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춤따세 (춤으로 따뜻한 세상을 여는 사람들)
 
 
 
카페 게시글
文/史/哲 에서 영감 얻기 스크랩 러시아의 여제들
야성의 엘자 추천 0 조회 54 08.11.24 20:1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우연히 인터넷을 뒤지다가 표트르 대제의 딸인 옐리자베타 여제에 대한 책을 찾았답니다. 옛날책인지라 인터넷에 무료로 올려져있는것이었죠. 그러다가 러시아의 여제들에 대해서 쬐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여제들은 총 4명이었습니다.

모두 로마노프가출신이죠.. 둘은 결혼으로 황후가 된후 여제가 되었고, 둘은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죠.

쫘악 쓸려니 나름 황제이신지라 글이 길더라구요. 그래서 5장씩 20장에 맞추어서 간단한 설명과 그림만 올리려고 합니다. (..ㅎㅎㅎ 긴글을 읽기가 싫어요..ㅠ.ㅠ)

 

첫번째 여제는 표트르 대제의 황후였던 예카테리나1세입니다.

 

예카테리나1세

예카테리나 알렉셰예브나 황후

표트르 대제의 황후

옐리자베타 여제의 어머니

Yekaterina (Catherine) I Alexeyevna (In Russian: Екатерина I Алексеевна)

(Martha Elena Scowronska, Latvian: Marta Elena Skavronska, later Marfa Samuilovna Skavronskaya)

(April 15, 1684 – May 17, 1727) (April 5, 1684–May 6, 1727 O.S.)

 

예카테리나1세는 표트르 대제의 정부였다가 황제가 황후와 이혼을 한후에 결혼한 인물입니다. 신분이 미천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사실 표트르 대제가 원래 결혼하려했던 여성은 다른 여성이었더라구요. 하지만 그분이 좀 문제가 있으셔서 ...--;;; 후에 예카테리나1세와 결혼하셨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전처의 아들인 황태자 알렉세이 대공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아들을 죽게만들죠. 그 가장 큰 이유가 예카테리나가 아들을 낳았기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의 열두 자녀들중 두 딸인 안나와 옐리자베타를 제외하고 모두 어릴때사망했습니다. 그래서 표트르대제는 죽을때 유언장에 제국을 물려줄 사람의 이름을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황제가 죽기 1년전, 표트르 대제는 황후 예카테리나와 공동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법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합니다. 표트르 대제 사후, 궁정을 장악한 신하들은 예카테리나를 여제로 내세워서 정치권력을 강화했다고 합니다.

 

 

표트르대제의 가족들

인물을 강조하기 위해 머리를 크게 그렸군요..ㅠ.ㅠ

앉아있는 여성이 예카테리나고, 아마 서있는 큰아들은 표트르대제의 아들인듯..

두 딸은 안나와 옐리자베타

다른 한명은 손자인 표트르2세인가..ㅠ.ㅠ

 

표트르대제의 죽음

대제는 유언장에 후계자 이름을 끝내 적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제로써의 예카테리나

황권의 상징인 홀과 대관식용 왕관이 보이죠.

 

두번째 여제는 안나 여제입니다.

 

안나여제

안나 이오아노브나

이반5세의 딸(표트르 대제의 이복형)

코트랜드의 공작부인

Anna Ivanovna (Russian: Анна Иоанновна, Anna Ioannovna)

(7 February [O.S. 28 January] 1693, Moscow – 28 October [O.S. 17 October] 1740)

 

안나 이오아노브나(또는안나 이바노브나) 라고 표기되는 그녀는 표트르대제의 공동황제였던 이반5세의 딸입니다. (이반의 옛날식 이름이 이오안이라고 하더라구요) 예카테리나1세가 죽은후 황위는 표트르대제의 손자였던 표트르2세에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는 젊은 나이에 후손없이 사망했습니다.(당시 권력자였던 보야드들은 젊은 황제가 죽어가는것을 알고는 후계자를 얻기위해 죽어가는 황제의 방에 신부를 밀어넣었다고 합니다.--;;)

안나 여제는 숙부인 표트르 대제를 싫어했고, 그의 치세를 언급하는것조차 싫어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표트르 대제의 딸이었던 옐리자베타는 약혼자가 죽은후 혼담도 끊어지고, 궁밖으로 밀려났고, 표트르대제의 많은 총신들도 밖으로 돌았다고 합니다.(...그중 한분이 흑인이자 후에 푸쉬킨의 증조부던가 조부던가가 되는  한니발장군입니다.)

안나여제는 어릿광대들에 둘러싸여서 유흥을 펼치는 인물로 유명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안드는 인물에게는 가혹했죠. 가장 유명한 일화는 바로 얼음궁전이야기입니다. 여제는 자신이 허락하지 않은 결혼을 했던 한 귀족에게 부인이 죽은후 강제로 못생긴 하녀와 결혼해서 얼음궁전에서 결혼첫날밤을 보내도록하죠.^^*

안나 여제는 courtland공작과 결혼했습니다만 후사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싫어했던 숙부 표트르 대제의 후손들을 왕위계승자 지위에서 배제하기 위해 조카의 아들이자 한살인 브라운슈바이크-뤼넨부르크 공작의 아들을 이반 안토노비치라는 이름으로 입양합니다. 입양직후 안나 여제는 사망했고, 이반은 이반6세라는 이름으로 러시아의 황제로 선포되었고, 그의 어머니이자 안나여제의 조카인 안나 레오폴도브나는 아들의 섭정으로 선포됩니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안나 여제

 

 

나이든후의 안나여제

 

유명한 얼음궁전이야기

 

안나 여제의 궁정모습

침대에 누워있는 여성이 안나여제입니다.

 

 

세번째 여제는 바로 표트르대제의 딸인 옐리자베타 여제입니다.

 

 

옐리자베타 여제

옐리자베타 표트로브나

표트르대제의 딸

Elizaveta Petrovna (Russian: Елизаве́та (Елисаве́т) Петро́вна)

 (December 29, 1709 – January 5, 1762 (New Style); December 18, 1709 – December 25, 1761 (Old Styl)),

 

옐리자베타 여제는 어린시절부터 아름다운 여성으로 알려졌습니다. 표트르 대제는 딸인 옐리자베타를 프랑스로 시집보내고 싶어했죠. 하지만 그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신 언니가 시집간 홀슈타인-고토로프가문의 남자와 약혼했습니다. 하지만 약혼 얼마후 그는 사망했고 이은 표트르대제의 사망으로 옐리자베타에게 더이상 혼담이 없었습니다. 조카인 표트르2세가 아름다운 고모를 사모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예쁜 고모에 대한 동경정도로 여겨집니다. (나도 저런 예쁜 부인을 얻어야지..정도..) 조카가 죽고 안나여제가 즉위하면서 옐리자베타는 권력에서 밀려납니다. 표트르 대제가 서거할당시 어린 나이였기에 권력투쟁에 끼지 못했던 옐리자베타여제는 안나여제가 사망할때쯤에는 권력투쟁에 참여합니다. 갓난아기인 이반6세와 그의 섭정인 안나 레오폴도브나를 몰아내고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여제가 되죠. (이것은 후에 옐리자베타 여제의 후계자의 부인인 예카테리나의 역할모델이 되어서 예카테리나 역시 남편보다 먼저 쿠데타를 일으켜 여제가 되죠.)

그녀는 자신의 신분에 걸맞는 남편을 얻지 못했기에, 언니 안나의 아들을 러시아의 황위후계자로 데려왔습니다. 그가 표트르3세죠. 그리고 자신의 약혼자의 누이동생의 딸을 그의 부인으로 데려옵니다. 그녀가 바로 예카테리나 대공비로 후에 예카테리나2세가 되죠.

쿠데타로 집권한 여제는 권력에 매우 비정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늘 혼란한 러시아에서 꽤나 정치는 잘했고, 대왕이라고 불렸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2세와의 전쟁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올랐죠.

여제의 후계자는조카인 표트르로  정해져있었습니다만 표트르와 그의 부인인 예카테리나는 사이가 굉장히 안좋았고, 조카이자 황위후계자인 표트르는 러시아보다 독일식을 더 선호했기에 여제가 골치아파했다고 합니다.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1세의 두딸

안나 표트로브나와 옐리자베타 표트로브나

금발머리가 옐리자베타입니다.

안나 표트로브나는 홀슈타인-고토로프의 공작과 결혼했고, 후에 표트르3세의 어머니가 되죠.

 

 

 

옐리자베타 여제

 

알렉세이 그리고리예비치 라즈모브스키 백작

Count Alexei Grigorievich Razumovsky

(Russian: Алексей Григорьевич Разумовский, Ukrainian: Олексій Григорович Розумовський, Olexii Hryhorovych Rozumovskyi; 1709–1771)

그는 옐리자베타 여제가 비밀리에 결혼했던 사람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예카테리나2세는 그에게 자신과 그의 결혼문서를 파기하게합니다.

 여제와 그의 딸이라는 두명의 사칭자들이 있었고, 그들에 대한 전설이 남아있다고합니다.

 

 

러시아의 마지막 여제는 예카테리나2세입니다.

 

 

예카테리나2세, 예카테리나 대제

예카테리나 알렉셰예브나 황후

안할트-체르브스트의 조피 아우구스타 프레데리카

표트르3세의 황후, 파벨1세의 어머니

Catherine II, Catherine the Great

(Russian: Екатерина II Великая, Yekaterina II Velikaya)

(2 May [O.S. 21 April] 1729 – 17 November [O.S. 6 November] 1796)

 

원래 예카테리나2세는 매우 작은 독일의 공국의 출신입니다. 어머니가 홀슈타인-고토로프가 출신이긴했지만, 독일의 수많은 왕가들중에서도 특히나 작은 방계왕가 출신이었습니다. 그녀가 표트르3세의 황후가 될 수 있었던것은 일찍 죽은 외삼촌이 옐리자베타 여제의 약혼자였기때문이었다고합니다.

예카테리나는 러시아로 와서는 철저하게 러시아인이 됩니다. 하지만 남편인 표트르3세는 그렇지 못하고 독일에 우호적이었죠.

표트르3세와 예카테니리나는 매우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예카테리나는 남편을 싫어했을뿐만 아니라 정치적 견해까지도 달랐죠. 결국 표트르3세가 황제위에 오르자 둘은 권력을 두고 대립하는 사이가 됩니다. 둘은 서로를 견제했고, 표트르3세는 예카테리나를 끌어내릴 기회만 엿보고 있었죠.

표트르3세는 예카테리나가 아이를 낳으려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자(사생아였습니다.) 그때를 노려서 예카테리나를 제거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예카테리나쪽이 더 빨랐죠. 자신을 제거하려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그녀는 쿠데타를 감행합니다. 자신의 연인이었던 오를로프스키와 그 형제들의 지지를 토대로 표트르3세를 몰아내고 스스로 제위에 오릅니다.

비록 제위에 올랐지만 여제는 스스로의 정통성이 약하다하는것을 잘 파악했습니다. 아무리 혼란하던 러시아 궁정이라도 정통성이 약한 황제에게는 치명적일수 있었죠. 여제는 이때문에 귀족들에게 특권을 주는 많은 정책을 폈고, 또 늘 혼란했던 러시아의 국내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활발한 대외사업을 펼쳤죠. .

그녀의 대외정책은 내부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때문에 러시아는 수많은 전쟁등에 관여하게되죠.

예카테리나2세는 혼란했던 다른 이들과는 달리 후계자인 파벨대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을 무척이나 싫어했던 그녀는 손자인 알렉산드르를 황제로 세우고 싶어했다고합니다. 아버지를 표트르3세를 따랐던 파벨1세가 즉위해서 자신의 권신들에게 해를 끼칠것을 두려워했던 예카테리나2세는 정치적 의도로 아들에게 "넌 니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편지를 남겨서 파벨1세와 그 후대 황제들을 경악속에 빠뜨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표트르3세를 무척이나 닮은 파벨1세의 외모라던가 여제가 아들을 까닭없이 미워한것등과 자신을 거절하는 아내를 달래는 표트르3세의 편지등을 미루어볼때 파벨1세가 표트르3세의 아들일꺼라고 하더군요. (쉽게말하면 진짜 싫어하고 경멸했던 남편을 닮은 아들..정도랄까요..쿨럭..)

어머니 예카테리나 2세를 싫어했던 파벨1세는 황위계승법을 확립하면서 여성의 황위계승권을 박탈했고, 때문에 더이상 러시아에서는 여제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파벨1세의 가문인 홀슈타인-고토로프가문은 남성계승자만 인정하고있었을껍니다.)

 

 

표트르3세의 가족들

아이가 파벨1세입니다.

  

 

 

 

에카테리나 여제

 

그림출처

위키피디어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Alexander II : The Last Great Tsar (Edvard Radzinsky,2005)

 

덧 08.11.15  라즈모브스키 백작에 대한 항목 수정 ( mymiky님 고맙습니다.^^*)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