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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센 하녀 덕분에 브리는 코르셋을 22인치로 맞출 수 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허리는
하늘거리는 나비를 연상시킬 정도로 가늘며 아름다웠고, 그녀의 뽐내기에는 너무나도
소박한 가슴도 훨씬 더 풍만해보였기에 하루 종일 열심히 고른 분홍색의 물결치는
화려한 드레스가 더욱 빛을 발했다. 그 연한 빛의 드레스는 우윳빛의 브리의 살결을
반짝반짝 빛나게 했고 투명한 피부의 가냘픈 목선과, 동그랗게 밑으로 또아리를 틀고
은장식을 맵시 있게 꼽은 그녀의 윤기 나는 다크 금발도 무척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녀의 꽃처럼 화사해야할 얼굴엔 우중충한 기색만이 가득했다.
그녀의 취향에 따라 연회장은 대단히 화려하고 웅장하며, 또 즐거웠다. 후안이 특별히
초빙한 요리사의 음식은 미각에 민감한 부인들과 어린 아가씨들의 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또 그가 브리를 생각해 신경 써서 데려온 악사들의 노래도 훌륭했다. 일반
평범한 귀족들은 구경도 못해봤을 상아로 만든 악기로 연주되는 음악들은 어딘지
특별했다. 사람들은 화려한 융단카펫위에서 저마다 파트너와 함께 춤을 췄고, -브리보단
훨씬 못한 외모의 아가씨들이 태반이었지만 말이다.- 만약 브리가 저 사이에 낀다면
단연 빛날 것이다. 그녀가 그들보다 조금 더 윤기 나고 찰랑거리는 금발과 조금 더
하얗고 아기 같은 살결을 갖고 있는 것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그들에겐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바로 ‘왕족’이라는 그 분위기와 품위에서 나오는 그
매력이 가장 큰 이유였다. 허나, 그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브리는 자기보다 못한
여자들이 잘생긴 귀족들을 끼고 열심히 춤을 추고 깔깔거리며 웃는 저 속에 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언제나 파티의 중심이 되고 주인공이었던 공주이자 어린
소녀가 아니라 결혼하고 사산은 했지만 이미 아이까지 낳은 유부녀였기 때문이다.
“베르메르부인이 산달이 벌써 내달이라죠?”
“어머 벌서 그렇게 됐나요? 어쩐지 파티에서 보이지 않더라니.”
소녀들과 신사들이 주인공이 되어 어울리는 홀 한 켠, 폭삭 늙은 귀부인들이 있는
정자를 지나면 브리가 자리한 곳이었다. 곳곳에 자리한 테이블 중 하나였는데
공작부인인 그녀는 후작부인들과 어울려 있었다. -자손이 귀한 왕가를 갖고 있는
델프라엔 공작이라곤 헐몬공과 후안뿐이었다.- 브리의 주변에 있는 여자들은 벌써
올라온 희끗한 머리를 애써 다른 머리로 가린 중년을 바라보는 여자들뿐이었다. 얼마
전 젊은 베르메르 후작과 결혼한 제인 베르메르가 브리의 또래이긴 했지만 그녀는
산달이 가깝다는 이유로 감히 이 파티에 참석하지 않았다.
산달을 앞둔 베르메르부인 이야기를 한참하며 부드러운 치즈 케이크를 한입씩 베어
먹은 부인들은 조용히 아무 말 없는 공작부인에게로 서서히 시선을 돌렸다. 자기들의
그 시시한 이야기에 한마디라도 거들라 이거다. 브리는 자못 가식적이지만 그녀들은
눈치 채지 못하는 화사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베르메르 부인은 지금 움직이기도 귀찮을 거예요. 쿠션에나 잔뜩 기대서 어서 이
뱃속의 것이 나오기를 기다리겠죠. 나온다면 이름은 뭐라고 해야 할까, 남편을
닮았을까 나를 닮았을까 공상을 하면서요. 물론, 저도 그랬답니다. 물론 아홉 번째
달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사고로 잃게 되었지만.”
그녀의 말엔 그녀의 지독한 추억을 되살리게 한 대책 없는 아녀자들을 탓하는 것이
섞여있었다. 이에 그녀의 눈 밖에 난 것이라도 아닌지 난처한 얼굴이 된 부인들은
모두 그녀의 하얀 장갑 속에 감춰진 늘씬한 손을 쥐곤 말했다.
“오, 저를 죽여주세요. 공작부인.”
“우매한 저를 탓하세요.”
“감히 그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니. 죽어 마땅합니다.”
당장에라도 죽여 달라는 것처럼 그녀들은 유난을 떨었다. 진짜 목에 칼이 들어오면
브리라도 팔아넘길 사람들이 말이다. 브리는 이에 역시 가식이 섞인 그렇지만 타인의
입장에서 보면 성모만큼이나 온화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제가 말실수를 한 것 같군요. 여러분의 잘못이 뭐가 있겠나요?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되요.”
브리의 그 따뜻한 말에 감동이라도 받은 것처럼 눈물을 글썽거리는 부인들은 곧
자기들이 망쳐놓은 브리의 기분을 다시 원래의 행복했던 기분으로 돌려놓기 위해
파티에 대한 이야기를 이었다.
“정말 아름다운 파티에요. 보세요, 사람들이 정말 기뻐하고 있어요. 이 많은 사람들이 말이에요.”
“데스칸테에서 파티가 열린다는 말에 온 루엥이 들떴답니다. 아름다운 부부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즐거운 일 아니겠어요?”
“정말, 이백 명도 넘는 손님들을 이토록 넉넉하게 대접할 수 있는 가문은 데스칸테 가문밖에 없을 거예요.”
시나리오가 뜻밖에 그녀들의 아부로 흘러가자 브리는 처음엔 미간을 구겼지만 곧
자신이 또 주인공이 되어가는 것 같자 다시 미소를 찾았다. 처음엔 브리의 주변에
있던 부인들로 시작됐던 브리의 기분을 풀어주고,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한 아부
행진은 곧 주변에 있던 부인들에게도 전염이라도 된 것처럼 이어졌고 어느새 브리의
주변엔 수많은 후작부인, 백작부인, 그리고 자작부인들이 함께했다. 사내들도 아니었고
젊은 아가씨들도 아니었지만 이들이 모두 루엥에서 한 소리하는 귀부인들 이었기에
아기가 죽은 뒤 오년. 브리의 깊은 무의식속에 꽁꽁 숨어있는 허영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브리는 귀부인들의 액세서리 하나하나를 칭찬하기 시작했고 이에
귀부인들은 영광이라도 얻은 것처럼 좋아하거나, 공작부인께 받히겠다며 당장 머리에
있는 것을 뽑아 브리에게 건넸다. 다시 공주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쁨과 데스칸테
공작부인으로써 묘한 권력을 느낀 브리는 조금 전 우울했던 기분을 금세 벗어버리고
귀부인들의 위에 군림하여 앉았다. 물론 그녀는 공주였던 시절에 배운 예의범절이란
것이 있어서 차마 이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는 평범한 부인들이나 상인들의 부인들
혹은 가난한 자작부인들에게 그들이 소외되지 않았다고 말해주기라도 하듯 눈인사를 하기도 했다.
‘뭐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그런 모습을 보며 후안은 곧 그것이 우스워 히죽 웃어버렸다. 그 사치스럽고 허영
많은 귀부인들 중에 가장 으뜸이 바로 자신의 귀여운 아내라니. 가끔 브리의 저런
애교수준의 허영은 그를 즐겁게 했다. 그때 마다 지어보이는 웃음이 꼭 어린아이
같았기 때문이다.
후안도 초반의 브리와 마찬가지로 영 지루해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를 감추고 낮추고
얼마든지 올릴 수 있는 능수능란한 상인이기에 너무나도 즐겁다는 얼굴로 그 역시
중심에 자리했다. 그의 주변엔 그와 어떻게든 친분을 만들어보려는 귀족들과 부호들이
자리했다. 그를 어떻게든 자기 패들로 끌고 오려는 길드 원들도 있었고, 후안이 속한
길드의 길드원들도 있었고 어떻게든 상권이득을 보기위한 대 상인들도 있었다.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부를 갖고 공주를 부인으로 둔 젊은 공작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있는 은행가나 노신사들도 있었다.
후안은 어디에도 무게를 두지 않았다. 자기에게 흥미가 있는 상태로 대화를 끝내는
것이 장사에도 자기에게도 이로운 일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끌어갔고 많은 것을 보여주지 않았으며 가끔 중심이 되는
말들을 던지긴 했지만 수다스러운 쪽 보다는 대답하는 쪽에 있었다. 그런 그의 신중한
행동에 그의 주변에 몰려있는 사람들은 그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더 커져갔고 어느새
그것이 호감으로 바뀌었음은 자명했다. 그런 그를 두고 몇몇 사람들은 “철저한 상인.”
이라며 비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그와 단 한 번도 대화할 기회를 갖지
못한 하층 귀족이나 그의 길드에 속하지 못한 쪽이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공작전하. 저는 전하의 나이에 사냥하고 계집질에나 바빴지요.”
판에 박힌 노신사의 말이었지만 후안은 신사답게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감사하다고 대답했다. 공작전하의 무사귀환을 축하하는 파티는 어느새 젊은
공작부부의 눈에 들기 위한 재롱잔치로 변질되어있었다.
“시몬 데 루야드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갈색머리의 데몬가의 사람이 정중히 시몬을 맞았다. 그리고 명부를 건네 시몬과 그와
함께 온 아내의 이름을 적게 했다. 데몬가의 사람은 그의 아내가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그의 아내가 상당히 품위 있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귀부인임을
깨닫자 곧 그 생각을 접었다.
“왜 그래 긴장 돼?”
“아뇨.”
시몬의 물음에 아네트는 고개를 저었지만 시몬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턱 끝은
딱딱했고 눈동자는 기계처럼 움직였다. 그녀가 어딘가에 두려운 것처럼 굴었기에
시몬은 그녀의 작은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자 아네트는 흠칫 놀라 시몬을
올려다봤다. 그의 회색 눈은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그의 눈은 사냥감을 향한
맹수처럼 날카로웠으나 부드럽게 미소 짓는 그 표정 덕분에 그의 본색이 감춰졌다.
“저기 계시군, 위대하신 공작전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아네트는 알 수 있었다. 그는 후안을 바라보고 있다. 그
맹수의 눈으로. 아네트는 차마 남편이 바라보는 그 곳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자신의 무언가 두려움에 떨리는 마음을 숨기고 방긋 미소를 지었다. 이에
시몬도 미소를 지었으나, 그 미소는 골똘한 계략이라도 있는 듯한 무언가 깨름찍한
미소였다. 그는 한 가지 실험을 해보고 싶은 욕망이 솟아올랐다. 물론 자기의 정숙한척
하는 우아한 아내에겐 어울리지 않는 실험일지도 모르지만 후안과 아네트가 이전에
어떤 사이였고,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으며, 아네트가 후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시몬은 꼭 그 실험을 해보여야 속이 시원해 질 것 같았다.
“자, 그럼 주인공께 얼굴도장을 찍고 와야겠지? 그의 주변에 모인 저 우둔한 놈들처럼 말이야.”
“난... 난 별로 내키지 않아요.”
“마리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건 당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거야.
난 그와 친해지기 원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당신에게 쓸데없는 과거를
기억하게 하긴 싫지만. 지금까지 우아한 루야드부인 노릇을 너무나도 잘 해왔잖아?
끝까지 루야드부인인척만 해줘. 그 정도면 충분해.”
아네트의 입술에 짧게 키스한 시몬은 곧 그녀가 도망가지 못하게끔 하기위해 그녀의
가냘픈 손목을 꼭 쥐었다. 그의 힘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아네트는 이에 신경 쓰지
못하고 변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렇지만 최대한 품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보여주지 않는 게 그와 친분을 쌓는데 더 이로울 거예요.”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는 완고했다. 시몬의 푸른 등을 보며 아네트는 어떤 절망감에 빠졌다. 그녀를 그
앞에 세워 실험하고 확인하고 싶었던 시몬은 그녀의 마음은 신경 쓰지 않았고 아는
척을 하는 춤을 추는 지인들에게 눈인사를 해보이며 도도하고 백작부부다운
발걸음으로 점점 후안에게 향했다. 그가 꽉 잡은 이 손목이 너무나도 저주스러웠다.
점점 후안의 상아빛머리가 가까이 느껴졌다. 언뜻 흐릿하게 보였던 그는 점점
확연해졌고. 여러 사람들을 스치고 잔을 권하는 하인들도 스치자 어느새 그의
아름다운 얼굴이 확연하게 그녀의 시야를 채웠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걱정되었다.
오늘 화장을 너무 연하게 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고개를 내려 그녀의 목에 주렁주렁
달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확인하고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곧 그녀의
드레스에 시선을 향하자 금세 또 주눅이 들고 말았다. 이상했다. 고를 땐 이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왜 이렇게 촌스러워 보이는 걸까. 어느새
후안의 옷의 자수가 꽤 꼼꼼하단 것을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왔다. 후안의
주변에 있던 귀족들은 곧 시몬과 그녀를 보자 아는 척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반겼고.
곧 후안도 고개를 돌렸다.
“시몬 데 루야드. 존경하는 공작전하의 파티에 참석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시몬의 인사가 이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버렸다. 남들이 보면 아마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정숙한 부인으로나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 중엔 그들이 언젠가 품은 적이
있는 검은 머리의 아름다운 창부와 그녀가 꽤 닮았다는 것을 눈치 챈 사람도 있었지만
곧 그런 천한 여자와 눈앞의 정숙하고 우아한 루야드부인과 닮았다고 생각한 것을
마음 깊이 후회했다.
“별 말씀을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루야드 장군께서 친히 제 파티에 참석해주시다니요.”
몇 년 동안 듣지 못했던 목소리가 그녀에게 들리자 그녀는 전율하듯 고개를 들었다.
그에게서 느꼈던 좌절과 모욕은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만나고
싶었다. 보고 싶었다.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까―. 그를
길러낸 유모를 처참히 살해하고, 그의 아이라는 갓 태어날 생명마저 잔인하게 죽여
버렸던 아네트는 감히 그를 보고 싶어 했다. 그리고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후안은 보랏빛 상의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아네트는 그것을 감격에 겨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진해 흡사 군청으로 보이는 그 상의는 델프라의 가장
유명한 장인이 만든 것이 확실했다. 그는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동안 더욱 사내답게
자랐다. 키도 몇 센티는 더 자란 것 같고 어깨도 넓게 벌어졌다. 탄탄한 가슴은 창도
꿰뚫지 못할 것처럼 단단해보였고 그 밑으로 날렵하게 이어지는 허리 또한 늘씬했다.
조금 여위어 보이긴 했지만 그가 더욱 멋져지고 더욱 매력적인 사내로 자라난 것은 사실이었다.
아네트는 이 모든 것을 황홀한 표정을 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차마
그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할 수가 없었다. 그가 지은 죄에 잔인하리만치 잊고 있던
그녀도 그 앞에서는 그녀가 잔인하게 죽여 버린 그의 울어보지도 못했던 작은 아기가
떠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두근거리는 심장은 그녀를 더 이상 그를 외면하게
두지 않았다. 5년. 5년만의 첫 만남. 그녀는 염치없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쩌면 그도
자신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벌써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된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녀는 그가 가장 순수했던 시절을 알고 있고 그 또한 그녀의 가장 순수했던
시절을 알고 있다. 그들이 같이 보냈던 시간은 지금의 귀한 술 한 잔과 행복한
시간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연과 두근거림 그리고 추억이 있는데.
아네트는 자신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그는 그녀를 조금이라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네트라는 것을 깨닫고 바다 같은 푸른 눈이
흔들리고, 그녀의 시선을 피할 것이다. 아네트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루야드부인, 부인의 정숙함과 고귀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녀는 그녀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안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으레 다른
부인들에게 하는 것처럼 그녀의 손을 쥐었고 그 손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는
일어섰다. 아네트는 내리깔던 눈을 똑바로 떴고 그를 응시했다. 애잔하고 황홀한
표정으로. 그러나 마치 북극에나 와 있다고 착각해도 좋을 만큼 차가운 오한에 그만
할 말을 잊고 말았다. 후안은 미소 짓고 있었다. 확실히 미소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지만 입매가 웃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아네트는 그 미소가 호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랑도 아닌 단지 손님에 대한 예의일 뿐이라는 것을 금방 간파해낼 수
있었다. 그는 똑바로 응시했다. 아네트 데 루야드 부인을. 그가 사랑했던 그 여자를.
마치 처음 뵙는 부인처럼, 정말 그가 정숙함을 익이 들었다던 루야드 부인을 난생
처음 만난 것처럼. 그리곤 곧장 시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시몬에게 잔을 권하고
쨍하고 부딪힌 다음 몇 마디 인사말과 농담을 나눈 다음 다시 그를 부르는 그의
무리들에게로 향했다. 시몬도 그와 함께 했다. 그는 흘깃 어깨너머로 그녀의 부인답지
못했던 행동을 질책이라도 하는듯한 눈빛으로 아네트를 향했다. 아네트는 시몬이
실망을 했든 화를 내든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단지 그녀가 10년이나 마음에
품고 있던 남자가 그녀를 마치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처럼 손님에 대한 예의에 찬
행동으로 아주 정중하게 대했다는 것이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와 가쁜 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 그녀는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미 사내들은
자기들의 토론에 푹 빠져 루야드부인이 어디로 갔는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기에 그는
춤추는 사람들을 피해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루야드부인,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세상에 그가 그런 말을 하다니. 그것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그는 정말 잊어버린 거야. 그가 나를 기다렸단 생각 따윈, 그런 건 이미 사치 였던 거야.’
소름끼치도록 다가오는 현실에 오직 그녀를 바라보던 그 푸른 눈만을 떠올린 그녀는
몸서리쳤다. 모르는 사람처럼, 우리의 추억이나 우리의 시간 따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후안에게 자신이 어떤 상처를 줬는지, 후안에게 무엇을 빼앗아버렸는지 이미 그런
것쯤은 잊어버린 그녀는 그녀를 깡그리 잊은 것처럼 무시하는 그의 행동에 너무나도
슬퍼하고 있었다. 아니, 그는 잊은 게 아니었다. 잊은 척 하는 것 이었다! 아네트는
분명히 살아있는데, 여기 이 자리에 다시 그를 보러 왔는데 마치, 마치 이미 죽어버린
사람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그런 여자 나는 모르는 것처럼. 그 여자와 내
사이에 있었던 일은 정말 까맣게 모르는 것 처럼.
이기적인 그녀는 그만 이마를 짚었다. 신사가 그녀의 상태를 물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 젓고 그 신사의 호의를 벗어났다.
아네트의 상태를 흘깃 바라본 시몬은 무언가 치솟는 분노에 속이 끓어올랐지만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후안의 곁에 가득한 그의 추종자와 아부세력들 속에 그는
정말로 후안을 존경하는 듯한 미소를 짓고 속으로는 그를 지독히 경멸하고 있었다.
상아빛의 그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이 사실이다. 자신이 남자이긴 하지만 만약 이
사내가 여자로 태어났다면 시몬도 그의 추종자중 하나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사악한 속을 시몬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제 죽은 아버지와 전 국왕에 의해
살인누명은 벗었지만 그것이 누명이 아님을 시몬을 알고 있다. 그가 형의 심술에
순결한 애인을 잃고 절망하던 소년이 아님을 시몬은 느꼈다. 아네트를 보고도 마치
처음 보는 루야드부인을 대하듯 하는 그의 행동이 그 증거였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시몬으로썬 그는 너무나도 잔인한 남자였다. 게다가 이미 그는 그
형까지 죽이지 않았던가. 물론 시몬은 벨스가 후안의 친형이 아니고 벨스가 그를
미워했단 것도 알고 있었고. 벨스에 대한 어떤 진실한 우정도 없었지만 그 잔인함에
대해선 치가 떨렸다.
그는 다른 사내들처럼 후안의 말을 존중하고 그에게 어떤 고물이라도 얻어먹어야
하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자신을 내보였다. 그렇지만 그는 진심으로 데스칸테 공을
경멸하고 싫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을 포함 왕과 헐몬공의 ‘그 계획’을 위한
첫발을 내딛었다.
◈
한편, 브리는 다시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추종세력들이 모두 꼬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브리에 대한 칭찬을 하고 그녀를 한참 추켜세우다가 또 다른
여인이 화제를 던져놓으니 그 쪽으로 우르르 쏠려버린 것이다. 브리는 순식간에
주인공에서 다시 관객으로 돌아왔고 이 한심한 부인들과 함께 맞장구를 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얼굴은 정말 재밌어하는 것처럼 웃고 -왕족이라는 지체 높은 신분이란 게 있어서
깔깔거릴 수는 없었다.- 그들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계속 해내갔다. 하지만
곧 그런 건 그녀의 성미에 어울리지 않았기에 그녀는 곧 관두고 묵묵히 듣는 쪽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파티인생에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않은 적이 없다. 내가
연 파티에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녀는 차라리
댄스라도 추었으면 하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떤 사내도 그녀에게 댄스를
청하지 않았다. 그녀보다 더 우아하지 못하고 못생긴 유부녀들도 다른 여인의
남편 이랄지 아니면 총각 이랄지 하는 훌륭한 신사들에게 이끌림을 당해 바닥이 꺼져라
춤을 추는데. 그녀에겐 그 어떤 사내도 댄스를 청하지 않았다. 이건 분명 후안의
영향이었다. 아무리 배짱 좋은 남자라고 해도 이 나라의 공주이며, 이 나라 왕의
손윗사람이자 또 후안의 부인인 그녀에게 감히 댄스를 청할 수가 없었다. 왕족이라는
것은 그녀의 또 하나의 매력이라 그녀가 단지 왕족이기만 한다면 배짱 좋게 댄스를
청할 수도 있었지만 후안은 사내들에게 존경과 부러움, 그리고 질시의 대사이자 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모든 건 후안 때문이야. 아내가 이렇게 심심해하는데 토론에만 열중하다니.
후안 정말 미워. 진짜 미워. 못됐어.’
브리는 원망이 가득한 눈초리로 그의 남편을 바라봤다. 사내들의 중심에 있는 그의
남편은 우아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흡사 권력자라도 되는 듯 한 얼굴로 그 주변
사내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흥분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고 그는 묵묵히 들으며 가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당신의 의견도 훌륭하지만.’
‘저도 당연히 가드미온 전하를 존경하고는 있지만 그의 정책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따위의 말을 했고 그가 그런 말을 하면 사내들은 금세 또 그의 의견이 모두 옳다면서
치켜세웠다. 브리는 후안은 저 속에서 정말 즐거운 것인가, 이렇게 아름답게 치장한
아내와 춤추는 것보다도 더 즐거운 것인가 하는 원망에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원망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입은 옷은 정말 멋있어.
라든지. 역시 저 중에서 그가 가장 멋있잖아? 하는 생각만이 더 늘어났다. 그 생각은
브리를 금방 또 행복하게 했다. 그녀는 보는 사람마저 행복해질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곧 그 미소는 사라졌다. 그는 너무나도 멋진 사내이고, 이 연회장 아니 루엥
아니 델프라에서 유명하며 훌륭하고 또 잘생긴 사내임이 틀림없었다. 그런 그가
그녀의 남편인 것이다! 이 사실은 너무나도 뿌듯하고 그녀를 자랑스럽게 했다. 하지만
그런 그는 지금 토론에 빠져 아름다운 아내는 신경 쓰지도 않는다. 이렇게 애달프게
바라보고 있는데도, 춤 하나 권하지 않는 것이다. 어쩜 저렇게 얄미울까. 브리는
후안을 바라보는 눈을 돌려버렸다. 그리고 다시 부인들의 대화에 울며 겨자 먹기로
껴보려고 했지만 문득 부인들이 집중하는 건 대화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브리는 “무슨
일이에요?” 하면서 물었으나 부인들은 “어머 공작부인 저 아리따운 아가씨는 누구의
따님이죠?” 라고 반문할 뿐이었다. 나랑 무슨 상관 이예요 라고 쏘아대고 싶었지만
브리는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인 척 그녀들의 힐끗거리는 시선의 끝으로 향했다.
그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귀나 천사를 보아도 이토록 놀랠까 그녀의 앵두
같은 입은 벌어져있었고 반사적으로 벌어진 입을 장갑을 낀 귀여운 손으로 가렸다.
저건 알리시아다. 그래, 알리시아가 확실하다. 길지 못한 머리에 가발을 연결해
무릎까지 검고 구불거리는 풍성한 머리를 늘어뜨린 저 소녀는. 브리가 그녀의 나이일
때 자주 입었던 붉은 기가 도는 장밋빛 핑크의 여러 겹으로 겹쳐 화려하고 풍성해
보이는 드레스를 입은 저 소녀는. 연한 커피색아 빛의 어깨를 내놓고, 수줍은 듯 웃어
보이는 저 소녀는 알리시아가 확실하다.
“어머, 너무 예쁘잖아..”
브리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뇌까리곤 곧 큰 실수라도 한 것처럼 불쾌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알리시아는 너무나도 예뻤다. 검은 밤처럼 까만 눈동자는 다른 사람의
눈동자보다는 조금 더 컸기에 눈은 우수에 찬 것 같았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쑥스러운 듯 짓는 저 미소는 어쩜 저렇게 소녀다운지 브리는 많은 사내들의
그녀를 향한 야망이 벌써부터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워낙 비싼 것이었기에 그녀가 쓴 가발은 절대 가발 같지도
않았고 묘하게 어두운 피부색과 어울려 흡사 남쪽여인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내보였다.
게다가 로아국사람들 특유의 부드러운 이목구비가 어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그것이 매력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브리는 자신의 그 드레스가 자신보다 알리시아에게
조금 더 어울리는 것 같단 생각이 들자 묘하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가발을
반쯤 묶고 장신구로 그것을 장식하고 있었는데 그 화려한 은장신구는 바로 브리의
것이었다. 꽃의 모양을 본 딴 그 장신구는 브리가 왕궁에서 살았을 때부터 주로
애용하던, 특히 지금 알리시아처럼 무릎까지 치렁치렁한 금발을 흐트러트리고
포인트를 줄때나 이용하던 것으로 소녀시절 너무나도 아꼈던 것이다. 브리는 자신이
만약 처녀였다면 저렇게 예쁜 머리모양을 할 수 있었을 탠데 하면서 아쉬워하다 금세
잊고 주변을 돌아봤다. 음악은 여전히 연주되고 있었고 춤에 빠진 사람들은 여전히
춤에 빠져서, 대화에 빠진 사람들은 여전히 대화에, 음식에 넋이 나간 사람들은 음식에,
연애에 정신없는 사람들은 연애에 빠져있었지만 브리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집중하면서도 흘긋흘긋 저 대중을 압도해버린 아름다운 아가씨를
신경 쓰고 있었다. 춤을 추는 사람들은 턴을 할 때 한 번씩 저 검은 피부와
검은머리의 아름다운 이국적인 아가씨를 바라보고 있었고. 토론을 하는 사내들은
기침을 하는 것처럼 굴면서 그녀를 바라봤다. 브리는 새로운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사람들이 알리시아를 주목하고 있다. 알리시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두리번거리며 그들을 신경 쓰지도 않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한번쯤은 그녀를 흘깃거릴 정도로 그녀는 순식간에 인기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브리는
개탄했다. 과연 이 사람들은 저 소녀가 사실은 반 루앙의 조수이고 언제나 남장을
하는. 이미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인, 알렉스라는 소년임을 과연 알까?
“어머, 저 예쁜 드레스 좀 봐요. 아마 훌륭한 가문의 따님이겠죠?”
“저 예쁜 장신구들 좀 봐요.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는 어떻고, 저 파란 보석은
정말 아름다워요. 저 아가씨는 부자임이 틀림없어요.”
“난 빨리 저 아가씨에게 가서 통성명을 해야겠어요. 부인도 아시겠지만 우리 손자가 벌써 혼기가 차서.”
그녀는 노부인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브리는 그녀들에게 그녀는 사실 남장여자이고,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이나 장신구 특히 목에 걸고 있는 저 목걸이는 라이넌이 브리에게
선물했던 것이라고 크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차마 외칠 수 없었다. 속이
상해 마음이 타는데도 아무런 내색을 할 수 없었다.
그때 한참 무언가를 두리번거리던 알리시아는 이윽고 찾았다는 듯이 방긋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누군가를 향하는 것임을 잘 알기에 브리는 겨우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알리시아는 당장 가도 좋겠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브리가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기에 곧 길 잃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브리는 그녀를 이 파티로 끌어온 것이 자신임을 잊었는지 점점 그녀를 바라보는 눈에
미움을 담았다. 내 파티의 주인공이 되다니. 이건 가당치도 않는다. 그러다 문득
브리는 생각났다는 듯이 그녀를 향한 시선을 곧 후안에게로 돌렸다. 과연 그도 많은
사내들처럼 알리시아를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리는 그가
알리시아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그러나 브리는 뜻밖의 광경을 확인하곤 입을 다물지
못했다. 후안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물론 정열이 담긴 눈이 아니었지만 자못 흥미
있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브리는 커다란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하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흥미가 있는 얼굴로. 세상에 흥미가 있는 얼굴로!
브리는 잠이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는 단지 일에 쓰기 위해 그녀를
남장을 시킨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불행한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공작부인, 제게 저 아가씨가 어느 집의 따님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눈치 없는 한 부인이 물었기에 브리는 후안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고 부인에게 자못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집 하녀랍니다. 가엾은 아이라 파티에 초대했지요.”
“어머 세상에 공작부인께선 어쩌면 그렇게 자비로우신지..”
눈치 없는 부인의 칭찬에 브리는 미소를 지었지만 곧 자신의 말실수에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알리시아는 하녀가 아니다. 그것은 브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는 입이 싼 부인에게 그녀가 하녀라는 거짓말을 해버렸고, 그 부인은 이미
자기의 친구들에게 하녀라고 말을 해버린 것이다. 이미 부인들은 호의에 가득한
얼굴로 알리시아를 바라보지 않았다. 이 소문은 금세 이 연회장 안에 퍼질 것이
분명했다. 브리는 미안한 얼굴로 알리시아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싱긋
웃고는 그저 접시를 들고 한켠의 뷔페에서 음식을 담고 있다. 저 착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상대로 그런 나쁜 거짓말을 하다니 브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절망에
빠져 이마를 짚었지만 콧대 높은 귀부인과 질투 많은 처녀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향함을 알고 다시 일렁이는 어떤 감정에 알리시아를 바라봤다. 브리는
생각했다. 이 따위 파티는 빨리 접어야 한다고. 그녀는 5년 전에 비해 많이 성숙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연 파티의 주인공이 자신이 되지 않아도 참아낼
수 있는 정도로 성숙하지는 못했다. 브리는 잔뜩 화난얼굴로 다시 후안을 향했다.
그녀의 시선을 눈치 챈 것인지 어쩐 것인지 알리시아를 향한 눈을 금세 돌린 후안은
브리를 바라봤다. 이에 브리는 자신이 화났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새침하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정말 이따위 파티는 빨리 끝내버려야 한다고 그녀는 생각했고.
그 어느때보다 알리시아가 미웠다.
한편, 갑자기 등장한 미소녀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 딱 하나 있었다. 그는 바로
조세핀 캐드릭. 잔뜩 화난얼굴로 붉은 머리를 흔들거리는 여인은 지나치게 화려한
녹색의 드레스를 입고 역시 지나치게 화려한 붉은색의 목걸이를 목에 두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회색 눈에 분노를 가득 담고 있었다. 마치 그 분노를 먹을 것으로
푸려는 듯 남자들이나 쓰는 넓은 접시를 든 그녀는 미쳤다고 해도 좋을 만큼의 속도와
힘으로 훌륭한 음식들을 모양 없이 퍼내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화가 난 것처럼
짜증을 내며 식기를 던져버리다가 다시 새로운 것을 가져와 퍼내기 일쑤였다. 곁에서
훈제연어를 집으며 그녀를 서커라고 생각하는지 구경하는 신사를 죽일 것처럼
노려보는 조세핀은 다시 밀려드는 분노에 자기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라이넌! 이 개자식! 약혼자가 아니라 원수야 원수!”
거친 말을 내뱉은 그녀는 문득 뒤를 돌았다. 그녀의 시야엔 똑똑히 자신 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콧대 높은 친구들이 함께했다. 조세핀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것을
알자 각자의 약혼자를 팔에 낀 친구들은 브랜디 잔을 건배라도 하는 것처럼 들어
보이고 조세핀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그녀는 이
파티가 데스칸테공의 파티가 아니라면 당장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이런 약혼 따윈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이 보석과 아름다운 드레스를 사준 것은
라이넌이었지만 그 드레스와 보석을 입히고 친구들 곁에 남겨둔 채 바람처럼 사라진
것도 라이넌이다! 내 멋진 약혼자를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가장 중요한
그가 사라진 것이다! 친구들에게 허영을 떨 수 있는 기회였는데,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조세핀이 화가 날만도 했다. 그녀는 무지막지하게 퍼온 음식을 들고 한켠의
의자에 앉았다. 체면도 무엇도 없이 열심히 입으로 집어넣은 그녀는 문득 그것을
멈추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주절♡
알리시아와 브리의 2차전 시작입니다. 악역역은.. 글쎄, 과연 누가 맡을까요 ㅎ
다음편에 가드미온과 비앙카가 등장할거에요. 전 1부에선 아네트를 지독한 여자로
만들었지만 2부에선 그렇게 만드지 않을 생각이에요. 이 소설에서 악역이라고
칭한다면 아네트지만. 물론 끝내 악역의 노선을 걸을거지만 이 편에서 볼수있듯
그녀는 5년의 세월동안 변했고 후안을 여전히 사랑하니까, 노골적인 악역은 되지 못할거에요.
그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조금 더 길어졌는데 만약 너무 긴게 부담스럽다. 문단이 너무 길어서 부담스럽다.
하시면 댓글 달아주세요♡
+ 확실히, 지금 고전소설을 읽고있는데 문체에 묻어납니다 묻어나;
따랑해님 오랫만이에요♡♡ 많이 바쁘셨나보네요 저도 요즘 망할 일어때문에 급 공부중이랍니다. ㅠ_ㅠ 점점 흥미진진해진다라 감사해요♡
으아, 오늘 9편까지 다읽었어요. 아직 1부는 못 읽었지만 너무 재미있답니다^^!! 항상 열심히하시는 것 같아 보기 좋아요. 이번 악역은 아마 가드미온과 헐몬 공작 그 쪽이지 않을까요? 후안 죽이시면 안돼요 ㅠㅠ!!
1부 안읽으셨으면 이해하시기 조금 힘드신 부분도 있을탠데, 제 소설이라서가 아니라 1부도 같이 읽으시길 권해요 -_-* 다음편에서도 뵙시다 반가워요♡♡♡♡♡
히히 잘 읽었습니다>_<♡
감사해요 악녀님♡
10은 없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