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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5장 1절(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은 '중생은 믿음에 선행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이지끼을
요한일서 5장 1절 [개역개정]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중생은 믿음에 선행한다(중생으로 믿음을 갖게 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요한일서 5장 1절 a 를 그 근거로 내세웁니다.
요한일서 5장 1절 a [개역개정]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니
이 말씀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입니다.
Everyone who believes that Jesus is the Christ is born of God, [NIV] 라는 말씀인데
이와 같이 요일 5:1절을 근거로 중생은 믿음에 선행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살펴 보면
요일 5:1절a 의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 라는 말을
하나님께서 중생케(거듭나게)하신 자 라고,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 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일 5:1절a를 근거로
하나님께서, 중생케(거듭나게) 하신 후에,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후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요일 5:1절 a 를 보면, 하나님께서 낳아 주신 것은 과거의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낳아 주셨으므로(원인)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가 된 것이다(결과)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낳아 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와 같이 이해하려면, 헬라어 성경에,
하나님께서 낳아 주심으로 [그때 부터] 믿고 있다 라고
또는, 하나님께서 낳아 주심으로 믿는다 라고 쓰여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쓰여 있지 않습니다.
헬라어 성경으로 요한 일서 5장 1절a 를 보면
Πᾶς ὁ πιστεύων ὅτι Ἰησοῦς ἐστιν ὁ Χριστὸς ἐκ τοῦ θεοῦ γεγέννηται,
everyone believing that Jesus is the Christ of God has been born 이라고
쓰여 있는데
우선 낳음을 받았다는 의미인 γεγέννηται(게겐네타이, has been born)를 보면
완료시제(Perfect Tense)입니다.
헬라어에서, 완료시제(Perfect Tense)는
과거에 발생한 동작이 완료되어 그 결과가 현재까지 지속됨을 나타내므로
γεγέννηται(게겐네타이)는 하나님께서 낳아 주신 것이, 곧 하나님께서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요일 5:1절a를, 하나님께서 낳아 주심으로 믿게 되었다 라고 이해하려면
믿는다 라는 동사는, 영어의 현재완료(present perfect)시제와 같은
완료시제인 "πεπίστευκεν (페피스테우켄, he has believed, 그는 믿고 있다)"이라고 쓰여 있든가
아니면, 현재시제인 πιστεύει (피스테우에이, he believes, 그는 믿는다)라고 쓰여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거 어느 시점에 하나님께서 낳아 주셨으니, 그때부터 믿고 있는 자이다 , 또는 믿는 자이다
라고 이해할 수 있고
요일 5:1절a 는 중생은 믿음에 선행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πιστεύων(피스테우온, believing)이라는 단어를 보면
완료시제 (Perfect Tense)도 아니고 현재시제(Present Tense)도 아닌 현재분사(present participle) 이고
그 역활은 형용사입니다.
그러므로 요일 5장 1절a,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니 라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낳아 주셨으므로(원인)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가 된 것이다(결과)라고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요일 5장 1절a 의
믿는다는 말은 현재분사(present participle) 로
낳음을 받았다는 말은 완료시제(Perfect Tense)로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이 쓴
요일 5장 1절 a 는 현재분사(present participle)와 완료시제(Perfect Tense)의 조합으로 쓰여져 있는데
이와 같이 사도 요한이 현재분사(present participle) 와 완료시제(Perfect Tense)를 조합해서 쓴
말씀이 요한복음 3장 18절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 3:18절을 이해하면 그에 따라 요일 5:1절a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 3:18절 [새번역]
a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b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c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 3:18절 말씀 중 b,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ὁ δὲ μὴ πιστεύων ἤδη κέκριται,
the [one] but not believing already has been judged 라는 말씀을 보면
'믿지 않는'이라는 말은
현재분사(present participle)인 μὴ πιστεύων (메 피스테우온, not believing) 으로 쓰여 있고
'이미 심판을 받았다'라는 말의 헬라어는
완료시제(Perfect Tense)인 ἤδη κέκριται (에데 케크리타이, has been judged already)로 쓰여 있습니다.
이와 같이 쓰여 있는 요 3:18절 b,
'믿지 않는(현재분사)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완료시제)' 라는 말씀을
"중생은 믿음에 선행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요일 5:1절 a 를 읽듯이,
곧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현재분사) 자는
하나님께로 부터 난(완료시제) 자 입니다. 라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낳아 주시므로(원인)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결과)라고 읽듯이, 읽으면
요 3:18절 b는
심판을 받았으므로 (원인) 아들을 믿지 않는다(결과) 는 말이 됩니다.
곧, 심판을 받으므로 믿지 않는 자가 된다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믿지 않으므로 심판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 3:18절 c [새번역]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믿지 않는 것은 심판의 결과가 아니라 심판의 원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전한 예수님의 말씀인 요 3:18절b 에서, 믿지 않는(현재분사)자 는
[믿지 않으므로] 심판을 받은(완료시제) 자 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오래전에 출세하려면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입학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한 시골 동네에서는 수험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입학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입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 동네에서 공부 잘하는(현재분사) 사람들은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입학한(완료시제) 사람들이다"
라고
동네 사람들의 말에서 공부 잘하는(현재분사) 사람들은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입학하고, 그때부터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했고(완료시제)
명문대에 입학함으로 인해, 동네 사람들에게, 공부 잘하는(현재분사) 사람들로 인정받고 있는 것입니다.
곧 공부를 잘하는 것이 원인이고 명문대에 입학한 것은 그 결과입니다.
정리하면,
동네 사람들의 말에서, 공부 잘하는(현재분사) 사람들은
[공부를 잘해서]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한(완료시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요일 5:1절 a,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라는 말씀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현재분사) 자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부터 난(완료시제) 자 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현재분사) 자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완료시제) 자 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1-12절,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특권)를 주셨으니 라는
말씀을 보면,
사도요한은 요한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20:31절,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라는 말씀을 보면
요한복음을 쓴 사도요한의 목적을 알 수 있는데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요1:12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 일서는 그 대상이 믿는 자들, 곧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자들인데
요한일서의 대상인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들은
요한복음 1:11-12절, 20:31절 말씀에 따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들(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사도요한이 쓴 요한일서의 대상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들(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입니다.
사도요한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들 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더 이상 믿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더 이상 믿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후에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후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살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일 5장 1절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현재분사)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완료시제) 자,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된(완료시제) 자 인 것 입니다.
다시 말해서 요일 5:1절은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가 된다(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가 된다,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은
하나님으로 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디도서 3:3-7절 [개역개정]
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 중 딛 3: 7절은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라는 말씀인데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상속자는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려면 자녀가 되어야 (입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딛 3:7절에서,
"의롭다하심을 얻어" 라는 말 대신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라는 말을 넣어 다시 쓰면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라는 말씀이 됩니다.
그러므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과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이신칭의)는 말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요일 5:1절을 통해
중생은 믿음에 선행한다(중생으로 믿음을 갖게 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믿음을 갖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주장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믿음을 갖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롭다하심을 받고, 믿음을 갖게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곧, 루터가 말한 종교개혁의 핵심교리인 이신칭의,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말의 순서를 바꿔서
의롭다하심을 받고 믿음을 갖게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디 3:7절로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은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일 5:1절a 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믿음을 갖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중생하고 믿음을 갖게 된다(중생은 믿음에 선행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믿음으로 중생한다는 의미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중생은 믿음에 선행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요일 5:1절a,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니 라는 말씀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이다" 라고 거꾸로 읽고
이를 근거로 "중생은 믿음에 선행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요일 5:1절 a를 읽고
(1) 중생은 믿음에 선행한다 (중생으로 믿음을 갖게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중에 R. C. Sproul, Anthony Hoekema, 그리고 John Piper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우리가 중생합니다.
그러므로 중생은 믿음에 선행한다는 말에 성령의 내주하심을 덧붙여
(2)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중생하고 그리고 믿음을 갖는다 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는데
Jonathan Edwards 입니다.
Jonathan Edwards도 요일 5:1절을 통해 중생으로 믿음을 갖게 된다고 이해하는데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중생하는 것이므로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중생하고 그리고 믿음을 갖는다 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Jonathan Edwards는 요일 5:1절을 통해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으로 믿음을 갖는다 라고 주장한 것인데
바울의 말씀을 보면 그 반대입니다.
갈 3장 2절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개역개정]
I would like to learn just one thing from you:
Did you receive the Spirit by observing the law, or by believing what you heard? [NIV]
갈 3장 2절 말씀은
들은 것을 믿음으로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Jonathan Edwards는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으로 믿음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의 말씀과는 정반대로 주장한 것입니다.
요일 5:1절을 거꾸로 이해하였으므로, 바울의 말씀과 반대되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바꿔 말해서,
Jonathan Edwards가 성령의 내주하심(중생)과 믿음의 관계에 대하여
바울의 말씀과 반대되는 주장을 했다는 것은
Jonathan Edwards가 요일 5:1절을 거꾸로 읽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Jonathan Edwards의 신학은 주의해야 할 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노병기 목사가
6. 거듭남과 믿음과 칭의의 관계 ― 거듭남의 선행성(先行性)
에드워즈는 거듭나야 믿음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믿음이란 성령의 주입으로 오는 믿음을 말한다.
에드워즈가 거듭남을 얻기 위해서도 믿음을 가지라고 했지만
그가 말하는 믿음은 주로 거듭남 후에 오는 신적인 믿음을 말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이것이 청교도 신학의 특징이다.
라고 말씀한 것을 보면
Jonathan Edwards는 거듭남을 위한 믿음(1)과 거듭남 후에 오는 신적인 믿음(2)
곧 두 가지 믿음을 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Jonathan Edwards가 common faith와 saving faith를 말한 것은 저도 알고 있는데
그러면
거듭남을 위한 믿음(1)이 common faith를 말하는 것인지 아닌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같다면, common faith 로 거듭난다고 말한 것이 되고
다르다면, Jonantha Edwards는
세 가지 믿음[거듭남을 위한 믿음(1), common faith, 그리고 신적인 믿음(2)( = saving faith) ] 을 말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중생하고 그리고 믿음을 갖는다 는 주장에
성령세례를 덧붙여
(3) 성령세례로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고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중생하여 믿음을 갖게 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저의 글,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성령론 연구보고서"에 있는 성령의 내주하심(중생)에 관한 모순,
그리고 그 모순으로 정의한 성령세례"를 통해 말씀드렸듯이
1993년 당시 고신대 교수들이 이러한 중생론을 말했던 것인데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1) (2) (3) 중생론은 모두 "중생은 믿음에 선행한다"는 중생론이고
모두 요일 5:1절a,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라는
말씀을 거꾸로 읽고 주장한 중생론입니다.
요한복음 3: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나지(중생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인데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요일 5:1절은 중생하고 믿음을 갖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믿음으로 중생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가려면, 믿음으로 거듭나야(중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생은 믿음에 선행한다(중생으로 믿음을 갖게 된다)는 주장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중생케 하셔서(거듭나게 하셔서) 자신들에게 믿음이 있다고 오해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중생해야(거듭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다 해도,
중생하지 못한 상태로, 거듭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고
거듭나지 않았으므로 요 3:5절, 예수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5절 을 다시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는데
긍정문으로 바꾸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중생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5절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이 믿음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중생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물은 세례(침례)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요 3:5절은
사람이 믿음으로 세례(침례)를 받아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인데,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는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막 16:16절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는데
(복음을)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대로 구원받고 있다는 것을 서신서등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했는데
그 중 하나가 갈라디아서입니다.
갈 3:26-27절 [새번역]
26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들) 입니다.
27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 안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정리하면
믿음으로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으로 세례를 받아 (과거)
그리스도로 옷 입고 있기 때문에(현재완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현재)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성령의 내주하심이 있습니다.
갈 4:6절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막 16:16절 예수님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되어(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므로 성령의 내주하심을 받아 중생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들이 되었다고알려 준 것입니다.
곧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막 16:16절 예수님 말씀에 따라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라고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이러한 중생론(구원론)을 믿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중생론(구원론)의 중심이 되는 막 16:16절 예수님의 말씀도 믿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요일 5:1절a를 거꾸로 읽기 때문입니다
신학자들이 만든 교리에 따라 요일 5:1절을 거꾸로 읽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닌데도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중생한 것이 아닌데도 자신이 중생하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다 해도,
중생하지 못한 상태로, 거듭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고
거듭나지 않았으므로 요 3:5절, 예수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막 16:16절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막 16:16절은 구원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구원에 관한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관한 약속인
막 16:16절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라는 말씀대로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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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말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과 같은 말이라는 것을
말씀드렸던 글이 두개 있습니다.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1) "믿음으로 의롭다함(이신칭의)을 받는다"는 말씀의 의미 (갈 3:23 - 27절)
https://cafe.daum.net/1107/Y4PX/1357
(2) 디도서 3장 7절,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말씀의 의미
https://cafe.daum.net/1107/Y4PX/1635

첫댓글
이신칭의, 곧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교리는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의 핵심교리입니다.
그런데 현재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는 말의 순서를 바꿔서
의롭다하심을 받고 믿음을 갖게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 입니까?
이지끼을 님, 시체가 어떻게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학교를 들어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개혁 신학에서는 중생 전 상태를 영적으로 ‘완전히’ 죽은 상태로 봅니다.
이지끼을 님에게 중생 전 상태는 어떤 상태입니까? 잠자는 사람은 꿈속에서 믿음을 고백할 수 있는데, 이지끼을 님에게 중생 전 상태는 잠자는 상태이거나 비몽사몽인 상태입니까? 아니면, 좀비 상태입니까?
시체가 어떻게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학교를 들어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지금 서울대학교를 다니는 학생들 중 중생한 자가 아닌 학생들은 다 시체라는 말인가요?
그리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교리가 바로 개혁주의 교리입니다.
그 교리로 인해 성경을 거꾸로 읽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엡 2:1-5절
1 여러분도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2 그 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3 우리도 모두 전에는, 그들 가운데에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4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5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믿게 하신다는 말이 아니더군요
그러니 사계님께서 이 말씀으로 개혁주의 교리를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지끼을 이제는 제 비유마저 오독해(범주 오류) 물타기를 하시네요. 다시 묻습니다.
개혁 신학에서는 중생 전 상태를 영적으로 ‘완전히’ 죽은 상태로 봅니다. 이지끼을 님에게 중생 전 상태는 어떤 상태입니까? 잠자는 사람은 꿈속에서 믿음을 고백할 수 있는데, 이지끼을 님에게 중생 전 상태는 잠자는 상태이거나 비몽사몽인 상태입니까? 아니면, 좀비 상태입니까?
성경 구절 쓰실 때 칸 띄우지 마십시오. 마우스 스크롤 내리려면 힘듭니다.
@四季 朴埰同
제가 지난 글로
영적으로 죽어 있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쉽게 알 수 있는 말씀은 엡 2:5절입니다.
엡 2:5절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곧 그리스도 안에서 살려 주시면 중생한 자(the regenerated)가 됩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는 중생하지 않은 자(the un-regenerated)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한 영적으로 죽어 있다는 말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 곧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입니다.
(To be spiritually dead is to be separated from God.)
그러므로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는 중생하지 않은 자(the un-regenerated) 이고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자는 중생한 자(the regenerated)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상태로만 이해합니다.
그러니까 엡 2:1-5절로 개혁주의 교리를 설명해 주십시요
교리만 말씀하지 마시고 성경으로 설명하시라는 것입니다.
@四季 朴埰同
그렇게 교리만 말하니 성경을 거꾸로 읽게 되는 것입니다.
@四季 朴埰同
사계님도 잘 아시듯이
은시중지론이 성경을 거꾸로 읽는다는 것을 찾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저는 신학만을 보지 않아요, 성경을 보고 그들이 성경을 거꾸로 읽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이지끼을 <에베소서 2장 5절에 적힌 중생 전 상태를 뜻하는 “허물로 죽은”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시체를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이 잠자고 있어서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잠재해 있는, 잠자는 상태를 뜻하지 않습니다.>
★ 에베소서 4장 18절: 그들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 고린도전서 2장 14절: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 로마서 3장 10절~11절: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四季 朴埰同
<에베소서 2장 5절에 적힌 중생 전 상태를 뜻하는 “허물로 죽은”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시체를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생명이 잠자고 있어서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잠재해 있는, 잠자는 상태를 뜻하지 않습니다.> 라고 하셨는데
에베소서 2장 5절은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사계님은 이중에서 “허물로 죽은” 이라는 말만 떼어 내서 자신의 의견을 적은 것입니다.
5절이 (하나님께서) 범죄로 죽은 우리를 살려 주셨습니다 라는 말씀뿐이라면 저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다고 합니다.
@四季 朴埰同
그리스도와 함께 라는 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영어로 쓰면 in Christ입니다.
Being "in Christ" is a foundational New Testament concept, referring to a believer's spiritual union, communion, and identification with Jesus.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신약 성경의 근본적인 개념으로, 신자가 예수님과 영적으로 연합하고 교제하며 동일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살려 주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를 살려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사계님이 말한 “중생전 상태”의 사람은 그리스도와 어떻게 연합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다는 말인가요?
2020년 12월부터 어언 5 년이 넘은 세월입니다. 이지끼을 님이 주님께서 하신 말씀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막 16:16 상)를 가지고 ‘믿음→세례→구원’이라는 구원의 서정을 추출하실 때, 저는 이를 “개혁 교회가 행함 구원론으로 단죄한 로마 천주교 세례중생론이며. 이 누룩을 제거하지 못한 루터교 세례중생론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바로 뒤에 하신 말씀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하)를 내세워 “믿음이 구원의 조건이지 세례가 구원의 조건이 아님”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질문드렸습니다. 그 질문에 이지끼을 님은 답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질문 다시 드립니다.
“믿고(믿음)”는 거듭난 자의 믿음입니까, 거듭나지 않는 자의 믿음입니까? 즉, 세례는 복음을 믿는 자가 받아야 합니까, 복음을 믿지 않는 자가 받아야 합니까?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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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끼을 님, 5 년 동안 답을 안 하셨는데, 이제는 답을 하십시오.
‘믿고(믿음) 세례를 받는’ 행위의 주체는 영적으로 산 자입니까, 영적으로 죽은 자입니까? 그 ‘믿음’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오죽하면, 그때 제가 결혼 비유까지 했겠습니까? 옮깁니다.
《이른바 “속도위반”이라는 것도 있어서 비유로 진리의 모든 면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만, 제가 이지끼을 님 세례중생론을 두고 결혼 비유를 한 적 있습니다. 결혼식을 세례식으로 보면, 결혼식 전 사랑이 전혀 없어서 서로 저주했던 남녀가 강제로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불타는 사랑이 생겨 첫날밤을 치르면서 한 몸을 이루지요? 아니면, 결혼식을 올렸음에도 강제 결혼식이라서 불타는 사랑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후손을 낳으려고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밤, 첫날밤에 한 몸으로 이루는 연합으로 불타는 사랑이 생기지요?》
이지끼을 님, 이제는 답을 하십시오.
“믿고”의 정체를 말씀하십시오. “믿고”는 어떤 믿음입니까? 그리스도를 저주하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를 “내 주님”으로, 성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믿음입니까?
순서대로 합시다
이리 저리 벌려 놓으셔서 헷갈릴 것 같은데
위에 제가 9:47,, 9:48에 답글 드린 것 부터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답은 한 줄로 이어 가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위에 드린 답글의 답을 이 글 밑에다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다는 말인가요?”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살려 주신다.”는 것은 5 년 넘게 《“믿고”의 정체를 말씀하십시오. “믿고”는 어떤 믿음입니까? 그리스도를 저주하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를 “내 주님”으로, 성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믿음입니까?》라는 제 질문에 답이 없으신 이지끼을 님 주장 아닙니까?
다시 묻습니다.
“믿고”의 정체를 말씀하십시오. “믿고”는 어떤 믿음입니까? 그리스도를 저주하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를 “내 주님”으로, 성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믿음입니까?
<이지끼을 님, “with(同)”와 “together with(同)”가 ‘in’입니까? ①>
에베소서 2장 5절: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NIV}: made us alive with Christ even when we were dead in transgressions—it is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KJV}: Even when we were dead in sins, hath quickened us together with Christ, (by grace ye are saved;)
<이지끼을 님, “with(同)”와 “together with(同)”가 ‘in’입니까? ②>
헬라어 까막눈인 제가 구글 제미나이에게 “함께”를 중점으로 분석 직역해 달라는 부탁했습니다. 다음은 구글 제미나이 답변입니다.
★헬라어 원문: καὶ ὄντας ἡμᾶς νεκροὺς τοῖς παραπτώμασιν συνεζωοποίησεν τῷ Χριστῷ· χάριτί ἐστιν σεσωσμένοι
★ 분석 및 직역:
καὶ ὄντας ἡμᾶς νεκροὺς (카이 온타스 헤마스 네크루스): 그리고 죽어 있었던 우리를
τοῖς παραπτώμασιν (토이스 파랍토마신): 허물들로 말미암아
συνεζωοποίησεν (쉬네조오포이에센): [함께 살리셨다]
τῷ Χριστῷ (토 크리스토): 그리스도와
χάριτί ἐστιν σεσωσμένοι (카리티 에스틴 세소스메노이): 은혜로 너희가 구원을 받은 상태다.
<이지끼을 님, “with(同)”와 “together with(同)”가 ‘in’입니까? ③>
★ 헬라어 동사 “쉬네조오포이에센” 속에 접두어 “σύν(syn)”가 녹아 있는데, 헬라어 접두어 “σύν”은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실 때 사용하신 ‘방법’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문장의 동사 “쉬네조오포이에센”은 3인칭 단수입니다. 주어는 4절 “하나님(Θεὸς)”입니다. 죽어 있는 “우리(ἡμᾶς)”는 동사의 목적어일 뿐, 연합을 위해 어떤 동작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시체(우리)가 그리스도 안(in)으로 들어가 연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체를 그리스도와 묶어서(함께) 살려내신 것입니다.
with Christ와 in Christ 를 저는 같은 것으로 봅니다.
사계님은 다른 것으로 보신다고 했는데
그리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는 말이 됩니다.
또한 저는 롬 6장과 골 2장이 연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