니다. ‘쿠클로’는 둥근 원처럼 에워싸고 둘러 있는 모양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로마서를 쓸 당시 사도 바울은 당시의 세상 전부라고 이해하고 있던 로마 제국의 동쪽 지방 곧 예루살렘으로부터 튀르키예 지역을 다 다니면서 이미 전도했고 일루리곤은 북쪽 지방도 전도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이제 세상의 서쪽 끝인 서바나를 가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바나 전도가 진행되면 사도는 분명히 세상의 남쪽 둘레인 아프리카 북부의 옛 카르타고 지역인 리비아와 튀니즈 지역을 전도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이집트의 세계적인 항구 도시로서 인구 백 만을 자랑하던 알렉산드리아 시를 최종적으로 선교함으로써 그의 세계 선교의 비전을 완전히 성취하려고 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도가 로마서에서 “이제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라고 한 것을 보면, 그는 계속적으로 그의 광대한 선교 비전을 성취하려는 강력한 열망에 사로잡혀서 일을 찾아 달려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선교 열정이 참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로 하여금 그토록 수많은 장애와 핍박과 고생을 겪으면서도 당시 세계 전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로마 제국의 동서남북을 다 둘러서 다니면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다는 분명한 사명 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주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그릇이라고 말씀해주셨으며,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전도하려고 하였을 때에도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고 말씀해주심으로써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하여 그처럼 열심을 낸 것입니다.
또한 그가 깨달은 중요한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 있었으니, 이방인의 수가 차야 자기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25 이하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기가 깨달은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이렇게 편지에 써 보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는 이 영적 비밀을 깨달았기 때문에 자기의 이방인 선교의 열매가 풍성하여 이방인의 구원의 수가 차야 자기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의 문이 열리는 것을 알기에 그토록 동족 구원을 위한 열망으로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직접 체험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가 곧 그토록 열망하던 만민의 구원자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온 인류 구원의 소망이 실현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기 때문에 이를 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죄로부터 구원, 저주로부터 구원, 율법의 짐으로부터 해방, 죽음으로부터 구원, 지옥 형벌을 면하고 영세 천국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상속하는 구원이라는 이 위대한 구원을 주신 구원자가 오셨는데도 이 구원의 기쁜 소식을 감추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벌 받을 일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는 이 구원의 지극히 큰 소식을 분명하게 부활의 주님의 현현 가운데 직접 알게 되었기에 복음의 빚진 자가 되어서 이 복음을 아무리 많은 고난이 있어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가 그 고난이 있어도 불굴의 용기를 가지고 미지의 땅으로 달려가서 복음 전도를 담대히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그가 복음을 전할 때 모든 고난을 너끈히 이길 힘을 주시고 승리하게 해주실 것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다른 사도들에게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라”고 말씀하시고,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거리낌없이 달려가려 했던 용기도 주님이 함께해주심을 굳게 믿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제 동기 목사님들과 모임이 있어서 얘기를 나누었는데, 아프리카 중부의 부룬디라는 나라에 선교차 갔는데, 그곳에서 영어 설교를 하는데 놀랍게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막힘없이 가르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분이 미국에서 석사까지 공부한 석학이었지만 한국에서 이미 20년 넘게 목회만 한 분이니까 영어를 많이 못했는데, 성령께서 선교 현장에 가니까 놀랍게 역사해주셔서 영어로 능통하게 가르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서바나로 가게 될 때에는 지금까지 능통하게 사용한 헬라어도 쓸 수 없어서 언어 장벽이 가로막고 있을 것인데도 사도는 주님만 믿고 담대하게 서바나 선교 비전을 꿈꾸고 달려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니 못 할 것이 없다는 담대함이 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도 바울의 원대한 선교 포부가 실제 그의 사역에서 다 이루어지지 않고 주후 68년 경에 중단되고 순교했지만, 그가 이처럼 광대한 선교적 비전을 갖고 달려갔던 결과로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복음은 이미 이방 지역의 광활한 영역에 널리 퍼지게 된 놀라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사도 바울과 같은 열정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 역시 주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구원의 놀라운 해방의 은혜와 감격이 우리 안에 새롭게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진 이 사명에 대한 사명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만주의 주요 모든 신들 위의 신이심을 믿는 우리가 저 우상과 잡신을 섬기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만주의 주 되심을 증거하는 것이 곧 주님의 뜻이 분명합니다. 힘들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당장의 성과가 없더라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을 믿고 도전해간다면, 주님은 반드시 복된 열매를 주실 것입니다. 이 시대 다시 한번 사도 바울이 품었던 그 원대한 선교의 이상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이 시대 우리에게 주신 복음 전도의 사명을 이루어가야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