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의 내주하심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최우선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은 성령의 내주하심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다. 성령의 내주하심에 대한 체험을 통한 지식이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일에 대한 비밀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형식적이고 죽은 신앙이 될 수밖에 없다. 형식적인 거짓신앙이 사탄의 작품이라는 것은 이미 설명하였기에 설명을 생략한다.(상세한 것은 필자의 책 ‘회복의 개요’ 06. 회복을 위해 알아야 할 거짓신앙의 실체를 참조하라.)
성령의 내주하심에 대한 이해의 부족은 곧바로 거짓신앙으로 직결된다는 것을 알고 그 심각성을 인식하여야 한다. 따라서 성령의 내주하심에 대하여 모든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배워야 할 것이다. 어떤 편견이나 주관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이 주제를 소홀이 한다면 영원히 신앙의 진수를 맛보지 못할 것이며 결국은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나는 천국에 간다고 생활을 하였는데 지옥으로 가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마귀의 계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성령의 내주하심에 대한 이해는 구원의 문제가 달려 있는 중차대한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 할 것이다.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의 말씀에 경청하여야 할 것이다.
1. 성령의 내주하심의 필요성
하나님은 인간사를 주관하시면서 크게 두 시대를 나누어 주관하셨다. 하나는 구약시대이고 다른 하나는 신약시대이다. 하나님께선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같은 방법으로 주관하실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타락한 인간을 회복시키시는 과정을 메시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밖에 없으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메시아 이전 시대인 구약시대는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언약과 메시아의 출현을 준비하는 언약과 예배의 시대였고, 신약시대는 메시아의 출현으로 인하여 언약에 대한 성취와 하나님이 본래 원하셨던 방법으로 인간을 소유하시는 소유의 시대였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메시아의 출현으로 언약은 성취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소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소유는 하나님의 영을 자녀들 속에 두어 그들이 인간의 의지에 따라 살지 않고 영에 따라 살 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26 내가 또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으리라. 내가 너희 육체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 같은 마음을 주리라.
27 또 내가 나의 영을 네 안에 두어 너희로 나의 규례대로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의 명령을 준수하고 행하리라. (겔 36:26~27, 한글킹)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 영을 너희 안에 두어서 너희로 나의 규례대로 행하게 하리니, 그래야만 나의 명령을 행하고 준수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신앙의 진수가 이 속에 들어 있다. 때가 이르지 않아 하나님의 영을 인간 속에 넣어주지 못하고 일하실 때의 하나님의 방법은, 하나님께서는 밖에 계시면서 밖에서 안으로 일하시는 방법이셨다. 그러나 성령님이 사람들 안으로 들어오신 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서 일하시는, 즉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사역이 된 것이다. 본문의 내용을 상고하면,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 속에 들어오지 못하면 하나님의 규례나 명령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은 우리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일을 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을 하실 때 열두 제자를 불러 모든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과 병 고치는 능력을 주셨고(눅 9:1, 각주참조) 그들을 보내시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든 자를 치유케 하셨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능력을 주신 것은 일시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주신 것으로, 밖에서 안으로의 사역이었다. 따라서 공생애 사역 중에 자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주신 능력은 소멸되지 않는 항구적인 능력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지상에서 사역을 하실 때에는 승천하시기 전이었기 때문에 성령을 제자들 속에 보내시기 전이었다. 구약시대의 언약과 메시아를 예비한 시대에서 메시아가 오심으로 인하여 언약은 성취되었지만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소유하지는 못하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자녀들을 소유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을 자녀들 속에 넣으시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가 일하실 때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행하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일하실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성령을 보내시어 믿음의 자녀들 속에서 내주하게 하실 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자녀들을 소유하시기 위해서 성령의 내주하심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것이 성령의 내주하심의 필요성이다. 성령이 내주하실 때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게 되는 것이다.(고전 3:16, 각주참조)
2. 성령의 내주하심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
신앙생활에서 성령의 내주하심에 대하여 인식하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내주하시는 성령에 의한 주님의 일하심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 시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고 구약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주님과 실질적인 영적 연합을 이룰 수도 없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따라 살게 된다. 신앙생활도 성령의 인도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행위를 신앙으로 알고 있는 완전히 죽은 신앙으로 성경의 내용 따로, 내 생활 따로 살게 된다.
그렇다면,
성령의 내주하심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성령의 내주하심을 알 수 있는 징표는 성령의 인치심의 충격이다. 대부분 ‘믿는 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성령의 내주하심은 있을 수 있다.’라고 주장하거나 그렇게 알고 있는데, 이것은 성령님이 일하실 때 능력으로 일하신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주장하는 내용들이다. 성령의 인침은 결코 모를 수가 없다. 성령의 인침은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하게 경험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성령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성령을 받은 현장의 상황을 살펴보라. 성령을 받고 하루에 삼천 명이 회심을 하였을 때 그들이 성령을 받은 사실을 모를 수 있겠는가? 성령의 능력이 임하지 않고 하루에 그 많은 사람들이 회심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한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하루에 삼천 명이 회심을 하고 예수를 믿은 것은 분명히 성령의 능력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이 펼쳐지는 장소에서 그 능력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성령님은 능력으로 일하시는 분이시다. 성령님이 일하시면서 경험하였던 것들을 보라. 성령님이 주시는 평안이 무엇인지를 경험해 본 사람은 그 평안이 세상의 평안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성령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한다. 성령님이 죄에 대하여 조명하실 때 죄의 부패함이 보여지고, 그 부패함 때문에 지옥의 심판이 임한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덜덜 떨어본 사람은 죄에 대한 성령님의 책망이 무엇인지를 안다. 성령님으로부터 성경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그 가르침이 세상의 가르침과 달라서 스며들 듯이 이해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성령님이 어떤 일을 지시하실 때 그 음성을 들은 사람은 바울이 푸르기아와 갈라디아 지역을 통과하였을 때 성령님이 바울에게 아시아로 가는 것을 금하셨다는 내용이(행 16:6, 각주참조) 무엇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주님과의 동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성령님의 일하심을 생활 속에서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성령의 내주하심을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성령의 인침이 있을 때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게 되는데 성령의 인치심을 받을 때의 그 충격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대부분 성령의 인침에 대하여 배우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지나갔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영을 넣어주는 일이 한 영혼을 구속하시는 일인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보면 하나님과 처음 대면하는 것이나 마찬가진데 이 일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그 당시에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그 충격은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의 인물들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장면을 보라. 모세가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타지 않는 모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었겠는가? 모세는 하나님에 대한 어떤 의심이 들 때마다 그 장면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또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서 사흘 동안 눈이 멀었던 바울이 어떻게 그 사건을 잊을 수 있겠는가? 성령의 인치심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믿은 후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질문한다.(행 19:2, 각주참조) 이 질문은 성령을 받았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어야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다. 또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 받은 것이냐? 아니면 믿음으로 받은 것이냐?”를 묻는 것도(갈 3:2, 각주참조) 성령을 받은 것을 분명한 체험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성령의 인침은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하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3.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한 변화
성령님이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내주하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님의 내주하심의 사실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인식되어지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붙드신 것이고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게 된 것을 안 것이다.(고전 3:16, 각주참조)
이제 우리의 변화는 주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나의 자아를 죽이고 우리의 의지를 드리는 일에 달려 있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일이 남은 것이다.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에 순종하여 나간다면 이제는 주님의 일하심이 우리 생활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실재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그렇게 고대하였던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계획한 것은 인간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가져오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일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4.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한 유익
3 즉 그의 신성의 능력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심에 따라 우리를 영광과 덕에 이르도록 부르신 분에 관한 지식을 통해 그리 되기를 바라노라.
4 이로써 우리에게 지극히 크고 귀한 약속들을 주심은 너희로 하여금 이 약속들을 통해서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타락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동참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벧후 1:3~4, 한글킹)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한 유익은 우선, 신기한 성령의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 지식으로 하나님의 성품에 동참하는 자가 되게 하셔서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에는 정욕에 따라 썩을 것들을 좇았으나 이제는 세상의 타락을 피하고 하나님의 성품에 동참하는 자가 된 것이다.
20 그러나 너희에게는 거룩하신 분으로부터 기름부음이 있으니, 너희가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 2:20, 한글킹)
27 그러나 너희가 그분께로부터 받은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그 동일한 기름부음이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 또 그것은 진리요 거짓말이 아니니, 그 기름부음이 너희를 가르친 그대로 너희는 그분 안에 거할 지니라. (요일 2:27, 한글킹)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한 유익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하여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기름부음을 통하여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기름부음을 통하여 배웠다는 사실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에게 듣고 배웠을 것이라.”고 말한다.(엡 4:21, 각주참조) 예수님으로부터 어떤 사실을 배웠다고 하면 지금의 기독교에서는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하고 의아하게 생각한다. 성령님으로부터 배웠다고 하면 정말 이상한 신비주의자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 직통계시를 받는 자라고 하면서 이단이라고 한다. 직통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성경이 필요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경에 비추어 그 음성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다. 예수님께 배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비성경적이고 이단이다. 성경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하여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것과 성령님의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듣고 배웠을 것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16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의 풍요함을 따라 그의 성령을 통하여 너희 속 사람 안에서 능력으로 너희를 강건하게 하시고
17 믿음으로 그리스도가 너희 마음속에 거하게 하시며 너희가 사랑 안에 뿌리를 내리고 터를 닦아
18 모든 성도들과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얼마인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시며
19 또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가득 차기를 구하노라.
20 이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풍성하게 행하실 수 있는 그분께, (엡 3;16~20, 한글킹)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한 유익은 신앙생활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의 인물들이 살았던 것과 같이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 속사람 안에서 능력으로 우리를 강건케 하시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풍성하게 행하실 수 있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속에 거하신다는 것을 성령님께서 알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5. 성령의 내주하심의 확인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사는 것은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살지 않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갈 5:16, 각주참조) 이 말씀에 비추어, 지금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들이 버려져 있다면 내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고 계신다는 것을 인정해도 될 것이다. 전적인 부패함 속에 들어있는 인간들은 부패함의 냄새, 즉 육신의 냄새를 지울 수 없다.(갈 5:19~21, 각주참조) 그리고 이러한 부패함 속에서는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나 자신의 생활 속에 성령의 열매가 있다면(갈 5:22~23, 각주참조) 그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의 내주하심이 확실한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사람들은 보통 성령의 인침을 받으면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데 성령의 열매는 작게 맺혀서 익어가며 커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주 혈기를 부리는 사람이 혈기를 아예 부리지 않는 것을 기대해서는 성령의 열매가 있는가를 알 수가 없다. 열 번 부리던 혈기가 여덟 번으로 줄었다면 성령의 작은 열매가 맺혀 있다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점과 같이 작은 포도알들이 시간이 지나면 굵어지듯이, 열 번 부리던 혈기를 아홉 번 부리고, 여덟 번 부리며 줄어든다면 한 번이나 두 번의 작은 절제와 인내가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절제와 인내가 성령의 열매인 만큼 한두 번 인내한 것은 인내의 작은 열매가 맺혀 있는 것임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화가 단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듯이 성령의 열매도 시간이 가면서 커진다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의 내주하심은 이러한 방법으로 확인될 수 있다. 내 속에 성령의 내주하심이 확인되었다면 이제는 그 성령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사는 법을 배워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이다.
[회복시리즈 04.그리스도의 영 中 일부 발췌 / 박찬빈 著]
자세한 내용은 책과 카페(하나님만을 바라는 사람들)에서 강의를 참조하세요. 회복시리즈와 신앙의 강요는 반드시 모두 읽어보시길 진심으로 권해드립니다. 바로 알아야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이라며 했던 것에, 놓치고 인식 못하고 살았던 게 너무도 많습니다.
이 번에 다시 한 번 깊이 짚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는 사람들 (http://cafe.daum.net/onlyjesus1924) 카페에 특강들을 반드시 모두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또한 간증들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만나주셨고, 어떻게 회복시키시고,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됐는지가 잘 나와 있습니다. 우리도 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서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젠 우리의 신앙을 진지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영혼구원의 문제를 내일로 미뤄도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헝클어져 가닥을 추리지 못했던,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책은 아래에서 구매하실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http://sundori.kr (순돌이)
http://arukah.co.kr (아루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