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전투
트럼프 250주년 독립 기념식에서 연설한 한국 장진호 전투 내용 궁금하여 인공지능한테 질문
장진호 전투(Battle of Chosin Reservoir)는 6·25 전쟁 중이던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3일까지북한 함경남도 장진호 부근에서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과 중공군이 벌인 격렬한 전투입니다. 미 해병대 역사상 가장 처절했던 전투이자,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포위 돌파 작전중 하나로 꼽힙니다.
1. 주요 배경과 상황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이후 유엔군과 국군은 압록강을 향해 빠르게 북진하고 있었습니다. 미 제1해병사단은 개마고원 입구인 장진호 부근까지 진격했으나, 이는 당시 마오쩌둥의 명령으로 숨어 들어와 있던 중공군 제9병단(약 12만 명)의 거대한 포위망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간 꼴이었습니다. 당시 미 해병대를 비롯한 유엔군 병력은 약 3만 명으로, 무려 4배가 넘는 적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태였습니다.
2. 인간의 한계를 시험한 두 가지 적 인해전술의 중공군:중공군은 한밤중에 꽹과리와 나팔을 불며 사방에서 밀고 들어왔습니다. 보급과 화력은 미군보다 떨어졌지만, 압도적인 머릿수와 산악 지형을 활용한 기습으로 미군을 압박했습니다. 영하 40도의 극심한 추위:중공군보다 더 무서운 적은 개마고원의 가혹한 동장군이었습니다. 낮에도 영하 20도, 밤에는 영하 30~4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 속에서 총과 대포의 기름이 얼어붙어 발사되지 않았고, 전투식량은 돌덩이처럼 굳었습니다. 부상자들은 상처가 나자마자 피가 얼어붙었고, 수많은 병사들이 전투가 아닌 동상으로 목숨을 잃거나 발을 절단해야 했습니다.
3. "우리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하게 포위된 절망적인 상황에서 미 제1해병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소장은 기자들에게 역사에 남을 명언을 남깁니다. "후퇴라니?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Retreat? Hell, we're just attacking in another direction!) 이 말대로 미 해병대는 무너지지 않고 진형을 유지한 채, 남쪽 흥남 항구를 향해 포위망을 뚫고 내려가는 '진격의 철수 작전'을 시작했습니다. 좁고 험한 산길마다 매복한 중공군과 싸우며 2주간 약 110km를 사투 끝에 걸어 내려왔습니다.
4. 전투가 남긴 의의와 결과 중공군의 큰 타격:미 해병대는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건제를 유지하며 포위망을 뚫었습니다. 반면 미군의 압도적인 항공 지원과 포병 화력, 그리고 혹한 때문에 중공군 제9병단은 절반에 가까운 인명 손실(전사 및 동상)을 입고 사실상 궤멸되어 한동안 작전 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흥남철수작전의 발판:미 해병대가 장진호에서 중공군의 발을 무섭게 묶어둔 덕분에,
흥남 항구에 고립되어 있던 10만 명의 군인과 10만 명의 피난민이 무사히 남쪽으로 탈출할 수 있었던 시간적 여유를 벌 수 있었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이 된 바로 그 철수 작전입니다.)
오늘날 이 지옥 같은 전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자신들을 '초신 퓨(The Chosin Few·장진호의 소수 정예)'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미군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난 극복의 상징으로 여전히 기억되는 전투입니다. |
첫댓글 너무나 감동적인 역사 현장 입니다.
우리는 이런 위대한 역사를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