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의 수호목으로 살아온 졸참나무의 위엄
지난 주 《나무편지》에 이어 졸참나무 이야기 하나 더 보탭니다. 어쩌면 보탠다기보다 지난 주에 전해드린 〈영덕 신기리 졸참나무〉 이야기가 오늘의 졸참나무 이야기를 위한 〈들어가기〉쯤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나무편지》에서 말씀드렸듯이, 졸참나무에 ‘졸병’이라는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잎과 열매가 ‘참나무과 육형제’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이지, 수형이나 나무 전체의 규모가 ‘졸병’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오래도록 크게 잘 자라는 나무라는 이야기이지요. 지난 번에 보여드린 〈영덕 신기리 졸참나무〉처럼 크게 잘 자란 졸참나무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 높이 20미터, 줄기둘레 3.5미터의 거목으로 자란 졸참나무 ○
오늘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리는 〈영양 송하리 졸참나무〉는 지난 번의 〈영덕 신기리 졸참나무〉에 비해 월등히 큰 나무입니다. ‘아름답다’는 표현은 언제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어 함부로 두 그루의 나무를 비교해 어느 한쪽이 더 아름답다고 적을 수야 없습니다. 그래도 〈영양 송하리 졸참나무〉의 자태가 제 눈에 한층 근사해 보인다고 말씀 드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영양군 수비면 송하리의 보건진료소에서 송하계곡 쪽으로 개울을 건너는 송하교를 건너서 남쪽으로 이어진 해발 650미터 높이의 매봉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초입에서 250년 쯤 살아온 이 졸참나무는 높이가 20미터까지 올랐고, 가슴높이 줄기둘레도 3.5미터에 이르는 거목입니다.
나무가 서 있는 곳은 작은 숲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당산제를 지내온 당숲입니다. 당숲이라는 걸 표시하려는 듯, 숲 초입에는 커다란 돌무지가 숲 입구 양쪽을 지키고 있습니다. 〈영양 송하리 졸참나무〉는 이 숲의 왕입니다. 등산로 초입에 이룬 작은 숲에서는 이 졸참나무가 단연 가장 큰 나무입니다. 아무리 ‘졸병’이라는 하찮은 이름을 가진 나무라 해도 마을의 사람살이를 지켜주는 수호목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형상입니다. 규모에서 가장 큰 나무일 뿐 아니라, 살아온 연륜에서도 가장 오래된 나무입니다.
○ ‘해월 최시형’과 관련한 전설이 전하는 한적한 마을 ○
〈영양 송하리 졸참나무〉가 서 있는 송하리 마을은 참 한적한 마을입니다. 마을 곁으로 도로가 있기는 하지만, 졸참나무 앞에 서 있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는 한 대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적막감만 감돌았습니다. 나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등산로를 따라 5백 미터쯤 오르면 ‘송하사’라는 새로 지은 절이 있고, 거기에서부터 다시 가파른 산길을 3백 미터 쯤 더 오르면 이 마을의 상징이자 자랑으로 여기는 ‘송하자연미륵불’이 나옵니다. 매봉산 칠부능선에 있는 송하자연미륵불에는 천도교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예전에 최시형이 꿈에서 계시를 받은 후 이 바위를 발견하고는 바위의 신비함에 기대기 위해 사십구일 동안 기도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때부터 그 영험한 바위를 사람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는 바위라고 믿었고, 결국은 나무 이름을 '다들바위'라고 했습니다. 또 바위의 생김새가 마치 신이 빚은 듯 정교하다고 해서 '시니비즌 석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거죠. 송하리 마을이 워낙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은 곳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들바위’ 혹은 ‘시니비즌바위’라고 부르는 자연미륵불을 찾는 발길은 적지 않다고 합니다.
○ ‘나무 중의 나무’라 불러온 참나무과 나무들 ○
졸참나무를 비롯한 참나무과의 나무들을 다시 생각합니다. ‘나무 중의 나무’라 해서 ‘참’이라는 이름이 붙은 나무이지만, 이 즈음에는 그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지난 해에 한국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나무’에서 10위 권 안에 속한 나무 가운데에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는 한 종류도 없습니다. 그건 지난 해뿐 아니라, 조사 때마다 번번이 나타나는 어김없는 결과입니다. 언제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인 게 변함없지만, 참나무 종류의 나무가 10위 안에 들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나무와 같은 ‘참나무과 육형제’의 나무는 우리 민족을 키워온 나무입니다. 먹을거리로, 땔감으로 우리 민족의 살림살이에 없어서는 안 될 나무로, 우리를 먹이고 키워 온 나무이죠. 한 마을을 지켜온 수호목으로서의 졸참나무를 바라보며 “나무와 더불어 산다는 것” 혹은 “나무와 더불어 살아왔다는 것”을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졸참나무 이야기로 《나무편지》 전해드립니다. 나무와 더불어 모두 평안한 날들 이루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나무 중의 나무’ 참나무과 나무들을 생각하며 11월 16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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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