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향토지적재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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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군 향토지적재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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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오부자옹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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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지적재산의 명칭과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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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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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오부자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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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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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부자옹기 대표 김일만 |
명칭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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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옹기를 굽는 이들의 대부분은 조선후기 때부터 옹기를 굽던 조상들의 가업을 이어받은 이들이다. 조선시대 천주교가 박해받던 시절 천주교인들은 깊은 산 속에 들어가 몸을 은신하였는데 그들은 생계유지 수단으로 옹기나 질그릇을 굽기 시작하였다. 지금 오부자옹기라는 상호로 옹기가마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일만씨 집안도 그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그의 아들에게 옹기굽는 일을 전수하여 오부자 옹기의 경우 7대째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진천, 안동 등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한국전쟁 직후 할아버지 세대, 즉 아버지 김일만씨의 청년시절에 여주에 정착하여 이곳에서 옹기를 생산하였다. 그 당시 이 지방은 이포나루라 하여 수로가 개통되어 이곳에서 생산된 옹기를 서울로 직접 배달할 수 있어 한때 호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플라스틱 그릇이 널리 보급되어 여주의 많은 옹기가마터는 소멸해가고 지금은 장남인 김일만씨와 그의 네 아들들, 이렇게 5부자만이 여주군 금사면 이포리에서 옹기를 구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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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지적재산 찾아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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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도로 |
여주에서 37번 국도를 타고 양평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창밖으로 농촌의 한가로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대신과 천서리 사이에 드넓게 펼쳐진 남한강변에는 여주의 특산물인 땅콩과 고구마가 재배된다. 9-10월에 이곳을 찾는 사람이라면 지천에 깔린 땅콩과 고구마를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강변을 끼고 다리는 너른 들판을 지나 30분 정도 가다보면 천서리라는 곳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천서리 막국수촌이라 불리우며, 막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이 밀집되어 있다. 진하고 구수한 육수와 시원하고 담백한 막국수의 진미를 느낄 수 있어 방문객들이 인산인해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미식가라면 이곳에서 시원한 막국수 한 그릇을 꼭 드셔 보시길.... 막국수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맑고 깨끗한 남한강의 시원한 물줄기를 가로질러 이포대교를 건넌다. 그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금싸라기 참외의 간이 판매대가 줄을 이어 여러분을 맞이할 것이다. 농부의 훈훈한 농심과 함께 꿀맛같은 참외를 먹으면 디저트로 그만이다. 이포대교를 건너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 약 2km정도 직진하면 오른편에 오부자옹기의 간판을 볼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여주터미널에서 이포행 군내버스를 타면 쉽게 찾을 수 있으나 배차간격이 넓어 꼭 문의를 하고 출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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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지적재산 보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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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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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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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별 |
남 |
연락처 |
전화 |
주소 |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이포 2리 산 13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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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지적재산의 분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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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의 향토지적재산 / 식생활과 관련된 것 / 식생활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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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지적재산의 형성배경과 경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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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배경(창안동기) |
조선 후기 천주교가 박해받던 시절, 천주교 신자들은 탄압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 생활하였는데 옹기를 구워내어 팔아서 생계유지의 수단으로 삼았다. 지금은 7대 후손인 아버지 김일만씨와 그의 4아들들이 오부자옹기(금사토기)라 하여 여주군 금사면에 정착하여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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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집단 또는 개인의 특성 |
옹기를 굽는 일로 대대로 생계를 이어온 가문, 아버지 김일만씨와 그의 4아들(김성호, 김정호, 김창호, 김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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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위(전개 또는 발전과정) |
옹기란 질그릇의 한 종류이다. 흙을 구워 만든 그릇은 통상 도기와 자기로 분류할 수 있다. 자기는 유약을 많이 칠하고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그릇을 말 한다. 도기는 우리말로는 질그릇이라 하며 상대적으로 자기보다는 낮은 온도에서 구워내며 유약을 안 바르거나 아주 적게 바르는 그릇을 말한다. 시루나 옹기는 도기, 즉 질그릇에 포함된다. 그 중에서도 옹기는 유약(잿물)을 엷게 발라 구워내는 그릇이며, 시골집 뒤뜰에서 볼 수 있는 장독이나 새우젓 독, 김치독과 같은 종류를 말한다. 시루와 옹기의 차이는 온도의 차이인데 시루는 맨몸 즉 유약을 바르지 않고 흙 자체를 성형하여 900-1,000℃에서 구워낸 것이고, 옹기는 유약을 바른 후 1,100℃에서 구워낸 것으로 한 차원 높은 기술을 필요로 한다. 100℃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이 정도로 온도를 올릴 수 있을 만큼의 기술발전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옹기는 지역적 색이 강하다. 어깨가 볼록한 전라도 형태, 배가 볼록한 경상도 형태, 일자형인데 약간만 벌어지는 강원도 형태, 아주 무난한 형태가 그것이다. 또한 시루라 불리우는 질그릇과 황해도 강화도 등 바닷가 근처에서 나는 유약 대신 소금을 뿌펴 푸른 빛을 내는 푸레독, 황해도 해주에서 생산되었던 고가의 백독, 그리고 제주도 물항아리처럼 붉은 기운이 도는 반오지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이러한 옹기는 원료나 만드는 기술에 따라 분류된다. 이곳 오부자 옹기에서는 수도권의 소비자들의 기호와 수요에 따라 완만한 형태의 곡선을 이루는 모양의 생활옹기를 많이 생산해 왔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플라스틱 제품으로 인해 옹기산업은 급격한 하향길에 접어들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경기도 지역에 150여개나 산재하고 있었던 옹기제조업체들이 지금은 4군데 남아 있는 현실이 이를 반영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어느 정도 사회적인 관심이 일어나면서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 옹기를 빚어 잿불(유약)을 바르고 말리는 데 10일, 가마에서 구워내는 데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오부자옹기 집에서 생산되는 옹기의 양은 한 달에 한 가마의 분량, 즉 높이 60cm 정도의 중간크기의 작품일 경우 120개, 소품으로 따지면 700개정도 밖에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적은 규모의 생산에 비해 수요는 최근에 급격히 늘어 제대로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옹기는 주문을 받아 만들어 파는 경우가 30%정도 되고, 인접한 여주목아불교박물관과 민속촌의 전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이 일부 있으며, 절반 정도는 소비자들이 직접 방문하여 구입하고 있다. 소비자들 가운데 주문을 하여 구입하는 사람들의 경우 옹기는 생활용품이라기 보다는 집안에 두고 감상하는 예술작품으로 간주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옹기의 모양도 변해왔는데, 아파트 문화가 발달하면서 고객이 원하는 길쭉한 형태, 즉 새우젖통같은 옹기가 각광받게 되었다. 변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무시하니 옹기도 저절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무뚝뚝하고 굵직한 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전통옹기가 국제적으로는 더 각광을 받는다. 이 두 가지 뜻을 염두하고 여기 오부자 옹기에서는 분업화가 유지되었다. 아버지 김일만씨와 큰아들 김성호씨, 막내아들 김용호씨는 전통적인 옹기만을 생산하고, 둘째 아들 김정호씨와 셋째아들 김창호씨는 생활옹기에 치중하고 있다. 즉 세련된 현대적 선의 맛을 지닌 생활옹기와 우리 나라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우리만의 선, 조금은 투박하지만 자연미가 그대로 우러나오는 선을 지닌 전통옹기를 모두 다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 바로 여주 오부자옹기의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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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지적재산의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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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원소재)의 명칭 |
흙,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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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의 분포 또는 생산조건 |
흙은 전라도 무안과 경상도 의성에서 사 오는데 거리가 멀어 운송비가 많이 든다고 한다. 전라도 흙은 평야지역의 점토로서 점력이 좋으나 불에는 약하고, 경상도의 흙은 산에서 나오는 흙으로 점력은 약간 떨어지나 가마의 뜨거운 온도에도 잘 견딘다. 오부자 옹기네 사람들은 곧잘 전라도 흙을 여자에, 경상도 흙을 남자에 비유하곤 한다. 이 두 남녀가 섞여 분쇄, 이물질 제거, 숙성의 과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진공토련기에 넣어져서 비로소 옹기를 구울 수 있는 상태의 흙이 된다. 장작은 적절한 크기의 소나무만 사용되는데 강원도에서 50%를 사오고, 나머지 50%는 여주 인근의 야산에서 직접 산에서 수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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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지적재산의 기술적 특징 |
옹기는 식생활용품임과 동시에 예술작품이기도 하다. 이 두 용도에 따라 기술적인 특성도 각각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먼저 예술작품으로서의 옹기의 특성을 살펴보면, 전통적인 옹기는 두들겨 주는 작업을 반복하여 기벽을 쌓아갔다. 이 기술은 고도의 기술로 옛날에는 매우 발달하였으나 현재는 그 기술을 그대로 복원하기는 힘드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오로지 두들겨 만든 옹기는 면밀히 살펴보면 완벽한 좌우대칭의 선모양을 이루는 것도 아니며, 표면도 균일하거나 매끄럽지 않다. 따라서 언뜻 보기에는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모든 옹기는 저마다 각기 하나의 작품으로서 존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연미, 한국적인 멋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한 형태의 시루가 선이 좋다는 이유로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예전의 선대 도공들은 흙을 가공하는 기술은 떨어졌으나, 좋은 흙을 볼 수 있는 안목이 높았다. 그 흙의 자연스러운 입자를 그대로 두들기고 때로는 낫으로 깎는 깨기질을 통해 한 작품이 완성되었으나, 현재는 대충 두들기고 물레질을 통해 옹기를 만든다. 그러나 오부자옹기에서는 자동화된 전기식 물레를 사용하여 표준화된 옹기를 '찍어내는' 다른 업체와는 달리 발로 밟아 쓰는 수동식 물레질을 고집함으로써 전통적인 옹기의 자연미를 유지하고 있다. 이곳 오부자 옹기에서는 단기가 아닌 장기적인 안목으로 한국의 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식생활용품으로서의 옹기의 장점으로는 플라스틱이나 일반 일회용품과는 달리 다이옥신이나 환경호르몬이 검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된장, 고추장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필수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간장 등 액체를 담아 놓는 그릇이기 때문에 새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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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비 및 장치 |
옹기를 구워내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수작업이다. 단, 흙 입자 사이의 공기를 빼 주어 흙의 점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93년부터 '진공토련기'라는 기계를 도입해 흙을 소재화 시켜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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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지적재산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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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크기와 가격을 알려주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여주에 살고게신 회원님들 손들어 보세요.
저요~~~~~~~~~~~~~~ ^^
자연농원님 안녕하세요. 제가 어명하여 주시면 훗딱 가서 사진이랑 가격 알아서 올리겠습니다. 쪽지 주세요.
홍문리님~여주사시네요~가깝네요~
저도한몫끼고 싶습니다
제가 밭에있는 배추 무우를 판매한후 여주에 같다 올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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