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서 리플을 한번씩 읽어 보았습니다.
1. DRG라는 건 의료체제의 지불제도중 하나로서 철저히 진단명에 의거하여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비용 하에서 검사를 하든 수술을 하든 그건 의사-환자가 선택할 일이고 보험자는 최종가격은 정해주는 셈이죠.
한국에서 현재 실행하는 행위별수가제라는건 행위별로 비용을 지불하는 걸 말합니다. 문제는 의료행위에는 환자의 요구로 일반적 두통에 CT를 찍는다든가 고가의 로봇수술을 시행하는 등 '의료보장의 개념' 에서는 제공해줄 수 없는 행위들이 있을수 밖에 없고 이런 행위에 대해서는 환자가 직접 돈을 내게 합니다. 이게 소위 말하는 '비급여진료' 죠.
2. 자꾸 DRG하에서 비급여로....이런 이야기 하시는데 이건 아예 딴이야기입니다. 농구에서 오프사이드 반칙 이야기하는거에요. 애초에 비급여라는 개념 자체가 행위별 수가제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DRG에선 비급여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요. 그럴 수밖에 없죠. '비급여 행위' 라는걸 DRG에서는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진단명을 통해 비용은 지급 되었으니까요. DRG가 비용감소 효과가 있는 이유는 비급여진료가 억제되기 때문이고 그거때문에 보복부가 추진하고 있는 거니까요.
3. 두통으로 A라는 환자가 왔습니다. 아래 초극님은 자꾸 '이 환자가 원하면 비급여로 CT 찍어도 된다.' 라고 하는데 그거 일반적인 DRG제도 하에서는 불법입니다. 왜냐면 보험자는 이미 '진단-검사-치료' 의 모든 비용을 지급했다고 보거든요. 환자에게 불필요한 비용을 청구한다고 보는거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비급여로 CT찍고 MRI찍고 하면 뭐하러 DRG합니까, 한국에서 급여행위의 수가는 원가 미만이에요. 이건 보건복지부에서 인정한거고 그러다보니 비급여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고 이걸 막겠다고 DRG하자는 건데 비급여로 검사해도 된다는 건 말이 안되죠. 그냥 아예 비급여라는 개념 자체가 DRG에는 없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농구 이야기 하는데 오프사이드반칙 이야기 하는 셈이에요. 일반적인 긴장성 두통 -> DRG 3만원, 이런식이고 환자한테 따로 돈을 받으면 안됩니다.
4. ESD사태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죠. 내시경적 종양절제를 하려던 환자들이 보건복지부의 악법으로 '무조건 개복수술' 을 받아야 할 처지에 몰렸고 결국 법 개정될때 까지 기다려야했습니다. 환자들이 자기돈 내고 ESD받겠다고 했음에도 그거 못하게 법으로 금지해버렸거든요.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언제나 행위별수가제를 해왔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환자가 자기돈 내고 검사 받는게 안된다는게 상상이 안가겠지만 그거 못하게 하는게 DRG의 취지입니다. 비급여 진료를 줄여서 전체 의료비를 감소시키는게 존재 목적인 지불제도에요.
5. 복강경 2백만원/개복수술 1백만원의 예시는 지겹게 들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DRG지급제도에서는 환자들의 진료선택권이 침해당하게 됩니다.
6. 그런데 왜 외국이나, 혹은 지금껏 시행해온 한국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는가....외국의 경우 환자가 DRG진료를 받을지, 행위별수가제에 의거한 진료를 받을지를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지금까지는 병원이 그걸 선택했고 환자들은 DRG병원에 갈지 행위별수가제 병원에 갈지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누누히 이야기하잖습니까. 이게 수가나 의료의 질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권' 의 문제라고. 애초에 더 비싸고 더 고급인 의료를 받고 싶은 사람은 행위별수가제 병원에 가면 되는거였고 싸고 기본적인 의료를 받고 싶으면 DRG병원에 가면 되는 거였어요. 간단한 예로 3900원짜리 스타벅스 아메리카노와 5백원짜리 자판기 커피가 다 있는 거고 고객(환자)들이 원하는 데로 선택할 수 있었죠. 그러니까 재입원률에서 차이가 없는 겁니다. 애초에 5백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선호하는 사람은 그 다음날에도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십니다. 그 사람도 불만이 없어요. 스타벅스 먹는 사람도 마찬가지고....어차피 그들은 DRG병원이라는 거 알고, 그걸 원해서 간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의 재입원률이 차이가 없는건 그냥 당연한 겁니다.
근데 이번 개정은 전국 스타벅스를 다 문닫게 하고 그 자리에 자판기 설치하라는 이야기인 겁니다. '자판기 커피가 얼마나 사람들이 좋아하는데...' 라고 하면서요. 당연히 자판기 커피 마시던 사람이야 불만 없겠지만, 스타벅스 먹던 사람들은 불만 생길 수밖에 없고 그들의 선택권이 침해당하게 되는 겁니다.
7. 한국은 당연지정제를 택하고 있고 이게 또 한국의 특수성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세상 어느 나라도 당연지정제 같은 것은 없고(물론 NHS의 경우 모든 병원이 국가 거이기 때문에 양상은 비슷하게 나타나죠.) 그렇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건강보험 예외 병원을 통해 진료의 선택지를 늘린다는게 불가능합니다. 건강보험 DRG하에서 복강경 수술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경우, 그냥 대한민국 전국 모든 병원에서 불가능해지는 겁니다. 누누히 이야기하는 '환자 선택권의 침해' 가 이래서 나옵니다. 한국에서는 복강경 못받게 되는 거에요.
1) 당연지정제가 없었거나 2) 병원이나 환자가 DRG/행위별수가제를 고를 수 있었다면 환자들의 선택권이 침해당한다는 이야기는 안나왔을 겁니다. 문제는 한국에서 지금 시행하려는 DRG는 둘 다 안되죠.
8. DRG 수가를 충분히 준다고 해도 그건 아주 기본적인 시술에 기반한 비용이지 '복강경' 이나 '로봇수술' 이나 '백내장 수술용 특수 렌즈' 를 기준으로 잡는 수가가 아니에요. DRG해도 병원 안망합니다. 대신 복강경 수술은 못하고 개복수술만 해주게 되는거죠.
심지어 병원협회는 DRG반대 안합니다. 딱 봤을때 '일반적인 치료' 만 하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이익이라는걸 아는거죠. 의사들이 반대하는건 의사들의 치료 선택권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고 환자들의 진료 선택권이 침해되는걸 우려하는 겁니다. 이익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금껏 계속 이야기했는데 '수가가 이전의 21퍼센트 증가하고....' 이런 얘기 하면 허탈합니다.
첫댓글 그런 거였군요. 잘 몰랐는데 좋은 것 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