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목걸이를 만들다가
어떻게 꽃과 나무와 새와 대화를 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물을 때. 그런 때 나는 대답할 말이 궁해집니다. 그 질문은 어떻게 형제와, 친구와 대화를 할 수 있느냐고 묻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 책의 뒷부분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처음으로 내가 꽃과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다섯 살 때였습니다. 벚꽃이 온 천지를 수놓던 봄날이었습니다. 동네 여자 아이들은 소담스런 꽃을 따다가 실에 꿰어 목에. 팔에 주렁주렁 걸고는 그 꽃잎만큼이나 하얀 웃음을 쏟아내었습니다. 나도 꽃송이를 치마 가득 담아가지고 집에 와서는 어머니에게 바늘에 실을 꿰어달라고 졸랐습니다. 설렌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후' 하고 숨을 한번 내쉬고는
꽃잎 하나를 들고 바늘을 갖다대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목이 찌르는 것처럼 아파왔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벚꽃을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고
울면서 얼마나 용서를 빌었는지 모릅니다. 사물과의 대화란 생명이 있는 것들에 한해서만이 아닙니다. 유정물이나 무정물이나 가릴 것 없이 모든 것들과 통할 수가 있습니다. 굳이 사람에 비유하자면 유정물에 비해 무정물은 좀 더 과묵한 유형의 사람이라고 하면 될까요. 무정물들과의 교감을 처음 느낀 것도 비슷한 때였습니다. '색칠 공부' 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사람, 나무, 꽃, 동물, 이런 것들이 밑그림으로 그려져 있고 거기에다 색칠을 해보면서 색깔을 익히게 하는 아동용 학습지 같은 것입니다. 하루는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 아이를 색칠하게 되었습 니다. 색칠은 이리 삐죽 저리 삐죽 엉망이었습니다. 아직 구분선 안으로만 제대로 색칠하지 못할 때였습니다. 아이의 뽀오얀 얼굴을 먼저 칠했어야 하는데 까만 머리를 먼저 칠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색칠을 하다보니 얼굴까지 온통 까매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 위에다 아무리 살색 크레용을 문질러도 까만 색은 조금도 옅어질 줄 몰랐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나머지 그림들에 색을 입혀서 어머니께 보여드렸습니다. ''얘! 얼굴이 이렇게 까만 애가 어딨니? 얼굴은 하얗게 칠해야지, 바보같이'' 바보라고 놀림당할 것을 걱정하고 있는 그 순간, 머리에 반짝 떠오르는 꾀가 있었습니다. ''바보는 엄마다아~. 얼굴이 하얀 애가 왜 세수를 해? 까맣게 껌정을 묻혔으니까 얼굴을 씻는 거지."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재치가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림 속의 아이가 세숫대야를 들고 있지 않았다면 큰일날 뻔했던 것입니다. 나를 창피함에서 건져준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이는 껌정을 묻힌 얼굴로
눈을 찡긋하며 나를 보고 빙긋 웃고 있었습니다. |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