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젊은이들
원제 : All the Young Men
1960년 미국영화
제작, 각본, 감독 : 할 바틀렛
출연 : 알란 랏드, 시드니 포이티어, 제임스 대런
글렌 코벳, 폴 리처드, 모트 살
잉게마르 요한슨, 아나 마리아 린치, 리처드 다발로스
'싸우는 젊은이들'은 지금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영화지만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로 유명배우가 출연한 개봉작입니다. 아마도 한국인들이 바라는 입맛에 가장 맞는 유형의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중공군을 막기 위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당연한 사명을 강조한 영화로 미군 선, 중공군 악, 그리고 젊은 군인들이 목숨바쳐 싸우는 건 당연한 사명이다... 뭐 그렇게 귀결되는 영화니까요. 아마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들이 이런 유형이라면 훨씬 많이 개봉되었을 것입니다.
1960년 작품이라서 한국전 소재 영화중 약간 늦게 등장한 영화입니다. 할 바틀렛 감독이 제작, 각본, 감독을 모두 담당하고 있습니다. 할 바틀렛은 그리 유명한 감독은 아닌데 우리나라에 개봉되어 인기를 누린 '갈매기 조나단'을 연출한 인물이고, 영화음악으로만 알려졌고 정작 영화는 베일에 싸여있는 안소니 퀸 주연 '산체스의 아이들'도 연출했습니다. 늘 제작, 각본을 같이 겸하는 인물입니다.
많이 알려진 유명 배우 두 사람이 공동 주연인데 '셰인'으로 알려진 알란 랏드와 흑인 스타 '시드니 포이티어'입니다. 당시 알란 랏드는 하향세에 접어들던 시기였고, 시드니 포이티어는 '흑과 백'으로 베를린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여 기세가 올라가던 시기였습니다. 일종의 신구 배우의 협연인 셈이지요.
시드니 포이티어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 영화도 흑백갈등을 주제로 한 내용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흑인 상사가 백인들로 구성된 부대를 냉대와 질시를 극복하고 이끌어가는 내용입니다.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전쟁의 배경에 대해서 오프닝에 설명이 됩니다. 1950년 10월, 중공군이 개입되어 밀려들던 시기, 원산만에 상륙한 미군은 힘을 다해 중공군을 격퇴하고 있었지만 워낙 숫자가 많아서 후퇴작전을 벌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전리에서 후퇴중이던 미 해병부대 베이커 컴퍼니 2소대, 그들의 임무는 중공군을 막아내기 수월한 곳을 찾아서 최대한 시간을 벌며 1,000여명의 대대병사들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게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지휘관인 중위마저 쓰러집니다. 유일한 장교인 중위는 죽어가면서 남은 소대원들의 지휘관으로 흑인상사 토울러(시드니 포이티어)를 임명합니다. 소대에는 가장 경험이 많은, 소위 짬밥이 높은 킨케이드 상사(알란 랏드)가 있었고, 당연히 그에게 지휘권이 넘어갈 줄 알았는데 중위는 자신을 구해서 업고 온 토울러에게 임무를 부여한 것입니다. 토울러는 이러한 상황에 잠시 당황하지만 곧 평점을 되찾고 임무를 수행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묘한 분위기가 흐릅니다. 모두 백인으로 구성된 소대원들은 토울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 특히 흑인혐오자인 브락켄(폴 리처드)의 텃세는 더욱 심합니다. 대부분의 병사는 킨케이드와 오랜 기간 사선을 함께 넘은 각별한 관계였고, 킨케이드는 병사들에게 든든한 맏형같은 존재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토울러는 제대로 통솔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흑백간의 갈등 속에서 중공군이라는 공동의 적을 향해서 필사적으로 사수작전을 펼치는 내용입니다. 그들이 점거한 곳은 어느 가옥(절인지 개인 주택인지 애매합니다. 부처님 상이 마당에도 있고, 방에도 있고, 무슨 미니 법당 같은 곳입니다.) 인데 그곳은 외길을 통해서만 올 수 있어서 중공군이 오는 것을 미리 파악할 수 있고, 담장을 요새처럼 사용할 수 있는 구도입니다. 모든 병사들이 빨리 후퇴하자고 재촉하지만 오로지 토울러만이 이곳에 남아서 중공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소대는 그곳을 요새로 활용하게 됩니다. 오로지 인디언 나바호족 출신의 병사 한 명만이 토울러에게 호의적일 뿐입니다. 그들이 점거한 가옥에는 한국인 가족이 살고 있는데 그나마도 비중있게 등장하는 이 곳 여성을 프랑스 혼혈로 다루고 있습니다.(아르헨티나 출신 배우가 연기) 확실히 한국배우가 출연하기 어려운 시대, 이래저래 외국배우로 대체하는 것은 이 영화도 마찬가지지요.
소수의 소대원들이 넘어오는 중공군들을 치열한 총격전으로 막아내는데, 막아도 막아도 계속 다시 오는 중공군들, 인해전술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10여명에 불과한 부족한 인원, 다친 병사, 얼마 안되는 아껴써야 하는 수류탄, 박격포 같은 것은 당연히 없고, 거기에 흑백갈등까지. 어려운 상황속에서 이들 소대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지켜보는 묘미가 있습니다. 특히 지휘를 맡은 토울러는 동료들의 냉대 속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경하게 통솔을 하는 인물입니다.
중간중간 부대원들끼리 이런 저런 잡담을 하고 중공군이 밀려오면 전투를 벌이고 끝나면 다시 소대원들간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진행됩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중공군이 탱크를 밀어올리면서 일대 위기를 맡는데 토울러와 킨케이드가 탱크에 접근해서 필사적으로 막아내는 장면입니다. 이 상황에서 킨케이드가 크게 부상을 입고 그래서 긴급 수혈이 필요한데 같은 O형 피를 가진 사람이 토울러 밖에 없는 상황, 토울러는 킨케이드를 살리기 위해서 기꺼이 수혈에 참여하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흑백 갈등이 치유되고 있습니다. 절묘하게도 흑인과 백인이 피를 나눈 형제같은 입장이 되는 것이지요.
영화의 엔딩은 마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나 '5인의 낙인찍힌 처녀'와 아주 비슷한 상황입니다. 거의 똑같다고 볼 수도 있지요. 다만 엔딩의 처리가 좀 다릅니다. 똑같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형태라고 할 수 있지요. 아무튼 감독이 좀 한국적 정서가 있는지 서구영화 치고는 다소 신파적 느낌도 있고 (동료가 죽어갈때의 처리 부분 같은) 이런 전쟁영화에 드물게 젊은 여인을 등장시켜서 윤활작용을 하고 있고(불심이 깊은 무늬만 한국여성인척 하는 외국배우) 군인들은 무척 용감하고 전투에 대한 사명감도 깊습니다. 늘상 전쟁영화에서 벌어지는 가족얘기 등 개개인별 사연도 소개되고.
시드니 포이티어는 강직하고 과감한 결단력이 있는 흑인 지휘관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모습을 보면 확실히 리더는 결단력이 있어야 하고 절대 우유부단하면 안된다는 걸 느끼게 합니다. 온갖 동료들의 비아냥 속에서 몇 번의 난감한 상황을 맞이하지만 흔들림이 없습니다. 알란 랏드는 선량하고 정의로운 이미지를 많이 보여준 배우인데 왠지 이 영화에서는 약간 늙은 꼰대같은 느낌이 듭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배우들에 비해서 나이가 너무 많은 느낌입니다. 대령이나 장교 역할을 해야 할 상황에서 시드니 포이티어와 이권다툼을 하는 설정처럼 역할이 부여되어서 좀 안스러운 느낌입니다. 더구나 후반부에는 끔찍한 부상까지..... 한때 인기를 누린 배우가 자기 시대를 지나가는 느낌이 확연하다고 할까요. 비중도 시드니 포이티어가 더 있고.
다른 많은 할리우드 버전 한국전 영화처럼 이 영화도 한국군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6.25 전쟁에서 한국군의 비중보다 미군의 비중이 실제로 높았던 이유도 있고, 더구나 지금과 달리 한국배우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시대였기 때문에 한국군인이 없는 한국전쟁 영화가 대부분입니다.
별로 수준높은 영화는 아니지만 1. 한국 전쟁을 다룬 작품이고 2. 유명한 스타 배우들이 출연했고, 3. 국내에 대대적 광고와 함께 개봉하였던 작품이라서 관심을 가졌던 영화입니다. 전쟁 영화로는 비교적 소품인데 한국전의 내용보다 흑백갈등을 극복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리더로서의 통솔력을 발휘하는 흑인 상사의 모습이 감동스럽게 다가온 영화입니다.
ps1 : 1961년 개봉후 TV방영도 출시도 되지 않아서 완전 잊혀진 영화지요. 개봉당시는 유독 신문광고에 많이 실렸던 영화입니다. 한국전쟁을 다뤄서인지. 개봉당시 율 브리너 주연의 '몸부림치는 젊은이들' 이라는 영화가 같이 개봉하여 '젊은이들' 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나란히 상영되었지요.
ps2 : 시드니 포이티어가 헌혈을 하고도 완전 힘이 넘쳐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그가 완력이 원래 쎈지 남자를 들쳐 업는 장면을 몇 차례나 연기하더군요.
ps3 : 한국의 강한 추위에 대한 언급이 여러번 됩니다. 이 영화도 아리조나에서 촬영했는데 아리조나 산지가 한국을 대체하는 촬영지로 적합한가 봅니다.
ps4 : 스웨덴 출신 헤비급 챔피언 잉게마르 요한슨이 병사 중 한 명으로 출연합니다. 그는 흑인들이 거의 차치하던 복싱 헤비급 챔피언을 백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차지해서 유명해진 인물이지요.
[출처] 싸우는 젊은이들(All the Young Men, 60년) 한국전쟁 배경 국내 개봉작|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