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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三國志)제74편 ※
조조의 지혜, 원소의 무지(無智)
한편, 연주의 조조는 모사(謨士)순욱
과 함께 국정을 논의하고 있었다.
그때, 장군 조인(曺仁)이 들어와 아뢴다.
"주공, 태위 양표(太尉 楊彪)가 장안에서 밀사를 파견해, 천자의 조서(詔書)를 가져 왔습니다."
하고 밀서를 내 보이며 보고 하는 것이었다.
조조는 밀서를 받으며,
"밀사는?"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인은,
"밀사는 굶어서 피골이 상접해 들어오자 마자 기절해 버렸습니다.
제가 죽이라도 먹이라고 후원에 보냈습니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조조는 천자의 조서를 유심히 읽어 보았다.
그리고 다 본 밀서를 순욱에게 건네주고 자리에 가 앉았다.
순욱은 조조로부터 받은 천자의 조서를 읽어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한탄한다.
"이럴 수가!..."
그러자 조인이 순욱에게,
"순 대인! 무슨 일입니까?
소장에게도 알려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순간, 순욱은 조조를 빤히 쳐다보았다.
순욱이 자신을 쳐다보는 의미를 깨달은 침통한 표정의 조조는 순욱을 향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순욱이 조인을 향하여 입을 연다.
"조장군, 우리가 여포와 교전을 하는 동안, 장안에서는 세상이 깜짝 놀랄 변고가 일어났소.
동탁의 수하였던 이각과 곽사가 천자를 납치하면서 둘이 원수가 되어 싸움이 벌어졌고 천자와 백관들마저 인질로 잡혀, 두 사람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장안이 온통 폐허로 변해 버리고 백성들이 흘린 피가 넘쳐흐르고 양식도 끊겼다고 하니, 천자께서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백관들이 굶어 죽는다 합니다."
그러자 조조가 냉철한 어조로 순욱에게 충고한다.
"요점만 말하시오."
순욱의 말이 이어진다.
"관건은 미오성으로 끌려갔던 천자께서 동승의 도움을 받아 낙양쪽으로 피신하셨다는 것입니다.
천자께서는 피신중에 이런 조서를 내려, 친히 천하 제후들에게 근황을 말씀 하시면서 이각과 곽사의 제압을 명하셨습니다."
조조는 여기까지 듣고 나서 입을 열어 말한다.
"이런 기회는 다시오지 않소!"
그러자 조인이 순욱을 돌아보며 조조에게 반문한다.
"기회요? 주공,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면서 조조가 대답한 말의 의미를 모르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순욱이 대답한다.
"주공의 말씀은 장안에서 낙양은 필히 망탕산을 거쳐야 하며 그 산이 우리 연주에서 오백 리내에 있으니, 천자를 구하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천자를 손에 넣기만 하면 바로..."
그 순간 조조가 순욱의 말을 자르며 한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외치듯이 말했다.
"세상을 품에 안고, 제후들을 호령하는 무기를 갖게 된다! 이거 아니오?"
...
한편, 기주의 원소에게도 천자의 밀서가 도착하여 만조 백관들이 집정전에 모여들었다.
원소가 문무 백관들에게 말한다.
"천자가 장안에서 도망치면서 각 제후들에게 구원을 요청해 왔는데 말해 보시오. 내가 이 조서를 받들어야 하겠소?"
그러자 백관들은 저마다,
"아이, 참."
"이걸 어째."
"참 내, 큰일이군 ."
하면서 이렇다 할 대책을 말하지 못하고 수군대고 있었다.
그러자 모사 허유가 앞으로 나서며 아뢴다.
"주공, 소관 생각으론 조서를 받들어 천자를 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 더 앞서 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천하의 혼란이 지속되면서 제후들이 난립해도 절대 강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기엔 누가 되든 간에 천자를 등에 업는 것이 천하 제일의 권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원소는 허유의 진언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자리에서 삐딱하게 앉은 채로 빤한 얼굴을 하면서 듣고 있는 것이었다.
허유의 진언에 원소가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 바로 그때, 모사 전풍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서면서 허유를 향하여 따지듯이 아뢴다.
"허유의 이론은 타당치가 않습니다. 지금 천하의 대세는 너무나도 뻔합니다.
지금의 천자는 허명에 불과할 뿐이며 한 실은 추락하고 있습니다.
주공께서 천자를 불러들이신다면 그저 귀찮은 짐만 떠안는 결과가 될 것이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천자가 온다면 기주의 주인은 누가 되겠습니까? 주공 입니까? 아니면 그 애송이 입니까?
게다가 그 애송이가 자기가 황제랍시고 이런저런 명령을 함부로 내리면 그에 따르겠습니까, 거역하시겠습니까?"
전풍의 말을 탁자의 손을 두드리며 듣던 원소가 입을 열어 한마디 한다.
"일리 있는 말이오. 지금의 천자는 확실히 짐덩이오. 놔 둡시다."하고 천자의 조서를 받들 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하였다.
그러자 허유는 얼굴을 찡그리고 허리를 굽히며 다시 아뢴다.
"주공, 방금 전풍의 말은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못보는 좁은 소견일 뿐이옵니다.
한 실이 비록 추락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붕괴된 것은 아니옵고, 천자의 나이가 비록 어리고 허명뿐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황실의 황제임이 분명합니다.
주공께서는 지체높은 기주의 주인이시지만, 또한 한 실의 신하이십니다.
옛 말처럼 명분이 없으면 설득력이 없고, 설득력이 없으면 패하기 마련입니다.
주공! 천자는 짐덩이가 아니라 오히려 천하 제후들을 호령할 수 있는 명분이자, 삼군을 통솔 할 수 있는 깃발로써 그 쓰임새가 무한할 것이오니 천자를 버렸다가, 만일 다른 자의 수중에 들어가면 절대로 아니되는 일이옵니다."
"으잉? 누굴 말하는거요?"
원소는 그제서야 눈이 휘둥그래지며 허유에게 반문하였다.
그러자 허유는 ,
"연주의 조조, 형주의 유표, 둘 다 가능합니다.
더구나 조조라면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뺏으려들 것입니다."
그러자 허유의 옆에 서 있던 전풍이 한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뢴다.
"허유의 말은 매우 지나칩니다. 깃발은 무슨 깃발입니까? 지금의 천자는 늦가을에 떨어지는 낙엽과 같이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조조가 원한다면 데려가라 하면 그뿐, 주공께서는 허명을 쫒지 마시고 실리를 택하십시오.
우리에게 가장 큰 실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엔 주공께서 속히 공손찬을 제거하시고 청주와 유주를 병합해야 합니다.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중원 천하중에 네 개 주를 얻는 것이 되니 이게 진정한 천자가 아니고 무엇이겟습니까?
하오니 주공께서는 속히 군을 재정비 해 청주와 유주를 병합하는 것, 그것이 실리일 것이옵니다."
전풍의 말을 들은 허유가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헉!.. 주공!..."
그 순간 원소가 손을 들어 허유의 말을 막는다.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결정 했소! 천자의 조서를 받지 않고 온 힘을 집중해 군을 재정비 하고, 추수가 끝나고 양곡이 완비되면 즉각 여주로 출병할 것이오!"
"....."
원소의 명을 하달 받은 허유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로, 자신의 주군이 더 이상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입을 닫았다.
그러자 그 순간, 원소의 명을 받은 만조 백관들은 일제히, "알겠습니다 !"하고 원소의 명령에 일동이 따르겠다는 대답을 하였다.
집정전 계단을 내려와 집으로 향하던 허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독백하듯이 한탄이 가득 담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주공의 어리석음이, 대사를 그릇치는구나!.. 그깟 전국 옥새 하나에 각지 제후들이 목숨을 걸고 뺏으려고 다투더니 이제는 버젓이 살아 있는 황제를 왜 아무도 잡으려고 하지 않는가? 음 ... 어리석은 군주야...! 간신배들 뿐이로구나... 허헛! )
...
한편, 조조는 자신이 선두에 서서 낙양으로 군사들을 휘몰아쳐 말을 달렸다.
그리하여 망탕산에 이르러 말을 멈추며 말한다.
"시원하오, 시원해!
자, 보시오. 우리가 태양과 함께 망탕산에 올랐소. 음!"
조조의 일성(一聲)은 앞으로 전개될 희망에 가득찬 음성이었다.
그러자 조조의 뒤를 숨가쁘게 따라온 순욱이 숨차 하면서 말했다.
"하루 반나절 만에 오백 리를 달려왔습니다. 사람도 말도 지쳤으니, 좀 쉬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조가 대답한다.
"좋소. 그럼 잠시 쉬어 갑시다. 해가 중천에 뜰 때 출발하겠소."
순욱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알겠습니다."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바로 마상(馬上)에서 조조가 순욱에게 묻는다.
"아참, 원소쪽의 동정은 어떻소?"
※ 삼국지(三國志)제75편 ※
조조군의 낙양성 입성
헌제 일행은 수많은 파란곡절을 겪은 뒤에 간신히 낙양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낙양은 이미 옛날의 낙양이 아니었다. 호화찬란하던 궁전은 불에 타버려 폐허처럼 변했고, 성안에는 인가조차 없어서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잡초가 우거진 폐가(廢家)뿐이었다.
때는 가을도 저물어 겨울이 가까운 가운데 폐도(廢都)에는 닭소리는 물론 개짓는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지경이었다.
이런 낙양의 모습을 돌아본 헌제가 한탄을 한다.
"여기가 과연 낙양이란 말인가? 그토록 번성했던 낙양이 이처럼 변하다니!..."
그러자 동승이 실망을 금치 못하는 헌제에게 아뢴다.
"동탁을 치려고 의군(義軍)들이 들이닥치자 동탁이 이곳 낙양성 곳곳에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정도 일줄은 !..."
"이건 그야말로 폐허가 아닌가?"
헌제가 다시 한탄을 하자 양표가 말한다.
"어떻게... 다른 곳으로 가시겠습니까?"하고 헌제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헌제는,
"아니오 ... 짐은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겠소.
동 태사가 강제로 짐을 장안으로 데려갔지만 낙양이야말로 우리 황실의 역사가 있을 뿐더러 내가 태어난 고향이 아니오?"
"그러시다면 저희들이 폐하께서 이곳에서 생활 하실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습니다.
폐하께서 낙양으로 돌아오신 것이 백성들에게 알려지면 각지에서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달려올 것이옵니다."
양표가 말한 대로 황제가 낙양으로 돌아왔다는 얘기가 퍼지기 시작하자,
황제를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낙양성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허물어진 집을 고치고 밭을 일구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나갔다.
양표는 급한 대로 작은 궁전 한 채를 짓게 하고 그 앞에서 문무 백관들의 조회(朝會)를 열게 하였다.
이렇게 낙양성 재건(再建)이 시작되고 있을 때에 급보가 날아들었다.
그것은 이각과 곽사의 무리가 또다시 대군을 이끌고 낙양으로 쳐들어 온다는 것이었다.
헌제는 그 소리를 듣고 몸을 떨며 태위 양표에게 물었다.
"각지 제후들에게 구원을 요청했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도우러 오지 않았건만, 이각의 무리가 다시 쳐들어온다니 이를 어찌하면 좋소?"
"이제는 도적의 무리와 죽기로 싸우는 수밖에 없사옵니다."
그러자 동승이 즉석에서 고개를 흔든다.
"대항할 군사도 없으면서 도적들과 싸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제는 어가를 모시고 산동으로 피난을 가는 것이 상책일 것 같소이다."
헌제는 그 말을 옳게 여겨, 어가는 그날로 산동을 바라보고 낙양을 떠났다.
뒤따르는 무리들은 말없이 모두 걸어서 황제의 뒤를 쫒았다.
낙양을 떠나서 십 리쯤 갔을 때였다.
문득 저 멀리 들판에서 먼지 구름이 자욱이 일면서 햇빛을 가리우고 북소리, 징소리가 아득히 울려오며 무수한 군마들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냐?"
헌제 일행이 몸을 떨며 감히 말을 못하고 있었는데 그 많은 군사중에 평복을 입은 한 사람이 말을 달려 이쪽으로 나는 듯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앗 ! 저 사람은 산동에 갔던 칙사가 아닌가?"
"아, 틀림없는 그 사람 입니다 !"
칙사는 나는 듯이 달려오더니 헌제 앞에서 말을 내리기가 무섭게 부복하면서, "폐하 ! 지금 돌아오는 길이옵니다."하고 아뢰는 것이었다.
"저기 보이는 대군은 어떤 군사인가?"
"조조 장군이 폐하의 부르심을 받자옵고 대군을 일으켜 낙양으로 오는 중에 이각, 곽사의 무리가 낙양을 범하려 한다는 소리를 듣사옵고 하후돈(夏侯惇)장군에게 정병 오만을 주어 폐하를 호위하도록 보내온 군사이옵니다."
헌제와 백관들은 그 소리를 듣고 크게 기뻐하며 안도하였다.
얼마 안 있어, 하후돈과 허저, 전위등의 장수들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헌제앞에 부복한다.
"신 하후돈이 폐하를 호위코자 선봉으로 달려왔사옵니다.
조 장군께서는 대군을 이끌고 하루 이틀 늦게 도착하실 줄로 아뢰옵니다.
그러하오니 폐하께서는 안심하시옵소서 !"
"원로에 대군을 거느리고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소. 짐은 이제야 마음이 놓이오."
그러자 헌제를 수행하던 백관과 시종들이 일제히 만세를 높이 불렀다.
"조 장군 만세 !" ...
"하 장군 만세 !" ...
"황제 폐하 만만세 !" ...
그런데, 그 만세 소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동쪽에서 대군이 접근하는 것이 아닌가?
"저것은 웬 군사냐?"
하후돈이 손으로 이마를 가리며 다가오는 군사들의 군기(軍旗)를 유심히 살피더니,
"저 군사들도 우리편 이옵니다.
조 장군의 영제(令弟)인 조홍 장군이 이전,악진 등 두 부장과 함께 삼만 군사를 거느리고 선봉의 뒤를 따라온 후군(後軍)입니다."하고 아뢰었다.
그러자 헌제는 더욱 기뻐하면서,
"아, 우리 편이 삼만이나 또 온단 말이오!"
이윽고 조홍(曺洪)은 어가앞에 이르자 말에서 내려 천자 앞에 부복한다.
"신의 형은 적병이 낙양 가까이 이르렀음을 알고 하후돈 장군을 선봉으로 보내옵고, 다시 신을 후군으로 보내었사옵니다."
천자가 감격하며 말한다.
"아아, 조 장군이야 말로 참으로 사직지신(社稷之臣)이오!"
천자는 감격과 칭송을 마다 않았다. 이리하여 일시는 멸망의 비명에 직면했던 헌제는 일약 팔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다시 낙양으로 향했다.
정세가 이렇게 변한 줄을 모르는 이각과 곽사는 낙양을 점령하는 즉시로 헌제의 뒤를 맹렬하게 추격해 왔다.
그리하여 조조의 대군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자 하후돈과 조흥은 군을 좌우익으로 나누어 이각과 곽사의 무리들과 싸웠다.
그러나 도적의 무리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인데 다가 조조군은 워낙 훈련이 잘된 임전무퇴의 정예부대인 지라 싸움의 승부는 알아 볼 것도 없었다.
"이 기회에 도적의 무리를 씨알머리도 없이, 사정없이 베어라!"
명령 일하, 조조의 군사들은 도적의 무리들의 머리를 만여 급이나 베었다.
그리하여 이각과 곽사는 재빠르게 도망을 쳤지만 전장은 피바다를 이루었고 적들이 흘린 피는 대지를 적시고, 그 피는 십여 리 떨어진 낙양성에까지 이르렀다.
이날 황혼 무렵에 헌제는 낙양 궁전으로 다시 돌아왔고 군사들은 성 밖에 진을 치고 횃불을 밝혔다.
조조가 낙양에 도착한 것은 바로 다음날 아침이었다.
"조조가 상경하였다."
"조 장군이 드디어 낙양에 돌아왔다!"
천자를 호위하는 백관들과 시종들은 너나 없이 기뻐하였다.
낙양에 도착한 조조가 천자를 알현하기 위해 장락궁(長樂宮)으로 들어 가다가 순욱에게 묻는다.
"순욱?"
"예 !"
"잊은게 있소."
"뭡니까?"
"예법에 따르면 천자를 알현할 때에는 예물을 바쳐야 하는데 아무 준비도 못했으니 어찌해야 할까?"
순욱은 조조의 뒤를 따라가며 말한다.
"이러면 어떨까요?"
"뭐요?"
조조가 발걸음을 멈추고 순욱을 돌아 보며 물었다.
"지금 천자와 백관들은 굶주림과 추위에 지쳐 있을 테니 가장 필요한 것이 뭐겠습니까? 바로, 고깃국과 밀떡이겠지요.
이럴땐 고깃국 한모금이 황금 만 냥보다 나을 것입니다."
"맞소 ! 나도 어려운 시절에는 고깃국이 그 어떤 것보다 그리웠지. 조인?"
그러자 조조를 수행하던 조인이 즉각 대답한다.
"네 !"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그러자 순욱이 즉석에서 조조에게 간한다.
"주공께서 한 가지 더 유의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뭐요 ?"
"천자를 알현하실 때에 조정의 예법에 따라 주셔야, 천자를 비롯해 백관들이 안심할 것이옵니다."
"알겠소, 알겠소!"
"순욱? 한 가지 더 고려할 게 있네."
"뭡니까 ?"
"낙양은 이미 폐허가 되어 버렸으니, 수도(首都)를 옮겨야 한다면 어디가 좋겠소?"
"연주부의 허창입니다."
"어째서?"
"허창은 주공의 근거지가 아닙니까?
천자를 곁에 둬야 안심이 되실 거라고... 아마 주공께서는 그리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다만 말씀을 안 하셨다 뿐이지..."
"순욱 ! 당신은 어찌 내 마음을 그리도 잘 아는 거요?"
"주공, 그게 소관의 본분 아니겠습니까?"
"으 흐흐흠 !...."
조조는 자신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순욱이 너무도 기쁘고 좋아서 크게 웃어보였다.
어느덧 조조는 황제가 좌정해 있는 장락궁(長樂宮) 앞에 이르렀다.
황제는 비록 옷을 갈아 입고 용상에 좌정해 있었지만 불타고 부서진 집정전(執政殿) 내부는 타다 남은 재와 흐트러진 전각이어수선 하게 흩어져있었다
※ 삼국지(三國志)제76편 ※
허창 천도(許昌 遷都) (上)
한편, 이각과 곽사는 하후돈과 조홍에게 일 만이 넘는 군사를 잃고 크게 패했으나 아직 천하를 장악해 보려는 야망을 버리지 않았다.
"조조의 군사들은 오백 리를 넘는 먼거리를 단시간 내에 행군해 왔으므로 인마가 모두 피로했을 테니 차제에 크게 쳐부숴야 한다."
이각과 곽사는 의견이 일치되어 군사를 재정비하고 다시 낙양성을 공격할 준비를 시작하였다.
모사 가후가 그 소리를 듣고 간한다.
"조조를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되오. 누가 뭐래도 조조군은 훈련이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조조는 그 자신이 효장(驍將)이오.
차라리 군사를 더이상 희생시키지 말고 깨끗이 항복해서 죄를 용서 받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되오."
이각과 곽사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한다.
"이놈, 우리에게 항복을 권하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너 같은 놈은 당장 죽여야 한다!"
이각과 곽사가 서로 칼을 뽑아 가후의 목을 치려는 것을 수하의 장수들이 나서서 간신히 말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가후는 한밤중에 필마로 진영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이튼날 이각과 곽사는 조조군이 진을 치고 있는 낙양성으로 접근해 왔다.
이각의 조카중에 이섬(李暹)과 이별(李別)이라는 자는 힘이 장사여서 선봉에 서서 조조군 앞으로 달려나오는데
조조가 뒤를 돌아 보며 허저에게 명한다.
"허저(許楮)! 저런 놈들을 그냥 내버려 둘 건가?"
"넷 ! 알겠습니다. 제가 당장 달려 나가 두 놈의 목을 베어 오겠습니다."
허저는 말배때기에 박차를 가하며 비호같이 말을 달려나가더니 이섬의 목을 한칼에 베어 버리고 황급히 말을 돌려 쫒겨가는 이별의 뒤를 쫒아 그 역시 한칼에 마상에서 목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허저의 날쌤과 기세가 어찌나 비상하던지, 적병들은 도망칠 생각조차 잊어버리고 멍하니 싸움의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이윽고 허저는 이섬과 이별의 수급을 창끝에 꿰어 진영으로 돌아와 조조에게 보이며,
"주상 ! 두 놈의 목을 모두 잘라왔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보고를 하는 것이었다.
조조는 크게 감격하며,
"허저 ! 자네야말로 당대의 번쾌로다 !"
하고 친히 등을 두두려 주며 칭찬하였다.
이와 동시에 하후돈과 조인으로 하여금 이각과 곽사의 무리들을 좌우에서 공격케 하고 자신은 중군을 거느리고 정면으로 적을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이각과 곽사의 무리들이 조조의 군사들을 당해내지 못 할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한 일이었다.
이각과 곽사의 군사들은 지리멸렬로 참패를 거듭하여 그들의 시체는 땅을 덮었고, 그들이 흘린 피는 강을 이룰 지경이었다.
조조가 싸움에서 크게 이기고 낙양성 밖에 진을 치니 이를 보고 황제의 근위 대장(近衛 大將)인 양봉과 한섬, 두 장수가 은근히 불평을 속삭인다.
"조조가 이렇듯 대공을 세웠으니 앞으로 반드시 대권(大權)을 잡게 될 것이 아니겠소?"
"그러게나 말이오. 지금까지 천자를 모시고 갖은 고생을 한 우리는 뭐가 되오?"
"조조가 우리의 공로를 인정해 줄 리가 없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빨리 이곳을 떠나 다른 실속을 차리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게 좋은 생각이오."
두 사람은 무언가 귓속말을 한참 주고 받은 뒤에 그날 밤 성안에 있는 황제의 호위군을 모두 거느리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양봉, 한섬 등 두 근신(近臣)들이 황제의 호위병을 모두 거느리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사건이었다.
황제 유협은 크게 불안을 느끼며 시종을 풀어 알아 보니 그들은 군사를 이끌고 대량(大梁)방면으로 갔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조 장군과 상의하고 떠난 것인지, 곧 사람을 보내 알아보시오."
천자가 명령을 내리자, 조조에게 사신이 보내졌다.
조조는 사신을 경건히 맞아들였다. 그런데 조조는 칙사의 얼굴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근자에 들어 흉년이 계속된데 다가 천자는 일신의 피폐로 인하여 측근 근신들 모두가 피골이 상접하고 인품이 야비해졌는데, 지금 눈앞에 나타난 칙사는 혈색도 매우 윤택할 뿐만 아니라 인품이 놀랍도록 도도했기 때문이었다.
(아, 오랜만에 인물다운 사람을 하나 만났구나 !)
조조는 그렇게 생각하며,
"공은 처음 만나는데, 지금 무슨 벼슬로 계시오?"
하고 정중히 물었다.
칙사가 대답한다.
"저는 본디 원소(袁紹)의 수하에서 종사(從事)를 지내다가 천자께서 환도하심을 듣고 낙양으로 올라와 지금은 정의랑(正議郞)으로 있는 동소(董昭)라는 사람 입니다."
조조는 동소의 말을 듣자 새삼스럽게 반색을 하며,
"선성을 들은 지 오래더니, 이제야 만나게 되어 반갑소이다."하고 곧 주연을 베풀어 환대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모사 순욱(荀彧)도 같이 불러 놓고 정국 운영을 논의하였다.
바로 그때 조정의 신위군(新衛軍)을 자칭한 군대가 남하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러자 조조가 즉석에서,
"신위군? 어떤자가 감히 황제의 호위를 자처하고 진군하고 있단 말이냐? 어떤 자가 지휘하는지 그 자를 생포해 오라!"하고 명령을 내리자, 동소가 팔을 저으며 말한다.
"알아 보실 것도 없이, 그들은 양봉과 한섬일 것입니다.
그들 두 사람은 조 장군의 명성에 불평을 품고 부질없이 난동하는 것이니 과히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각과 곽사도 아직 살아 있는데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일이 아니오?"
그러자 동소는,
"범이 발톱이 없고, 새가 날개가 없는데, 무엇을 두려워 하십니까? 오래지 않아 두 사람은 조 장군에게 사로잡히게 될 것이니 아무 근심 마십시오.
그 보다는 장군께서 급히 하셔야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하고 밀하는 것이었다.
"옳은 말씀이오. 그러면 이제부터 어떻게했으면 좋겠소?"
"장군의 공로는 천자와 백성들이 한결같이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아직 구태(久態)를 벗어나지 못한 파벌에 눈이 어두운 관료들이 있어 장군을 시기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의 낙양은 폐허가 되어 버려 새로 재건하여 쓰기 보다는 새로운 곳으로 천도(遷都)하여 일대 혁신(一大革新)을 단행하실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조조는 동소의 말을 듣고 크게 감탄하였다.
그러잖아도 구태에 찌든 낙양을 떠나 일신이 변모한 새로운 수도(首都)를 염두에 두고 있던 판이었는데..
다만 그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었던 참이었는데, 황제의 근신으로 부터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듣게 되니 조조가 기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동 공의 말씀은 근래에 들어보기 어렵던 탁견(卓見)이오.
금후에도 많이 도와 주기 바라오. 만일 대업을 이루는 날에는 공에게 특별한 보답을 하리다."
이즈음, 궁중에는 천문(天文)을 잘 보는 시중 태사령 왕립(侍中 太事令 王立)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어느날 밤, 왕립은 천문을 보고 나서 크게 놀라며 종정 유애(宗正 劉艾)를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근자에 들어 천문을 눈여겨 보니, 지난 봄부터 금성(金星)이 토성(土星)을 점점 범하고 있고, 화성(火星) 또한, 역행(逆行)하여 천관(天關)에서 금성과 만났으니, 이는 실로 새로운 천자가 나실 징조요.
생각컨데 대한(大漢)은 이미 운수가 진하여 이제는 진(晉)이나 위(魏) 땅이 새로 흥할 것 같소."
그 말을 전해들은 조조는 즉시 왕립에게 사람을 보내어,
"천도(天道)는 워낙 심원(沈遠)한 것이니 공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말을 함부로 퍼뜨리지 마시오."
하고 주의를 단단히 시킨 뒤에, 곧 모사 순욱을 불러,
"순욱 ! 나는 천문을 모르지만, 왕립이 괴상한 예언을 하더라니, 그게 무슨 뜻 인 것 같소?"
하고 물었다.
"저도 왕립의 예언을 전해 들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하늘의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나라 종실은 워낙 화성(火性)입니다. 허창(許昌)으로 천도하실 것을 계획하신 일이 있지 않습니까?
허창은 토(土)에 속하는 땅이므로 수도를 그리로 옮기면 반드시 흥 할 것이옵니다."
하고 순욱이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심각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음... 그렇다면 반목(反目)하는 천자의 근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천자에게 우리의 위세를 보여 천도를 윤허 하도록 만들어야 하겠군!..."
며칠 후, 조조는 천자를 초청해 자신의 군대를 사열해보이면서 군대의 위력을 과시하였다
※ 삼국지(三國志)제77편 ※
허창 천도(許昌 遷都) (下)
조조가 아침 일찍 어가 선두에 서서 낙양을 떠나 허창으로 출발하였다.
그리하여 반나절 쯤 행군을 했을 때에 돌연 저 멀리 전방에서 홀연한 함성이 일어나면서 수다한 군사가 휘몰아쳐 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공격 선두에 선 장수가,
"이놈! 천하의 야심가 조조야! 네가 감히 어가를 모시고 어디로 가려하느냐?"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그들은 얼마전 낙양을 빠져나간 천자의 근위 대장 양봉과 한섬의 군사로서 선봉에 나서서 장창을 휘두르며 외치는 장수는 서황(徐晃)이었다.
조조는 어가를 호위하도록 명령하고 뒤따르는 허저에게 명하였다.
"허저! 저 자를 쳐부수라!"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허저는 서황을 향하여 맹수같이 달려나갔다.
서황도 맹장이지만 허저는 당대의 <번쾌>라고 불리는 천하 무쌍의 용장이었다.
허저와 서황은 창검을 번쩍이며 어울려 싸우기를 오십여 합에 승부는 좀처럼 나지 않았다.
말은 이미 땀을 흘리며 허덕이건만, 마상의 두 장수는 아직도 전의가 왕성하였다.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는 말도 있거니와, 그야말로 황홀할 정도의 찬란한 싸움이었다.
조조는 숨을 삼키며 싸움구경에 도취해 있다가 별안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허저를 불러들여라!"하고 명하니 후퇴의 징이 울렸다.
허저는 별안간 울리는 후퇴를 명하는 징소리를 듣고 마지 못해 싸움을 단념하고 진지로 돌아왔다.
서황도 조조군에 맞설 수있는 군사가 절대 부족하였기 때문에 일단 자기 진지로 돌아가 버렸다.
이렇게 어가의 행렬은 낙양을 출발한지 반나절만에 그자리에 멈춰서게 되었고, 그곳에 임시로 조조군의 진지가 구축되었다.
하후돈과 조홍이 말한다.
"주공, 적의 수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저희에게 명령하시면 적을 깨끗이 없애 버리고 행군이 허창으로 계속될 수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조조가,
"별안간 후퇴를 명령하고 진지를 구축하게 하여 모두가 웬일인가 싶었겠지만 싸움을 중단 시킨 것은 내가 보기에는 아무리 적일지라도 서황같은 장수는 희세의 맹장이다.
나는 그 사람을 내 편으로 삼고 싶으니 누가 서황을 찾아가서 설복시킬 사람은 없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행군종사 만총(行軍從事 滿寵)이 앞으로 나서며,
"주공, 제가 서황과는 교분이 있사오니 오늘밤 제가 적진으로 찾아가 사리를 밝혀 그를 설복시켜 보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날 밤, 만총은 평복으로 갈아 입고 홀로 적진으로 잠입하였다.
이때, 서황은 갑옷을 입은 채 혼자 불을 밝히고 앉아 있다가 밖에서 인기척이 나므로, "밖에 누구냐?"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만총은 그제서야 군막으로 들어서며 인사를 하였다.
"서 장군! 오랫동안 못 뵈었소이다. 저는 만총입니다."
"아, 만총이 여긴 웬일이오?"
"옛날의 우정을 생각해서 찾아왔습니다."
"옛날에는 아무리 친구였더라도 지금은 서로 싸우는 입장인데 어찌 오셨소?"
"사실, 조 장군의 특명을 받고 찾아온 것입니다."
"응? 조조의 특명으로?"
"그렇소이다. 오늘 장군이 조 장군의 일등 맹장인 허저와 싸우시는 것을 보시고 장군에게 탄복한 나머지 일부러 후퇴의 징을 울리게 하여 허저를 불러들였던 것입니다."
"아, 그래서 허저가 물러갔던가?"
"그렇소이다. 헌데, 서 장군 같이 훌륭한 무장이 어찌하여 양봉같이 어리석은 사람을 섬기시오?
그러지마시고 공은 나와 뜻을 같이하여 조 장군을 보필하여 함께 대업을 이루십시다."
"음...! 나도 양봉 장군의 무능함을 알고 있지만, 주종(主從)의 의리를 저바릴 수는 없지 않소?"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오.
옛부터 새는 나무를 가려 깃들고, 어진 신하는 주인을 골라 섬긴다 하지 않았소?
공은 후회가 없도록 깊이 생각하시오."
서황은 오랫동안 침묵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나는 만총의 진심어린 충고를 받아 들이기로 하겠소."
"고마운신 말씀.... 그럼 이왕 떠나시는 길에 양봉과 한섬을 아예 죽여서 그들의 수급(首級)을 우리 주상에게 선물로 가져가시면 어떻겠소?"
"신하로서 주인을 죽이는 것은 의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그것만은 못하겠소."
"서 장군은 참으로 의사(義士)이시오."
만총은 더이상 권하지 않았다.
서황은 그 길로 수하 병사 수십 명을 데리고 만총과 함께 조조의 진영을 향하여 떠났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서 양봉이 군사를 거느리고 쫒아온다.
"이놈, 서황아! 네 어디로 도망을 가느냐!"
양봉은 큰소리로 외치며 서황의 뒤를 맹렬히 추격해 왔으나 서황은 대꾸하지 아니하고 말에 채찍만 맹렬히 가했다.
그리하여 한참 쫒고 쫒기며 산모퉁이를 돌아오는데 홀연 복병이 사방에서 일어나며 조조가 양봉을 친히 맞아 싸운다.
"이놈 양봉아! 내가 여기서 너를 기다렸다!"
양봉이 깜짝 놀라 군사를 물리려 했을 때에는 이미 사면이 적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목숨이 심히 위태롭게 되었는데 다행히 뒤에서 한섬의 군사들이 몰려와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도망하였다.
그러나 한바탕 싸움에서 크게 패한 양봉과 한섬은 형세가 매우 곤란하여 마침내 남양(南陽)으로 원술(袁術)을 찾아갔다.
조조는 소원대로 서황을 얻게 되자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오늘은 나에게 다시없는 기쁜 날이오."하고 말하며 서황을 융숭히 대접하였다.
잠시후 날이 밝기 시작하자 조조는 어가를 모시고 허창을 향하여 다시 장도(長道)에 올랐다.
천자의 어가를 선두에서 이끌고 가던 조조가 수레에서 순욱을 불렀다.
"순욱?"
"예, 주공!"
"즉시 천자의 이름으로 각지 제후들에게 조서를 내리시오.
천자께서 허창으로 천도하시니, 각지 제후들과 태수, 자사, 장군들은 속히 알현하라고! 그리고 오늘부터 허창을 허도(許都)로 개명하고 연호를 건안(建安)으로 바꾸고 사면령도 내리시오!"
순욱은 마상에서 조조의 명을 받고, 두 손을 읍하며 대답한다.
"알겠습니다."
이렇게 허창으로 향하는 어가의 행렬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백여 리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허창에 도착하자 그날부터 새로 궁궐을 짓고 아문(衙門)을 세우고, 종묘(宗廟)를 모셔서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런 뒤에는 자신의 측근에 대한 논공 행상을 베풀어, 순욱(荀彧)은 시중 상서령(侍中 尙書令) 순유(荀攸)는 군사(軍師) 곽가(郭嘉)는 사마(司馬)
유엽(劉曄)은 사공연(司空緣)
모개와 임준(任畯)은 전농 중랑장(典農 中郞將) 정욱(程昱)은 동평상(東平相)
범성(范成)과 동소(董昭)는 낙양령(洛陽令) 만총(滿寵)은 허도령(許都令)
하후돈, 하후연, 조인, 조홍은 장군(將軍)으로, 여건(呂虔), 이전(李典), 악진(樂進), 우금(于禁), 서황(徐晃)은 모두 교위(校尉)를 내리고, 허저(許楮), 전위(典韋)는 도위(都尉)의 벼슬을 내리고 그밖의 병졸에게도 공과(功過)를 심사하여 각각 벼슬을 내리니 사실상 조조는 자기 자신의 부하들에게 존경받은 자애로운 주공으로서의 면모를 보다 확실히 만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조조는 자신의 딸을 천자의 귀인(貴人)으로 대궐로 들여보내고 명실상부 천자의 장인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는 만조 백관들의 선두에 서서 조회(朝會)에 입조하였다.
그 자리에서 조조는 천자에게 아뢴다.
"아뢰옵니다. 허창으로 천도한 이후, 천하의 백성들이 한결같이 기뻐하며 다행으로 여기고 있으니 천하가 태평성대하고 날씨조차 쾌청합니다 ."
천자는 이미 허창으로 천도한 이후, 자신의 실권이 조조에게 넘어간 것을 몸소 겪고있던 차였다.
그리하여 그의 말에 쫒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좋소, 좋아. 모든 것이 경의 덕이오. 짐도 아주 기쁘오."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죽간(竹簡)을 펼치며 아뢴다.
"폐하의 윤허를 청합니다.
기주의 원소를 대장군에 봉하고 무정후(務政侯) 작위를, 남양의 원술은 표기(表騎)장군에 봉해 충의후(忠義侯) 작위를, 형주의 유표는 전장군(前將軍)에 봉해 동안후(董安侯) 작위를, 유주의 공손찬은 후장군(後將軍)에 봉해 정안후(政安侯) 작위를 내린다.
이상입니다."하며 상소문을 국구 동승(國舅 董承)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천자의 곁에 시립해 있던 국구 동승이 조조에게 다가가 상소문을 받으며, "조 장군, 천자께서는 이제 갖 허창에 오신지라 할 일도 많으신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