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눈이 확 트이는 화끈한 무슨 일이라도 안 생길려나 무슨 그 일에 몰두하게 되면 몸이 확확 달아오르는 거 뭐
그런 무슨 화끈한 일은 없을까? 정말 요즘은 내이게 죽은거지 사는 꼴이냐, 이게 이게............그렇게 방황의 마음
으로 선데이 서울이나 뒤적이면서 시간쪼개던 어느날이 였다.
우연히 부천북부역앞에서 오래된 옛친구 김천일이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포장마차에서 소라를 구워 안주
삼아 소주를 먹으면서(물론 나는 술을 못해 따라만 주고 사이다 마셨지만), 직장이야기를 하다가 그친구가 일하는
용산 (두리 기획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용산역이 조그마했고 일터옆근처에는 집장촌이 있었다.
내가 일하는 일은 일명(대지발)작업이라는 것이였다. 그게 뭔가하면 지금은 사라진 직종인데 당시유행했던일이다.
당시의 각 지역신문 또는 전문주간, 월간 신문 잡지들이 기자들이 글을쓰서 편집부원들이 원고지를 모아 갖고오면
우리 전산원 처녀들이 타자를 쳐서 프린트를 해주면 그것을 뒷면에 풀칠이되도록 만들어진 기계에 집어넣어 풀칠을
한 다음 다시 판데기위에다가 신문형태의 편집을 하는것을 대지발 작업이라고 한다. 그것을 다시 재판실에서 필름
으로 구워낸것을 조선일보에 갖고가서 윤전기로 돌려 신문을 찍어내어 각 지역시문으로 보내는 공정이다.
그런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이 였다. 모지역신문에서 전과같이 신문을 만들어 달라고 왔다. 대부분 16면정도의
분량이다 나는 제목의 글자수에 따라 견고딕체 장1,2,3,4 를 결정하여 원고지에 기록해주고 다시 명조체냐 디나루
체인가 모든 명령을 내린체 전산실로 보냈는데, 어렵소 원매수를 계산해보니 한 꼭지가 모자랐다. 일단기사같으면
대충 돌출광고로 메꿀 수 있지만 그게 아니었다. 시간은 다급하고 그때 기사를 작성한다는것도 늦고 신문사에 연
락했지만 곤란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실력으로 기획물 한꼭지를 내가 직접써서 신문을 만들어 보냈다.
그런데 내가쓴 바로 그 기획물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너무 글을 잘썼다며 지역신문 사장이
반했다는 소문이 도는가 싶었는데 어느날 사장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자기네 신문사에 취재부장을 좀 맡아달
라고 한다. 지금의 월급보다 반정도 더 준다는 이야기였다, 못이기는척 가서 취재2부장의 자리에 앉았다
그때부터 나의 기자생활의 서막이 올랐다. 새로운 인생항로의 길로 접어들어 또다른 세계의 파란만장이 펼쳐져
갔다. 시간이 나면 언제 또 그이야기를 슬슬 해 볼까 한다.
(하지만 각 지역신문의 비리에 예민성이 있어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것 같다)
첫댓글 어이구 스포츠에도 갑자기 주전이 빠져서 후보가 출전해서 히트친 것이 있는데
차마두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군요 ㅋ
우연히 그리되었네요^^
@차마두 그런 것이 인생을 확 바꿔놓는 적이 있더라고요
인생 드라마는 파란만장해요
차마두님역시 인생파노라마 인걸요
그래도 추억을 씹으며 삽시다....
그렇지요 참 굴곡진
인생길 그렇게 흘러가 봤습니다
차마두님표 만화세상
오늘도
잼나게 보고 가니더!!
그다지 할말 업니더!!
방갑기는 한디요~
아유 뭔말이 더 필요하데요
그냥 이리 한 말씀 하시면 되었지요^^
차마두님의 서막에
를 보내 드립니다..
담편을 기대 합니다...^^
아공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음편이 어디 있는지
찾아 봐야 것서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차마두님은미진진..무한 감사드립니다. 인기
그당시 신문기자생활 하셨으면....언론. 기자...그 계통은 ..똑똑하시고 영리하시고 언변도...술술술....사랑샘 주위에도....그런분이 계셨어요...시간가는줄도 모르고 시사논평을 들기만 했습니다...
지나간 삶의현장을 총론기재 해주신다니
하공 이거 제가 너무 앞서간 것 같네요
그렇게 기대하실 것 까지는 없는데요
저는 그렇게 기대 할 만한 인물은 못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