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후 7:10, 개역한글)
이어폰을 이용한 드라마성경 통독이 어느덧 바울서신에 이르렀다. 고린도후서 7장에는 근심이라는 주제가 나온다. 사도바울을 돕고자하는 마음은 넘치지만 형편이 미치지 못하는 교인들은 근심을 하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나를 돕는 문제로 더이상 근심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게 된다. 이 세상에 근심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형편에 따른 근심을 하게 된다. 나 역시도 누구 못지않게 근심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공부를 할 때는 고학을 하다보니 학비조달의 문제로 근심을 하였다. 졸업후에는 잠시이긴 하나 취업을 위해 근심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놀랍게 취업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가장 잘나가는 업종이다보니 매주일 쉴수가 없어 격주로 휴무를 해야하니 성수주일로 근심이 떠나질 않았다.
마음껏 주일을 지킬수 있기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목회자가 된 후로는 재정의 문제로 몇년간을 근심해야 했다. 그리고 교회가 자립을 이루고 안정된 이후로는 한동안 근심과 멀어진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은 다시 내 심령을 요동치게해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라는 주제에 대한 마음을 주셔서 그 문제로 아내와 갈등을 겪게 했다.
목회사임에 대한 근심의 마무리는 우연히 방문한 연변지역 방문에서 실마리가 풀렸다. 돈을 벌기위해 20세때 여름에 잠시 승선했던 원양어선에서 바다에 추락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경험이 떠올랐고, 그 때의 서원기도-하나님 살려주시면 주의종이 되겠습니다가 떠올라 극적으로 중국선교사의 삶을 결단하도록 이끌었다.
근심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어떤 문제로 근심하느냐가 중요하다. 지금 나는 어떤 문제로 근심을 하고 있을까? 70을 목전에둔 지금 또다시 선교지로 나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다시 목회를 한다는 것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그동안의 경험과 최근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는 목회를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다. 예수동행과 기도통장이라는 두기둥의 목회가 최근 나의 소박한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