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은 더 이상 불자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예불과 기도 등 종교 본연의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인의 문화적 요구에 발맞춰 ‘지금-여기’ 문화 생산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많은 사찰들이 각자의 전통과 개성을 살린 다양한 문화프로그램과 행사를 준비, 양적ㆍ질적면에서 다양한 볼거리와 즐거움을 제공하며 사람들을 산문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 이처럼‘문화 포교’가 사찰의 새 코드가 되는 사회에서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사찰들을 소개한다.
■ 심곡암
북한산 예술축제 여는 심곡암
북한산 형제봉 사이에 자리잡은 심곡암. 말 그대로 깊은 계곡 속의 작은 암자 심곡암은 서울 시민들에게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일상에 쫓겨 도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산사의 평안함을 제공하는 사찰. 이와 함께 각종 문화행사를 유치ㆍ기획해 불자와 일반인들 모두가 즐겨찾는 ‘자연 속 문화공간’이 바로 심곡암이다.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열리는 산꽃축제와 단풍문화축제가 심곡암의 대표적인 문화행사다. 봄꽃이 한창 아름다운 4월과 단풍이 가장 돋보이는 10월, 북한산 깊은 암자는 축제의 물결로 일렁인다. 축제의 중심은 불자 문화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산사음악회.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향연에 종교를 넘어서 모두 하나가 된다. 6번의 축제를 거치는 동안 심곡암 산사음악회 ‘마니아’가 생겨났을 정도다.
음악회만 치르는 축제는 눈길을 끌기 어렵다. 심곡암은 단순한 음악회에서 벗어나 선서화 전시와 다도시연 등의 행사도 함께 선보인다. 또한 무형문화재의 시조낭송과 대한불교소년소녀합창무용단의 노래, 승무공연 등 문화예술마당도 다채롭게 기획하고 있다. 불심과 자연, 그리고 예술이 어우러지는 축제다.
주지 원경스님은 “단순한 놀이문화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문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불법을 전하는 장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앞으로 마련되는 축제에서는 불자 비불자가 어우러져 부처님 가르침을 새길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02)914-8860
■ 미황사
지역 문화 축제의 대명사, 미황사
미황사는 땅끝마을 정취와 고찰의 미를 한껏 느낄 수 있어 남도 순례에 빠지지 않는 코스로 각광받아 왔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지역 문화를 이끄는 문화 포교의 선봉장으로 더욱 유명해진 사찰이다.
지난 2000년부터 매년 개최한 미황사 산사음악회는 지역민과 어우러지는 대표적인 문화 행사로 자리매김해, 매 회 500명 이상의 사부대중이 참석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기획부터 구체적인 행사 준비에 이르기까지 인근 지역민들이 직접 참여해 지역문화 축제의 대명사가 됐다. 또한 괘불제, 탁본전 등의 문화체험 행사도 곁들여 찾는 이가 많다.
지역민을 위한 ‘어린이 한문학당’ 운영도 주목받는 부분이다. 한문 교육을 비롯해 인성교육, 참선, 다도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병행해 지역주민들의 참여가 높다. 특히 휴가철에는 타지역 주민들에게 한문학당 자원봉사 활동을 개방함으로써 지역간의 교류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내ㆍ외국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템플스테이 유치도 미황사 문화 포교의 한 방법으로 자리잡았다. 사찰 체험 프로그램에 참석한 사람들이 ‘미황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성한 것을 비롯해, 최근에는 전라남도와 연계해 주말 산사체험프로그램을 상설 운영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주 5일 근무제 확대와 대학의 산사체험 프로그램 정식과목 채택으로 미황사의 템플스테이를 찾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061)533-3521
■ 법련사
불교미술의 중심, 법련사
서울 종로구 사간동 경복궁 옆에 위치한 법련사. 화랑의 거리 인사동과 인접해 있고 국립중앙박물관도 곁에 두고 있는 법련사는 도심 속 문화사찰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1974년 개원한 이후, 산사의 닫힌 공간만을 떠올리던 시민들에게 ‘도심 사찰의 문화포교’를 제시해 온 사찰이다.
특히 법련사 내의 불일미술관은 96년 종교계 최초의 전문전시공간으로 마련되면서 불교미술품, 도예품, 시서화, 사진 등을 전시하며 주목받아 왔다. 또 일반 작가들에게도 대관하며 미(美)의 거리에 어울리는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 불자가 아닌 일반인도 자연스레 법련사와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불일미술관과 함께 법련사 내에 자리잡은 불일서점도 문화포교에 일익을 담당했다. 불서 전문서점이 없었던 84년 당시 문을 열어 20여년에 이르는 세월동안 문서포교의 기초를 다져왔다. 이 밖에도 불일문화회관을 통해 정기적으로 태극권과 선무도 수련을 선보이기도 했고, 매주 주말 불일시민선방에서는 참선과 경전강의 시간을 마련키도 했다. 불교 문화 학습과 불교 문화 포교가 동시에 이뤄지는 모습이다.
법련사 주지 보경스님은 “종교는 문화의 옷을 입지 않으면 대중에게 다가설 수 없다”며 “미술과 출판, 다양한 문화 강좌 등을 이용해 도심포교의 새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고 밝혔다.
(02)733-5322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한 사찰-2
■ 안성 도피안사
수행ㆍ문화 공동체, 안성 도피안사
경기 안성시 죽산면 용설리에 자리 잡은 도피안사(주지 송암). 광덕 스님의 큰 가르침을 잇고자 산문을 연 이곳은 불교문화사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로 불자들의 수행과 문화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 완공돼 ‘사찰 건축의 새로운 대안’으로 평가받는 향적당과 불자들이 수행생활과 취미활동을 함께 할 수 있도록 꾸며진 수광원은 기능성과 효율성을 두루 갖춘 것은 물론, 그 외형에서도 자연과의 조화를 잃지 않고 있다. 때문에 이곳에는 문화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그들은 도피안사에 기거하며 글을 쓰거나 작품을 구상하기도 하고, 자신의 수행에 매진하기도 한다.
도피안사가 주력하고 있는 또 하나의 문화운동은 출판과 독서문화 부흥이다. 2000년 ‘도서출판 도피안사’란 이름으로 책을 내기 시작한 도피안사는 올해 출판사 이름을 ‘종이거울’로 바꿨다. 이 이름은 ‘책은 곧 내 마음을 비춰주는 종이거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또한 도피안사는 지난 7월부터 범국민적 독서캠페인 ‘종이거울 자주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매달 1만원의 회비를 내고 책을 받아보며 한 달에 책 한권을 읽는 독서습관을 기르자는 뜻으로 시작한 이 캠페인에는 달공 조홍식 교수(성균관대 명예교수)와 시사만화가 박재동 씨, 작곡가 박범훈 씨(중앙대 안성캠퍼스 총장), 신희섭 KIST학습기억현상연구단장, 박성배 뉴욕주립대 교수 등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인 31명이 지도위원으로 참석하고 있다.
주지 송암 스님은 “도피안사를 출판ㆍ독서문화를 선도하는 문화의 장으로 펼쳐 나가겠다”며 “앞으로 도피안사를 전방위적인 불교 수행공동체 도량으로 가꿔 나갈 계획이다”고 말한다.
(031)676-8700
■ 삼광사
감동이 있는 포교의 장, 삼광사
신도 수 35만 명으로 전국의 천태종 사찰 중 신도 수 1위라는 위치를 점하고 있는 부산 삼광사(주지 도원). 삼광사의 포교 비법은 차별화 된 문화포교에 있다. 백중과 초파일 등 대법회가 열리는 날, 삼광사에 가면 어김없이 전문 배우들이 열연하는 연극을 관람할 수 있다. 문화포교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도원스님의 뜻에 따라 연극의 감동과 부처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접목시킨 <관세음보살> <목련존자> <심청전> <호랑각시> 등의 수준 높은 연극이 무대에 올려져 불자들은 물론 지역민들의 문화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불교적 가르침을 토대로 기획, 연출된 수준 높은 연극들로 불교연극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삼광사의 연극 공연은 호평을 받고 있다.
이 밖에도 2002년 개교 10주년을 맞이한 삼광한글학교를 비롯, 꽃꽂이, 다도, 서예, 한문학당, 요리, 청소년백일장, 그림그리기 대회 등 주부, 청소년, 교사, 직장인 등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강좌와 행사는 물론 초청 선서화전, 사진전 등 다채로운 전시도 수시로 열고 있다. 특히 삼광한글학교는 한글을 모르는 노령층을 대상으로 종교에 관계없이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며 우리글 ‘한글’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기도 하다. 또한 삼광사는 교사 연수 기관으로 삼광문화연수관을 설치, 불교와 전통 문화가 접목된 강좌를 개설, 교사들에게도 열린 사찰의 이미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삼광사 주지 도원 스님은 “우리나라 문화의 뿌리는 불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교 속에 내재된 문화적 요소들은 감동과 지혜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삼광사는 앞으로도 각종 공연, 전시, 강좌를 통해 불교문화 포교 일번지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051)808-7111
■ 영남불교대
불교만화로 불법 홍포하는 영남불교대
대구 영남불교대학에 가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영남불교대학은 지난 92년 창립해 이제 갓 10년을 넘긴 짧은 역사의 불교대학이지만, 한 학기 3천여명 이상이 수강하고 불교대학을 거쳐간 동문만 5만을 헤아리는 등 지역불교계 대표 불교대학으로 자리잡았다.
이처럼 영남불교대학이 짧은 시간 내에 지역의 대표 불교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중심에는 불교만화잡지 발간, 대형 오케스트라 운영 등 불교문화포교가 자리잡고 있었다.
지난 2000년 창립한 불교만화연구소는 다양한 불교만화 소재 개발과 함께 격월간 만화잡지 '불교만화이야기'를 발간하고 있으며, 매년 전국불교만화공모전을 통해 불교만화가 발굴 및 육성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만화라는 장르는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부담없이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불교만화잡지 발간은 불법홍포의 좋은 시험무대로 평가받고 있다.
또, 영남불교대학 오케스트라는 올해 초 창단 첫 공연으로 학장 우학스님이 직접 쓴 금강경에 작곡가 이달철씨가 곡을 붙인 칸타타 금강경을 교향악단과 합창단 등의 협연으로 대구 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선보여 지역 불자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은바 있다.
뿐만 아니라 영남불교대학은 불교기본교육 이외에도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를 초청한 강좌를 열고, 다양한 문화행사 개최를 통해 불교문화의 사회적 접목을 계속해서 시도해 나가고 있다. (053)471-0991
■ 용주사 수원포교당
문화포교 일번지, 용주사 수원포교당
1999년 용주사 수원 포교당에 불교문화원이 문을 열었다. 총면적 1천90평에 지하 1층 지상 5층으로 정토문화원, 합창단실, 탁아방, 어린이회실, 소법당, 극장식 법당인 만불보전이 마련돼 있다. 특히 만불보전에서는 전통과 현대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고 있다.
이 불사는 주지 성관스님이 지역불자들의 문화포교를 위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원력을 세운 것이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2회씩 정기 음악회가 열린다. 오느름 관현악단과 대중음악인들이 모여서 봉축을 기념하는 부처님오신날 기념음악회와 성도재일을 축하하는 ‘젊은 불자음악인들을 위한 음악회’가 그것이다. 특히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성도재일 음악회는 불교계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 음악인들을 육성 지원하고 그들의 기량을 펼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해 주고자 기획됐다.
수원포교당에는 문화포교의 1번지 답게 사찰의 역사와 함께 해온 가릉빈가 어머니 합창단과 두 돌을 지낸 남성 사자후 합창단이 활동하고 있다. 또 해마다 월 1회씩 1년 단위로 전국의 불교문화재를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문화재답사단을 운영한다. 올해는 10월 16일 청도 운문사로 떠난다. 11월 8일에는 수원 출신의 화가 나혜석씨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나혜석 예술제’를 봉행한다. 이외에도 서도회와 타 종교인들까지 참여하는 다도회도 수원포교당의 자랑이다. (031)255-2692.
■ 사나사
군민들을 위한 문화포교 공간, 사나사
양평 사나사는 고려 공민왕 16년(1367)에 국사인 태고 보우 스님이 중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그래서 2년전 보우 스님 탄생 7백주년을 기념해 양평불교사암연합회와 공동주최로‘고려시대 국사 추대의식 및 어사행렬 재현’과 ‘산사음악회’를 격년제로 열고 있다.
올해도 10월 11일 보우 스님 국사 추대 재현을 위해 사나사 신도회와 양평군 청년회원 3백여명이 한데 모여 여말선초(麗末蘚初)의 어사, 의장대, 문무관, 군병 등의 전통 복장을 갖추고 양평읍내와 사나사 일대를 행렬했다.
저녁에는 강산에와 해바라기를 비롯해 국악인 유주희와 염경애, 꼬마가수 김용빈, 현악 4중주단 로터스 등이 출연한 산사음악회도 마련했다. 이와함께 사라져 가는 전통의식을 되살리고자‘추모다례제’와 ‘학술세미나’도 열고 있다.
특히 사나사가 있는 양평은 주말 교통체증이 심한 곳이라 주지 화암 스님이 철도청의 협조를 받아 산사음악회 관람객들을 위한 산사음악회 특별열차를 운행해 호응을 얻기도 했다.
화암 스님은 “불자들은 물론 군민들이 문화프로그램을 통해 한데 모여 행사를 즐기다보니 사찰이 아닌 문화공간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졌다”고 말했다. (031)772-5182.
2003-10-09 오전 8:2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