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
소리내어 부르지 않아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이름입니다.
내가 스무살 나던 해
돌아가신 아버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깨우치고 지켜주기 위해
이 땅을 잠시 들렀다
가셨음에 틀림없습니다.
피골이 상접한 내 끔찍한 몰골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멀리할 때도
그 분은 함께 고통을 나누지
못하는 것만을 애통해 하셨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언제나
환한 미소를 띠고 계십니다.
어떤 고통 중에라도
나를 보아주실 때 만큼은
아버지는 웃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와는 유난히
장난을 많이 했습니다.
그 시절이 내 삶의 가장 빛나도록
아름다운 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청운 초등학교를 다닐 때입니다.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는 겁도 없이
대문간에서부터 큰 소리로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제꼇습니다.
''준열아! 노~올자.
나와서 애란이하고 노~올자.''
그러면 아버지는 현관문을
후다닥 열고 나오시며,
"저 놈의 딸년이
아버지 이름을 막 불러?"
하시면서도 두 팔 벌려 내가 달려가
안길 품을 준비해두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발을 씻는 것은
제일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회사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는
세숫대야 가득 물을 떠놓고
나를 부르셨습니다.
마루 한가운데, 따뜻한 물이
찰랑대는 세숫대야 속에
나도 아버지도
양말을 벗고 발을 담금니다.
아버지의 큰 손에, 나의 조막손에
하얀 비누 거품을 잔뜩 묻혀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입니다.
향긋한 비누 냄새,
발가락 사이를 간지르며
흐르는 비누 거품의 매끄러움,
뽀도독 소리를 내며
발을 씻는 아버지의 큼지막한 손.
그것들은 모두 내게 있어서
행복이란 단어의 동의어들입니다
아버지가 발바닥을
간지르기라도 하면
온 마룻바닥이 물바다가
되도록 물장구를 쳤습니다.
"아유, 하여간 유별나다니까."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곱게 눈을 흘기셨지만
아버지는 마냥
허허 웃기만 하셨습니다.
개성 사람들은 여자를 대문 밖에
좀체로 내보내지 않습니다.
접시와 여자는 밖으로
내돌리면 깨진다는 말을
개성 남자들만큼 적극
실천하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개성 사람인 아버지는
장도 손수 보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종가집 살림을 하면서도
쌀 한 가마, 배추 한 포기의
가격도 모르셨습니다.
사정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를 젊은 나이에
혼자된 홀아비인 줄 알고
중신을 서겠다고
나설 정도였습니다.
여중 일학년이 되었는데,
한번은 용의 검사를 할 테니
모두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당시는 요즘 아이들처럼
발육 상태가 좋지도 않았지만,
이차 성징이 나타나
가슴이 도드라지는 아이들도
부끄러워서 속옷을 잘 갖춰
입지 않을 때라
학교에서는 주기적으로
검사를 실시하곤 했습니다.
사정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한참을 고민하시는 눈치더니
드디어 시장으로 나가셨습니다.
여자 속옷 가게에 들어가서도
점원에게 말을 못 꺼내고
한동안 눈치만 살피셨습니다.
''그, 저... 우리 막내딸이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부라자'를 안하고 가면
규율부에 걸린다니까
그거 좀 줘 봐요."
"사이즈가 어떻게 되나요?"
"사이즈? 글쎄, 그게..."
"사이즈를 모르면 어떡해요."
"우리 막내딸 사이즈는
내가 잘 모르겠는데,
거, 당신보다는 많이 작으니까
대충 생각해서 어떻게 좀 쥐봐요.''
브래지어를 사오신 아버지는
손수 채워주기까지 하셨습니다.
"아이구, 우리 막둥이.
아긴 줄 알았는데
벌써 젖꼭지가 다 생겼네."
나는 인류사에 이렇다 하는
교육자들을 잘 알지 못하지만
내 아버지 같은 분들이
아니었을까 자주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먼저 혼내는 법이 없이,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의 잘못된
모습을 발견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오빠가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이었습니다.
까까머리 이팔청춘의 호기심에
남 몰래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학생들의
흡연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학생이 담배를 피운다고
소문이 나면 동네에서는 손가락질거리요,
학교에서는 정학 처분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아버지가
오빠의 책가방 속에서
담배갑을 보셨습니다.
아버지는 가타부타
아무 말씀도 않으신 채,
다음날부터 매일 담배 한 갑씩을 사서
오빠 몰래 가방 속에 넣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오빠는 드디어 아버지 앞에
무릎을 끓었습니다.
"아버지! 잘못했습니다."
"니가 나한테 뭘 잘못했니?"
"아버지 제가 담배
피우는 거 아셨잖아요."
"그래, 네가 담배 피운다는 거,
나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너한테 담배값을
주었다면 네가 얼마나 당황했겠니.
학생 신분에 담배를 사러 가게에
가기도 민망했을 테고.
그래서 행여 들킬새라 담배를 사서
너 몰래 책가방에 넣어준 것뿐이었는데...
오히려 애비가 미안하구나.
그깟 일로 네가 내 앞에서
무릎을 끓게 하다니."
그 후로 오빠는 담배라곤
쳐다도 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여행을
즐기는 분이었습니다.
혼자서 여행을 다녀오 때면
우리 형제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어느 계곡에 사는 바람 이야기,
어느 숲에서 만난 다람쥐 이야기,
어느 바다가 노래한 소라 고동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습니다.
방학이 되면 우리들의 가장 큰 행사는
아버지와의 여행이었습 니다.
당시는 서울에서도
자가용을 가진 집이
손가락에 꼽을 정 도였는데,
아버지는 영국산 지프차
랜드로바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을 차에 태우고
취사 도구와 침낭을 챙겨서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것을
좋아하셨습니다.
다섯 살 때였습니다.
여름 방학을 맞은 언니 오빠들, 나,
그리고 아버지는 아침 일찍
오대산 월정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고속도로가 아직 매끈한
맵시를 갖추고 있지 않을 때였지만
차는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잘도 달렸습니다.
길을 잃으면 잃는 대로 감자 밭으로,
옥수수 밭으로 내질렀습니다.
차 안에서 콩콩
엉덩방아를 찧을 때마다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한낮이 되도록 달려서
점심은 숲속에서 먹었습니다.
옹달솥을 걸고
나뭇가지를 주워다 불을 때서
아버지가 손수 밥을 지으셨습니다.
밑은 까맣게 타고
위는 투명한 쌀알이 그대로 있는
삼층밥을 우리 형제들은
참 맛있게도 먹었습니다.
밭에서 토실토실 하게
여문 감자를 사다가
입 가장자리가 까매지도록
구워 먹기도 했습니다.
숲은 한여름인데도
오한이 날 정도로 시원했습니다.
아버지는 가지를 넓게 벌린
전나무에 나를 기대 세우시더니,
"어디 보자. 우리 애란이
키가 요만큼이구나."하고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월정사에 도착한 것은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도
한참이 지난 뒤였습니다.
얼마나 험한 길을
마구잡이로 달려왔던지
그 튼튼한 지프차의
타이어가 온통 닳았습니다.
오대산을 두번째로
간 것은 열세 살 때,
먹지도 자지도 않은
일년을 견딘 다음이었습니다.
한 차례 단풍의 물결이
온 산천을 힘쓸고 지나간 뒤
한 잎 두 잎 낙엽이
떨어질 무렵이었습니다.
나는 뼈에 살가죽만 입혀놓은 듯한
꼬챙이 같은 몸에다
머리카락조차 한 올 남김없이
다 빠져버린 상태였습니다.
아버지는 민둥머리
막내딸이 추울까봐
하얀 털모자를 씌워주시고
빨간 가죽 점퍼를 입혀서
다섯 살 때의 추억이 있는
그 곳으로 다시 데려가셨습니다.
아버지가 손을 씻겨주시던
그 계곡물은
얼마나 차가있던지요
아버지는 일년을 방에서
쪼그리고만 있다 나온 딸의,
뼈만 앙상한 손을
씻겨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애란이는 어쩜 이렇게 예쁠까.
손도 예쁘고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참 예쁘기도 하지."
일년 동안 방에
처박혀 먹지도 자지도 않고
그저 책상 밑에 쪼그리고 앉아
미이라같이 바짝 말라버린
열 세 살짜리 계집아이가
어디 예쁜 구석이 있었겠습니까.
살갗을 손가락으로 밀면
10센치 정도는
너끈히 밀려올라갔으니,
오히려 끔찍하고 징그러워서
쳐다보기도 싫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저 딸자식이 죽지 않고
살아준 것만으로도
예쁘고 고마웠던 것입니다.
그 숲은 다섯 살 때의
나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언니.
오빠들과 함께 가서
감자를 구워 먹던 그 숲,
내 키를 표시해 두었던 그 전나무.
아버지는 그 전나무에다
다섯 살 그때처럼 나를 붙여세우고
키를 표시해주었습니다.
"이야! 우리 애란이
키가 이렇게 커졌어?
좀 있으면 아빠 따라 잡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며
숲이 울리도록 웃던
그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나는 오대산을 올랐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헤매도
그 전나무 숲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 마음처럼 산은 그저
웅웅거리며
울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이십 육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 애란이
키가 이렇게 커졌어?"하시던
그 목소리는 귓가에
쟁쟁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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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자유게시판
사랑하는 아버지 ----양 애란
고구마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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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17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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