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0. 18.) 부산 씨티투어 당일코스 2.
☞ 임시수도 기념관
임시수도기념관 안내도
주차장을 우측에 두고 들어오다 좌측 적색 건물은 '전시관'
앞 직진 방향으로 주자장을 벗어나 우윽 좌측으로 꺾어가면
2층 대통령 관저가 나온다.
위치 : 부산 광역시 서구 임시수도기념로 45.(부민동 3가 22번지)
가는 길 : 지하철 1호선 토성역 2번 출구에서 도보 10분.
개요 : 한국전쟁이라는 국난의 시기에 대한민국 임시수도로서 소명을
훌륭히 마친 부산의 위상과 역사성을 기념하고 부산 시민의 자긍심
을 고취하기 위해 1984년 6월 25일 개관 하였다.
중심 건물인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는 1926년 8월 10일 경남 지사관
사로 지은 2층 벽돌조 건물이다.
한국전쟁기(1950 ~ 2953년)에는 이승만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었다.
건물은 역사성이 인정되어 2002년에 부산시 기념물 제 53호로 지정
되고 관저의 뒷편 건물은 엣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관사로 리모델
링하여 한국전쟁의 발달과 피난민의 생활상 임시수도 시기 부산의
정치 경제 문화등. 전시관으로 2012년에 새롭게 개관하였다.
임시수도 기념관 안내도
한국 전쟁이 있었던 1000일 동안 부산은 눈물을 흘렸고 다시 일어
서기 위해 몸부림쳤으며 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임시 수도 1000일의 기록은 당시 부산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여실히
보여 준다.
전시관과 대통령 관저의 방향표
전국에서 밀려드는 피란민들로 인해 부산은 삽시간에 판자촌으로
변했고 슬픔과 절박함을 품은 사람들로 인해 부산은 삶의 전쟁터로
변해 버렸다.
그렇게 부산은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과 참담한 현실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대통령 관저 입구
임시 수도 기념관은 원래 경남 도지사의 관저였는데 부산이 임시
수도였던 시절(1950~1953년)에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다가, 전쟁
후에는 다시 도지사 관저로 사용되었다.
대통령 관저 입구의 현판. 사빈당(思邠堂)
사빈당(思邠堂)은 경상남도 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후 정화사업을
거쳐 1984년 6월 25일 임시수도기념관으로 개관한 대통령 관저의
당호(堂號)이다.
사빈당(思邠堂)의 유래
사빈당(思邠堂)
당호(堂號) 사빈당(思邠堂)은 역사학자 정중환(丁仲煥)선생이 지었고,
독립운동가 한형석(韓亨錫) 선생의 글씨로 현판을 새겨 걸었다.
사빈[思邠=(分+邑)]의 의미
생각할 사(思), 나라이름 빈(邠) 사빈(思邠)은 '나라를 생각한다' 는
뜻이다. 따라서 사빈당은 '나라를 생각하는 집' 이란 의미이다.
사빈의 유래는 옛 중국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그의 아버지와 조부
의 빈(邠)의 뜻을 받들어 덕과 의로써 나라를 다스려 온나라의 백성들
이 그를 따랐는데 어느날 북방의 오랑케들이 재물과 땅, 백성을 요구
하며 쳐들어왔다,
문왕은 백성을 살리기 위해 싸우지 않고 나라를 내주고 남쪽 주원 땅
으로 이주하였다.
이때 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왕을 따라왔으며 이웃나라 백성들까지 소문
듯고 합세하여 귀화하게되니 나라를 회복함은 물론 은나라에 이어 주
(周)나라를 건국하게 되었다.는 유래에서 이를 바탕으로
서울을 내주고 부산에 임시수도를 마련한 어려운 상황에도 온국민이 힘
을 모아 빼앗긴 땅을 수복하겠다는 의지를 담고있는 당호(堂號)이다.
※ 참고
정중환선생 : (1914~2001) 일본 다이쇼(大正)대졸 문학부졸
.부산대, 동아대 교수. 역사학자. 가야사. 한일관계연구.
한형석선생 : (1910~1996) 중국에서 독립운동가. 항일군가.
가극연출가. 무장항일투쟁 전념. 부산대교수. 서예가.
대통령관저 전면 게시판
1983년 경남도청이 이전하게 되자 부산시에서 매입하여 한국
전쟁기의 각종 사진 자료 등을 전시하는 임시 수도 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관저의 대통령 집무실(도서실)
1983년 경남도청이 이전하게 되자 부산시에서 매입하여 한국전쟁
각종 사진 자료 등을 전시하는 임시 수도 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시는 대통령
임시 수도 기념관 안에는 한국 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치의 최종 결정과 대외적 외교 업무를 했던 장소로
이승만 대통령의 서재, 내실 등과 특공대원으로 전쟁에 참가했던
이정숙 할머니의 증언을 들을 수 있는 방이 있다.
대통령 관저 응접실
프란체스카 여사의 안방
대통령관저의 전시물(2층)
임시수도 부산 1023일
1950. 8. 18. ~ 1953. 8. 15.일 까지 1023일간 임시수도가 되었다.
관저의 전시물
정부기관은 경남도청 건물을 사용하고 임시정부 청사가 되었다.
특공대원 이정숙 할머니의 증언
경남도청에는 총무처, 내무부, 외무부 등 정부 주요기관이 입주
하였고 경남도지사관사는 이승만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였다.
특공대 이정숙 할머니의 증언
사회부, 교육부,심계원은 부산시청을 사용하였고,
상공부는 남선전기를 사용하였다.
대통령 특근들의 사진
국회는 부산극장과 무덕전등을 청사로 사용하였고
금융, 경제, 문화, 교육관련 기관들도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
야외 전시판
미국대사관은 부산미국문화원에 자리를 잡고
각국의 외교관 들도 부산에 주재하였다.
당시 피난민들의 판자촌 모형(야외 전시품)
전시관 가는 길
전시관 전면
전시관 후면
기념관에서 나오는 문
☞ 부산 송도해수욕장
교통 : 시내에서 3㎞ 지점에 있어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하다.
자연환경 : 암남반도의 두각부와 거북섬에서 해식에 의하여
침식된 물질이 만곡부에 퇴적되어 형성된 사빈해안으로
백사장 길이 800m, 폭 50m의 아담한 규모이며, 수질이 깨끗하다.
백사청송(白沙靑松)이 남쪽 해안의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해안경관이 뛰어나다.
부산 송도해수욕장의 전경
형성 및 변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하여 1913년에 부산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해수욕장이다.
1960년대까지는 주로 해수욕장으로 이용되었으며, 해수욕장 서쪽
산언덕과 거북섬을 잇는 길이 420m의 케이블카와 송도공원과
거북섬 사이에 구름다리가 설치되면서 부산시민의 해안 위락시설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1970년대 이후, 해안주변의 급속한 개발과 그에 따른 바닷물의
오염과 모래유실로 인하여 해수욕장으로서의 기능을 점차 상실하고
기능만을 가지게 되었다.
송도해수욕장의 백사장
현황 : 부산시는 2000년부터 2005년 까지 태풍피해와 모래유실을 막는
수중방파제와 이안제를 설치하고, 백사장을 확장하는 등 송도연안
정비사업을 실행하였다.
해수욕장 주변에 30,000㎡의 수변공원과 분수대를 비롯하여 각종 편
의시설을 갖추고, 해수욕장과 암남공원을 연결하는 길이 800m,
폭 1m의송도해안산책로를 조성하여 해수욕장으로서의 기능을 되찾고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송도해수욕장은 주변 자연생태 공원인 암남공원과 바다낚시로 유명한
두도공원으로 연결되는 관광 코스를 형성하고 있다.
송도거북섬 테마 휴양공간 안내판
송도공원과 거북섬을 잇는 구름다리(스카이워크)
구름다리(스카이워크) 위의 휴식공간 의자
1960년대까지는 주로 해수욕장으로 이용되었으며, 해수욕장 서쪽
산언덕과 거북섬을 잇는 길이 420m의 케이블카와 송도공원과
거북섬 사이에 구름다리(스카이워크)가 설치되면서 부산시민의 해
안 위락시설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송도해수욕장 백사장 앞 바다의 조형물
거북섬 등대 잔밍대
구름다리와 연결된 거북섬 터널 입구(조형물)
거북섬으로 나가는 거북섬 터널 출구
거북섬에 설치한 남녀의 애뜻한 사랑 조형물
송도해수욕장 인근 거북섬에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표현한 조형물.
거북섬 테마공간에 거북섬의 전설을 스토리텔링화한 젊은 어부와
인용(人龍)의 브론즈 동상이 건립됐다.
'옛날 송도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젊은 어부가 바다괴물에게 큰
상처를 입은 용왕의 딸을 구하려다가 바다에 빠져 죽었다.
이를 가엽게 여긴 용왕이 어부의 영혼을 거북바위로 만들어 영생을 주고
어부와 결혼하기 위해 인간이 되려고 천일기도하다가 바다괴물의 방해로
반인반용(半人半龍)이 된 자신의 딸과 거북섬에서 영원히 함께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용왕은 두 사람의 못다 한 사랑을 안타깝게 여겨 이곳을 찾는 청춘남녀
에게는 사랑을 이루게 해주고, 사람들에게는 장수와 재복을 나누어주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건립된 동상은 한 손에는 여의주를 든 아리따운 인용과
(높이 1.7~1.8m) 헌칠한 장부로 표현된 젊은 어부(높이 1.9~2m)가 금세
눈물을 떨구 듯 절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향해 손을 내뻗고 있는 모습으
로 보는 사람의 가슴까지 저리게 한다.
이 동상의 인근에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거북머리 형태의 장수굴.
재복과 자손번창을 상징하는 아기거북 다복이와 다산이 등 이야기거리가
가득한 조형물들이 잇따라 세워져 거북섬의 스토리텔링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 태종대 유원지
태종대 유원지 지도보기
태종대 유원지 표지석
신라 29대 태종 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하고 이곳에 와서 절경에 도취되어
활을 쏘며 쉬어 갔다고 해서 태종대라고 이름 지어진 곳이라 한다.
파도의 침식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암석 절벽과 울창한 수풀,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치로 국가 지정 문화재 명승 제17호에 지정
되었고. 부산시 기념물 제28호(76년 2월)에 지정 되어 있다,
태종대 표지석을 지나 태종대 전망대로 가는 길
태종대 전망대
최고봉은 해발 250m이며, 맑은 날에는 순환 도로의 남쪽에 있는 전망대
(과거의 자살 바위)에서 대마도를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 아래 낭떠러지의푸른 바다
모자상
태종대는 이처럼 아름다운 경치로도 유명하지만 한때는 자살 바위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의 자비로운 사랑을 느껴 궅게 재기할수 있도록
모자상을 세워 심리적 효과를 거두었다 한다.
다누비 열차
태종대를 다 걷는 데는 약 1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걷는 것이 불편하다면
태종대 입구에 있는 다누비 열차를 타고 중간중간에 하차하여 명소를
관람해도 된다
.
영도 등대
부산항은 한반도의 동남단에 위치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항구이다.
1876년(고종13년) 2월 7일 근대항으로서 가장 먼저 개항하였으나
영도등대 건립은 한일 합방이전에 일본군의 군사목적으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망부석
평평한 바위 위에서 왜구에게 끌려간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여인이 돌로 변하였다는 망부석이 있다.
신선바위
등대 쪽으로 내려가면 기암으로 된 바닷가에 이르게 되는데
등대 오른쪽의 평평한 바위에는 신선들이 놀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017. 10. 30.
작성자 / 월 용 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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