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퓌스 영화 상영금지
프 당국, 재심 앞두고 여론 영향 촉각
1899년,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영화 상영이 전면 금지됐다. 프랑스 경찰과 검열당국은 이 사건을 다룬 조르주 멜리에스와 파테사의 영화가 여론의 향방에 좋지않은 영향을 끼친다며 이 두편의 영화는 물론,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모든 영화의 상영을 금지시킨다고 밝혔다. 멜리에스가 스스로 “재구성된 뉴스릴”이라고 부른 <드레퓌스 사건>은 드레퓌스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사건 전체를 12개 장면(상영시간 15분)으로 재현한 영화. 파테사의 영화 또한 이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이렇듯 프랑스 정부가 상영금지라는 초강수를 쓴 것은 올해 드레퓌스에 대한 재심이 시작되면서 프랑스 전체가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인 드레퓌스는 독일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판 혐의로 1894년에 기소돼 종신형을 선고받은 전직 포병 대위. 하지만 증거가 조작됐다며 지난해(1898년) 에밀 졸라가 ‘나는 탄핵한다’라는 글을 발표한 뒤 재심을 요구하는 여론이 비등하자 프랑스 군부는 드레퓌스에 대한 재심을 결정했다. 이처럼 민감한 현안에 대해 영화인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지사. 이 사건을 담기 위해 촬영기사들은 법원과 감옥으로 몰려갔다. 한편 뤼미에르사는 재심이 재기되기 전인 1898년 러시아 남부의 유대인들에게 들은 드레퓌스 이야기 등 그동안 찍은 필름으로 이 사건을 네 장면으로 재구성해 개봉,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 내용의 진위를 둘러싸고 시비가 일자 곧 상영을 중단시켰다.
단 신 들
전쟁이 영화를 살렸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을 다룬 영화들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아바나 항구에 정박 중이던 미국 장갑함 메인이 불타오르면서 쿠바의 패권을 둘러싼 스페인과 미국의 전쟁이 발발하자 촬영기사들은 재빨리 아바나로 달려가 현장을 담았다. 또한 미 군당국이 철수를 명한 뒤에는 욕조 물에 모형배를 띄워 전쟁을 재현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미국인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이 영화들은 예수 수난극과 함께 영화에 대한 관심을 재발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올 초 미국인들은 뤼미에르류의 영화들에 식상한 나머지 영화를 멀리 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많은 상영업자들이 문을 닫아야 했다. 이런 상황인지라, 최근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미국-스페인 전쟁이 우리를 살렸다”라는 농담이 오가고 있다고 한다.
영화 카탈로그 잇따라 출판
1898년, 영화 카탈로그가 잇따라 출판되고 있다. 프랑스 뤼미에르사는 지난해 1897년 17m 길이의 영화 358편을 수록한 카탈로그를 만든 데 이어 올해에는 모두 1천편의 영화를 기재한 여섯권의 카탈로그를 추가로 펴냈다. 한편 독일에서는 지난해 그림을 포함해 115쪽에 이르는 최초의 독일영화 카탈로그가 나왔다.
브라이튼, 영국영화 메카로 부상
영국 남부 휴양지 브라이튼이 영국영화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조지 앨버트 스미스, 제임스 윌리엄슨, 프리스 그린 등 현재 영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영화제작자들이 속속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1902년 스미스와 윌리엄스는 이곳에 스튜디오를 완성, 신작 촬영에 들어갔다. 글 이유란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