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흐
저스트 두 잇(Just Do It): 노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어 하는 마음에는 매우 인간적인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계획과 안심, 그리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확신이 주는 위안을 좋아합니다. 슬픔이나 상실을 겪은 후, 인생의 중대한 전환기를 지날 때, 심지어 평범한 순간에도 우리는 이런 감정을 느낍니다.
오늘 아침, 아이들에게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도와주며, 저 자신도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안심시켜 주던 바로 그 순간, 저는 이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습니다.
때로는 누군가가 ‘모든 게 잘 될 거야’라고 말해주기만을 바랄 때가 있습니다. 노아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홍수가 물러가고 땅이 마르기 시작했을 때 노아는 여전히 방주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토라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에게 방주를 떠나라고 명령하셨지만, 고대 랍비들의 가르침은 노아가 왜 스스로 방주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설명을 제시합니다.
צֵא מִן־הַתֵּבָה אַתָּה וְאִשְׁתְּךָ וּבָנֶיךָ וּנְשֵׁי־בָנֶיךָ אִתָּךְ׃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아들들의 아내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라.” (창세기 8:16)
영국의 전 수석 랍비이자 저명한 성경 학자였던 고(故) 조나단 삭스 경 랍비는 노아에 관한 자신의 에세이 중 하나에서 이 가르침을 전합니다. 랍비들은 노아가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방주에 들어갔으니, 허락 없이는 방주를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 허락을 내려주셨습니다. 하지만 서기 2세기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저명한 유대인 현자 예후다 바르 일라이 랍비는 다른 견해를 제시하며, 만약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방주의 문을 부수고 직접 밖으로 나갔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노아에게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겪은 모든 일을 생각하면, 주저하는 그를 누가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그가 알던 세상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는 방주 안에서 몇 달을 보내며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고 가족을 보호해 왔습니다. 이제 그는 앞으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책임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랍비 삭스는 우리가 산산조각 난 세상을 재건해야 할 임무를 맡았을 때, 항상 명시적인 허락을 기다릴 수는 없다고 설명합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기를 기대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확신이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바깥 세상이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확신. 자신이 그곳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확신. 방주에서 내려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확신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하는 일이 아닐까요? 우리는 스스로에게 ‘적절한 순간’, ‘적절한 상황’, 혹은 누군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종종 우리가 진정으로 기다리는 것은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이 생각은 성경의 또 다른 장면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 서 있고 이집트 군대가 다가오자, 모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워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놀라웠습니다. “왜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백성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하라.”
וַיֹּאמֶר יְהֹוָה אֶל־מֹשֶׁה מַה־תִּצְעַק אֵלָי דַּבֵּר אֶל־בְּנֵי־יִשְׂרָאֵל וְיִסָּעוּ׃
“그때 하쉠께서 모쉐에게 말씀하셨다. “왜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하라.” (출애굽기 14:15)
이 순간, 하나님의 목소리가 마치 이스라엘 택시 기사처럼 들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얄라(יַאלְלָה, Yallah), 가자- Let’s go!”
기도하고 위로를 받을 때가 있는 반면, 단순히 움직이기 시작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모든 망설임이 부적절하다는 뜻도 아니고, 생각 없이 행동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신중함과 인내심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것과, 아무도 우리에게 줄 수 없는 확신을 기다리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두 성경 이야기에서 제가 특히 주목하는 점은, 하나님께서 노아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앞으로의 길이 순탄할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노아에게는 여전히 온 세상을 재건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여전히 광야를 건너야 하고, 정복해야 할 새로운 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신 명령이 그들을 기다리는 어려움들을 없애주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바로 믿음을 그토록 어렵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그토록 의미 있게 만드는 이유일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모든 일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정확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의미한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반드시 그런 확신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다음 단계를 내딛기 위한 도구와 기회, 그리고 책임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준비되었다’고 느낄 수 있는 허락일 뿐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단순히 ‘시작’하기 전에 항상 100% 준비되었다고 느낄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By Sara Lamm (a content editor for TheIsrael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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