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독교는 정치적이고 물질적이고 극도의 자본주의다.
그리고 진화론을 부정하는 주가 여전히 존재한다.
수십억 년에 걸친 생물의 자연선택이라는 과학적 근거를, 하나님이 단 5 일 만에 천지창조를 했다는 창조론은, 지금도 과학이 최고로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카톨릭이 정치적인 증거는 대항해 시대 유럽의 용병과 함게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수수료를 받았다는 것에서 증명이 된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 전역에 뿌리 내리고 있는 대형교회들이다.
미국의 대형교회는 2000여 개를 헤아린다.
미국의 기독교는 자본주의 불평등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린다. 히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미국의 기독교를 한국은 그대로 모방했다. 여의도에는 세계 최고의 대형 교회 순복음 교회가 있다.
순복음 교회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예배로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교회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온상이 되어 퍼뜨렸다.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출애굽기에는 이집트의 절대 권력자 파라오의 흔적이 없다.
출애굽기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였다고 한다.
그러나, 피라미드 노동자들은 지금의 근로기준법 보다 더한 대우를 받았다. 지금의 최저 임금제보다 훨씬 비싼 주급을 받았으며, 술을 많이 마신 날은 일하지 않아도 무방하였다.
출애굽기 역시 지극히 정치적이다.
그래서 홍해가 갈라져서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 땅에 도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럽의 중세는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으로 얼룩져 있다.
십자군들은 같은 기독교도들은 죽이지 않는다는 계율을 깨뜨렸고, 돈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마녀사냥은 기독교의 정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짓을 저질렀다.
유럽 전역에 걸쳐 수십만 명의 마녀들이 화형당했으며, 그것은 300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십자군 전쟁과 마녀 사냥은 로마 교황의 권위를 실추 시켰다.
카톨릭를 부정하는 종교개혁이 전 유럽에 걸쳐 일어났다.
그들 신교도들이 부르주아가 되었다.
영국의 브르주아를 젠틀맨이라고 불렀고, 그들의 대부분은 청교도들이었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버지니아에 정착하여 오늘의 미국이 되었다.
베이컨, 데카르트, 홉스가 열어젖힌 근대의 장막 그 뒤에는 기존 봉건제와는 완전히 다른 자본주의가 놓여있었다.
노동과 자본, 그리고 그를 이용한 가치 창출이 기존에 유럽 사회를 지배하던 신분 혹은 교리보다 중요시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사회를 완전히 뒤바꿔 놓게 되면서 그 기원과 특성, 향후 방향에 대한 논쟁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청교도적 윤리관이 근대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베버의 저명한 논저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베버는 자본주의의 핵심을 그 외관에서 찾지 않았다. 그는 근대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근대적인 노동 윤리’와 ‘물질적 성공에 대한 지향’이 다른 것이 아닌 종교적 영역에서 출발한 자본주의 ‘정신’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시장의 확대나 기술 혁신은 ethos의 결과이지, 자본주의적 특성의 핵심 원천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대 거의 모든 독일 학자들은 자본주의의 경제 체제로서의 형태에 집중하며 그 기원을 어떤 지배적인 집단적 사고 체계의 문화적 변화에서 찾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근대 자본주의의 도래를 설명할 때 사고방식의 변화를 언급한 학자들이 있긴 했으나, 베버는 그들마저도 기존 자본주의의 정신과 근대 자본주의의 정신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강화된 富는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에 대한 설명 중 하나이다.
18, 19세기에 강화된 이윤 추구에 대한 욕망이 자본주의의 성장을 이끌었다는 주장이다.
베버는 인류사를 통틀어 富에 대한 욕망은 어느 시대나 존재해 왔음을 들어 해당 주장을 거부한다.
기독교는 자본주의 부와 불평등을 당연시 여기면서 미국에서 극도로 발전해왔다.
홍해를 갈라놓은 모세의 기적과 자본주의와 기독교는 지극히 정치적일 수 밖에 없었다.
한국 보수당의 뿌리는 기독교가 중심이다.
이승만은 미국식 자본주의자였고, 부자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말하는 이명박 역시 난잡한 자본주의자이다.
그래서 나는 자본주의를 부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