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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엄 명사여! 속환사바 광도중생 하시라 | ||||||||||||||||||||||||||||||||
3천여명 애도 속 영결·다비식 엄수…8일 봉녕사서 초재 후 49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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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어른을 잃었다. 천진도인 도천 대종사와 원로의원 정무혜정 대종사에 이어 세주당 묘엄(世主堂 妙嚴) 명사(明師)도 세연을 다해 환귀본처했다. 조계종단의 현대사에 큰 획을 그었던 봉암사결사에 동참했던 묘엄 명사는 존재 자체 만으로도 한국불교의 버팀목이었고, 그의 존재는 조계종단내 비구니의 위상을 드높이는 원동력이었다. 1971년 수원 봉녕사에 자리잡은 이후 40여 성상을 후학양성에 매진했던 묘엄 스님은 평소 "항상 자신의 몸과 입과 뜻으로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청정한 본연의 자리에서 마음 씀씀이와 행동거지를 살필 줄 알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알며, 스스로 참회할 줄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던 묘엄 스님은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가리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은 귀한 사람"이라고 칭했다. 2일 생의 끈을 놓는 순간까지도 후학을 위해 "마음공부는 상대적인 부처님을 뵙고 절대적인 나 자신을 찾는 것"이라며 "자기를 단속하여 인천의 사표가 되고 생사에 자재하여 중생을 제도하라"고 임종게를 남겼다.
묘엄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은 전국비구니회장(葬)으로 6일 주석처였던 수원 봉녕사에서 엄수됐다. 행장을 소개한 성일 스님(화성 신흥사 주지)은 묘엄 스님에 대해 "세속의 때를 벗고 승가의 가풍을 익히느라 수행의 향기가 가득한 도량, 소중한 스승이 계셔서 더욱 청정한 도량, 광교산 봉녕사 승가대학의 학장이자 금강율원의 율주로서 후학 양성에 전념해 오셨던 대강백이자 청정율사"라고 찬했고, 또한 "성철 스님의 선, 자운 스님의 율, 운허 스님의 경을 이어받아 척박했던 시대적 상황과 역사 속에서도 철저한 수행과 후학양성으로 일관하며 모든 대중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고 칭송했다.
전국비구니회장 명우 스님은 영결사를 통해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신 장엄한 봉녕사 도량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스님을 보내드려야 할 것 같다"며 "도제양성과 지계청정, 중생제도의 서원을 잊지 말고 학처럼 높은 기상과 우아한 자태로 속히 돌아오시라"고 애도했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묘엄 명사의 원적에 대해 "겨울 삭풍이 하루 종일 뜰 앞을 지나가더니 회귀의 문을 열고 하늘에 별들이 빛을 거두어 제자리로 돌아가더니 지난 밤에는 무서리가 뜰 앞에 내렸다"고 슬픔을 전했다.
법전 스님은 "이 세상에 생멸의 거듭함을 피하고 무너지고 소멸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며 "명사의 사중득활(死中得活)의 원음(圓音)이 있으니 대중은 듣고 있는가? 창천(蒼天), 창천이로다"라고 법문을 내렸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최초의 비구니에 견주어 '이 시대의 대애도 고타미(大愛道 瞿曇彌)'라고 칭송했다. 자승 스님은 "주석한 곳곳은 명실 공히 승가교육의 요람이 아닐 수 없으며, 오늘날 우리 종문의 수많은 비구니를 길러낸 진정으로 이 세간을 맡으신 분(世主)이며, 수행과 교육으로 불회상을 장엄하신 이 시대의 대애도 고타미"라며 "그 원력 여의지 않았으니 다시 오시는 날 대웅전 앞 향나무는 스님의 향훈을 잊지 않고 기뻐하며 맞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전계대화상 고산 대종사는 "60여 성상의 아낌 없었던 그 원력은 수많은 출가자의 모범이 됐다"며 "평생 교육도량으로 일군 이 곳 봉녕사에서 스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사부대중이 모여 법향을 피워가며 스님을 애도한다"고 추모의 뜻을 전했다. 묘엄 스님의 도반이자 비구니계를 이끌었던 운문사승가대학장 명성 스님은 "통도사 보타암과 진주 도솔암에서 운허 스님께 경학을 배우던 도반 스님, 함께 동고동락했던 과거가 생각나지 않으냐"며 "속히 사바에 돌아와 재재처처(在在處處)에서 미혹한 중생을 구제하자"고 강조했다.
영결식 직후 연꽃 상여로 장식된 스님의 법구는 대불광전에서 마지막 3배를 올린 뒤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마지막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새끼줄과 장작더미로 마련된 연화대에 법구가 들어가자 도열해있던 문도스님들과 불자들이 "큰스님"을 외치며 흐느꼈다. 거화봉에 불이 붙여지고 거화와 함께 "큰스님 불들어갑니다" 합창과 함께 연화대에서 거센 불길이 솟아올랐다. 조계종단의 산증인이자 한국불교의 큰어른이었던 세주당 묘엄(世主堂 妙嚴) 명사를 우리는 또 이렇게 보냈다. 스님의 사리는 고유한 승가 전통에 따라 별도로 수습하지 않는다. 49재는 8일 초재를 시작으로 15일, 22일, 29일, 1월 5일, 12일, 19일 봉녕사에서 봉행될 예정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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