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전투
원제 : Retreat, Hell
1952년 미국영화
감독 : 조셉 H 루이스
출연 : 프랭크 러브조이, 리처드 칼슨, 러스 탬블린
아니타 루이스, 네드릭 영, 라몬트 존슨
장진호 전투는 한국전쟁에서 벌어진 가장 치열한 전투로 알려졌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통해서 전세를 뒤바꾼 전쟁은 이후 압록강고지 탈환을 통한 완전한 승리를 위하여 북쪽으로 진격하다가 난데없이 밀려 내려오는 중공군 때문에 교착상태에 빠지고 결국 후퇴를 하게 된 전투입니다. 미군의 신속하고 체계적인 움직임과 작전을 통하여 고립될뻔한 위기를 모면하고 함흥까지 옮기는데 성공하였고 중공군들이 상당한 사상자를 발생시킨 전투였습니다. 더 이상 밀고 나가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엄청난 숫자의 중공군에 포위되어 큰 위험에 빠질 뻔한 미군들을 체계적으로 잘 이동시켜서 포위망을 빠져나오게 하였습니다.
이 상황을 다룬 영화가 '장진호 전투' 입니다. 1952년, 아직 한국전쟁이 휴전에 돌입하기 전에 나온 영화입니다. 한국전쟁 소재 할리우드 영화중 굉장히 빠른 시기에 등장한 것입니다. 물론 최초의 한국전쟁 영화는 사무엘 풀러의 '한국동란의 고아(The Steel Helmet, 51)' 였지만.
영화의 시작은 한국전쟁이 막 터진 시점입니다. 워싱턴에서 긴급 고위층 회의가 열리고 신속하게 한국으로 파병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각지의 부대로 빠르게 전보가 전달되고, 소집된 장병들은 짧은 훈련을 마치고 한국행 배에 몸을 싣습니다.
미국영화속에 등장한 한국 지도
단란한 가족들 둔 가장
하지만 다시 전투에 참전해야 하는 숙명
신속한 훈련을 마치고 한국으로 떠나야 할 장병들
영화 초반부는 파병을 위해서 훈련을 하는 과정입니다. 두 아이를 둔 가장 한센 대위(리처드 칼슨)는 아내와 이별하고 먼 한국으로 떠나야 하는 숙명을 받아들이고 훈련에 임합니다. 하지만 일부러 먼 훈련소 앞까지 온 가족들은 고립된 고지에서의 훈련으로 인하여 훈련기간 내에도 함께 지낼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도 짧은 훈련기간만을 소화한 채 바로 떠나야 하는 병사들, 한센 대위의 가족을 비롯한 군인의 아내들은 이렇게 남편들을 떠나 보냅니다. 무사히 귀환하기만을 바란채. 병사들 중에서는 아버지, 두 형의 뒤를 이어 군인의 길을 가기 위해서 지원한 17세의 맥더미드(러스 탬블린)도 있었습니다. 맥더미드는 가문의 자부심을 위하여 더욱 열심히 의욕적으로 훈련에 임합니다.
이후 내용은 전시의 상황이 진행됩니다. 콜버트 중령(프랭크 러브조이)이 이끄는 해병 제1대대의 활약을 다루고 있습니다. 콜버트 중령은 한센 대위를 B중대의 총 지휘관으로 임명하는데 통신병 경력의 한센 대위는 전투 경험이 부족한 자신이 맡는 중책에 약간 당혹해 하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열심히 임무에 임합니다. 콜버트 중령은 가족이 있어서 몸을 사릴 것으로 우려되는 한센 대위에게 일부러 강하게 밀어 붙입니다.
성공적인 상륙과 함께 빠르게 진격해가는 미군, 서울을 탈환하고, 이어서 압록강 고지 탈환까지를 목표로 진격을 이어 갑니다. 이렇게 빠른 승리를 통하여 빨리 전쟁이 끝날 것 같은 분위기가 돌고 병사들은 1950년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적막한 전선, 너무 적막하고 상황이 무난해서 오히려 불길한 전조가 들고, 장진호 부근에 진을 치고 상황을 주시하던 미군들에게 요란한 나팔 소리와 함께 중공군들이 밀고 내려옵니다. 북한군과 싸우기 위해서 온 미군들은 예상치 못하게 많은 숫자가 밀려오는 중공군들의 기세에 당혹해 합니다. 전투력을 앞세워 중공군의 기습을 물리치지만 훨씬 더 많은 그들이 밀려오고, 높은 언덕 한 가득히 쓰러진 중공군으로 메워진 시체산이 되어 버립니다. 떨어져가는 탄약, 항공편으로 보급이 이어지지만 결국 후퇴명령이 떨어지고 미군들은 곳곳을 포위한 중공군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이동을 합니다. 그들의 또 다른 적은 중공군 외에도 살을 얼려버릴듯이 매서운 한국의 추위였습니다. 동상에 걸릴듯한 추위와 싸우며 그들은 동료애와 용기를 앞세워 진군합니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밤
기약없는 한국전선으로 떠나야 하는 남편과
그를 떠나보내며 무사한 귀환을 염원하는 아내
상륙작전 개시
당시 17세의 러스 탬블린
이후 '7인의 신부' '페이톤 플레이스' 등에서
미국의 청년상을 연기한다
본 무대의 중요성을 크게 부각하지 않고 타국에 파병된 미군의 심리와 애환을 주로 다룬 다른 한국전쟁영화와는 달리 '장진호' 전투는 비교적 전쟁의 상황과 한국의 모습을 어느 정도는 보여주려고 했던 영화입니다. 영화초반에 한국의 지도가 크게 등장하고 신속하게 파병이 진행되는 상황이 나오고 한문과 한글로 이루어진 서울 건물의 간판도 나오고. 할리우드에서 만든 한국전쟁 영화에 좀체로 등장하지 않는 한국군인의 모습도 딱 한장면이긴 하지만 나오긴 합니다. 그들은 아주 어색한 한국말을 미군장교와 주고 받기도 하죠(당연히 한국배우가 아니란 것이죠) 한국 초가집도 한 번 등장하고, 산으로 이루어진 지형도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상륙작전 후 서울 수복, 강원도 진격,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위기를 맞지만 전열을 가다듬어 빠져나오는 내용 등이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록 허드슨의 '전송가' 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한국의 상황을 많이 그려낸 영화지요. 물론 그럼에도 전체적인 이야기의 중심을 미 해병부대의 사명감과 용맹함, 군인정신을 다루고 있습니다.
좀 흥미로운 부분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많이 유사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러스 탬블린이 연기한 맥더미드 라는 병사는 아버지, 두 형이 모두 참전경력이 있는 인물로 큰 형은 2차 대전에서 사망했고, 둘째 형이 한국전에 같이 참전해서 전사하여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귀환명령이 떨어집니다. 어머니의 간청으로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서죠. 하지만 맥더미드는 전쟁이 한창 중인데 귀환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표출하고 결국 중공군의 개입으로 더욱 병사 한 명이 시급한 상황에서 계속적인 참전을 이어갑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사용되었던 내용이 이미 이 영화에 등장했던 것입니다. 아들 삼형제를 사형제로 바꾸었을 뿐.
서울 수복
한자로 된 서울의 간판을 묘사한 장면
한국전쟁에서의 한국 아이들
한국군인이 딱 한번 등장하는 장면
조셉 H 루이스 감독은 1950년 '건 크레이지'라는 영화를 통해서 보니와 클라이드의 원조같은 내용을 아주 흥미롭게 다룬 바 있습니다. 나름 실력있는 감독인데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장진호 전투'에서 유명배우들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전쟁발발-파병-참전-전투-후퇴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요란스럽지 않고 차분하게 하나하나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건 크레이지'에서 주인공의 소년시절 역할로 캐스팅했던 러스 탬블린을 이번에는 아버지와 형을 따라 군인의 길을 걷는 17세 병사로 비중있게 출연시키고 있습니다. 러스 탬블린은 이후 '7인의 신부' '페이톤 플레이스' 등에서 청년 역할로 등장하면서 당시 살 미네오 같은 배우와 함께 할리우드의 청년상을 연기하는 배우로 활발히 활동합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해병대는 굉장히 빡쎈 군대로 알려져 있고, 자부심도 대단한 편인데, 이 영화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등장합니다. 특히 중공군의 거센 반격으로 어려움에 빠지고 부상, 사망자가 나온 상태에서 대대장인 콜버트 중령이 해병대로서의 결의를 다지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후퇴명령이 나오자 병사들이 자존심이 상한 듯한 반응을 보이자 후퇴가 아니라 다른 곳으로 전선을 이동해서 계속 싸우는 것이다 라면서 독려하는 내용도 나오지요. 비록 이름도 잘 몰랐던 먼 외국에 파병와서 싸우는 입장이지만 군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승리에 대한 의지가 많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미군들간의 대화중 얼핏 재미난 내용도 나옵니다. '그래도 한국의 남북전쟁은 이해할만 해' 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같은 동족산장의 남북전쟁을 치룬 미군의 심경이 드러나지요. '우리는 옳은 곳의 편을 들고 있는거지?' 라는 대사도 나옵니다. 아무튼 북한군과 싸우러 와서 그해 12월안에 돌아갈 것으로 믿었던 미군들이 중공군의 거센 개입으로 2년넘게 더 고생을 하게 될 운명, 아마 영화 촬영할 당시에도 그런 미래는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중공군의 시체로 뒤덮인 시체산
추위 때문에 고생하는 미군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우린 끝까지 진격한다!
1952년 2월에 첫 공개가 되었으니 1951년에 촬영한 것이고 아직 한국전쟁이 한창인 시기에 파병중인 미군들을 격려하는 차원의 영화가 된 셈입니다. '우린 이렇게 용감히 싸우고 있다' 라는 내용이 되었습니다. 9.28 서울 수복후 금방 끝날줄 알았고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보내려고 했던 계획은 무산되고 2년후의 크리스마스에나 가족과 보낼 수 있었던 그들, 승리도 패배도 아닌 전쟁, 그래서 그들에게는 '잊혀진 전쟁'이 되어버린 한국전쟁, 올해 벌써 70년을 맞고 있습니다. 이미 한 세대가 지나간 오래전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이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다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가 지속되는 염원을 위해서죠. 전쟁의 아픔과 비참함을 기억해야 평화의 소중함을 알 수 있으니까요.
ps1 : 영화속에서 실제 상황에 대한 영상이 수시로 삽입되고 있습니다. 엔딩 크레딧에서 전투장면을 제공한 미군측에 감사의 메시지도 전하고 있습니다.
ps2 : 상륙작전의 순서가 나오는 장면이 흥미롭습니다. 우선 포를 마구 쏴서 해안선을 초토화시키고, 항공기 폭격으로 확인 사살을 하고, 그리고 배를 해안에 대고 사다리로 오른다....짧은 장면이었지만 어느 정도 디테일하게 표현되었습니다.
ps3 :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무난한 내용인데 국내에 개봉이 안되었습니다. 아마 유명배우가 전혀 등장하지 않아서 일 것입니다.
ps4 : 장진호 전투 라는 제목은 우리나라에서 임의로 붙인 제목이고 원제는 '지옥에서 후퇴' 뭐 이렇게 해석될 수 있겠죠.
[출처] 장진호 전투(Retreat, Hell, 52년) 한국전쟁을 비교적 디테일하게 다룬 영화|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