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수사관 회식비까지 부담 ‘사금고’ 노릇ㆍ접대 대상·방법·금액, 수표번호까지 기록 “대부분 노골적 요구”부산·경남지역 건설업체 대표인 정모씨(51)의 ‘검찰 스폰서’ 실태가 진정서 등의 형식으로 전면 공개됐다. 접대받은 검사 수와 방법, 금액 등이 모두 충격적이라는 평가다.
“비리 검사 처벌”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1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앞에서 부패비리 검사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1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정씨의 진정서 등에는 정씨가 접대한 대상과 날짜, 장소(상호명), 휴대폰 번호, 접대비 등이 구체적인 메모로 기재돼 있다. 접대 대상에는 전직 법무부 고위 간부와 지검장 출신의 변호사,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또는 형사부장을 거친 현직 검사장급 간부 등이 포함됐다. 20일 방영된
에서는 이들 중 박기준 부산지검장과 한승철 대검 감찰부장 등 현직 검사장 2명의 실명이 공개됐다.
이들은 대부분 부산·경남 지역에 위치한 검찰청에서 근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씨는 검사뿐 아니라 검사 시보, 검찰 수사관, 검찰 전화교환원의 회식비와 휴가비까지 부담했다.
정씨의 스폰서 내용은 주로 촌지와 향응을 제공하고 성접대를 하는 방식이었다. 촌지는 지위에 따라 차등 지급됐다. 일부 지청장에게는 한달에 두번씩, 한번에 100만원을 전달했다고 한다. 1984년부터 90년 12월까지 모두 1억6200만원이 지청장 ‘용돈’으로 지급됐다고 주장했다. 검사와 사무과장에게는 30만원씩 모두 3억여원을 사용했다고 한다. 심지어 검사의 친구가 서울에서 놀러왔을 때도 접대와 숙박을 책임졌다고 한다.
정씨는 “사업하는 입장에서 공권력이 무서웠고, 약자 입장에서 드는 보험 성격도 있었지만 대부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정씨가 검사들의 ‘사금고’ 노릇을 한 셈이다.
고향이자 사업기반이었던 진주지청을 중심으로 시작된 정씨의 스폰서 행위는 사업이 확장되면서 부산과 서울로 확대됐다. 과거에 알았던 검사들과의 관계도 계속 이어졌다. 정씨는 부산지검 인근에 검사 접대를 위한 단골 음식점과 룸살롱을 여러 곳 마련해 뒀다. 진주지청 등에서 알게 된 검사들이 후배 검사들을 불러내 정씨를 소개해 주면서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게 됐다.
이런 자리가 끝나면 정씨는 “2003년 7월4일 부장검사 전원(ㅎ부장 제외) 1차 ○○갈비 식사, 2차 △△룸살롱, 아가씨 팁 60만원(3차)”라고 쓴 뒤 비용으로 지급된 신용카드 종류와 수표 번호를 기재하는 식으로 기록을 남겼다.
메모 내용 중에는 성접대를 시사하는 여관과 모텔 비용도 적혀 있다. 정씨는 “2차 룸살롱까지 여검사들이 따라오는 경우가 있었다”면서 “부산지검에 사무감찰을 나온 검사들을 상대로도 식사와 술을 접대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정씨가 이처럼 구체적인 기록을 내놓음에 따라 앞으로 이를 확인하고, 걸맞은 처벌과 징계를 하는 일이 남았다.
하지만 정씨 리스트에 등장하는 전·현직 검사들이 정씨와의 관계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깊은 사이는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다” “만나긴 했지만 룸살롱을 갈 만한 관계는 아니다” 등 다양하게 반응하고 있어 실체 파악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성접대’ 부분은 접대 대상 모두가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어 사실을 규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씨가 변호사법 위반 등으로 수사를 받은 전력이 있는 만큼 검찰을 상대로 청탁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이 정씨에게 편의를 제공했는지 등도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