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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목을 쓰고보니 마치 자살이라도 하려는 듯 착각을 불러 일으키려는 듯 해서 죄송합니다..
올해 서른 셋의 나이에 오늘 지원했던 회사에서 최종합격 했다는 통보를 받고 이제는 이 까페를 떠나야 될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제가 구직 활동함에 있어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남겨봅니다..
스펙이 좋으신 분들이나 경험이 많은 분들보다는 사회 초년생들이거나 종소기업을 목표로 삼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올립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안산, 시화에 이사를 온지는 약 10년 정도 되구요.. 그동안 서류지원과 면접을 본 회사와 일용직으로 근무한 회사, 몇 달 혹은 며칠, 몇시간만 일하다 나간 회사를 다 따지면 조금 과장해서 100군데는 되는 것 같네요.. (서류지원한 회사까지입니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_-;;)
공고 전자과 출신으로 내신 70%이고 지각과 결석도 몇 번 있는 처지라 대기업은 꿈도 못꾸었구요.. 괜찮은 중소기업 생산직에 취직을 하고 싶었으나 쉽지가 않더군요..
제가 지금까지 구직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점을 쓰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니 맹목적으로 바라보시지 마시고 조금이라도 뭘 얻어가셨으면 좋겠네요.. (스펙이 화려하신 분들이나 고수분들은 그냥 씨익~ 웃음이 나오는 정도겠지만요..;;)
회사찾는 방법
저는 주로 인터넷은 잡코리아, 사람인, 노동부워크넷과 이 까페 정보를 이용했구요..
생활정보지는 벼룩시장, 가로수, 교차로를 이용 했습니다..
혹시라도 글읽으시는 분들중 자신에게 없는 부분들이 있으면 이용해보세요.. 뜻밖에 진주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서류접수 방법
회사마다 서류접수 방법이 여러가지 입니다..
이력서등을 우편으로 접수를 먼저 시켜야 하는 회사가 있는데요.. 보통 이력서, 자소서, 등본 정도이지요.. 물론 그냥 이력서와 등본만 접수하라는 회사가 있지만 제 생각에는 자소서도 정성껏 써서 같이 첨부해서 보내시는게 자신에게 플러스 될 듯 합니다..
바로 내사방문해서 면접을 보는 회사가 있구요.. 정해진 요일에 정해진 시간에 면접을 보는 회사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메일 접수를 먼저하는 회사가 있구요.. 사람인이나 잡코리아의 온라인 지원을 부탁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인과 잡코리아 사이트에서 회원가입을 하시고 자신의 이력서를 써두십시요..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아~ 나는 회원가입도 안되어 있는데 귀찮아 그냥 신문만 볼래." 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자신이 간절하고 절실한 만큼 구직활동에 있어서 절대 귀찮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저 역시 잡코리아 이력서를 통해서 몇 번 기회가 있었고 이번에 합격한 회사 역시 잡코리아 온라인 입사 지원을 통해서 되었습니다..
이력서, 자소서, 등본 및 고교 생활기록부 준비..
제 생각에 이력서는 손글씨가 예쁘신 분들이 아니면 엑셀이나 워드로 타이핑 하시고 프린트 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부득이 하게 자필 이력서 일 때는 천천히 쓰셔도 되니 최대한 글씨를 예쁘게 쓰시길 바랍니다.. (아웃소싱을 통한 입사지원서는 더 더욱..)
저 같은 경우 자소서는 다른 분들 것을 전혀 보지 않아서, 참고하지 않아서 다른 분들은 어떻게 쓰시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글들을 인용하기 보다는 내가 정말 이 회사에 소위 말해서 '목숨걸었다' 라는 식으로 절박하게 그리고 죽을 힘을 다해 일하겠다는 책임감을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무엇보다 남들의 그럴듯한 자소서를 배끼거나 참고하기 보다는 좀 더 진실되게 쓰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생활기록부는 자신의 거주 지역에서 가까운 초,중,고등학교 서무실(?), 행정관리실 등에서 뗄 수 있으니까 부담갖지 마시구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준비한 서류들은 웬만하면 A4용지를 넣을 수 있는 서류봉투에 넣어서 접수하시기 바랍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일반 이력서 봉투는 두어번 접어서 넣어야 되기 때문에 인사 담당자가 수많은 이력서를 봤을 때 일일이 접힌 이력서를 펴는 것을 자칫하면 짜증(?)낼 수도 있습니다.. 인사 담당자 역시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면접..
중소기업이나 중견 기업 생산직에 한해서 입니다..
역시 웬만하면 정장 차림을 추천합니다.. 좀 더 성의가 있어보이지요..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정장복장이 여의치 않는다면 깔끔한 캐쥬얼 차림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예로 저같은 경우 서울반도체와 다른 중견 기업에서 다섯 명 중 유일한 캐쥬얼 차림으로도 합격한 두 명에 속합니다.. 캐쥬얼 차림이라더라도 카라가 없는 면티는 안됩니다.. 되도록 셔츠나 남방, 혹은 카라가 있는 티셔츠로 준비하시기 바라구요.. 헤어스타일도 염색이 짙다거나 긴 머리보다는 (남자들의 경우) 단정한 스타일로 머리를 하시고 면접에 임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면접시에 멘트들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제발 이런 식으로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로 사회 초년생이나 면접 경험이 없으신 분들이 그러는 것 같은데..
"뭐 뭐 했는데요." "아니요." "그런 것 같은데요."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저런 말투는 좀 어려보입니다. 정신연령이..
철이 없다고 해야하나요? 아무튼 대답을 할 땐 끝을 흐리지 마시고 "뭐 뭐 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라는 식으로 좀 딱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다, 나, 까" 로 끝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면접시에 잘 떨리시는 분들은 전 날이나 며칠전날부터 연습장에 예상질문과 대답들, 자기소개할 것을 쓰시고 외우다시피 연습하십시요.. 많이 연습하시다 보면 머리가 하얘지는 상황에서도 이미 외웠기 때문에 떨리긴 하지만 술술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면접 볼 때 자세는 모두 아시다시피 구부정하게 앉지 마시고 허리를 세우고 바른 자세로 앉으시고 다른 분 차례이더라도 고개를 숙이지 마시고 면접관님들을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너무 눈에 힘이 들어가서 쏘아 붙이듯이 보진 마시구요 입가에 살짝 부드러운 미소를 띄면 더 좋을 듯 하구요..
면접관님들께서 면접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을 하실 때 한 번씩 경청한다는 태도로 고개를 두 세번 끄덕여 주셔도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면접관님께서 마지막으로 질문이나 하고싶은 말이 있으냐고 할 때 없다고 그냥 넘어가지 마십시요..
정 할 말이 없으면 차라리 이렇게 멘트를 하십시요..
"비록 생산직이라 남들 눈에는 안 띈다고 할지라도 제가 맡은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귀사에 숨은 인재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귀사에 숨은 인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하는 것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라는 꼭 합격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주십시요.. 그게 비록 입에 발린 거짓말이라 할지라도요..
아웃소싱
제가 거주하고 있는 안산, 시화에는 아웃소싱이 넘쳐나는데요..
대부분 분들이 아웃소싱을 통한 구직활동을 비추하시는데 제 생각에는 게중에는 괜찮은 회사도 꽤 있는 걸로 압니다.. 파견으로 있다가 정규직 되는 케이스가 많은데요..
안산에서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중에서는 '서울반도체' '새솔다이아몬드' '플렉'등은 제가 많은 아웃소싱을 경험해 본 회사중에 나온 것을 후회가 될 정도로 나쁘지는 않은 회사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이 긴 글은 제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꼭 이렇게 해야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이 생각했을 때 취해야 하는 것은 취하고 아니다 싶으면 안하면 되구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앞에도 말씀 드렸듯이 구직활동을 함에 있어 절대 귀찮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운명이 걸린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플렉 정규직일 때 몇 분 추천을 한 적도 있어요.. 몇 몇 분들은 절 아실지 모르겠지만 전 어린 시절 너무 어렵게 살아왔습니다.. 제 얘기를 하라면 3박4일을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이지요.. 하지만 절대 희망을 버리진 않습니다.. 제가 지켜야 할 것들이, 절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제 꿈인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면 죽는 날까지 어려운 사람 도우며 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비록 지금 너무 힘드시겠지만 항상 착한 심성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지금의 자신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시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이제 곧 저는 까페에서 탈퇴를 하겠지만.. 여러분들도 어서 자신들이 원하는 직장에 취직을 하시어 까페를 탈퇴 할 수 있도록 기도해봅니다..
ps. 아래 글은 제가 3년 전 쓴 글인데 뭔가 글을 읽으시는 분들과 저 자신에게도 채찍질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마지막으로 카피해서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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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7살 때, 동생이 4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시고 친척과도 사이가 안좋아서 아버지가 너무 패닉 상태라 저희를 두 달 반동안 고아원에 맡기면서 술과 담배로만 생활하셨던 적도 있습니다..
7살 때 아무것도 모르고 고아원 식구들과, 또래 친구들과 즐겁게 놀던 기억이, 당시 현대자동차 배구 선수들이 방문했던 기억이, 아버지께서 정말 하염없이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저희를 찾으러 오셨고 보따리 하나씩 안고 연탄불이 다 꺼진 차디찬 사글세 방으로 향하던 기억이, 그 차가운 방에서 이부자리를 바닥에 세 겹을 깔고 아버지께서 웃통을 까고 저희를 두팔로 안으며 "인간 보일러다." 라고 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네요..
아버지의 직업은 노가다였고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 생활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머니가 안계셔서 동생과 저는 오후 4시가 넘도록 얼굴이 꼬질꼬질해지면서 뛰어놀다가 오후 4시쯤되면
배가 고파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습니다..
당시 반찬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서 시장에서 김을 500원치 사다가 연탄불에 구워서 쉬어빠진 김치과 간장과 함께 김밥이라며 서로 웃으며 해먹었습니다.. 당시 나이 저는 10살.. 동생은 7살..
제 초본을 떼어보면 네 장을 넘깁니다.. 그만큼 이사를 많이 했다는 뜻이지요..
당시 한 곳에 3개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부산에서부터 강원도 까지 전국 어디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아버지 친구분 댁에서 지내도 봤고, 비닐하우스에서도, 여관에서도 지내봤습니다..
한 번씩 아버지께서 술을 드시고 늦게 집에 오실 때가 있습니다..
동생과 저는 집에서 아버지만 한 없이 기다리며 티비를 보다 동생과 제가 잠들다가 자정을 넘겨 티비가 치익~ 하고 울릴때면 제가 깨어나 울먹이며 '아빠~ 아빠~ 하며 아빠 찾으러 가자고 동생을 깨우고 한 밤중에 동네를 돌아다녔던 기억도 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어머니께서 갑자기 집을 나가신 충격이 무의식 중에 남아서 아버지마저 그럴까봐 굉장히 아버지에게 집착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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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학교 2학년 봄에.. 새벽에 4시 쯤인가 아버지 친구분께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버지 교통사고 당해서 지금 병원에 있는데 걱정하지 말라고..
아버지께서 오토바이로 출퇴근을 하셨는데 막 일을 하시고 시마이 술을 드셨나봅니다. (일 끝나고 한 잔)
그런데 좀 과하셨는지 헬멧 쓴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에 깨어나보니 병원이라는 겁니다..
지금도 아버지는 오른팔은 15년 째 움직이질 않습니다..
당시 수술만 했어도 살릴 수 있는 팔이었는데.. 빌어먹을 친척들이 보증을 서 주질 않아서 못했다고 합니다. 두 명에 보증인이 필요했는데 한 분은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분이 섰는데 또 한 명이 없었던 겁니다..
암튼 그런 사고로 저희는 당장 생활고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라..
할 수 없이 제가 학교를 그만두고 취직을 하려고 했으나 아버지께서 너는 남자니까 고등학교는 나와야 된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여동생이 갓 중학교 입학했는데 휴학을 내고 2달 반 동안 아버지가 거동을 전혀 못하시니까 병원에서 같이 먹고 자면서 아버지 대변도 받아가며 생활하다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족들을 위해 중학교를 중퇴하고 맨 처음엔 꽃가게를 2주 정도 다녔습니다.
거기서 주인 아주머니와 같이 꽃장식을 만들고 팔러 다녔는데 그 때 당시 5월이었고 어버이 날부터 스승의 날까지 대목이라 한 두 달 다니던 학교앞에서 친구들에게 꽃을 팔았습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어찌 13살 짜리,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되는 그것도 여자 아이가 자기가 다니던 학교앞에서 친구들과 아는 분들에게 꽃을 팔 생각을 했는지.. 후~
2주 정도 일을 하고 그 때 당시 14만원을 받았는데 그 정도로는 세 식구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던터라 동생은 꽃가게 일을 그만두고 아저씨 아줌마들이 다니는 그런 3교대 섬유 공장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내겐 하나밖에 없는 너무나 착한 동생입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제 동생 같은 사람은 정말 드물거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스물 일곱의 여동생인데 아직도 자기 생활없이 집을 위해 희생하고 있네요.. 제가 다음에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꼭 이 은혜는 갚을 거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제가 공고 졸업전에 2+1으로 과에서 제일 먼저 취업을 나왔습니다..
전자과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섬유 회사에 취업을 나갔습니다..
저까지 포함해서 4명이서 면접을 봤는데.. 3명은 힘들 것 같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약해져서 포기하더라구요..
당시 제가 공부에는 취미가 없어서 (그렇다고 놀 줄도 몰랐습니다.) 과에서 100 명 중 70등 정도밖에 하지 못했고 결석도 꽤 많아서 비록 섬유지만 내 보잘 것 없는 스펙을 받아준다면 저는 감사히 생각했고 또 당시 상여가 꽤 높아서 저는 이것 저것 재지 않고 바로 취업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동생은 바로 중학교에 복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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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기소개서의 한 부분입니다..
'올해 서른의 나이..
적다고도, 그렇다고 다시 시작할 수 없을 만큼 많다고도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회를 주신다면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참 힘드네요..
그렇다고 제가 눈높이가 높은 것도 아닌데..
2월 말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구직 활동을 한지 벌써 5달 째..( 뭐 중간에 한 달 반 정도는 일을 했지만..)
메일로 제출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한메일 수신 확인 메세지로 확인해보니 두 페이지가 넘어가더군요.. 거기다가 내사 방문과 우편까지 합치면 정말 많은 곳에 지원을 했는데 제가 원하는 곳은 아직 연락이 없네요..
제가 이렇게 방황할 때가 아닌데.. 요즘은 와이프랑도 한 번 씩 말다툼도 하고 눈치도 보이고 참 기분이 그러네요..
종일 일자리 알아보거나 면접보고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아들 녀석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저에게 안길려구 하는데.. 참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서글프기도 하고..
하지만 저는 포기는 절대 안합니다..
포기하기엔 제가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네요..
전에도 남겼지만 제 싸이글을 다시금 보며 힘을 냅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참 간사한 건 예전부터 깨닫고 있었지만..
지금 마지막이란 끝자락에 걸친 여름처럼 아쉽고 안타깝고 안스럽다..
많은 생각들과 고민들..
그것들을 더욱 부추기는 힘든 상황들..
인생의 삼분의 일을 지나는 이 시점에서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안정과.. 현실적인 불안들..
강해져야 한다..
강해져야만 한다..
그래야 이겨낼 수 있고..
살 수 있다..
위를 보는 것은 삼분의 일만..
아래를 보는 것에 삼분의 이를 두자..
회사와 가정을 절반씩의 무게를 두고..
타인을 80%, 나를 20% 만큼의 비중을 두자..
첫댓글 저도 안산사람이지만 아웃소싱넘치죠^^:
좋은글이네요 힘내고 같이 화이팅 합시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그래도 가끔은 찾아와 주세요^^
헤이 요~~~굿~~~맨 늘 그 정신으로 사신고 늘 행복만땅 한 가정 꾸미고 사세요~~~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파이팅!
마지막이기 보다는 계속 남으셔서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것도 괜찮은 방법 일 것 같은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참조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건승하세요~~
고생많으셨습니다. 앞으로는 행복만 가득 하실 겁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잖아요? ㅎㅎ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습니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굳은 심성과 맑은 인성을 지니셨군요. 잘 되셔서 가신다니 너무 축하드립니다. 늘 행복하세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길 바랄께요. 글 보고 힘을 얻어 갑니다.
좋은 정보에... 좋은 글.... 잘 되실겁니다..
오....좋은글 잘 읽었습니다.....반드시 성공 하실 겁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반드시 좋은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거예요 끝까지 힘내세요!!
축하합니다만, 자주 들르셔서 고민이 있으신 분들 좋은 조언을 해주시길..
축하합니다만, 자주 들르셔서 고민이 있으신 분들 좋은 조언을 해주시길..
멋지십니다...
자소서에 어린시설이 주마등처럼 흘러 가는군요..^^;; 가난고 함께.....배고프던 그시절~~^^ 힘내세요..누구나 그러하듯이~~고진감래 말이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