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서울대 문리대 64학번 카페
 
 
 
카페 게시글
자유게시판 (참고자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상세한 연표입니다(1592년~1598년)
이기성 추천 0 조회 1,515 15.05.18 13:36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5.05.18 21:28

    첫댓글 상기 정보 고맙습니다. 1593년 6월 29일: 진주성 함락. 8월 25 : 명군 송응창 요동으로 철수. 9월 13일: 명군 의주 집결 퇴각
    진주전 후 왜군이 축성 시작: 울산(서생포), 임랑포, 기장, 동래, 부산, 김해(죽도), 감동포, 안골포, 웅천 거제도의 장문포, 영등포 등.
    왜군의 주둔지 가토: 울산, 고니시: 웅천, 나베시마: 김해, 등 30개 내외의 왜성이 있는데 조선군, 조명연합군이 전투로 빼앗은 성이 있나요? 궁금합니다.

  • 작성자 15.05.19 14:50

    138_징비록과 임진왜란

    뚱보강사 계원예술대학교 명예교수 이기성

    “그런데 말입니다”로 유명한 김상중 탈렌트가 KBS TV 드라마 <징비록>에서 서애 류성룡 역할을 그럴듯하게 잘하고 있다. 서애 류성룡은 학자이면서 동시에 실천 결과를 더 중요시한 행정가였다. 임진왜란 때 영의정에 오르게 되고 4도 도체찰사(전시의 최고군직)가 되어 당쟁과 전란 속에서 조선의 조정을 총지휘하며 가증스러운 선조를 잘 다스린다. 당색은 동인이지만 당리당략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요즘 우리나라에도 꼭 필요한 인물.

    서애 류성룡은 1542년(중종37) ~ 1607년(선조40) 조선의 문신 학자로 총명과 예지가 남달리 뛰어 났고 일찍부터 학문에 힘을 써 20세

  • 작성자 15.05.19 14:52

    에 퇴계를 찾아가 글을 배웠다.
    임진왜란 발발 시 좌의정으로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던 그는 다시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하였다.
    선조가 난을 피해 길을 떠나자 같이 갔으나 평양에 이르러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했다.

    한양 수복 후, 다시 영의정에 복직되었다.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오자 훈련도감을 설치, 제조에 올라 군비를 강화하고
    인재를 배양하였다. 그러나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년 북인들의 탄핵을 받아 또 관직을 삭탈당했다.

  • 작성자 15.05.19 14:52

    조정에서는 다시 선생을 불러 벼슬을 제수하였으나 74회나 사양하고,
    고향인 하회와 군위에서 학문과 제자 양성에 여생을 보내면서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 <서애집>, <영모록>, <징비록>, <신종록> 등을 남겼다.

    임진왜란은 임진년(선조 25년)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간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 작성자 15.05.19 14:53

    임진왜란의 발발 원인은 국내, 국외 두 가지로 생각된다.
    조선 국내의 원인은 오랜 평화로 국방 정책에 소홀하였다. 무능한 선조는 이이의 십만 양병설을 무시하였으며
    양반 계급의 세력 싸움으로 국론이 분열되었고 조세 제도의 문란으로 민심이 극도로 혼란하였다.

    국외의 원인은 명과 왜의 각기 국내 상황 불안전이다.
    명은 망하기 직전의 극심한 국내의 혼란 시기여서 반란군 진압에 힘들어 했고
    차기 왕은 이자성의 반란군을 진압하지 못하고 자결을 하여 명나라 주씨 왕조를 끝내고 만다.
    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등장하여 100 여년 간 계속되어 온 내란을 수습하고 통일 국가를 수립하였다.

  • 작성자 15.05.19 14:54

    그러나 히데요시는 투항하거나 정복당한 제후의 불평불만을 전쟁으로 잠재우고자 조선과 명에 대한 침략을 시도한다.
    1592년 4월 13일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요약 연표]
    1592년 4월13~15일 왜군 15만명이 부산성을 공격. 부산, 동래전투
    1592년 4월 28일 광해군 세자 책봉, 충주 탄금대전투 패배
    1952년 5월 3일 한양성 함락
    1592년 6월 13일 선조 명나라로 망명하기로 결심. 광해군 분조 발족
    1592년 6월 15일 평양성 함락
    1592년 7월 8일 한산도대첩 대승

  • 작성자 15.05.19 14:55

    1592년 7월 23일 임해군, 순화군 포로로 잡힘
    1592년 10월6~11일 진주대첩
    1593년 2월 22일 행주대첩
    1593년 1월 9일 조명 연합군 평양성 탈환

    1593년 4월 19일 한양 탈환
    1593년 6월 29일 임해군, 순화군 석방
    1597년 1월 13일 왜군 재침략(정유재란)
    1597년 2월 26일 이순신 체포됨. 한양으로 압송
    1597년 3월 30일 이순신 석방, 백의종군
    1597년 7월 16일 원균 칠천량해전 패배

  • 작성자 15.05.19 14:58

    조명 연합군이 1593년 1월 9일에 평양성을 탈환하고, 그 후부터는 명군이 거의 패배하고 이여송은 요동까지 도망가고...
    챙피한 역사입니다. 의병과 수군이 없었으면 조선은 없어졌을 것입니다...
    뚱강 올림

  • 작성자 15.05.19 14:59

    http://www.kg60.kr/?MID=bInfo&IDX=2342&IDX2=256178&page=&searchType=&searchVal=&CBIDX=690

  • 작성자 15.05.20 15:36

    명주님, 옳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사건을 정확하게 날짜순으로 정리한 데이타베이스가 없습니다. 꼭 필요합니다. 뚱강올림..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