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4장 12-19절 / 고난이 오면 (406,341)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 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 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베드로전서를 희망의 서신이라고 합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난의 역속이었는데 왜 희망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고난은 실패의 고난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고난이고, 소망의 고난이고, 희망의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당하면 기뻐하라고 했고, 베드로 사도는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12-13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 여기서 불 시험은 뼈아픈 시련, 고난, 재난을 말합니다. 9.11테러, 성수대교 붕괴, 갑자기 겪는 고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기 위해 이런 고난을 주십니다. 저 역시 이런 고난을 겪고 난 다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난은 믿음으로 가는 축복의 통로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방여자입니다. 이 여자의 딸이 귀신들렸습니다. 이 여자는 딸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 발아래에 엎드렸습니다. 간구했습니다. 이런 여자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7장 2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예수님께서는 여자의 인격을 건드렸습니다. 도와줄 수 없었다 하셨습니다. “no”했습니다. 여러분, 이쯤 되면 전부 끝난 것 아닙니까? 여자가 욕을 하고 가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를 철저히 시험했습니다. 고난을 주셨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의 “no”에 “yes"를 발견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졌습니다.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마가복음 7장 28절입니다.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자는 부스러기라도 먹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남이 먹다가 남은 음식 먹겠습니까? 저는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자신은 개이기 때문에 먹겠다고 했습니다. 이 여자는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했습니다. 루터는 말하기를 “시련은 하나님의 앉아 주심이다. 시련이 없는 것 보다 시련이 있는 것이 좋은 것이고, 시련이 없는 것이 시련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결론의 말씀입니다. 19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베드로 사도는 말하기를 고난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고난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리스도인은 선을 행해야 한다고 베드로 사도는 말했습니다. 여기서 선이라는 것은 영적인 일로 예배, 기도, 구제, 선교, 나눔, 봉사, 전도를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