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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6(제출일) - 1
나는 누구인가
자아(自我)라는 단어를 배우게 된 게 언제쯤인지 돌아보았다. 그 단어가 언젠가부터 막연하게 머리 속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중학교 쯤 도덕 교과서에서 그 단어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한 거 같다. “자아 실현”이라는 문구를 통해서.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내 안에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들기 시작했다.델포이 신전에 씌여져 있다는 ‘너 자신을 알라(GNOTHI SAUTON)’는 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 같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 그리고 바람직한 자아의 실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언제나 그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누구지?’ 라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상대에게 어쩌면 그걸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을 거라는 대답을 역으로 듣기도 했다.
“나를 찾아가는 수업입니다”는 교수님의 발언은 나에게 하나의 자극이 되어서 찾아왔다. 내가 바라던 수업이다는 외침이 내 안에서 들려왔다. 수업시간을 통해 우리는 크리슈나무르티의 ‘I am the world’를 라는 말을 배웠다. 생각했다. ‘내가 세상이라고? 내가 그렇게 큰 존재인가?’ 그리고 교수님으로부터 “사실”과 “생각”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나에게 다가온 충격은 사실과 생각이 다르다는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왜 다른가. 내 생각은 언제나 사실에 대한 감상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말이다.
그 수업이 있기 전날 나는 학회의 술자리에 참석했다. 술을 지나치게 많이 강요당하지는 않았지만 원하지 않는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리고 수업 시간 내내 내 머리 속에서는 그 술에 대한 악몽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에겐 술자리에 대한 괴로움 그 자체가 사실이라고 느껴졌다. 그 순간 술과 담배에 관한 예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술자리는 사실이다. 그러나 분명 누군가에게는 그 술자리가 즐거웠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싫은 자리였을 것이다. 그것은 저마다의 생각이다.
그 모든 생각은 내 안에서 생겨나고 그 생각들은 내가 경험해온 행위들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술이 싫다고 느끼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않았다면 술자리에서 나는 분명 아무 감흥이 없었을 것이다. 다만 술을 과도하게 마셔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나에게 있었고, 취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직접적이었건 간접적이었건 나의 경험에 의해서. 그리고 그 생각 때문에 나는 괴로워했을 것이다. 결국 나는 내가 의식에 의해서 움직인 셈이다. 그렇다고 보면 나는 곧 의식인거고, 의식 역시 경험에 기초하여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게 곧 스스로의 나 곧 자아가 될 것이다.
언젠가 무한관계 속의 무한관계라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인 즉, 사람은 세상의 무한한 대상과 무한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이 수업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무한한 대상과 연결되어있고,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세상만큼을 의식할 수 있어서 세상은 곧 무한한 대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되어졌다. 결국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나와 나의 자아가 형성되고 세상에 생각과 경험이 나를 만들기 때문에 나는 곧 세상의 모든 것을 닮아가고 결국은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 뒤에 남겨진 것이 있다. 내가 곧 세상이라면,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끊임없는 성찰과 질문, 그리고 의문을 생성하는 가운데 수업은 계속될 것임을 안다. 다만 이번 강의를 통해서 나는 사실과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고, 나는 누구인가 보다는 나 자체는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생각을 바탕으로 세상인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03/23(제출일) - 2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언젠가 아는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들들이 있어도 난 늘 외로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춘기 시절,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두려움과 깊은 고독에 사로잡혔다. 누구도 나의 사춘기적 감수성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어른들의 경험은 나와는 다른 그 무엇이었을 거라고, 그리고 내가 부딪히게 되는 세상은, 뉴스에 보도되는 세상은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물질적이고 비인간적인 것들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날의 내 모든 감수성은 그렇게 두려움과 갖은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살아도 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세상이구나. 왜 그토록 삶의 본질적인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시를 읽기 시작했고,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를 내 외로움에 대한 정의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김수영 시인의 “푸른 하늘은”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혁명은 고독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결국 인간의 삶에 있어서 외로움과 고독은 필연적이고, 숙명적인 삶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심연에 가득 찬 이 슬픈 숙명을 거두어내고 싶었다. 어느 누구도 그 슬픔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앞서 말한 두 시인들처럼 사람들은 고독을 숙명으로 인식하고 수용, 급기야는 체념의 단계에 다들 다다른 거 같았다. 우리는 오늘도 외롭다. 저마다의 가슴에 새겨진 외로움을 품고 오늘도 우리는 외로움과 외로움을 더해 더 깊은 외로움을 새긴다.
여러분은 행복합니까. 아닙니다. 나는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이지 아직 행복한 거 같지는 않습니다.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꿈꾼다. 그리고 중학교 때 허영자 시인의 작품에서 일상 생활 속에 감추어진 행복의 기쁨에 대해 배운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런 시를 배운다는 것은 ‘본질적인 슬픔을 거두어내지 못한 채 우리는 표면에서 슬픔과 행복을 교차시켜내는 훈련을 하고 있다’의 다른 상징인 거 같았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동물인 까닭으로 내가 놓인 환경에 따라 나의 사고는 형성된다. 바꿔 말하면 “세상이 행복을 줄 수 있는 곳이 못되므로 나는 행복하지 못합니다” 라고 역설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태초부터 행복은 불가능했을까. 거대한 자연과 온갖 짐승들 앞에서 말이다. 불안이 가득한채로.
“I am the world, the world is me. 내가 세상이고, 세상이 나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주 어릴 때, 그리고 사춘기 때까지 나는 이 모든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더불어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내게는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나이를 먹고, 공부를 계속하고, 돈도 벌게 되면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거 같다는, 그리고 나 혼자서는 불가능하다는, 우리 모두는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I am the world, the world is me는 앞선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온 내게 큰 충격이 되어 찾아왔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많은 시간을 생각했다. 나는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어떤 가치를 향하여 바꾸어야 하는가.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정답이 정해진 논의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바른 가치라고 여겨지는 것을 향해 나의 삶을 내맡기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가, 그렇기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늘 고민해오던 내 삶의 화두를 오늘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너는 세상이다. 그래서 너의 변화로부터 세상은 변화될 수 있다. 가치로운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자. 언젠가 네가 일하고 싶은 UN 산하의 많은 기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세상에 마이너리티들이 존재하지 않는가하고 말이다. 아직도 나는 참된 외로움을 해결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다만 나는 그 외로움을 알기 때문에 그 외로움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외로움도 나누면 반이 됩니다.'
03/30(제출일) - 3
지구별은 내 안으로 수렴합니다(『지구별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읽고)
어느 때보다도 성찰에 대한 가치를 더하고 있는 2006년의 봄이다. 새로 다가서는 봄에 준하여 나는 나의 생각들을 하나씩 풀어내고 있다. 그 계기를 주는 몇 가지가 있다. 내가 듣는 교양 「신화와 종교」가 그러하고, 삶에 대한 성찰을 주는 내가 만난 케이 할배가 그러하고, 얼마 전에 참석한 박노자 강연회에서 박노자가 비판한 ‘종교’가 그러하고, 요즘 내가 매주 토요일 참석하고 있는 포어 성경학회 Santos가 그러하다.
나는 무교이지만, 최근에 사뭇 새로운 성찰을 하게 되었다. 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사고의 작용 때문이었는데, 그들이 자신 삶의 모든 것을 신에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이 참된 자아가 결여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자신의 의지란 없었다. 오로지 신의 뜻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결국 신화와 종교의 기원을 배우면서 생각했다. 인간의 정서적 나약함과 삶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얼마나 의존적인 삶의 형태를 만들어 가는가에 대해서.
케이 할배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케이 할배가 말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와 현재 나의 삶을 비추어보았다. 종교에 관한 앞선 나의 생각이 그랬고, 이미지에 대한 생각에서도 나는 나의 삶을 투영하면서 고객을 끄덕이게 되었다. 끊임없이 하고 있는 그러나 뭔지 모르겠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언젠가 목숨 받쳐 사랑한다고 믿었던 한 남자과 이별을 하고 난 후에 나는 내가 얼마나 그 사람을 소유하고 싶어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내 기억에서 사라져 갈 때쯤에 내가 참된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내가 만든 그에 대한 이미지를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미 그는 떠나고 없었다.
어쩌면 우리는 사랑이라고 믿는 것뿐이 아닌 그 모든 것에 내가 바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에게,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로인해 다툼과 시기와 투쟁을 반복한다. 내가 원하는 이미지에 그들이 부합하지 않았을 때. 그리고 그런 상대방의 이미지가 나를 억압할 때 우리는 차이가 아닌 차별을 느끼고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나에 대한 자괴감, 상대적 박탈감에 놓이게 되는 것 같다.
나는 한적한 밤에 홀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더러는 미친 놈 같아 보이지만 중얼 중얼 나에게 말을 건네 본다. ‘오늘 하루는 어떠니’를 시작으로 내가 만난 모든 상황과 사람들에 대해 내 나름의 성찰을 시작한다. 적어도 그 시간에서 만큼은 거짓은 없다고. 나를 끄집어내어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 속에 나는 잠시라도 나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타인을 벗어난 나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 적어도 나에게 대화를 건네는 순간은 일기를 쓰는 순간 이상으로 솔직한 대화를 건넬 수 있게 되는 거 같다.
고등학교 때 ‘너를 소개해 보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내 이름부터 시작해서, 성별, 내 출신 중학교, 가족 등등 수많은 것들을 말하게 되었다.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무수한 세상과의 관계로 얽혀있는가를 단적으로 볼 수 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상대방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의 가치를 부여받는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고 보면 ‘나’라는 존재는 고유한데 나를 둘러싼 수많은 개체들이 미분이 되어 조각조각 나를 둘러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 성별, 인종 등등의 수 많은 분화된 개념들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입시 공부를 할 때 엄청나게 힘든 슬럼프를 겪은 적이 있었다. 나보다 주변에서 더욱 심각한 염려와 우려를 보냈다. 빨리 그 슬럼프가 끝나기를 기도하면서. 그러나 그런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말했다. “심리적으로 오는 고통을 왜 억제합니까, 즐기면 되죠, 언젠가 이런 고통에 지겨워 지면 다시 현실로 돌아가있겠죠, 이렇게 밑바닥까지 한 번 내려갔다 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몇 주가 지나지 않아 나의 슬럼프는 끝이 났고, 나는 다시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가끔은 살다보면 당위성에 나를 짓누르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삶의 허무를 느끼게 되는 순간도, 두려움에 떠는 순간도. 그러나 깊은 당위성은 돌아보면 나를 악하게 하는 무엇으로만 작용했던 거 같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내가 제자리로 돌아갈 거라는 믿음하나로 그 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나의 슬럼프는 잦고 고통을 수반했지만, 그 때마다 나는 성숙해져가는 나를, 견고해져 가는 나를 볼 수 있었다. 한껏 슬프고, 한껏 기쁘고, 한껏 아프며, 한껏 분노하면서. 그냥 내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하는 내 자신으로 살고 싶었다. 아직도 잘되지는 않지만.
현실에 대한 무게감과 책임감이라는 생각에 나를 죽음으로 치닫게 했던 순간을 돌아서 죽음도 삶의 다른 형태라고 생각하게 된 지금 나에게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남았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는 가사를 통해서 나는 주어진 하루 하루를 삶의 끝이라고 믿으며 살기 시작했다. 시간의 흐름은 살아도 길들여지지 않는 무엇이기에 매일 매일이 죽음이라고 생각하자고. 그래서 어쩌면 그 순간 순간의 내 감정에 솔직하고자 다짐한 건지도 모르겠다.
케이 할배의 말을 들으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보고, 또 익숙해져 있던 내 모습을 보면서 나를 한 번 되새김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순간 순간의 대화들과 관련된 내 일련의 사건들이 머리 속을 하나씩 스쳐갔다. 더불어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UN에서 일하겠다는 내 생각이 역할이 아닌 지위에 대한 관심은 아니었을까를 반성도 해보면서, 내가 보다 본질적으로 바라는 것에 대해서 성찰하기로 했다.
아직도 나는 케이 할배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직 그 가르침이 내 삶에 전율이 되어 다가오지는 않는다. 다만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수업의 목표점을 알 수 있을 거 같았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아주 감히 이 책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성찰의 정도에 따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다르게 깨우칠 수 있는 가르침의 교본이라고. 아마도 평생을 두고 읽어야 할 거 같다.
04/13(제출일) - 4
사하라 사막으로 가면 좀 달라지겠습니까?
감수성이 점차 메말라 가고 있다. 이런 날엔 역으로 사하라 사막에서 진정한 육체적 메마름을 통해 정신적 메마름을 해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점차 사랑에서 멀어져 가는 나를 발견하면 할수록 자유롭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은 실로 당연하다. 그게 요즘 미칠 듯이 사냥개에게 쫓겨 달아나는 내 모습이다.
하루는 학회에서 전공 언어 트레이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이었다. 그냥 털썩 앉아버렸는데 나도 모르게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발견했다. 다 큰 아이가 버스 안에서 질질질 울고 있었다. 가서 살며시 손으로 눈물이라도 훔쳐내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냥 그대로 버려두었다. 한참을 울고 나면 그 나마 마음속의 앙금이라도 소금물과 함께 눈 밖으로 나올까 하여.
왜 그날 그렇게 울었냐고 물어보면 나는 무수히 많은 사냥개가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하겠지만, 생각하고 보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시험 성적 때문이고, 동기가 나보다 더 잘했기 때문에 나온 불쾌감이었으리라. 입으로 동기 사랑을 외쳐도 나도 숫자의 노예이고 말았다고 부정할 수 있을까. 중학교 때부터 무수히 등수와 성적의 노예로 살아오면서 그렇게 숫자를 부정하고도 나는 결코 숫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왔던 것이다. 평생을 그렇게 나는 또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안된다. 정말 안된다. 그건 내가 갈망하는 삶이 아니다.
자유를 찾아 떠나고 싶던 무수한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그렇게 많은 일탈을 해왔는지 모른다. 가출 흉내도 내어보고, 훌쩍 여행을 가버리고, 죽음의 끝엔 자유가 맞닿아 있을 거라고 정신적으로 암울했던 사춘기 시절 그토록 자살을 애무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자유를 꿈꾼다고 입으로는 말하며 내 삶에 가득한 역마살을 쓰다듬고 있지만, 실제로 자유를 꿈꾸는 까닭은 역마살이 내 안에 가득해서가 아니라 역으로 삶이 무수한 족쇄들로 얽매여 있는 까닭이었다. 이 무수한 족쇄를 다 끊고 싶기 때문에.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조심스레 부모님께 이야기를 꺼냈다. 짧고 단호한 이야기 “나는 네가 한국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 순간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지는 나의 진로 문제. 그리고 전공 언어권 지역으로 어학연수가 가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느끼는 무수한 현실의 무게들이 있다. 하루쯤 날씨가 좋아 수업을 안 들어가고 놀러가고 싶다가도 학점에 대한 걱정, 그리고 첫 학기 전출해보겠다는 다짐이 정작 나를 속박하는 또 하나의 사냥개가 되고 말았다. 하루쯤은 다시 한 번 술을 먹고 길거리에서 나뒹굴어 잠들어 보고 싶지만 그런 나를 향한 세상의 시선과 부모님의 염려가 또 다시 나를 제어한다.
과 행사에 참석하라는 제안을 받고 가고 싶지 않은 장소였음에도 두려워서 버려진다는 것이 두려워서 참석하고, 때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도 웃으면서 말하고 있다. 좀더 진보적이고 이성적이고 능동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거스르는 운동권 아이가 될까봐, 그리고 그런 것이 앞으로 내 삶에 문제가 될까봐 오히려 의식이 있었다고 말하는 한 젊은이는 점차 보수주의자가 되어가고 있다. 아는 동생이 나누어주는 부당한 노동자 해고에 대한 글을 받아들면서 ‘내가 예전엔 이 아이에게 그런 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던 사람이었는데…’ 이내 너무도 많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유년을 지나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갈수록 보수주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삶의 안녕. 안녕. 안녕. 이렇게 외치다보면 안녕을 추구하기 위해 보수주의와 안녕을 해야할 거 같다. 꼭 사상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난 진보주의자도 아니고 보수주의자도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보수주의가 말하는 안녕과는 안녕해야 하는 것은 사실인 거 같다. 그들의 안녕은 주류만을 위한 안녕인 까닭이다. 그러나 지금 그 배를 타기 위해 내가 바둥대고 있다.
이런 식의 나를 속박하는 무수한 사냥개들과 현실의 무게로부터 나는 자유롭지 못하고, 그로 인해 내가 꿈꾸던 사랑법도 잊어가고 있다. 한 남자에 대한 사랑, 내 가족과 주변인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 땅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사랑. 그 모든 내가 꿈꾸는 사랑을 말이다. 사랑, 그저 무한히 순수하고 자유로운 내 영혼에서 세상을 향해 내던지는 빛줄기. 그렇게 사랑을 말한다면 내 안엔 참된 사랑이 있었을까. 그 누구를 사랑해 본 적이 있었을까.
있었다. 아주 감히. 내가 안녕을 갈망하지 않던 유년 시절엔. 그러나 어쩌면 그건 그 때 한 은사님께서 내게 지적하신대로 무지의 소산일 뿐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룻강아지의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한 사람에 대한 무조건 적인 맹신. 그러나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해 줄 수 있다면 이제 나는 내 스스로 자유롭지 못할진데 어떻게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나의 이해타산적인 계산과, 타인이 지닌 조건에 대한 사랑이겠지. 한 영혼에 대한 맹신은 더는 발생하지 않으리라.
그로인해 나는 지성인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나의 젊은 청춘을 소멸시켜가고 있다. 자유롭지 못하다면 지성인이 될 수 없다. 나는 지금 자유롭지 못하고 그 때문에 한껏 소리 높여 외칠 수도 없다. 외침은 곧 나의 다른 삶의 안녕을 앗아갈지도 모르니까. 오늘의 나는 지성인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청춘이다. 자폭하고 있는 지금 오늘의 나의 삶이 부끄럽기만 하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나에겐 또 다른 슬픔이고 비애이다.
그런 우리를 가리켜 이렇게 말하는 것도 같다. “요즘 대학은 낭만이 없어” 낭만. 낭만. 어쩌면 낭만이라는 단어가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의 낙엽을 상징하는 것만은 아니리라. 화창한 봄 날에 캠퍼스에 울려퍼지는 통기타 소리만을 의미하지는 않으리라. 그 시절 그 때의 대학에 낭만을 말한다는 것은 성적에 구애되지 않았고, 의식과 사상의 토로가 시대적인 흐름이었고, 그로인해 너와 나의 경계가 오늘처럼 이기적이지 않은 이타적인 삶 일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것은 곧 사랑이었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그들의 목소리는 이미 지성을 표방하고 있었을 것이다.
넓은 의미의 사랑도 좁은 의미의 사랑도 지금 내 안에 없다. 어쩌면 참된 자유가 더더욱 없다. 떠나고 싶은 날에도 나는 문법 책을 들고, 사전을 들고 골방에 박혀 공부를 하고 있다. 부끄러운 청춘의 자화상이다. 참된 지성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디에 가면 순수한, 맑은 영혼의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답답함 + 알파 (날짜 : 2006.04.20 11:16)
마지막 전공 시험이 2개가 남았는데,
솔직히 하나는 공부할 필요가 없는 시험이고, 회화시험이라~ 딱히..;; 그 수준이라는 것이 아직 다들 미미하여~
하나는 강독 시험인데, 텍스트를 다 외워야 하지만, 관사의 문제들만 해결하면, 아는 단어들로 대충 작문할 수 있는 정도라..
그래서 잠시 여유를 가지고자 하였으나 여유는 본질적으로 지금 내 안에 없는 거 같습니다.
강독 시험을 4과 정도까지 공부를 하다가 숨이 막힐 거 같아서 까페에 들렀습니다.
어제 전공 문법 시험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 따위 답안을 내자고 죽도록 공부했나..
성적은 아직 모르겠지만, 썩 제 마음에 드는 답안은 아니었습니다.
60페이지에 해당하는 작문 예문 텍스트를 다 외워야 했기에, 몇주간에 걸쳐서 다 외웠는데..
막상 시험지를 받고 보니, 머리가 새하야 지면서 1번부터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5분 동안 한 문장도 적지 못했습니다. 한참후에야.기억이 나는대로 하나씩 천천히 적어갔죠..
결국 몇문장은 적지도 못하고, 어떤 건 해석도 제대로 못하고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한채로 답안을 제출했습니다.
어쩌다 제가 상대평가의 세대에 살아야 하는지,
중학교 때는 비평준화 고등학교에서 그래도 명문에 속하는 곳을 가겠다고 발버둥치고,
고등학교 때는 그래도 명문대를 가야 한다고 발버둥치고, 재수, 삼수까지 하면서..
늘 학교에 갔고, 늘 시험을 봤고, 늘 자퇴를 꿈꾸고, 늘 성적에 절망하고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말하면서도 문제아의 반열에 들어본 적도 없는 평범하고, 때로는 모범생처럼 착각을 일으키는 놈이였습니다.
대학에 오면 좀 다르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똑같습니다.
왜 꼭 수업에 들어가야 하는지, 왜 학점이 나쁘면 안되는지, 왜 꼭 취직을 해야하는지, 왜 꼭 돈을 벌어야 하는지,
그 모든게 저에게 의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모든 걸 부정하며 살아갈 자신도 없으면서..
이 수업은 즐겁지만, 까닭 없는 즐거움을 제게 주지만 때로는 엄청난 고통입니다.
즐거움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고, 고통은 아직 그 희망하는 대상에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우스운 건 생각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는 그 수업에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는 겁니다.
제 자신이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 정도는 이제는 알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알지만, 알기 때문에, 남들과 이제는 다르게 살아가고 싶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욕망이 내 안에서 꿈틀댈 때 한없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낍니다.
그래서 다시 남들처럼, 남들처럼을 외치고 맙니다. 그런 쳇바퀴를 하루에도 수십번 돌고 있습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데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시험이 끝나기 무섭게 학회에서는 엠티를 간다고 하던데,
막상 그리고 나면 그 다음에주에 있을 보고서와, 상시 시험, 수필, 세미나 등이 걱정입니다.
숨을 쉬고 싶습니다. 미친듯이 밀려오는 과제들에 그리고 나를 좇는 사냥개들 때문에 숨이 막힙니다.
04/27(제출일) - 5
마침표는 NO!! 느낌표는 YES!!
한 차례의 입시를 마치고 원치 않는 학교에서 원치 않던 전공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 내 안에 두개의 자아가 있어요. 현실적 자아는 학교에 적응하라고 하고, 이상적 자아는 학교를 관두고 네 꿈을 다시 찾으라고 하고 있어요. 아는 분께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현실적 자아는 무엇이고, 이상적 자아는 또 무엇일까. 현실적인 생각을 할 것과, 좀 더 내 감정에 충실한 생각을 할 것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저 그런 현실 불평적인 생각의 충돌.
지금와 생각해보면 관찰대상과 관찰자를 아주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관찰 대상은 너무도 괴로워하고 있다. 그냥 그 순간이 싫다는 것뿐이었다. 물론 싫다는 것에는 또 다른 생각들이 관여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관찰자는 관찰 대상을 두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시 공부를 한다면, 부모님께 말씀은, 사회의 시선은, 그러자면 앞으로 어떻게 등등.. 그냥 그 순간이 싫은 것 그게 사실의 모든 것이었는데 말이다. 결론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럼 이렇게 다시 물어봐야 한다. 그대는 정녕 행복한가? 그런데 또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합격의 순간, 그 순간만 행복했을 뿐, 그 안에서 벌어지는 그 모든 일들을 두고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다시 나는 고민에 빠져서 생각했다. 막상 현실은 생각과 달랐어. 그럼 현실이 냉혹한 것일까, 내 생각이 철없던 것이었을까.
현실은 냉혹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이 생각과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너무 생각 중심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 된다. 현실에 맞는 생각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물론 세상과 타협하라는 의미의 현실이 아니다. 알아채기를 말한다). 우리는 오늘도 생각한다, 인지한다, 깨닫는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고 정리한다. 그렇게 생각이 쌓이고 우리는 우리가 정리한 생각들과 알고 있는 모든 가르침이 지식이며, 진리이며, 앎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 생각과 지식의 틀에 나를 가둔다. 그것은 곧 나의 수몰이며, 인식과 생각이라는 감옥에 나를 가두는 것이 되고 만다.
‘나’는 그런 생각들이 똘똘 뭉쳐서 만들어진 생각의 산물이며, 나를 구성하는 자아도 결국은 그런 놈인 셈이다. 그런 나의 ‘자아’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분명 ‘보여짐을 당하는 나’는 ‘보고 있는 자아’가 해왔던 익숙한 행동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보고있는) 나는 (보여지는) 나를 불쌍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보고있는) 나는 적어도 내 안에서 (보여지는) 나만큼은 다를거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제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나도 인습적인 사고를 답습하면서 그것이 진리라고, 참된 가치라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살아있지만, 인간의 삶은 죽어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이 현재를 살아갈 줄 모른다. 지난 과거에 축적된 생각과, 흔적과, 기억, 추억 속에서 산다. 그리고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한다. 과거에 그러했었다는 생각과, 과거에 그러했더니 좋더라, 안좋더라의 판단으로 모든 걸 측정하고 판단한다. 우리에게 정녕 참된 지금은 없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좀더 좋다고 여겨지는 것에, 미래를 위해 좋을 것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투자한다. 그런 생각으로 어떻게 사람을 새롭게 받아들이고,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나 역시 그렇게 불행한 인간의 삶을 물려받았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답습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늘 현실에 불만족스러웠고, 현실을 떠나고 싶어했다. 현실 그 자체가 싫은게 아니었다. 현실을 재단하도록 만들어져 버린 내 생각 때문에 나는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촌각을 바라보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과 인습적인 가치관에 내가 얽매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을 늘 현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내 자신은 얼마나 불쌍했을까.
사람들은 늘 죽는 것이 두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살아가는 것이 두렵다.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두렵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더 두렵다. 삶이라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 어떠해야 한다는 앎에 의해서 정의되어지기 때문에 나는 삶이 더 두렵다. 그냥 그대로의 순간을 받아들이고 맞부딪혀 살 수 있다면 인간들에게 죽음은 과연 그렇게 두려운 존재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두렵기 때문에 우리는 정신적 피난처로 종교와 철학이라는 또 다른 생각과 사유의 터전을 찾아나서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생각을 떠나 생각의 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현재 없는 현재를 살아가는 한 언제까지고 인간의 삶은 불안 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래서 그 순간 순간을 있는 그대로 느끼며 살아가자고 크리슈나무르티는 ‘알아채기’를 말한 것은 아니었을까.
의식이 깨어있으라고, 지성인이여 깨어있으라고 외치는 것의 의미가 되새김되어야 할 때인 거 같다. 깨어있어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이며, 그 순간 순간에 대한 냉철한 자각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각을 통한 인습적인 사고로부터의 자유를 얻고, 조건 없고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 깨어있는 느낌표 가득한 삶을 살아보자. 마침표를 찍는 순간 그 모든 것은 과거이고, 결론이고, 생각이 되고 만다. 삶의 종착과 종지부에서 마침표를 연발하기 보다는 그 순간을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다보면 지구별은 그렇게 다시 우리의 순간과 함께 하고 있지 않을까.
05/04(제출일) - 6
이제는 갈등의 충만으로부터 등을 돌려야 할 때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숄 몇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마하트마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 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며 한 말이라고 한다. 이것이 갈등과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러나 나는 갈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항상 무소유라는 말과 함께 간디의 이 말이 떠오른다.
갈등의 본질은 무엇일까. 나는 감히 갈등을 욕망의 표출이라고 말하고 싶다. 갈등하는 이유의 끝에는 감출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 존재할 것이다. 인간에게 욕망이 없다면 인간에게 갈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어찌보면 태초부터 고유한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타인과 비교하기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삶의 형태는 갈등을 심화 시키는 작용을 해왔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실수입이 훨씬 많은 미국의 연금 대상자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의사를 비교했을 때 삶에 대한 만족도에서 아프리카의 가난한 의사가 삶에 대한 만족지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아프리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지위나, 명예 등이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예를 든 것은 물질적인 것에 한하지만 갈등이라는 것을 들여다보자면, 그 결말은 분열로 이어지게 된다. 서로 다른 가치, 이념, 생각 등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는다면 그 끝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외대 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보면 그 양상이 첨예하게 대립함을 알 수 있다. 학생회와 다함께는 등록금 인상에 대해 학교에 반발하고 있다. 그리고 노조는 부당해고라는 이름으로 학교에 저항하고 있다. 학생회는 학교에 저항하고 있는 노조를 향해 학생권리 침해라는 이유로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다함께는 노조를 무력으로 진압했다고 주장하며 학생회에 반기를 들고 있다.
그들에게는 저마다의 입장과 저마다의 논리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를 위한 입장이며, 논리이던 간에 그것은 분명 전체를 통합할 수 없는 각각 집단 간의 주장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서로간의 이익을 위한 갈등은 대립을 낳고, 분열을 초래하며 그 피해는 그 어느 입장도 표명하지 않은 그 외의 많은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게 된다.
단적으로 석유를 둘러싼, 석유를 얻기 위한 부시의 이라크에 대한 입장에서 약소국의 이름으로 파병을 강요당하게 된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희생당하고 무고한 그 땅의 국민들이 피해 받는 것은 누구에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언제나 어디에서나 분열되고 갈등된 사회에서의 피해자는 약자이고, 마이너리티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인류의 삶을 두고 진보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진화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다양한 각도에서 그 문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변화하는 세상에 맞추어서 인간은 또 다시 변하가지만 인간이 결코 ‘참된 인간을 위한 세상’에 적합한 형태로 변해가는 것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지금 우리의 삶에 팽배해져 있는 이기주의, 물질 만능 주의 등이 우리의 삶을, 나의 삶을 황폐하게 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결국 나의 금욕을, 구원을, 자유를, 나의 순수성을 먼저 회복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척박한 세상에서 우리는 스스로 얼마나 분열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고 있는가. 덧붙여 그런 개개인이 모여 다시 세상을 구성한다고 하면 우리는 분명 분열만이 가득한, 미분형태의 조각난 삶과 조각난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갈등 있는 한 우리는 분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분열되는 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없으며, 사랑할 수 없는 한 우리에게 참된 자유 또한 찾아올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갈등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버리는 삶의 모습, 비워내는 삶의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05/11(제출일) - 7
숙명을 거스르는 몸짓으로 자유를 갈망한다
(* 교수님께서 이 글이 제가 쓴 수필 중에 최악의 수필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글에서 인위적인 냄새가 나기 때문일까요? 관점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요? 둘 다겠죠, 아마..)
인간에게 생각이 숙명적인 고통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또한 생각의 부재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생각이 가지는 힘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생각의 힘은 강하고 쉽게 유하지 않은 그 무엇이었음을 알았다.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도 부르는 말도 있지만 따져보면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것이 그다지 축복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지나쳐온 무수한 삶 속에서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thought is time. 케이 할배는 말했다. 생각은 시간이라고. 이 말을 듣고 처음에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처음에 든 생각은 생각의 흐름이 시간의 흐름과 동일하다였다. 쉽게 말하면 시간의 변화에 따라 사람의 생각은 늘 변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해석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해석이 케이 할배가 말한 ‘생각은 시간이다’의 개념과 유사한 부분도 있는 거 같다.
인간은 늘 생각 한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인간의 생각은 ‘멈춤’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러나 그 생각의 기반은 무엇일까. 과거의 추억, 기억, 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 환상과 같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들에 제한되고 있다. 생각해보자. 과연 지금(이 순간)을 우리는 생각하는가, 아마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단 1초를 생각하더라도 무엇인가를 인지한 그것은 과거였고, 무엇인가를 희망한 그 것은 미래이다.
언젠가 오랜 공부를 하면서 지쳐있을 때,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나눈 대화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나는 나를 알고 싶어’라는 말에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니가 바라는 너를 발견하는 어려운 일일지도 몰라. 다만 과거를 돌아보면서 내가 예전에 어떠했다고를 생각하지 말고, 미래의 내가 어때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무게를 주지마. 그냥 지금 그대로의 하루 하루, 그 순간 순간을 열심히 살다보면 너를 알 수 있을거야.’ 그 땐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 살 수 있냐고 반문했지만, 이제와 보면 그 친구가 정말이지 맞는 말은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친구는 케이 할배의 ‘생각은 시간이다’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인간의 고통이 생각 때문에 비롯되는 것이라는 것은 일찍이 깨달았던 거 같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살아왔다. 생각 없이 사는 인간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의 지나친 생각의 무게가 나를 늘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아 칠 때도 그래도 그것이 생각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는 나의 슬픈 천명을 탓하고 그 순간을 즐기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혹자는 나를 두고 ‘자학을 즐기는 아이’라고 까지도 말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생각의 노예로 살아왔던 까닭이다.
나름대로 이름을 떨쳤던 그래서 단상 위에 꾀나 올라갔다는 과거에 대한 집념은 나의 대학생활을 남들보다 늦게 만들었고, 출세와 명예를 중요시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남들만큼은 살아야 한다고,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잘 살아야 하다는 생각은 나를 학점과 전공 공부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대학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대한민국 밖으로 세상을 돌릴 때 낯선 세상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한비야 님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와 같은 책들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 얼마나 좁은 세상과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왔는가를 알 수 있었다.
성공해야 한다는 기준은, 남들보다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은 과거의 경험과 생각들이 남긴 구 시대적인 산물이며 지금의 나와는 그리고 우리네 오늘의 현실과는 맞지 않은 생각이고 가치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과거가 만들어 놓은 자아로 우리는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가보지 않은 미래를, 무엇인지도 모르는 미래를 향해서 막연한 꿈과 환상만을 가지고서 말이다. 때문에 그런 생각 속에서 현재를 발견한다는 것은 지나친 어려움이다. 과감하게 자아를 버릴 수 있을 때 발견되는 것이니 말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생각이 숙명적인 고통을 수반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한 고통을 탄생하도록 한 것은 그런 익숙함에 길들여지기를 좋아해왔던 인간의 본성 때문이며, 타성에 쉽게 젖는 인간의 습성 때문 일 수도 있다. 어쩌면 ‘생각은 시간이다’는 말을 이해하고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아로부터의 진정한 자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 자유가 우리가 말하는 참된 자유가 될 수 있을 것이며,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않은 순수한 오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 (날짜 : 2006.05.16 23:18)
갈 수록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쩌면 그것이 참된 '나'를 찾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요즘에 와서 생각합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나의 이기성은.. '이기주의'의 이기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가족과, 부모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지만..
그리고 주변의 시선과 기대로부터 자유롭지 않지만..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다가도 그것이 현실적이 이유로 부정될 때마다..
그러면 안된다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이면서 깨닫습니다.
내가 참된 나로의 이기성에 돌입했구나 하는 것을요.
'나'를 온전히 사랑하지 않고 그 누구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너 자신을 사랑해라'고 말씀하셨던 은사님들의 뜻을 이제와 이 수업을 통해서 조금씩 알아갈 거 같습니다.
진실로 바라는 '나'를 향해 회귀해야 할 인거 같습니다.
05/21(작성일) - 8
내가 케이를 만난 건 우연이지만 결국 필연아니겠습니까
글을 써본지가 참 오래되었다. 글이라는 것이야 쓰기 나름이지만, 진실 되고 글다운 글을 써본 건 참 오랜만이었던 학기였다. 글 쓰는 것을 즐겨하면서도 글을 써보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에게 제대로 글 쓰기의 의미가 부여 된 적이 없었다는 의미인 반면 그만큼 내가 스스로에게 진실되게 말을 걸어보지 못했던 건 아니었나 한다. 글은 내가 세상과 맞닿을 수 있었던 일차적인 통로이자 마지막 통로였던 까닭이다. 나에게 글은 모든 것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편으로 참 쉽지만, 또 글을 쓴다는 것은 가끔 아니 대부분을 내 가슴 저 끝에 놓인 나의 치부를 건드리는 것과 같은 아픔이었다. 그러한 치부를 건드리고 백지에 토해 놓음으로써 나는 늘 나의 본연에 다가가고자 노력했던 거 같다. 그러나 이번 학기 이번 수업처럼 철저하게 나를 치부속으로 몰아넣은 적은 없었다. 7편의 수필을 내고 7번째의 수필에 대한 교수님의 평가가 내려졌을 때 생각했다. 수업을 들을 수록 내가 거만해져갔었구나 하는 생각. 그것이 어쩌면 교수님께서 내게 내리신 ‘최악의 수필’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수업에 들어갈 때, 그리고 수업이 진행됨에 따라서 뭔가 알아간다고 느꼈다. 그리고 실제로 초기에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었던 많은 부분들이 내안에서 해결되고 결정되어졌다. 그리고 남들은 아니라고 해도 나에게는 열정인 그 무언가도 생겨가고 있었다. 두렵고 불안했던 나의 일상들에 대한 확신이었다. 수업에 대한 자신은. 그러나 나도 모르게 그런 것들이 자만으로 이어졌고, 나는 어설픈 말들을 뇌까리며 ‘최악의 수필’을 썼던 거 같다.
이 수업을 한 2,3 주 정도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수업이라면 학점과 상관없이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다. 그것이 재수강이 될 수도 있고, 청강이 될 수도 있지만, 교수님이 학교에 계시는 한 한 번 쯤은 다시 듣고 싶어졌다. 바쁜 일상에서 일주일에 단 2시간이라도 그렇게 가식의 현상들로부터 나를 떼어내어 온전히 바라보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고 모두 사라지는 학생들에 대한 교수님의 안타까움에 해소가 되고 싶었다. 누군가를 위한 구원이 아니라 나의 구원을 위해서.
수업을 들어오면서 나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바뀌었다고 꼭 인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냥 그 때와 달라지 내 생각이 드러날 뿐이다.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이 내 생활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타협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생각의 중심에 ‘참된 나’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보면 그것이 굴욕적인 타협은 아닌 거 같다. 이제는 학교에서 사람들하고의 관계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도 알 수 있을 거 같다. 끌려다는 것이 아닌 그 안에서의 능동적인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것을 찾았다는 것인데, 그 목표는 변함이 없지만 대상에 대한 나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부모님이나 주변의 만류나 현실적 여건에 대한 나의 굴복을 온전한 나의 가치와 믿음으로 찾게 되었다. 언젠가 본 ‘어머니 때문에 내 인생을 포기 하려고 했었습니다’와 비단 다르지는 않을 거 같다. 나 역시 부유하지만은 않은 환경 탓으로 지금까지의 많은 부분을 피해의식과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스스로 느끼며 살아왔었는데,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늘 우리가 자유롭지 못한 부모님의 기대로부터도 점차 독립되어 나오게 되는 거 같다.
언제나 명예나 권위보다는 나의 안녕이 우선이라고 말했던 나였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어찌 그 모든 것에 진실되게 자유로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그 모든 것에서 내가 폭력적인 걸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그렇게 속물근성이 되어 감을 내가 늘 느끼며 살아왔는데. 어쩌면 요즘 같은 날은 순수했던 사춘기 시절의 나의 감수성으로 돌아가 다시 꿈을 꾸는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열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조건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외대에 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언어 공부가 하고 싶어서. 나름대로의 몇 가지 목표(취업이나 세상과의 타협과는 상관없는 오로지 개인적인 언어 욕심으로 인한)를 설정하고 입학을 했었는데, 요즘 그 시작을 하고 있다. 선배들에게 부탁해서 전공 언어의 동화책들을 구해서 혼자서 보고 있는데, 정작 학과 공부는 뒷전이고 내 방식대로의 공부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물론 그것이 타인의 눈에는 결국 계산적인 행동이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이 다른 거 같다. 그 시간을 통해서 내가 얻고 싶은 것은 취업도 아니고, 학점도 아니니까. 어쩌면 그것이 내 인생의 또 하나의 로망, 번역에 다가서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언어학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얼마전에는 교수님들의 언어학 세미나를 들으면서 무척이나 즐거워하기도 했었다. 아는 것도 없기에 1학년은 얼마 참가하지 않은 세미나 였었는데 말이다.
이 수업은 늘 나의 내적 욕구와 맞닿아 있었다. 지금보다 사회 현상과 사회의 문제 들에 관심이 더 많았던 시절이 내겐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사회를 분석하고 공부하면서, 또 그런 것들에 대해서 선생님들과 많은 토론을 나누면서 분노하고, 안타까워하고, 답답해 하면서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어쩌면 고등학교 3년은 나에게는 대학이라는 이름보다 그런 세상의 모든 것들이 더 문제가 되었던 거 같다. 그래서 이제와 대학을 오게 된 건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너무 일찍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하면서 실망하고, 체념을 했던 거 같다. 세상은 바뀔 수 없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내 안에 생겨버렸다. 그만큼 세상은 너무도 부패했고, 사람들도 이기적이었고, 케이 할배가 말하는 갈등의 종말에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 눈에는 그런 세상에 대한 구원의 목소리가 어느 곳에서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무수한 번민과 갈등 속에서 결국은 ‘그래, 세상은 결국 그렇게 맞추어 살아가는 것인가보다’ 생각하고 말았던 거 같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내가 세상에 더 찌들고 그래서 더는 변하기 어려운 지경에 가기 전에 케이 할배를 만났다는 것이다. 솔직히 아직도 나는 케이 할배가 위대한 인물이라는 교수님 말씀에 동감할 만큼 케이 할배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무교인 내가 전공 언어에 더욱 심취하고 싶다는 일념하게 나가는 성경 학회에서 교수님과, 선배님, 동기들 통해 그들의 신앙심과 신의 뜻에 대한 볼 때 케이의 ‘홀로서기’를 생각하게 된다. 물론 나의 고독에 두렴움을 느낄 때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흔들림 없는 참된 자유와 나의 돈오, 케이의 사랑을 생각한다.
이번 방학 때 나의 목표는 단 한권 정도라도 제대로 된 케이의 원서를 읽어보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어려운 길임을 알고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제는 자만과 생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케이를 좀 더 알고 싶은 것이다. 학기 중이 핑계로 미루어두었던 케이에 대한 나의 관심을 되찾고 싶다.
이 수업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교수님의 애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단순한 우리의 계산적인 필요 때문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케이를 만났다는 그 자체가 우리에게 하나의 화학작용일 수 있거나, 혹여 그에 미치지는 못할 지라도 삶에의 변화를 이끄는 힘이 될 수 있기에, 그것이 온전한 나와의 소통일 수 있으며, 타인과 세상과 다른 나의 고유성을 발견하게 되는 척도가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05/28(작성일) - 9
나는 지금 걷고 있습니다
유년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시는 윤동주님의 서시였다. 알고 있는 시가 그 뿐이었으랴, 그는 아니었지만 그토록 나를 간절하게 만들어 주었던 시가 그 때 내게는 없었던 거 같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 이는 바람에도 나는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나의 유년 시절을 윤동주님과 같은 자아 반성과, 자아 성찰이 가득하게 보내었다. 혹자는 나를 두고 윤동주 같은 감수성을 가진 녀석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나 역시 평생을 윤동주와 같은 삶의 자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나약한 영혼의 소유자, 나는 그런 놈이었다. 살랑이는 춘풍이 가벼이 애무하고 떠난 나의 자리에는 발가벗음과 같은 부끄러움만이 온전히 남아 늘 나를 괴롭혔다. 작열하는 태양아래에서는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찾아 헤메는 듯한 처절함이 나를 찾아왔다.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는 날에는 나의 청춘의 참된 방황을 갈망하고, 지는 낙엽을 밟으며 낙엽에 얽힌 삶의 애수를 몸으로 불러올렸다. 어쩌면 온전한 나의 삶이 그 모든 나약한 영혼으로 위로받을 수 있었던 날은 겨울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추위에 그 모든 감수성조차 얼어버리곤 했었으니까 말이다.
그 숱한 시간들을 거슬러 살아가면서 나는 오로지 단 하나, 부끄러움 없는 삶을 지향했다. 나에게, 너에게, 그들에게, 세상에게 부끄럽지 않은 맑은 영혼으로 뚜벅뚜벅 세상을 살아가고 싶었다. 세상을 보면서, 그 천문학적인 시간을 살아온 인류가 결코 삶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세상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철들지 못하고 늘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건 아니라고 되뇌이면서.
갈등이 가득한 교육만을 받아왔다. 그것이 나에게는 늘 고통이었다. 학문의 분리, 지식의 분리, 일상의 분리는 나에게 세상의 이질적인 모습들만을 하나씩 가르쳐 주고 떠났다. 그 속에는 지독한 갈등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끝엔 나의 방황이 있었다. 세상에게 무언가를 바라며 살아 온 것도 아닌데 세상은 마치 내가 세상에게 무엇인가를 바라며 살아 온 듯 내 삶에 하나씩 개입하고 있었다. 온전히 그런 세상을 부정하려고 하는 나의 몸부림 속에는 상처만 남았다. 왜 너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하니.
그 후로 고3 때 불연 듯 세상의 길이, 학문의 길이 단하나라는, 삶의 형식은 오로지 적분이어야 한다는 깨달음 속에서 지금의 현실이 얼마나 역행하는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굳이 사상이 무엇인지 양분화 해서 말하기 전에 지금 우리는 분명 아닌 길을 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역사를 두고 진보와 퇴보를 말하는, 그리고 저마다의 가치관을 가지고 논리를 펴는 역사학자들 앞에서 아주 과감하게 인류의 역사는 퇴보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과연 지금 이것이 무엇을 위한 진보라고 말하겠는가.
세상에서 말하는 지성인과 다른 지성인이 되고 싶었다. 세상에서 존경받는, 역사적 위인은 아닐지라도 아니 어쩌면 그렇게 포장되어지는 지성인보다 있는 그대로의 순수성을 간직하는 참된 지성인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지성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찾아 헤매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내가 꿈꾸는 지성인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서점에서 “방외지사”라는 책을 보았다. 물론 그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방외지사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를 곱씹으면서 어쩌면 이것이 내가 갈망하는 지성인의 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고정관념과 경계선 넘어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 고정관념과 경계선이라는 것이 결국은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삶의 형태이며, 지금 우리는 그 속에서 살면서 지독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이 꿈틀대고 있다. 물론 그 꿈틀하는 움직임에 아직 목표가 있고, 명확한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만 더는 아니라는 생각은 온전히 가득차 있다.
한 때 사회주의라는 말에 광분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보수라는 단어보다 진보라는 단어에 열광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나는 보수라는 단어보다는 진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 단어는 온전한 나의 삶은 아니었다. 매력적이었을까. 그리고 그러한 하나의 가치에 치우친 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라보는 온전한 잣대를 지니지 못하고 있던 날에 나를 찾아온 영화 “닥터지바고”는 나에게 사고의 전환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양극화된 이념 속에서의 택일이 아니라는 깨달음. 사회주의와 반사회주의에도 분명 참된 인류의 행복, 사랑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오로지 갈등, 또 하나의 갈등을 나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언젠가 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은 페미니즘이 가져오는 모순과 한계점을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여성의 인권이 남성의 인권에 대해서 낮은 것은 우리네의 현실이고, 그것은 전체적인 세계의 흐름 속에서도 유사한 추이를 보인다. 그러나 여성이 말하는 페미니즘은 기존의 질서를 뒤집는 것이라는 것이다. 마치 지난 세월 눌려온 압박에서 벗어나 다시 누군가를 억압하고 싶다는 갈망과 같은 것.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성 평등을 말하지만, 페미니즘 이론의 완성은 기존의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뒤바꿈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인류는 더 나은 삶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의 궁극성을 찾아가다 보면 그 곳에는 나의 이익이 있고, 타인의 희생이 수반되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나의 희생이 있고, 타인의 이익이 있다. 사회주의라는 것도 많은 자들의 행복을 위했지만 결국은 가진자의 희생을 요구했고, 페미니즘의 강력한 운동도 결국은 남성의 희생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것인 셈이다. 그런 식의 세상의 변화는 갈등만을 양산하고, 역사 그와같은 순환만을 거듭하다가 끝을 맺게 된다.그리고 그 갈등으로부터의 참된 도피를 우리는 자유라고 부르는 것일지 모르겠다. 온전한 사랑만이 존재하는 자유가 풍만한 공간.
아름다운 사람 하나. 이런 삶의 양태에서 “아름다운 사람 하나를 꼽으세요”라는 요청을 받는 다면 그저 피식 웃고 말 것 같다. 도대체 누가 진정 아름답다는 것일까. 사람들은 다들 자기 자신이라고 말하고 싶어할 것이다. 우리가 이 수업에서 말해온 대로 우리는 자신의 폭력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은 남들과 다르게 살고 있다고, 다르게 살고 시다고 외칠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좀 더 교과서적인 사람은 부모님, 스승님,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말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참으로, 진정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그러한 마음을 비록 세상에 과감하게 드러내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조금 다르게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수업이 끝나갈 수록 그 모든 것은 나를 벗어나 관계로 확대된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서 벗어나 케이라는 인간이 말한 모든 것들과 세상의 유기성으로 확대된다.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거나, 막연한 바람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제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사람이 세상에 나와주었으면 하는 애원이자 소망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온전히 사랑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랑을 갈망하는 것처럼, 자유를 얻지는 못했지만 그 자유가 무엇인지 찾아헤메이는 것처럼 케이에게 다가서 보고자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없으며 참된 지성인이 될 수 없다는 그 무수한 외침에 공감한다. 그렇게 때문에 지금 나는 아름다운 사람 한 명이 되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때로는 윤동주와 같은 고뇌가 이내 곧 사소함이 되고, 그것이 이내 부끄러움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날이 되기까지 나의 고통은 계속 될 테지만 그 고통은 세상의 갈등과는 다른 고통이며 그것이 나의 홀로서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언젠가 그 홀로서기가 참된 홀로서기가 나에게도 이루어진다면, 그 때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누군가를 진정 온전한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meu Deus! (나의 하나님!) (날짜 : 2006.05.28 16:32)
언젠가 제 수필에도 올린 적이 있었던..
제가 무교인 가운데 단지 전공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나가고 있는 성경 학회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그 학회는 매주 토요일 10시에서 12시까지 모임을 같습니다..
기도도 하고, 찬송도 하고.. 한시간 좀 넘는 시간을 제 전공 언어의 어린이 성경 책을 읽고, 해석하고, 그 의미를 생각해보는..
지금 현재 20년 이상 그 학회를 꾸리고 계시는 교수님 지도하에서 이루어지는 모임입니다.
어제도 그 학회를 다녀왔는데, 매주 그렇듯이..
어제는 최후의 만찬과 유다의 배신에 관련한 내용을 읽었는데, 읽고 대화의 시간이 펼쳐지자..
무교인 제게 교수님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습니다.
종교를 강요하시는 분이 아닌 걸 알기에 그 모임에 참석하고 있지만..
이번 질문들은 저를 당혹하게 했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초자연적인 힘이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있다고 대답했지요..
그랬더니 그 힘이 무엇이냐고 생각하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교수님은 그 정체가 궁금하지 않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야 뭐 늘 그런 것이 자연의 이치요, 순리라고 믿었는데, 교수님은 그 이치화 순리조차 다스리는 누군가가 있지 않겠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러시면서 아직 성령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언젠가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올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잠시 말씀을 듣다가 교수님께서 질문할 것이 있냐고 하시기에 제가 여쭈었습니다.
종교라는 것인 인간이 삶에 대한 두려움과,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 이전의 지구상에는 태초부터 많은 동물들이 있었다. 그 동물들에게 사유의 체계는 없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성경에 나온 말처럼 하느님의 뜻이라고 여겨서, 천지창조를 하신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자..
만일 인류가 멸망하고, 지구가 멸망하고, 그래서 그 개념을 우주라고 우리의 초월적인 사고 체계로 확대한다면
그 때 신의 개념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에 대해서요..
그랬더니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신을 모시지만, 코란, 불경 등의 그 무수한 가르침 가운데 천지창조를 말한 것은 유일하게 성경 뿐이다.
하느님은 단순히 신이 아니라 곧 진리라고 너에게 말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가 멸망해도 언젠가 하느님의 뜻에 의해서 다시 지금의 인류와 유사한 삶의 형태가 세상에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너무 과학적인 사고로만 세상을 지배해 왔기 때문에 성령이 내려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하느님은 그런 분이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언젠가 누군가 인류의 시초는 우주(지구?) 팽창설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한 신자는 이렇게 반문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팽창하려면 팽창이전의 상태가 있었어야 팽창을 했을텐데, 그것은 누가 만들었을까? 라고요..
그 어떤 교수님의 말씀에도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제 지식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모든 신의 존재를 부정해도 초월적인 힘은, 천지창조는 부정할 수 없지 않냐는 것이 교수님의 질문이었습니다.
다만 그런 생각은 들었습니다.
종교라는 것이 사후세계를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고, 사후에 대한 안정으로부터 현세 삶의 안정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 말입니다.
종교의 전제는 인간은 불완전 하며, 죽는다, 사후를 알지 못한다는 것에 있겠죠.
반대로 크리슈나무르티는 인간은 완전하게 홀로설 수 있으며, 나는 곧 타자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리고 현세의 안정을 추구하고요.
오늘 날 부패한 종교에 대해서 초기의 종교 형태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래서 종교라는 것이 오늘 날에 와서 많은 비난을 받고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애써 종교의 신성성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 또한 없습니다.
다만 이슬람도, 불교도 모두 인간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신이고, 인간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천지창조라는 것에 대한 질문에 대한 반박을 할 수 없더라구요.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삶에 대한 자세나, 신에 대한 관점은 분명 극명하게 다르니까요.
어떤 학자는 종교 문제와 과학의 문제를 같이 논하는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도 하지만,
종교는 과학은 역사에서 늘 시소타기를 같이 해오던 학문의 갈래인 까닭에 독립적으로 보는 것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그 날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서 기분이 참..^^ 썩 좋지는 않더라구요.
성경을 알아야 반박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도 했구요..
이런 일에 교수님은 딱히 관심이 없으실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케이가 말하는 종교를 한 번 다시 한 번 공부해봐야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 방학이 되면요..^^
수다는 나의 힘입니다 (날짜 : 2006.05.29 22:24)
답답하네요. 무엇이라고 굳이 정의하고 싶지 않은 답답함입니다.
무엇인지 알기 때문인지, 그래서 더욱 알고 싶지 않을 것인지. 아니면 모르기 때문인지.
한참 정신없이 지낼 때는 수다를 떨 힘조차 없었는데,
그래서 어쩌면 의무감에 이곳에 와서 글을 쓰고, 글을 읽고 그랬었는데..
여유가 생긴것인지, 여유를 찾고 싶은 것인지 이렇게 어제 오늘 자꾸 서성이네요.
오늘은 교포 선배님과 전공 스터디가 있었는데, 아주 충동적으로 잡아놓은 약속을 파하고..
작년에 제 정신적인 위안이 되어주셨던 선생님 한 분을 찾아뵈었습니다.
이미 뿌리 박힌 제 머리 속에 사회주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셨던 선생님이셨죠.
사상적인 논의를 하자고 간 건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었고,
제가 보기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당신의 얼굴이 그리웠던 겁니다.
사람을 참 좋아하고, 그래서 사람 욕심이 많은 제게..
그 누구보다 지고지순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던 분이었습니다.
바쁘셔서 5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치고, 그저 잘 지내냐는 물음 하나를 듣고 돌아왔는데..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오늘은 당신과 소주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사는게 힘들다, 사는게 치열하다는 생각은 그냥 언젠가부터는 들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삶에서 느껴지는 답답함과, 세상에 치이면서 작아지는 나의 심장과 간의 크기를 제어하기에 나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저 충격 받으면 오므라지는대로 쥐어 들고서는 어찌할바를 모르고만 있었습니다. 매번..
이제는 그런 고통이 싫다고 외치는 거 같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과제가 없습니다. 아니 애써 공부할 거리를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기말고사가 앞에 닥쳤는데, 오히려 공부를 역으로 더 안하려고 작정한 모양입니다.
그냥 지친다고 믿을 땐, 더는 악바리 같은 감정이 생겨나지 않을 때는 죄다 던져버리는 것이 나의 습성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오지도 않는 싸이에 들러서 나의 치부를 숨기듯.. 결벽증이라도 있는듯..
사진첩 정리도 좀 하고.. 이래저래 좀 다시 단장도 시켜놓고..
한 3시간 때 음악만 들으면서 그저 멍하게.. 사람들 글도 보고, 또 이렇게 수다도 떨면서 있습니다.
어쩌면 그냥 이런, 아주 평범하고 소소한 여유를 그려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누구도 나를 몰아내지 않았었는데, 스스로를 날카로운 칼날위에 올려 놓으면서 살아가면서 정작 뿌리치지 못하고..
오늘은 교포 선배와 약속을 취소하고, 정작 선생님과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돌아오면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스터디를 할 걸 그랬나 싶은 후회가 밀려와 더 속상했습니다.
그냥 당신을 만난 것으로 좋았으면 그만이었을 것을..
인생의 기회비용이란 이럴 때 참 슬프게 하는 거 같습니다.
제가 부탁해서 하는 스터디였는데, 뭐가 그렇게 바쁜지 과행사에 불려다니고, 이래저래..
늘 제가 먼저 약속을 어기면서 선배와 많은 시간 공부를 못했다는 것이 늘 속상함이었는데..
알면서도 오늘 주어진 시간까지 충동적으로 약속을 파해놓고..
막상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선배가 나한테 실망하면 어쩌나.. 내가 부탁해서 하는 공부를 이렇게 해서는 안되는데..
그런 생각까지 겹치면서 그냥 참으로 복합적이고 미묘한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요즘에 와서 더욱 낯선 나를 발견은..
2년을 누군가를 좋아하고.. 2년을 잊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그렇게 4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요즘에 와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철없는 생각의 방문이었습니다..
참 우스웠습니다. 새로운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아니라, 다시 회귀라니.. 귀소본능도 아니고 말입니다.
하루 하루의 시간에 조차 지배할 줄 모르고, 우왕대다가 마감하고 있습니다.
참 중구난방의 두서없는 일상입니다.
가끔은 뇌를 어딘가에 빼놓고 다닌다는 생각도 들고..
그냥.. 그렇게 오늘도 용기내어 수다를 풀어봅니다.
낯선 사람들에게 나를 보이는 것도 참.. 재주입니다. 쉽지 않은 일은 쉽게 하고 있네요.
그만큼 지금의 나는 절박한 것입니까?
한 번의 수다가 끝나고 나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겠지요.
06/07(작성일) - 10
케이 할배를 만나기 전에 나는 하나의 고뇌에 찬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케이 할배를 만난지도 석달이 지났다. 내 안에서 외치는 삶의 구호는 Carpe Diem. 그리고 J.Krishnamurit 이다. 요즘 내 주변에는 케이 할배의 사진이 즐비하다. 삶에 대한 집착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저 한 마디 절박함이다.
언제나 나는 위대한 명상가, 성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반항아였다. 그들이 하는 말이라는 것은 다 똑같다. 그것이 내 생각이었다. 처음에 호기심을 가지고 수업에 동참하면서 어쩌면 케이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의심이 가득차있었다. 그리고 그 의심이 끝나면서 나는 케이를 향한 맹목적인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다. 케이를 모르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항상 나는 나를 알아채고 있었다. 다만 알아채기라는 단어를 알기 전에는 내가 알아채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거 같다. 울고 있는 나를 볼 때도, 술에 억지로 내어 맡기는 나를 볼 때도, 웃고 있는 나를 볼 때도 나는 내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내 행동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난잡한 내 모습이 좋았다. 어쩌면 그런 일련의 행동들 역시 폭력적인 내 모습이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차있다. 나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차있고, 나의 눈에는 치열함이 있다. 케이 할배는 그리고 교수님은 나에게 그 모든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도 버릴 수 없는 의문이 있다. 그런 내 모습을 알아챈 이후에도 변화를 원하지 않는 나를 다시금 발견하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 수업을 처음 듣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나를 제대로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를 제대로 봄으로써 내가 느끼는 고통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롭고, 참된 가치관을 세우고 싶었다. 남들보다 유별나게 살아가고 있는 나의 일상에 어쩌면 평범함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수업으로의 몰입은 나의 치부를 건드리는 고통을 수반했다. 덧붙여 평범함을 벗어나 남들과 다르게 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남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저 소소한 평범함 삶을 갈망해왔었는데.
나는 나를 알고 있다. 그 누구보다 그리움이 많은, 잔정이 많은, 여린, 철부진, 반항적인 아이가 ‘나’라는 것을. 그래서 그 누구보다 케이가 진정으로 말하는 ‘홀로서기’에 이르기에 그 누구보다도 어렵고, ‘고요’의 상태에 이르려는 순간에 스스로에게 파장을 불러일으켜 고요를 부정하는 아이가 나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가 말하는 ‘사랑’을 동경하고, ‘자유’를 동경하며 그것을 찾기 위해 한 학기 동안 케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 온 아이도 나였음을 또한 알고 있다.
만 스무해를 넘도록 살아오는 나의 삶에서 내가 찾은 내 인생의 원칙은 ‘단 하루를 살아도 세상에 쓸모 있는 놈이 되자,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였다. 어쩌면 내가 나를 찾고 싶었던 이유는 세상이 나를 이 땅에 내려보낸 이유를 알고 싶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리고 단 하루를 살아도 가장 즐겁고 행복하게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세상을 향해 베풀며, 공감하며 살고 싶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가 나를 알고 싶었고, 그래서 이 수업에, 케이에 열광하며 나를 찾고자 했던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수업이 끝남으로써 비로소 시작되는 강의입니다’라는 교수님의 말이 의미를 이제는 조금 알 거 같다. 어쩌면 나부터 그런 새로운 강의의 시작에 서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케이의 뜻일 수도 있고, 혹은 케이의 뜻이 아닌 그 무언가일 수도 있지만, 아직 무언지 모르겠는 그것을 나는 찾기 위해 케이에 귀를 기울이고, 케이를 이해하고자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아니 더 정확히 나를 더 잘 보려는 노력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수업은 끝이 나지만 나는 계속되는 나와의 투쟁을 거듭할 것임을 알고 있다. 다만 이전에는 그저 힘껏 휘어져대는 목표 없는 손놀림이었다면, 이제는 무언가의 의미 있는 것을 향한 하나의 몸짓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케이를 만나기 전에 나는 그저 하나의 고뇌에 찬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케이를 나의 동반자로 벗삼아 나의 홀로서기에 걸음 걸음을 내어보고 싶다.
06/27 - 11
버리고 떠나지 못함은 매한가지라..
방학을 시작하고 줄 곧 학교에 있었다. 지금도 학교에서 lab실에 들어가려다가 청소하는 아저씨한테 쫓겨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무얼할까하다가 지난 번 글도 날려버린 일도 있고 하여 글이나 좀 써볼까하고.
버리고 떠나지 못함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참 서글픈 고백이지만, 열여덟 때의 삶에 대한 나의 자세와 그로부터 4년이 지나고도 지금의 내 삶의 자세가 똑같은 것을 생각하면 나도 참 별 수 없는 녀석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달라진 것은 있겠지. 하지만 그것이 정작 나의 삶의 모습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고 생각하면 없는 거 같다.
고2 때 은사님께서 내게 법정스님의 버리고 떠나기라는 책을 추천하셨었는데, 그 때 당신은 늘 내 안에 갖혀 사는 나를 질책하셨던 거 같다. 모질지를 못하거든 삶에 대한 여유조차 가지지 못한 나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너를 사랑해라, 네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너를 버려야 한다, 어떻게 너는 네 삶에 네 부모님만 있니와 같은 말씀들, 어쩌면 내가 만난 축소판 케이 할배였었는지도 모르는 분이었는데 어제 당신께 한학기 동안 내가 썼던 여기 기재된 수필들을 보내드리자 답을 보내오셨다. "삶이란 가진 자의 무게만큼이다. 그 속에 녹아 있는 밀알을 볼 때 세상 속으로 날개를 편다. 아직은 날개의 깃을 치지 못하는 모습이 아쉽구나. 상념은 자신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한다. 이제 뛰어라 그리고 날아라. 여름에 한 번 보자" 다시 나를 멈추게 하는 글이었다. 날개의 깃을 치지 못하는 내 모습, 아마도 교수님께서 지적하셨던 삶을 투쟁으로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눈에는 슬픔만이 가득 흐르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치열한 학도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방학을 보내면서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한다고 얼쩡이고 있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내가 뭘 한게 있나 싶기만 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무엇하나 욕심을 가지고 하겠다고 말했던 것중에 제대로 하는 것이 무엇이던가도 싶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습관처럼 학교에 오는 것은 게으름이라고 비방할 수도 없고, 성실함이라고 칭찬해줄 수 없는 참 묘한 것이다. 결국은 버리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음이 그러한 나의 일상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아직 성적이 한과목 덜 나왔지만, 나오는 성적들을 보면서도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성적 때문에 우울했던 날도 있었다. 성적이 좋지 않아서 이기도 했지만, 역으로 나의 자만을 읽을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전공 과목에서 B+이 나왔다. B+이어서가 아니라 당연히 A나 A+일거라고 자신하던 과목이었다. 교수님께 이유를 묻고 싶어서 메일을 보냈다. 종종 사적인 대화를 나누긴 하지만, 성적이라는 것이 민감해서 많은 고민을 하다가 이유는 알고 싶었다. 나보다 못하는 동기가 학고 위기에 놓인 동기가 A를 받았다는데, 내가 왜 B+이야라는 생각이 먼저 앞서면서 말이다. 교수님의 메일을 받고, 그 하루를 온전히 멍하게 있었다. 그 가운데 지난 번 글을 썼던 것인데 그것이 날라가고 말았다. 교수님께서는 나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성적을 보여주시면서 말씀하셨다. 1학년 26명 중에 내 성적은 13등이었고, 점수는 C+에 해당했다고, 그러나 성실성과 출석률, 퀴즈를 감안해서 B+을 주신거라고. 청천벽력이었다. 그 하루 온종일 죄의식에 사로잡혔다. 내 안의 폭력성, 그리고 나의 자만, 나의 나태 그 모든 것.
한학기를 살면서 정말 삶을 투쟁이라고 말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음을 알고 있다. 놀기 좋아하고, 도망치기 좋아하는 놈이었다. 그런 놈이 공부만 했다. 전출, 왜 그런 미친 목표를 세웠었는지 모르지만, 전출은 물론이고 지각이나 수업 이탈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생활 태도는 나 뿐만이 아니라 부모님, 교수님, 내 동기, 행여 가끔 나를 만나는 내 친구들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저놈이 또 미친 놈처럼 공부만 한다고. 고통스러웠지만, 공부를 한다는 것이 때로는 고통스러웠지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 하나로 그 고통은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선배들을 쫓아다니면서 스터디를 하고, 때로는 아주 전공 시험과는 상관없는 전공 동화책을 보는 등의 공부를 하면서 한학기를 보냈다.
자신있었다. 치열했던 만큼 자신있었다. 8학기를 모두 그렇게 살 마음은 아니었지만, 첫학기 만큼은 보란듯이 살아내고 싶었다. 그냥 있으면 시간에 끌려 자연스레 살아지는게 아니라 살아내고 싶었다. 당당하게 또박또박 삶을 살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었다. 내 안에서 발생했던 폭력의 근원은. 살아내고자 발버둥쳤던 것에 있었다. 동기들보다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리고 중간 이상은 가는 삶의 태도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 만큼 나의 전공 실력은 축적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있었다. 적어도 방관하며 살아가는 내 동기들보다는 내가 나을 거라고, 온갖 자만과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화근이었다. 물론, 안되는 과목을 일찌감히 포기한 동기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에 그들 나름대로 챙겨야 겠다는 한두과목에 진정으로 그들이 올인했음을 알고 있다. 동일한 일주일에 전공 시험이라는 것은 미친 듯이 본문 텍스트를 다 외워서 보는 것인데, 10과목을 다 짊어지고 가려고 했던 나와 같을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내가 그들보다 공부를 더 많이 했는데.
슬퍼졌다. 처음에는 내가 무얼바라고 한학기를 이토록 치열하게 살았다는 말인가 싶었다. 아주 솔직히 재주껏, 요령껏 조금은 편하게 공부한 과목은 내가 죽도록 한 과목들보다 성적이 훨씬 좋은데, 모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대학 학점이란 결국 이런 거야라고 말하고, 앞으로 공부하지 말아야 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내 말을 듣고 친구가 말했다. 그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 그리고 그 다음에 들기 시작한 생각은 곧 슬픔이었다. 내가 지금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한학기 동안 케이 할배는 나에게 이런 걸 가르친 것이 아닌데, 내가 꿈꾸는 것도 이런 건 아닌데, 나 여기서 지금 뭐 하고 있는가. 내가 왜 학점의 노예가 되어서 이렇게 바둥대고 살아가고 있는것일까, 죽도록 공부해서 대학을 온 이유는 학점의 노예가 되자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리고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내 안의 폭력성. 감당할 수 없었다.
나의 은사님은 나의 그런 모습을 말씀드리지 않아도 한학기 동안 내가 쓴 글에서, 교수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나의 모습을 읽어내려가셨던 것이다. 그리고 지적하신 것이다. 사춘기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지지 못한 나의 모습을. 은사님들과 통화를 할 때마다, 제일 먼저 물으시는 질문, 학교는 적응할만 하니, 학교 잘 다니니, 그 만큼 내가 당신들께 늘 문제아로 보여졌던 것인데, 늘 큰 폭풍우가 몰아치고 잠잠해질 녁이면 무엇인가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믿던 나의 일상도 결국 늘 제자리였던 것을 보면 내가 아직 어리 것인지, 덜 절박한 것인지, 결국은 속물인 것인지 생각한다.
아마 7월 즈음이 되어 그 은사님을 뵙게 된다면, 한바탕 꾸중을 듣게 될 거 같다는 참으로 행복한 예감이 든다. 늘 다짐을 하고도 제자리를 걷고 있지만, 이제는 좀 어떻게 철 좀 들어야 하지 않을까. 나에 대한 당신의 화두는 늘 "철없는 박유리 철듦"에 있으니..
첫댓글 이 글들 영원히 여기에 그대로 둘 거지요?^^ 평생을 두고 여기에 와서 하나하나 보태면 좋겠네요.
아..ㅋ 지우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예~ 앞으로 저도 그러려구요..^^ 제가 어떻게 나아가는지~ 이런 마음들을 변치 않고, 아니 변한다면 더 긍정적으로~ 하는 바람입니다.
"늘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건 아니라고 되뇌이면서." 어쨌거나 그저 평범하게 살다가 가지는 맙시다. 글재주도 좀 있는 편이고., 청춘의 방황도 의미 있는 것이었나 보네요. 이제 제대로 시작했으니 오래오래 가 봅시다. 가다가 주저 앉지만 말고..
평범하게 살다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 제 소원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평범하지 않다고 믿었었기 때문에..^^ 주저 앉지 않게 교수님도 함께 가주시죠..^^
설마.. 네가 안 가면 나도 안 가겠다는 건 아니지요? 홀로 가는 먼 길이라니깐...
물론 그건 아닙니다..ㅋㅋ 같이 가면 더 좋겠다는 것이지요.
... 열정이 느껴집니다. 글들을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시작을 했지만 벌써 이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구요.. 저도 열심히 해 보렵니다. 잘해보자구요^^!!
열번째 글에서도 여전히 투쟁이고 노력이고.. 그렇네요. 지금쯤 최소한 알아채기가 되어가는 모습이 드러났으면 했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사는 학도 아닌가.. 좀 가련하기도 하고..
바둥대지 않으렵니다.. 그저 그저 그렇게 살다보면, 의지로 되는 일도 아니기에 도달해 있겠지요..^^
제 글이 없어진 줄 알고 한참을 찾았습니다. 여기에 가져다 두심은 도망치지 말라는 말씀의 다른 표현인지요? ^^;; 아직도 성적이 4과목이나 나오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습니다. 아.. 답답하여라..;
두려움 그걸 보세요. 안 그러면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새벽에 일어나 여기에 글을 하나 덧붙여 11번 글을 썼는데, 버튼을 잘못 눌러서 글이 날라가 버렸습니다. 성적에 대한 아주 진솔한 토로였는데, 부끄러움에 대한 토로였는데.. 다시 쓴다고 한들 그 기분이 나지도 않을 것이며, 조금 후에 학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다시 쓰지 못하겠네요. 아.. 정말..; 자만과 오만을 가득 반성한 글이었습니다.
인간이 그릇이 되지 못함이 이토록 한스러운 날도 있군요..;
글쎄.. '철든다'는 게 뭔가.. 세상에 적응하는 게 철든다는 거 아닌가? 그럼 철이 들지 말아야지.. 애처럼 살고 바보처럼 살아야지.. 그게 비워내는 삶일 텐데.. 버리고 떠나가라.. 그럼 불교라는 종교, 종단까지 다 버려야지.. 케이 할배는 홀로 선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거라고 말씀하시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가 철들기 싫거든요..; 근데 제가 생각하는 철듦과 제 은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철듦은 좀 다른 거 같습니다. 세상에 타협해라만은 아닌 거 같거든요. 비워내는 삶, 버리고 떠나라.. 솔직히 어렵습니다. 아직도 제게는요..;
모처럼와서 제 글을 다시 읽었습니다. 훔..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