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졸병’이라는 이름 …… 한적한 시골 마을 졸참나무의 반란
졸참나무는 참나무과의 나무 가운데에 ‘졸병’이어서 이름에 ‘졸(卒)’자를 넣었다고 합니다. 작은 나무라는 이야기이지요. 하지만 여기서 짚어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졸참나무에서 작은 것은 전체적인 수형이 아니라, 그 열매인 도토리와 잎사귀입니다. 수형은 20미터 이상으로 크게 잘 자라는 큰키의 나무입니다. 그러니까 졸참나무 가운데에서도 오래 된 나무라면 굴참나무나 신갈나무 못지않게 크고 아름답게 자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산과 들에서 오래 된, 그래서 큰 키로 듬직하게 자란 졸참나무는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 흔하고 가까운 나무여서 더 아껴야 할 나무들 ○
저의 답사와 동정 능력이 모자란 탓일 게 분명합니다. 실제 현장에서 졸참나무를 보고서도 자세히 살피지 않고, 참나무 종류의 다른 나무로 여기면서 넘어간 나무가 적지 않았을 겁니다. 조금 길쭉하고 자잘한 열매가 달리지 않은 상태라면 혹시 몰라도 그렇지 않았다면 그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졸참나무는 물론이고,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 가운데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는 천연기념물이나 지방기념물에 지정한 나무가 단 한 그루도 없습니다. 우리의 살림살이와 더없이 가까운 참나무과의 나무가 인문적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재로서 ‘천연기념물’에 지정된 경우가 없다는 건 아쉬운 일입니다.
물론 참나무과의 나무 가운데에 굴참나무와 갈참나무는 몇 그루 있습니다. 굴참나무가 세 그루, 갈참나무가 한 그루 있지요. 기록을 살펴보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가운데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가 해제된 나무가 있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없는 상태입니다. 어쩌면 너무나 흔하고 가까이 지내는 나무이다 보니, 특별히 보호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지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온 세상이 나무와 숲 보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바이러스 시대를 거치며 이제부터라도 우리와 가까운 참나무과 나무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 근사한 생김새로 마을의 중심이 된 졸참나무 ○
들머리로 쓸 말이 길어졌습니다. 졸참나무 한 그루를 이야기하려고 그랬습니다.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나무가 바로 졸참나무입니다. 경북 영덕군 창수면 신기리라는 아주 조그마한 마을 언덕빼기에 마을 정자나무로 서 있는 나무, 〈영덕 신기리 졸참나무〉입니다. 1996년에 고유지정번호 11-17-9-13-2로 산림청 보호수로 지정한 이 졸참나무는 이 자리에서 400년을 살아왔고, 그 동안 9미터 높이로 자랐으며,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4미터 쯤 됩니다. 400년이라는 나이에 비하면 여느 나무에 비하여 그리 큰 나무는 아니지만, 마을로 들어가는 언덕 중간에 서 있는 나무의 품이 무척 의젓합니다.
보호수 기록 가운데에는 나무 종류나 나무의 규모에 대한 측정값이 정확하지 않은 게 가끔씩 있습니다. 왕버들을 ‘버드나무’로 표기한 경우라든가, 회화나무를 ‘회나무’로 표기한 경우가 몇 건 있습니다. 또 분명 왕버들인데 ‘떡버들’로 표기한 경우, 회화나무를 ‘참회나무’라는 전혀 다른 나무로 표기한 경우도 있으며, 굴참나무를 그냥 ‘참나무’로 표기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400년 된 졸참나무라는 기록을 보고, 약간의 의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기대를 하고 먼 길을 돌아 들었는데, 이 나무는 분명 졸참나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동안 보았던 졸참나무 가운데에는 가장 근사한 나무였습니다.
○ 참나무과의 나무가 내려놓은 지상의 양식을 고마워 하며 ○
이 가을 나무 답사 길에서 만나게 된 참나무과의 나무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 둘 사진첩을 꺼내 돌아보며, 우리 조상들의 살림살이를 생각해 봅니다. 흔히 ‘도토리나무’라고 불리며 땔감은 물론이고, 먹을거리로도 우리 살림살이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우리와 함께 서있던 나무들이지요. 이 가을 그들이 하늘의 태양 빛을 받아 지어내고 이 땅의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가만가만 내려놓은 지상의 양식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나무들이 서둘러 단풍 든 잎을 내려놓고, 아침 저녁 바람에는 겨울 내음이 짙어졌습니다. 어느 겨울보다 건강에 더 조심하셔야 할 때입니다. 아직은 끝을 알 수 없는 멈춤의 시기를 더 슬기롭게 견뎌내고, 곧 더 환하게 다가올 새 봄을 즐겁게 맞이할 수 있기를 겨울 초입에서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모두 평안하십시오.
고맙습니다.
- 우리 살림살이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나무를 생각하며 11월 9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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