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 요한복음 11:47 – 57】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9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54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56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57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말씀 나눔】
여러분 조지 오엘이 쓴 동물 농장이라는 소설을 읽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늙은 수퇘지 메이저가 인간의 착취를 끝내고 모든 동물이 평등한 세상을 설파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 지 사흘 만에 죽고, 농장주가 술에 취해 먹이를 주지 않자 동물들을 반란을 일으켜 농장주를 쫓아내고 동물 농장을 세웁니다. 7계명을 벽에 새기며 모든 동물이 평등한 사회를 추구합니다.
처음엔 모두 열심히 일하며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지만, 돼지들이 지도자가 되면서 점점 특권을 누리고 계명도 조금씩 바꿉니다. 그리고 지도자 돼지들이 독재자로 변질되면서 인간보다 더한 폭정을 휘두르게 됩니다. 결국 돼지들은 인간처럼 술 마시고 두 발로 서서, 다른 동물들을 착취하는 새로운 지배자가 됩니다. 마지막에 동물들이 보니, 돼지와 인간의 구별이 사라졌다는 내용입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2차 세계대전 즈음에 소련의 독재자와 사회주의 정치에 대한 풍자 소설입니다. 인간이 권력을 가지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오늘 본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미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사건은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사람이 눈을 뜨는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앞을 볼 수 없었던 사람이 눈을 뜨게 된 것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증인들이 있어서 지도자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은 예수님께서 정말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이신가? 라는 질문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표적을 행하는 이 사람을 잡아 죽여야 겠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의 표적은 유대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고, 그들이 로마제국에게 받은 그들의 권력이 위태로워 질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사로잡을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48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이 말은 예수님을 잡으려는 궁색한 변명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우려는 역사적으로 사실이 되었습니다. 그해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일행이 두려워 한 로마의 개입과 민족 멸망은 예수님의 죽음과 무관하게 발생합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한 일이 예수님을 처형하는 것과 무관하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로마는 결국 유대 땅과 민족의 중심(성전)을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예수님을 따르는 운동 때문이 아니라, 유대 지도자들의 반란(AD 66)과 로마의 강경 진압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두려움은 결국 하나님의 더 큰 구원 계획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0절)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 한 사람과 유대 백성들을 대조하여 둘 중에 어느쪽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이냐 묻는 것입니다. 가야바가 이렇게 교활한 선동을 하는 것은 1세기 대제사장직은 세습이 아니라 로마 총독의 임명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로마에 대한 정치적 충성도가 대제사장 임명의 핵심 기준이 되었기 때문에 대제사장은 종교 지도자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자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 명을 죽여 다수를 살리자는 가야바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진술하게 하신 것입니다.
51-52을 보면,
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가야바의 진술, 즉 인간이 저지른 악까지도 구원의 섭리 안에서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인간은 예수를 제거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바둑 경기를 보면, 때로 상대가 좋은 수를 두어 이기는 것 같지만 결국 마지막에 승리하는 것은 전체 판을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인간의 악한 계획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의 전체 판을 보고 계십니다. 인간이 두는 수까지도 결국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한 분의 죽음이 유대 민족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흩어진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는 궁극적 구원의 길이 되게 하셨습니다. 요셉이 그 형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해하려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는 고백처럼 인간은 악을 계획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악을 선으로 바꾸사 구원의 도구로 삼으심을 보여주십니다.
이후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잡아서 죽이려고 본격적으로 모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빈들 가까운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셔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십니다. 에브라임은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25km정도 떨어진 곳으로 유대와 사마리아 산지 사이에 있는 해발 850m에 위치한 마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기 전까지 이곳에 머무르십니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에도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안에서 유일한 기독교 마을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나사로를 살리신 시기는 수전절로 12월 중순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유월절은 3월에서 4월 사이에 위치함으로 유월절까지 약3~4개월의 겨울철 기간을 제자들과 조용히 보내시기 위한 장소로 에브라임을 택하셨을 것입니다.
“빈 들 가까운 곳”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광야·황무지와 인접한 이곳은 인구가 적고,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좋으며, 겨울에도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추위·비를 피할 수 있는 은신처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예루살렘에서 너무 멀지 않아 유월절 때 빠르게 돌아올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리를 피하신 것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은 생명을 내어주실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에브라임에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니다. 공개 사역을 멈추시고 제자들과의 마지막 시간을 가지시며 십자가를 향한 길을 준비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유월절이 가까이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이때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잡으려고 이미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시길, 마치 사냥꾼이 덫을 놓고 기다리듯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는 매우 놀라운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가 아니라, 그저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 사람이 죽어 백성이 사는 것이 낫다.” 라고 선동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치적 계산으로 말한 이 한 문장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예언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예수를 제거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가야바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말했지만 하나님은 그 말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쫓겨 에브라임으로 물러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의 음모로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로 인해 유대인뿐 아니라 온 세상의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세상이 악한 사람들의 계획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정의를 억누르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인간의 계획이 역사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역사를 움직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 죽음을 통해 세상을 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도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섭리를 더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인간의 계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묵상 - 하시깨묵】
1. 어제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결심한 결단과 실천 사항을 생활 속에서 적용한 결과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2. 오늘 말씀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은 어떤 분이며, 말씀에서 깨달은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3. 어제 하루 중에 기억에 남는 사건(일) 한 가지를 기록해 보세요.
그 사건에 대한 나의 마음이 어떤 느낌인지 적어 보세요.
4. 오늘 본문에서 발견한 문제와 어제 기억에 남는 사건은 어떤 유사점을 가지고 있나요?
5. 어제 사건 중에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행동을 원하셨을까요?
6. 오늘 본문은 나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내가 하여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7.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기도문 적기 & 실천 사항 적기
【추천 찬송가】
265장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은혜의 찬양】
주 말씀 향하여:
https://youtu.be/d3m8hBntnF0?si=z7CHvRywC57nMJss
【새벽예배영상】
https://youtube.com/live/R2uQXL0dl9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